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03화 (303/357)

303. <흑도 신성 흑염룡>

은하상단 창단기념식 이틀 차.

연회는 어제와 다름없이 이어졌다.

다만 어제와 같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음악은 있었지만 무희는 없었고,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손님을 맞이하여 일일이 인사를 하는 은하상단의 사람은 없었다.

연회는 연회인데 연회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 분위기.

“손님 접대가 영 엉망이네, 쯧.”

“……지금 그런 불만이 나오세요?”

왕소소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 왜?”

“상단주가 맨날 하는 자랑이 정소군이 학관에 들어간 거랑. 대당주 자리에 올라간 거였어요.”

“그래서?”

“……그래서라뇨. 그 두 가지를 한 방에 박살 내 버리셨잖아요.”

그 자랑스런 아들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게 내 탓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쎄게 때리지도 않았구만.’

무기를 빼 들었다면 단박에 날 쳐부숴야 했다.

그랬다면 그렇게 어이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창기를 막아낼 때 손으로 흘러 들어오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은하상단의 자제쯤 되면 영단이나 영약을 분기마다 먹었겠지?’

그런 정소군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건 순전히 자신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나 같은 건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이 스스로를 자멸시킨 거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몇 수는 더 나눠볼 수 있었을 터.

뭐, 그래도 결국 내가 이겼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당주가 될 실력은 아니다. 뒷돈을 대고 승진한 게 분명…….”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왕소소는 여전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거기에 걱정까지 더해서.

“어쩌면…… 앞으로 은하상단과는 더 이상 연을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요.”

하긴 잔칫날 오줌까지 지리게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그래도 상관없다.”

“네?”

“우리 태을문에겐 왕가장이 있지 않으냐.”

“…….”

왕소소는 갑작스레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설마 왕가장이 태을문을 버릴 계획이라도 있는 거냐?”

“그…… 그게 무슨!”

“그렇다면 된 거 아니냐.”

“그, 그렇긴 한데……. 태을문의 입장에선 혹시 모르는 거니까…….”

왜 왕가장의 딸내미가 태을문 사람처럼 걱정하는 거지?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거잖아요. 왕가장의 힘이 약해질지도 모르고……. 그럼 은하상단의 힘이 더 강해질 테니까…….”

“박쥐처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라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됐다. 결국 왕가장이 천하제일거상이 되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 아니더냐.”

“…….”

“그럼 은하상단이 나와 태을문을 싫어한다 한들 아무 문제 없는 거고.”

“그, 그렇죠.”

왕소소가 눈을 끔뻑끔뻑거리다 내게 조심스레 묻는다.

“……오라버니는 왕가장이 천하제일상단이 될 거라 생각하세요?”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네?”

전생의 왕가장은 왕소소의 실종과 함께 왕금산이 정신을 놓으면서 서서히 쇠락했으니까.

내 대답에 왕소소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게끔 만들면 되는 것 아니더냐.”

“……오라버니가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러겠지만, 결국 장주님과 네가 그렇게 만들겠지.”

왕가장의 자산을 갈가리 찢어 먹었던 삼대거상들은 결국 정마대전에선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물심양면으로 왕가장을 응원할 것이다.

어차피 예정된 미래 따윈 집어치우고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니까.

내 얼굴을 바라보던 왕소소가 주먹을 꽉 말아쥔다.

“맞아요. 그렇게 되면 문제없는 거죠.”

그러곤 뭔가를 다짐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리지만 역시나 의젓하다니까.

나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슬슬 돌아가자.”

“네!”

왕소소는 은하상단에 온 이래 가장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

은하상단에 사문으로 돌아가겠다는 기별을 보낸 뒤, 마부가 마차를 준비하는 동안.

정소을이 별채에 방문했다.

“또 무슨 일인가요?”

여태껏 정소을만 보면 털을 곤두세우는 고양이처럼 반응하던 왕소소가 어쩐지 여유만만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내 집에 내가 못 가는 곳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리고 반대로 이번엔 정소을이 뭔가 뾰족하게 반응을 했고.

“그럴 리가요. 하지만 아무리 주인이라도 객에게 내어준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해서 말이죠.”

그리고 두 여인의 기 싸움에 등 터지는 건 나였다.

“소소야, 떠날 채비를 마무리하거라.”

흥! 하는 소리와 함께 왕소소는 나머지 짐을 챙기러 들어가 버렸고, 애당초 짐을 가져오지 않은 나와 정소을만이 거실에 남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고운 목소리가 귓가로 날아들었다.

“……그렇게나 이야기했는데 결국 일을 저질러 버렸군요.”

“일이라니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태연한 표정에 정소을이 헛웃음을 뱉었다.

“하, 설마 당신이 벌인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겠죠?”

