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악의 불씨(4)>
빙공.
음의 기운을 가시화하여 사용하는 무공.
이론상으론 간단하지만 실제 이 기운을 구현화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이 빙공이 내부에 머무는 동안 신체를 계속 갉아 먹는다는 것.
인간의 체온은 항시 일정하게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빙공은 그 온도를 자꾸 떨구며 사람의 생(生)을 갉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양가기공이 수가 무척이나 많은 것과 달리 빙공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애당초 인간이 기를 운용하는 방식은 그 기운의 힘을 빌려다 쓰는 것이지 기의 형질을 구현화하는 것이 아니니까.
‘물론 미친 마교 새끼들 빼고.’
그 새끼들은 애당초 상식이란 걸 저 멀리 서역으로 걷어차 버린 놈들이니까. 기의 형질을 가져와 불을 뿜고 얼음을 쏘아내는 것이지.
이는 법칙의 순리 안에서 당연시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빙공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체질에 맞아야 하고, 안정적인 빙공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다른 무공을 포기해야 한다.
빙공의 형질은 다른 기공, 특히 무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가기공과 반대되기에 두 가지 기공을 익힌다는 건 온몸에 기름을 바른 뒤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강호의 무공 중에서도 음과 양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무공은 무당파의 양의태극신공 정도밖에 없을 정도.
……근데, 지금 그걸 내가 쓰고 있다.
“하하, 제가 술이 너무 많이 취했나 보군요. 빙공을 쓰다니.”
잔을 내려놓고 다른 잔을 들어 종전과 같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츠츠츠츠츳!
다시금 차갑게 변하는 술잔.
“하하, 미친.”
짝- 짝- 짝-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뺨을 세 대나 때렸다.
“어머!”
옆에서 빙공을 선보였던 여성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지금 내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나는 이번엔 술병을 들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츠츠츠츠츠츠!
“…….”
술병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보면서 설마 하는 생각으로 술을 잔에 따라 마셨다.
“캬! 시원하네.”
“…….”
“…….”
이런 상황에 할 말이 아니긴 하지만 진짜 시원하게 마시니 술맛이 곱절로 좋긴 하다.
“……공자님, 혹시.”
해령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무당파에서 양의태극신공을 익히셨을까요?”
그거 무당파 문주 아니면 다음 대를 이을 제자에게나 전해주는 거잖아.
지금 무당파 내에서도 그걸 익힌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걸.
“……그럼 혹시 마인……이십니까?”
“…….”
“어, 음, 아니시죠? 그쵸?”
“…….”
나도 모르겠다.
몰라서 미치겠다.
#
빙공을 쓰던 여성을 해령이 내보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니까.
……게다가 이제 화빙로는 내가 스스로 차갑게 해서 마실 수 있거든.
나는 술병을 들고는 물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빙공을 썼다는 게 혹여나 알려지면…….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믿을 수 없었다면 애당초 무공 같은 걸 전수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쪼르르르.
술 따르는 모습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해령이 미간을 찌푸린다.
“……지금 술이 들어가십니까?”
“실험 때문에 먹는 겁니다.”
“그게 무슨…….”
“뭐가 뭔지 알아야 하니까요.”
일단 화빙로 한 병을 비우면서 이것저것 실험해 봤다.
첫째로 빙공의 힘이 그렇게 강하진 않다.
내가 조절해서 음기가 강한 게 아니라. 아무리 내공을 퍼부어도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진 않았다.
그러니까 딱 술을 마시기 좋은 정도의 음기가 발산될 뿐.
무언갈 얼리거나 할 수는 없다는 것.
‘이걸 애당초 빙공이라 할 수 있나?’
그러니까 빙공을 쓸 순 있는데, 이게 또 무공으로 쓸만한 수준은 아니란 얘기.
그러니까 아까 그 여인처럼 주루에서 술을 따르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손님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는 않군.’
“공자님, 무슨 생각을…….”
“크흠, 아닙니다.”
두 번째로 내 내공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게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데.
단전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운공을 해봐도 내공은 그대로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태을기의 형질은 변함이 없다.
근데 이 태을기를 끌어올려 기본적인 빙공의 운용으로 바꾸면.
솨아아아-
……찬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돌겠네.’
그러니까 이 찬 기운이 나오는 기제(旣濟)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공 운용이란 것도 대충 빙공의 기제를 따라 한 것일 뿐,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인데.’
무인이 자신의 내공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는 결국 생사를 다루는 문제로 번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을 몸 안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공자님?”
내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가? 혜령과 양군백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
나는 대답 대신 술병을 들어 올렸다.
“혹시 화빙로가 더 있습니까?”
“…….”
“실험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해령의 미간에 처음으로 주름이 졌다.
“제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후우.”
난 심각하게 물어본 건데.
#
화빙로를 두 병 더 비운 뒤 더 이상 술이 없다며 해령에게 쫓겨났다.
