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흑도 신성 흑염룡(5)>
마공.
흔히 말하기로 마교의 인원들이 익히는 무공을 말한다.
하지만 무림맹은 마공의 범위를 더 크게 잡는다.
순리를 뒤틀어 진리를 벗어난 힘.
법칙을 거스르고 상식을 벗어난 힘을 모두 마공의 범주로 넣는다.
이는 오백 년 전 무림맹이 세워짐과 동시에 시행되었던 ‘정도 분류’에 의한 것.
지난 오백 년간 무림맹은 이 ‘정도 분류’에서 벗어난 무공을 모두 말살하고 강호의 안녕을 지켜왔다.
그렇기에 당대에 와선 마공의 종류나 마공의 특징을 아는 사람이 적었고, 등고현의 모습을 보고 마공을 떠올리는 이는 없었다.
“다, 당주님! 괘, 괜찮으신 겁니까?”
독아문의 인원을 단칼에 베어낸 것은 기쁘지만, 그를 막아섰던 전등문의 문도 또한 베어버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전등문의 다른 문도들.
그들이 조심스레 등고현을 부르지만 그는 들은 척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독아문도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무기를 든 상대에 맞서 무기를 들어 대항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필사적인 방어가 먹히지 않는 사태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기에 충분했다.
촤아아악!
“끄어억!”
또 한 명, 검을 방어하던 독아문도가 검날과 함께 목이 잘려나가며 피 분수를 내뿜었고, 독아문의 마당엔 피로 만든 작은 물길이 흐르기 시작할 정도였다.
연신 뒤로 물러서는 독아문도.
그리고 그때마다 쫓아가서 목을 베고 몸을 찢어 놓는 등고현의 신위는 무사라기보단 이미 한 마리의 악귀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다, 당주님…… 그, 그만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보다 못한 문도가 등고현에게 말해보지만 등고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어 결국 뒤에서 그를 제압하기 위해 세 명의 전등문 문도들이 달려든 순간.
번쩍.
등고현은 시꺼먼 눈깔로 사제들을 바라보며 무감하게 도를 휘둘렀다.
“커흑!”
“끄어억!”
한 명이 목이 잘리고, 두 명이 팔과 다리가 잘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독아문과 전등문 모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미, 미친 대체 뭐야!”
“가, 같은 편을……!”
“도, 도망쳐!”
천하의 무서울 것 없는 흑도조차 겁에 질리게 만든 등고현은 핏물이 튀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저, 전등문은 영원하다!!!”
부릅떠진 눈동자로 재차 독아검에게 달려드는 등고현.
빠드득.
부서져라 이를 간 독아검이 전력을 다해 그에게 맞서려 한다.
“도망갈 것 같으냐!”
댕겅!
하지만 검기가 어린 독아검의 무기가 잘려나가고, 그의 두 눈이 등고현처럼 부릅떠진 순간.
퍽-
난 얼른 그를 발로 차버렸다.
“뭐, 크헉……!!”
콰쾅!
전각의 기둥을 부러뜨리며 날아간 독아검.
“너 내가 목숨 한번 구해준 거다.”
“……시, 시발…….”
흑도답게 고마움을 욕지거리로 표현하는 독아검.
나는 그를 뒤로하고 등고현을 자세히 살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김.
여기까진 폭혈단 복용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지만, 이후부턴 뭔가 다르다.
흰자위가 모두 사라진 흑요석 같은 눈동자.
검강이 아님에도 검기를 모조리 베어버리는 요상한 기운.
게다가 끝도 없이 기파를 뿜어내고 있음에도 선천진기를 쓰는 것처럼 소모되는 모양은 아니다.
마치 우리는 알 수 없는 곳에서 기를 끌어다 쓰는 기분.
그리고 무엇보다.
피부를 따끔하게 찌를 정도로 불쾌한 살기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시리게 만드는 짙은 마기까지.
나는 등고현을 향해 물었다.
“네놈…… 마공을 익힌 건가?”
내 물음에 등고현의 시선은 독아검을 좇았다가 내게로 향한다.
“넌…… 넌…… 뭐냐, 방해꾼이냐?”
“마공을 익힌 건지 물었다.”
“전등문을 방해할 셈이냐!”
짐승같이 침을 흘리며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등고현.
“죽이겠다! 전등문을 방해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
의념을 보내어 태을진경을 끌어올렸다.
내기가 혈맥을 타고 세맥으로 쭉쭉 뻗으며 힘을 불어넣었다.
태을팔만신보를 밟아 환영 두 개를 남기며 등고현의 뒤를 잡았다.