그간 미묘하게 유혹의 태도를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도 그에 맞춰 대하는 자세를 바꾸었고.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였다는 거지? 그쪽이 원하는 대로 재주를 선보이라기에 재주를 보였고, 시비를 걸어옴에도 손속에 사정을 두었는데?”

“허……! 참나……!”

“음, 지금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것도 슬슬 기분이 상하는데……. 제대로 이야기하든지 눈앞에서 꺼지든지 둘 중 하나를 하지 그래?”

“꺼, 꺼지라고요?”

내 거친 언사에 당황한 표정을 금치 못하는 정소을.

급기야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정말 끝까지 멍청한 흑도 흉내를 낼 셈인가요?”

내가 멍청한 흉내를 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

‘은범’의 본 모습을 본다는 건 꽤나 즐거웠다.

그보다 이 여자, 자기는 그때 내실에 없었다고 겁을 좀 덜 집어먹었나 본데?

이거 안 되겠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외쳤다.

“뭐? 멍청하다고? 지금 나를 모욕하는 건가!”

살기를 일으키며 벌떡 일어나니 정소을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서, 설마 여기서……!”

스르릉.

검까지 뽑아 들며 다가가자 정소을은 범 눈깔에 제압된 토끼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끄으으…….”

한참을 지그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이내 살기를 거뒀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나는 그녀가 선 바닥을 슬쩍 쳐다보곤 말했다.

“그나마 네가 네 오라비나 아비보다 낫군.”

“…….”

정소을은 뭐가 그리 분한지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성가심에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몸을 부르르 떨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연다.

“……아버지께서 떠나시기 전에 보자고 하셨어요.”

흐음…… 이제 와서?

#

상단주의 집무실은 대천상단의 것과는 달랐다.

행정처와 바싹 붙어 있는 아버지의 집무실과 달리, 은하상단 상단주의 집무실은 긴 회랑을 지나 은하상단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간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화려하고 커다란 집무실에 홀로 앉아 있는 상단주는 딱딱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쯧쯧, 하룻밤 사이에 폭삭 늙은 듯하네……. 못내 안쓰럽구만.

“연회가 한참인데 주인공께서 이리 나와 계셔도 되는 겁니까?”

내 말에 대꾸는커녕, 반응도 안 보이던 상단주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왕가장에서 보내온 계약서에 인장을 찍을지 말지 고민하던 중이었지.”

“그건 어제 다 끝난 얘기지 않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했다고 내가 거래를 무효로 돌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가?”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시겠지요.”

“신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무인이라니. 재밌군.”

그가 손을 모아 입을 가린다.

눈초리는 더 없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말이야…… 그거 아나? 이번 거래를 마지막으로 대천상단과 태을문 모두가 끝날 수도 있음을.”

“그러실 생각이십니까?”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

“본래 태을문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상태로……. 아니, 그보다 더 심한 방법으로 대천상단과 태을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도 있지.”

작은 범과 달리 노련한 범의 눈빛이 번뜩인다.

“왕가장에 기댈 생각이라면 집어치우게. 왕가장도 결국 상인. 신의나 은혜는 단지 돈으로 사기에 번거롭고 비쌀 뿐, 금전으로 살 수 없는 건 아니니까.”

역시 협박 기술이 예술이네.

근데 그것도 먹혀야 협박 아니겠나.

곰곰이 듣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뜻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뭐?”

순간 적개심으로 가득하던 상단주의 표정이 복잡하게 바뀐다.

“전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상단주님은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으니. 모두가 만족할 해결법 따윈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지요.”

“……자네 제정신인가? 아니면 그리 자신이 있다는 건가?”

나는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지요.”

“…….”

더더욱 복잡다단해진 표정.

상단주는 말없이 한참이나 나를 멀거니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아직, 혼례는 안 올렸다지?”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질문이래.대답할 가치조차 못 느끼고 있는 그때.

“소을이는 어떤가. 눈에 야망이 그득그득하지만 그만큼 지아비를 위해 내조도 잘할 거네. 현명한 아이니까.”

“네?”

이 양반 갑자기 뭐라는 거야.

“아니면 소을이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얼굴은 내가 봐온 그 누구와 비교해 봐도 빠지지 않는데.”

너무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벙쩌있는 사이, 상단주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천하에 혼란이 올 것이네. 알고 있나?”

……어라, 뭐지?

“그리고 그 혼란이 닥치면 수많은 질서가 파괴되겠지. 거대한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뿌리를 내려야 하네. 자네는 왕가장이 태을문에 확실한 뿌리를 내릴 거라 생각하는가?”

정확하게 이야기하진 않고 있지만 상단주는 어쩐지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담…… 은범이 은하상단을 먹은 것도 어느 정도 그의 의도대로 된 일인가?

‘하긴, 직접 만난 은범은 금세 본색을 드러냈으니까. 자력으로 은하상단을 삼킬 정도의 그릇은 아니었지.’