‘쪼잔하긴! 내가 좋은 정보도 가져다줬건만.’
화빙로를 총 세 병 비우면서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크게 없었다.
일단 내공이 계속되는 한 미미한 수준의 냉기는 계속 발산된다는 것.
그리고 빙공을 운용하는 도중에 운용을 중단해도 돌아간 내공에 이물감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빙공으로 변환은 되는데 원상태로 돌렸을 때 크게 문제는 없다는 말이다.
‘천만다행이지.’
이 점에서 난 조금 안도를 했다.
어찌 되었든 단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아니니까.
해령이 어째서 빙공을 익히게 되었냐고 집요하게 물어왔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빙공을 익히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의심이 가는 걸 하나 꼽자면.
‘청룡환 이 빌어먹을 놈…….’
왠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라고 할 것 같은 이놈이 가장 의심스럽다.
왜냐면 최근에 몸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일을 꼽자면 제금학(몸에 좋은 남자), 그놈밖에 없으니까.
더구나 제금학은 음기와 양기를 동시에 다루는 음양인이기도 했고.
워낙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기에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단전에 변화가 있었던 건 청룡환으로 제금학의 내공을 빨아 먹을 때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용의자는 이 청룡환이 확실하다.
흡성대법으로는 상대의 내공을 흡수해 낼 수만 있을 뿐 그를 자신의 내공에 녹여내진 못하니까. 상대의 내공이 그대로 발현된다.
청룡환이 제금학의 빙공을 흡수했고 내가 그 빙공을 쓰는 것이라면…….
‘얼추 상황이 들어맞네.’
과거에 흡성대법을 익혔던 이들도 각기 다른 형질의 기운을 흩뿌리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었다.
전생에 청룡환의 주인이었던 흡혈괴마 고중악은 무려 열 가지에 달하는 각기 다른 기운을 사용했었고.
물론 이 융화되지 않는 기운들 때문에 결국 광인이 되거나 주화입마에 걸린다.
때문에 무림맹이 선포한 금공목록에 올라있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함부로 익힐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약간 상황이 다르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처음 청룡환을 쓰기 시작한 것도 단전에서 기운이 서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기운이 서로 나뉘지 않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빙공을 쓸 수 있게 되어버린 걸까.
뭐가 됐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시바 이 마교 새끼들…….’
이건 다 마교 새끼들 탓이다.
그 새끼들만 없었어도 내가 이런 해괴한 몸이 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제금학을 비롯한 마인들에게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 때.
뒤에서 기감이 느껴졌다.
“……뭐 하냐?”
“하…… 어떻게 알았어요?”
“뭘 어떻게 알아. 숨기려고 노력이나 하든가. 이렇게 기감이 느껴지는데.”
고개를 빼꼼 내밀며 옆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사련이었다.
“은신술 연습을 하는데 영 힘드네요.”
“귀식행보가 있는데 뭐 하러?”
“귀식행보는 내공의 반응이 느리잖아요. 은신술은 내공을 쓰면서도 기척을 숨길 수 있다던데…… 실전에선 그게 더 좋지 않겠어요?”
하긴 암살이나 잠행에는 은신술이 더 낫겠지.
“만서고에 괜찮은 은신술이 하나 있으니, 나중에 읽어 봐라.”
“만서고도 다 봤어요?”
응, 전생에.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사련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이 늦은 시간에 어딜 다녀오는 거냐?”
“그러는 사형은 이 늦은 시간에 어딜 다녀오는 길이에요?”
“난 중요한 일을 보러 갔다 왔지.”
태을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것을 얘가 알까?
모르겠지.
모르게 하는 게 맞는 것이고.
이게 대사형으로서의 무게이자 책임이…….
킁킁.
“뭐 하…….”
“가만있어 봐요!”
사련이 갑자기 바짝 코를 가져다 대며 의심스런 눈빛을 쏘아낸다.
“술 냄새가 나는데요?”
“……원래 중요한 일에는 술이 꼭 끼는 법이지.”
“그러니까, 그 중요한 일이 뭔데요?”
“크흠…… 아직 이르다. 때가 되면 알려주마. 근데 그건 뭐냐?”
내가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사련의 품에 품고 있는 보따리를 가리키자 사련이 답했다.
“당과랑 주전부리요. 사제들이 열심히 수련해서 포상하려고요.”
“…….”
쩝.
갑자기 혼자 소화루에 갔다 온 게 미안해지네. 분명 일하러 간 거였는데.
“……대견하네. 련매.”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사련이 재빠르게 머리를 피했다.
“왜 이래요!”
“이런 건 원래 대사형이 챙겨야 하는 건데.”
“알면 잘하든가.”
어쩐지 전생에 계철영을 그렇게 욕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정작 내가 대사형이 되었지만 계철영과 다른 게 뭔가 싶어서…….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 개자식과 나를 비교하는 건 좀 너무했네. 미안하다 나 자신아.’