“어이, 여기다.”
놈이 대경하여 뒤돌아보는 순간, 머리를 발로 차 삼 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콰콰쾅.
어른 두 명이 감싸도 남을 만큼 두꺼운 나무 기둥을 박살 내며 처박힌 등고현.
투둑, 투두둑.
하지만 녀석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좀 전과 다른 점은.
“죽인다…… 죽인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 짐승처럼 이를 으르렁거린다는 것.
커헝!
야수처럼 포효를 내지른 놈이 바닥을 박차며 화살처럼 내게로 날아들었다.
촤악- 촤악- 촤악-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 들어오는 놈의 도를 한 치 차이로 피했다.
다만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어쩔 수 없이 놈의 도의 의해 잘려나갔다.
이거 소소 녀석이 사다준 비싼 옷인데.
빌어먹을 놈.
“정신 좀 차려 보라고 새끼야!”
주먹을 틀어쥐고 놈의 턱이 부서져라 때렸다.
이(二) 장가량 몸이 붕 뜬 놈은 목이 부러지듯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이내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 돌아 자세를 다잡았다.
타닥.
바닥에 내려앉은 등고현은 이내 피를 한 사발 토해내더니 제 몸과 같이 여겨야 하는 도마저 집어 던진 채, 네발로 기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크르릉.”
성난 개새끼 마냥 이빨을 으르렁거리던 등고현이 이내 방향을 뒤틀어 독아문의 문도들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악!”
목덜미를 한 움큼이나 뜯긴 독아문도가 일격에 죽어버리자, 등고현은 이내 죽은 이를 버려둔 채 다음 대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미, 미친! 뭐야!”
“도, 도망쳐!”
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쉬이 인상을 펼 수가 없었다.
분명 풍기는 기운은 마공이 분명하건만, 하는 행동은 마인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인들이 살인에 미친 놈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이지를 상실하진 않는다.
아니, 되려 누구보다 냉철하기 때문에 살인을 무엇보다 쉽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상하단 말이지.’
오직 살인에 미쳐 제 목적을 상실한 듯한 놈의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청성의 속가의 속가라는 정체성을 자랑하는 이가 마공을 익혔다는 것조차 쉬이 납득이 가지 않고.
‘애당초 백도인이 몰래 익힌 마공을 이리 쉽게 드러낸다고?’
나 또한 청룡환이라는 기물에 의해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함부로 꺼내 놓지 못한다.
이걸 꺼냈다간 전 무림의 공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까.
그렇다는 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놈이 마공을 드러낸 작금의 상황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고 봐야 했다.
‘뭐지…… 뭘 놓친 거지?’
내가 고뇌에 잠긴 사이, 독아검이 벌떡 일어나 등고현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빌어먹을 등고현!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냐!”
“크아악!”
제 손에 칼이 파고듦에도 독아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등고현.
시뻘겋게 달아오른 독아검의 얼굴에 푸른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폭혈단이 과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
문득 독아검을 시작으로 독아문과 전등문의 모두가 폭혈단을 먹은 것이 떠올랐다.
‘폭혈단이 뭔가 기폭제가 된 것인가?’
나는 옥청천상력을 끌어올려 비룡조를 쏘았다.
“사, 살려줘!!!”
등고현이 독아검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 비룡자가 등고현의 목을 휘감아 몸째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캬앗!
끌려오던 와중에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달려드는 등고현.
난 적광검을 뽑아 옥청천상력을 끌어올려 검강을 형성했다.
촤왁─
적광검이 빛무리를 형성하며 궤적을 그렸지만, 놈은 몸을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비틀어 검강을 피했다.
‘이걸 피한다고?’
검을 회수해 다시금 소천검법을 펼치는 순간.
두두둑, 두둑.
놈의 발에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놈이 포탄처럼 앞쪽으로 튀어 나왔다.
“미친!”
꽝!
초식도 뭣도 없이 온몸으로 달려드는 등고현.
포식갑을 들어 방어했지만, 포식갑을 제외한 전신에 충격이 깃들었다.
제법 큰 충격에 몸이 붕 떠올라 그대로 뒤로 날아간다.
퍽!
전각의 기둥에 몸이 부딪친 후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놈이 이미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죽인다! 죽인다! 전등문의 적은 모두 죽인다!”
재빨리 만화무적권을 떨쳐내어 놈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고통 따윈 느끼지 않는 것인지, 놈은 턱이 부서지고 코가 짓뭉개지는 상황에서도 계속 공격을 해왔다.
‘이 개새끼가!’