정소군에 비하면 정소을이 뛰어나다.

하지만 상단주로서 장자를 두고 차녀에게 상단을 물려줄 수는 없는 법.

어쩌면 ‘은범’이 스스로 상단을 취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 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단호한 눈빛으로 내게 제언했다.

“은하상단에 뿌리를 내리게. 그럼 태을문은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을 걸세.”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만약 전생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하며 거의 땅에 닿도록 고개를 처박지 않았을까?

전생에 하지 못했던 혼례도 올리고 말이지.

그런데…….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누군가에 기대어 뿌리를 내리는 짓은 전생에도 해봤단 말이지.

‘무림맹’이란 거목에다.

그리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태을문의 뿌리는 스스로 내리겠습니다.”

남의 뿌리에 기생하는 걸론 폭풍을 버틸 수 없다.

오직 나 자신의 힘으로, 내 뿌리를 단단하게 땅에 내려야 한다.

나는 상단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말이지요.”

“……세상이 쉬워 보이나 보군.”

“뭐,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고요.”

한참이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상단주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소군이에겐 은하상단이란 뿌리가 너무 튼튼한지도 모르겠군.”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상단주가 이내 목함을 열었다.

그러곤 커다란 금새(金璽)를 들어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었다.

“왕 장주에게 전해주게. 대천상단주에게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처음으로 상단주가 내게 존중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나도 그에 맞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냉옥환은 어두운 동굴로 들어섰다.

‘참 병신 같은 취향이란 말이지.’

멀쩡한 건물을 놔두고 굳이 이런 동굴에 실험실을 처만드는 정신머리가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통로 천장에는 횃불 대신 비싼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횃불은 공기의 질을 바꾼다나 뭐라니.

너무 찐따 같은 이유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렇게 통로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고, 냉옥환은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며 들어섰다.

“나 왔다.”

“…….”

안으로 들어가니 동굴 주인이 인상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뭐? 왜?”

“무해복을 입으라 했을 텐데.”

냉옥환이 주변에 걸린 시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발, 내가 저런 것들한테서 오염될 것 같아?”

“네놈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시체에 바보 병이 옮을까 봐 걱정하는 거다.”

“이 개새끼가.”

달려들 듯 몸을 앞으로 숙인 냉옥환을 보고 동굴의 주인이 손에 든 칼과 집게를 바닥에 내려놨다.

“임무도 실패한 놈이 왜 여기까지 와서 알짱거리는 거지?”

그러자 뭔가 생각났다는 듯, 냉옥환의 태도가 일변했다.

“……아! 맞다맞다. 나 그놈 봤다.”

“그놈?”

“네가 만든 철강시를 부순 놈.”

일순 사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딴 쓰레기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아랫놈들이 만들어 놓은 걸…….”

“아아, 아무튼 네놈 굴에서 만든 건 맞잖아.”

“이 빌어먹을 소 새끼가…….”

냉옥환이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임무 실패로 인해 치도곤을 당하긴 했지만 저 썩은 표정을 보니 조금은 기분이 풀린다.

이걸 보려고 굳이 이 더러운 굴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하여간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곧바로 반응해서 너무 즐겁다니까.

냉옥환이 의자에 털썩 앉으며 툭내뱉었다.

“아무튼 재밌는 놈이더라고.”

“재미?”

“그래, 장오극 네놈과 좀 비슷하다고나 할까?”

장오극이라 불린 사내가 송곳니를 드러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그냥 죽여버리고 싶은 면상이었다는 소리지.”

“……냉옥환.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어우, 됐다. 아무튼 소마께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더라고.”

냉옥환의 말에 장오극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이내 의문을 내비친다.

“놈이 혹시 흡성대법을 쓰던가?”

“흡성대법?”

“제금학의 건곤극마기가 완전히 뒤섞여 버렸다. 그 탓에 치료가 더딘 것이고.”

“오호라……. 그랬던가?”

“뭔가 알아낸 것인가?”

장오극의 기대 어린 눈빛에 냉옥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모르지. 난 안 싸웠거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같으니라고.”

“케헤헤, 뭔가 내가 도움이 될 걸 가져다줄 거라 생각한 거냐?”

“볼일 끝났으면 꺼져라. 바쁘니까.”

뒤로 돌아선 장오극의 뒤로, 냉옥환의 진지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선생님께서 ‘네 번째 단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전달하셨다.”

냉옥환의 말에 장오극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래. 혈마종의 사생아들이 생각보다 더 병신들이었으니까.”

“‘개천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그날이 오면…….”

뒷말을 이으려던 냉옥환이 말을 삼켰다.

아무리 경솔한 그라도 그것에 대해선 쉽사리 내뱉어선 안 되니까.

“그래, 그날이 오면…….”

장오극도 뒷말을 삼긴 채 냉옥환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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