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늦겨울의 칼바람>
황천현으로 무림맹의 흑무각과 집행각이 들이닥쳤다.
보름 전, 합비 지부의 맹원들이 조사를 나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삼엄한 기세의 흑무각과 집행각이 부지불식간에 독아문을 급습했고, 유일한 경쟁자가 사라지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던 독아문도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독아문은 엄연히 사흑련의 동맹으로서…….”
“아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끝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돼.”
“그 무슨……! 무림맹과 사흑련이 전쟁을 벌여도 상관없다는 이야긴가!”
“니네들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 거 아냐. 여기 전등문 애들 있다며.”
“으,응?”
“여기 사흑련에서 보내온 협조 공문. 사술을 익힌 자를 조사하려는 거니까. 협조 부탁해.”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가는 흑무각 부각주의 말에 독아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협조를 부탁한다고 하지만, 그 태도와 방법은 전혀 조심스러운 모양새가 아니다.
전등문의 인원을 조사하는 데 독아문의 문서들을 살펴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도와 분위기로 인해 쉽사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가, 강호의 안녕과 관련된 일만 아니었어도. 너희는 살아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짓씹듯 말하는 독아검의 말에 흑무각 부각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련히 그러셨겠지.”
“…….”
“아! 진짜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부각주는 독아검을 지나쳐 전등문도들에게로 향했다.
독아검의 기분과는 별개로 전등문의 문도들은 자신들이 사술을 익혔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것을 알고 지옥에 떨어진 심정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사술이라니! 나는 그런 거 듣지도 보지도 못했소이다! 난 그저 표사가 되기 위해 전등문에 들어간 것이오!”
“그래? 그럼 왜 집안 가산을 박박 긁어 전등문에 가져다 바친 건데? 돈 벌려고 들어간 곳에 왜 빚까지 내며 돈을 바쳤냐고.”
“그, 그건…… 그건…… 내, 내가 왜 그랬지?”
“그건 차차 우리가 조사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차차…… 조사한다니요?”
부각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꼬리를 싸악 말아 올렸다.
“응? 당연히 우리 집행각으로 가야지? 여기서 조사를 할 수는 없잖아. 우리 건물 지하실이 아늑하니 조사하기 좋거든.”
그 말에 전등문도들의 얼굴이 아연실색해졌다.
한번 들어가면 멀쩡히 나올 수 없고, 나왔을 땐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
무수한 괴담이 쏟아지는 곳이 바로 집행각의 지하실이었으니까.
폭풍처럼 황천현에 들이닥쳤던 무림맹원들은 여덟 대의 철마차를 끌고 무림맹으로 복귀했다.
전등문의 일은 강호 전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 전등문이 청성과 관련된 문파임을 알고 청성과 그 속가 문파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강성 문파들이 천하를 놓고 세력 싸움을 하는 시기.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예하의 문파들이 공격받는다는 건 문파 영향력의 문제였다.
“지금 청성을 무시하시는 게요!”
“사술이라니! 우리 청성의 제자가 그런 일을 할 리 없소!”
“이는 청성의 힘을 견제하는 세력의 정치적 공작이오!”
애당초 전등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청성의 사람들은 집행각에 쳐들어가 각을 한바탕 휘저었고, 속가 문파들이 계속해서 이의 제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합비에서 냉동 처리되어 무림맹에 도착한 등고현의 시신이 청성에 공개되고 난 뒤 사람들의 태도가 싹 뒤집어졌다.
흰자가 없는 확연하게 검은 두 눈동자.
사술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형태에 목소리를 한참 높이던 이들은 입가에 묻은 거품을 쓱 닦을 수밖에 없었다.
“으흠…….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전등문이 청성에 소속된 것은 아니오.”
“그렇지. 풍향문에서 잠시 수학을 한 적은 있지만 또 정식 제자는 아니니.”
“거 들어 보니까 돈을 내고 무공을 조금 배운 건데. 이건 단순 수강생이지 정식 제자로는 볼 수 없는 것 아니오.”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데 이것을 청성과 관련된 일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지.”
“암, 그렇고말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전등문과의 모든 연관을 끊고 이번 일에서 청성과의 관련성을 모두 끊어냈다.
청성의 견제가 사라진 집행각은 안심하고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에 알려진 사술과는 달리 뚜렷하게 외부로 드러난 역천의 형태.
이는 정도를 걷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한 번의 강력한 사공과 마공이 그간 무공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던가.
혼란은 언제나 기존 질서의 파괴를 가져왔고, 파괴는 새로운 질서를 가져온다.
이 파괴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이들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주위를 경계했고, 새로움을 바라는 이들 또한 이번 일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밤새 논의를 멈추지 않았다.
“청성과 엮는 건 힘들겠지요?”
“청성이 어디 그냥 청성입니까? 그들도 지금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을 텐데. 단단히 방비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건 좀 아쉽지 않습니까.”
그리고 높은 위치에서 자신의 위치를 의심치 않는 이들보단,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더 컸다.
“이번에 전등문의 비밀을 밝혀낸 이를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태을문의 진소운 그놈을 말입니까?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안 그래도 학관 수석이 되고 나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놈을 여기서 더 띄워주면 어찌 되겠습니까.”
“허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그놈의 영향력이 커져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위세가 한풀 꺾일 거 아닙니까. 아닌 말로, 학관생의 신분으로 ‘금공’을 찾아낸 상황 아닙니까?”
“크흠…….”
“만약 이걸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이들이 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영웅이 났네 어쩠네 하면서……. 아주 그냥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을 겁니다.”
청성은 그간 같은 백도 문파인 전등문을 습격하여 문주를 죽인 일에 대해서 진소운을 규탄해 왔다.