진짜 마공은 아니지만 진짜 마인처럼 끈질기고 질척거리는 모습.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로 각인될 수밖에 없는, 전생에서 지겹게도 봤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으드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이가 갈린다.
“야.”
“크르릉! 죽인다! 죽인다!”
“너 사람 잘못 골랐다. 내가 마인이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거든.”
놈이 고통을 개의치 않는다면 나 또한 고통에 개의치 않으면 되는 법.
난 내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놈의 주둥이에 주먹을 그대로 박아 넣었다.
콰드득.
이빨이 박힌 손등을 타고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대로 주먹을 더욱 놈의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이것도 처먹어 봐라!”
동시에 성화멸마수를 일으키자 통각이 마비된 듯한 놈이 눈을 부릅뜬다.
캬아아악!
제 턱이 빠지건 말건 이빨이 빠지건 말건.
오직 손을 빼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등고현.
나는 그대로 놈을 발로 차버린 뒤에 주위의 돌멩이를 들고 놈에게 다가갔다.
입안에서 퍼진 성화멸마수의 불꽃에 뇌가 다 타버린 듯 모래를 집어삼키며 불을 끄려는 놈.
이어 겨우 입안의 불을 끄고 컥컥거리는 놈의 대가리에 돌을 처박았다.
퍽! 퍽! 퍽! 퍽! 퍽! 퍽!
연신 저항하던 놈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고.
놈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
“아직 죽으면 안 되지.”
난 놈의 백회에 손을 대고 옥청천상력을 불어넣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놈의 몸이 다시금 들썩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이지와 감각이 돌아온 건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등고현.
“꺼억! 꺼억! 꺼억! 사, 살려 살려…….”
성화멸마수에 이미 기도가 타버려 놈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
난 놈의 머리채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마공은 어디서 얻은 거지?”
“……사, 살려…….”
난 놈의 뺨을 한 대 후리고 다시금 물었다.
“마공! 마공은 어디서 얻은 거냐!”
“마, 마공……?”
“그래, 네놈이 익힌 역천의 무공. 대체 어디서 얻은 거냐!”
“아, 아니. 난, 난 신공을…….”
등고현의 실력은 잘 봐줘야 일류 수준.
정량적 평가를 내리자면 무림맹의 부당주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자가 익힌 게 신공이라고?
“누구냐……. 누가 너에게 무공을 알려준 것이지?”
“…….”
등고현의 눈빛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지려 한다.
난 옥청천상력을 더 불어넣었다.
하지만.
“저, 전등문…… 영원…….”
등고현의 눈빛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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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독아검은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폭혈단의 영향은 이미 잠혈단으로 잡은 상황.
그럼에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은 건, 진정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대, 대체 뭐였지……?’
별별 놈들이 다 있는 흑도 무림에서 수십 년을 살아남았지만 이번과 같이 진짜 공포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분명…… 죽은 거였어.’
특히 등고현이 핏물 가득한 이빨로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던 순간.
그 순간은 다시금 생각해도 온몸의 힘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독아검이 고개를 돌려 등고현을 바라봤다.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무언가를 묻고 있는 흑염룡.
단순 똘기 충만한 미친놈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었다.
그것도 악몽에서도 보지 못한 끔찍한 대상을 상대로.
만약 흑염룡이 독아문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을 비롯한 독아문도들 모두는 이곳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서, 설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여 흑염룡은 흑도 방파의 안위를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닐까?
묘한 기대감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어찌 되었든 백도 소속이라는 신분이 있으니 친선으론 방문할 수 없고, 돈을 갈취하겠다는 흑도다운 이유로 정찰을 나와준 것 아닐까 하는.
그게 아니라면 일면식도 없는 독아문을 위해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백도 무림의 초신성인 용소아가 훗날 무림을 장악할 것을 대비하여, 전설적인 흑도 고수들이 공들여 전인을 만들었다는 소문.
비로소 그 소문의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아아……!’
이쯤 되자 흑염룡이 말한 ‘친구’라는 호칭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흑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역시…… 흑도 무림의 신성.’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그때.
흑염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며 자신을 불렀다.
“독아검.”
“네, 넷!”
그가 흑도의 공동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존칭이 절로 나온다.
“전등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왜…… 그러십니까?”
흑염룡은 마치 불구대천 원수를 만난 듯 이를 갈았다.
“안내해라. 볼일이 있으니.”
“…….”
백도를 향한 저 끝없는 증오.
저것은 본디 흑도의 본질을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분노였다.
정녕 그는…….
“뭐 하나? 안내하지 않고.”
“네, 넷! 알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이제 독아검은 흑염룡이 흑도 신성임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