그 씹새끼가 얼마나 우리에게 갑질을 했던가.
애당초 그놈과 나를 동일 선상에 올려두는 것 자체가 내게 모욕적인 일이나 마찬가지다.
암 그렇고말고.
내가 어떻게든 생각을 털어버리려 할 때, 사련이 툭 하고 내뱉었다.
“됐어요. 사형은…… 사형으로서 충분히 잘해주고 있으니까요.”
“응?”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동안 사련이 말을 이었다.
“태사조님 진전도 찾아왔고, ……미친 짓이긴 하지만 사제들을 데리고 정시도 치렀잖아요. 그것만 봐도 사형은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데리고 치렀나, 녀석들이 잘 쫓아온 거지.”
한 발 뒤에서 걷고 있던 사련이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응? 왜 갑자기? 귀신이라도 봤냐?”
“예전에 은호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정시 치를 때, 너무 힘들고 괴롭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눈앞에 사형 등이 보이더래요…… 그래서 사형 등만 보고 따라갔다고요.”
“…….”
“그냥 사형 등만 보고 따라가니까. 무림학관에 도착해 있었다고.”
은호 얘는 대체 무슨 얘길 하고 다닌 거람.
어색한 기분에 대충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뭔 소리야, 그땐 남궁 소저랑 성 소저도 함께였는데.”
사련은 왠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사형이랑 뭔 얘기를 하겠어요…….”
그러더니 다시금 눈을 마주쳐 왔다.
“대사형은 계속 그렇게 나아가세요. 사제들을 챙기는 건 제가 할 테니까요.”
왠지 사련은 다짐하듯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시 발걸음을 놀렸다.
이번엔 나보다 한 걸음 앞서서.
그녀의 등이 보이자, 나는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대견스런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정마대전이 휩쓸 강호에서 나 혼자의 힘만으로 태을문을 지켜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렇게 함께 잘 따라와 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정시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
생각해 보면 복양평원에서 암흑절혼단을 상대로도 청룡환을 썼었다.
그리고…….
‘그때도 단전이 늘어났었는데?’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 양손을 바라봤다.
제금학의 내공을 흡수하면서 그놈의 내공 형질을 흡수한 것이라면…… 암흑절혼단의 내공을 흡수하면서 놈들의 형질도 흡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태껏 놈들처럼 골검이 튀어나오거나 살이 분리된 적은 없었다.
‘하긴 그건 광인들이나 할 만한 시술을 받아야 하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무림학관에서 갑자기 골검이 튀어나오거나, 백도의 무수한 인사들 사이에서 피부가 갈라졌다가 다시 오므려지는 모습을 보였다간 얄짤 없이 강호 공적으로 선포당할 테니.
아무튼 외부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내부적 변화.
암흑절혼단의 특기는 [암흑동화]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단초는 전혀 없다.
잠깐만…….
‘와…… 미친.’
나…… 그럼 최강의 은신술을 얻게 된 건가?!!!
나는 흥분을 누르고 사련을 불렀다.
“사련아.”
“네?”
앞서 걷던 사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부터 내가 뭔갈 해볼 건데……. 그걸 보고도 너무 놀라지 말거라.”
“……무슨?”
“아마도 내 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네?”
“그리고 반드시 비밀은 지켜다오.”
“……사형.”
사련이 뭐라고 말을 잇기 전에 나는 만서고에서 봤던 은신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 뛰어난 은신술은 아니지만, [암흑동화]를 빼앗았다면 이 은신술은 아마도 암흑절혼단이 펼친 것과 같은 형태로 드러날 터.
그러니까 완전히 모습을 감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은신술을 펼치고 천천히 사련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양손을 활짝 펼쳐 허공을 휘적거렸다.
“…….”
사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련의 뒤로 가서 몸을 휘적거리고, 옆에서 휘적거리고, 다시 한번 앞에서 휘적거리고.
그러는 동안 사련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후, 이걸 어쩐다.
어쩌면 난 마인들에게 중원인이 느꼈던 공포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 [암흑동화]를 통해 놈들도 똑같은 공포를 느끼…….
“사형…….”
갑자기 사련이 날 불렀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응? 내 쪽?
어라? 어떻게 날 볼 수 있는 거지?
사련은 이내 해령이 지은 표정과 똑같은 표정이 되어선 한숨을 내쉬었다.
“사형, 술 취했어요? 미친 사람처럼 왜 자꾸 왔다갔다거려요?”
“…….”
“몸이 아니라 머리에 문제 생긴 거 아니에요?”
……음, [암흑동화]는 못 가져온 건가?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네 경지가 실로 높아진 것 같아 대사형은 기쁘기 그지없구나.”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까는데요?”
“커흐흠! 거 달이 참 밝구나.”
말 못 할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