사람들은 이걸 꼬집었다.
“그들이 진소운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꾸 자신들의 위치를 뒤흔들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놈을 띄워주자고요? 안 그래도 제어가 안 되는 놈이 그러다 우리 상투를 잡고 흔들면요?”
“놈은 혼자 아닙니까. 제깟 놈이 아무리 재주를 부린다 한들 어디까지 올라가겠습니까.”
“그럼 굳이 놈을 띄워줄 이유가 뭐에 있습니까?”
진소운을 띄우자 주창하던 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씨익 웃었다.
“놈은 작은 구멍이 되는 거지요.”
“구멍이요?”
“저수지의 보는, 작은 구멍으로 인해 무너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소운이 바로 그 작은 구멍이 되는 거지요.”
“호오…….”
“더구나 생각해 보십시오. 구파일방에는 용소아와 일명. 오대세가에는 당서희와 남궁산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들과 비벼볼 만한 인물이 없지 않습니까.”
잔혹한 진실에 불편함이 베어 나온다.
“크흠…….”
“거참, 왜 애들을 깔아뭉개고 그러시는지.”
“우리 애들이 뭐 딱히 못나서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요. 진소운 그 녀석이 전대 용봉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 자연스레 전대 아이들의 이름도 퇴색되지 않겠습니까.”
선명한 작전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사람들의 입꼬리가 슬쩍 귀쪽으로 올라갔다.
“차근차근 갑시다. 하루 이틀만에 저들이 무너질 것도 아니고. 이건 모두 그 과정에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일단 사람들을 태을문으로 보내 이번 일에 대해 축하를 하고…….”
더 높은 곳으로.
더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이들이 밀실에서 논의를 이어가는 동안.
“흐음…….”
무림맹의 심처에서는 이번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맹주 혁무강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천목각에선 뭐라고 합니까?”
“일단 등고현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오일식의 과거를 추적하고 있답니다. 유의미한 것들이 나오면 곧장 맹주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천산에서 나타났던 이들을 생각하면 백 년 만이라고 봐야 할까요?”
제갈소명이 찻잔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혈교도 그들과 연관을 보이고 있으니, 반년 만이라고 해야겠지요.”
“반년과 백 년 만이라……. 너무 큰 간격이군요.”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식을 때까지 말이 없던 혁무강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내부에도…… 들어왔다 생각해야 할까요?”
“확언할 수 없습니다.”
제갈소명의 말에 혁무강이 피식 웃음지었다.
“평소에 그리 비관적이신 분이 오늘은 어찌 이리 낙관적이십니까?”
“…….”
“하긴 그만큼 심각한 일이기에 신중하신 것이겠지요.”
혁무강의 씁쓸한 표정에 제갈소명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선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미 내부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을 만드려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세상이 혼란한 시기엔 북경에서 항시 역모의 바람이 분다.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확실하게 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
무림맹이라고 그와 다르지 않다.
하나의 정치 집단이 되어버렸기에.
북경에서 역모의 바람이 분다면, 무림맹에선 금공의 바람이 부는 차이가 있을 뿐.
더군다나 금공 중에서도 마공은 가장 세차고 무서운 바람이다.
“그나마 ‘마공’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은 건 다행이라 할 수 있겠군요.”
“다들 조심스러울 테지요. 그 단어가 가져올 파급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에.”
강한 바람은 역풍을 불러오곤 하니까.
다들 최후의 아슬아슬한 선은 넘지 않는다.
물론, 언제까지 그 참을성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강성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는…… 맨 처음 문제 제기를 한 이가 ‘사술’이라는 단어로 에둘러 보고서를 쓴 덕분이겠지요?”
“그놈이 잔대가리 하나는 잘 돌아가지 않습니까.”
“…….”
제갈소명이 혁무강의 표정을 읽었다.
뭔가 불안한 걱정이 가득 든 얼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저……. 진소운 이 아이에게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싶어서 말입니다.”
“워낙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놈이니, 스스로 일을 만드는 거지요.”
“……왠지 제 젊었을 때의 일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
혁무강과 혈기왕성한 시절을 함께 보내온 제갈소명이었기에 그가 어떤 삶을 보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제갈소명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농을 던졌다.
“또, 또, 자꾸 그렇게 은근슬쩍 후계자 언급하시면 구파나 세가 놈들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
혁무강은 제갈소명을 보며 마른 미소를 지었다.
“시련이 영웅을 만든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허허! 참! 계속 그러시는구만. 왜? 그놈이 영웅이 될 것 같습니까?”
제갈소명이 애써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농을 던졌지만, 혁무강의 목소리는 여전히 진중했다.
“시련을 이겨내야 영웅이 된다면, 전 영웅이 아닙니다. 결국 끝에 가서 도망쳤으니까요.”
“그건 맹주께서…….”
말을 잇던 제갈소명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 당시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는지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혁무강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요.”
“많이 바뀌었습니다. 맹주.”
그러나 제갈소명의 위로는 혁무강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서 그 친구가 걱정이 됩니다. 자꾸 운명이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서.”
때론 그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기에.
“그 친구에게 닥칠 시련은 왠지 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듯하여.”
혁무강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봄이 와야 할 시기이건만, 창문 밖엔 아직도 눈이 다 녹지 않았다.
“어서 따듯한 봄이 왔으면 좋겠군요.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여 제갈소명은 더 이상 말문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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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본래 녹록지 않다.
이건 전생에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생에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무던히도.
“자, 한 명씩 줄 테니 자리에 서 있어라.”
태을문의 어린 제자들이 모인 연무장.
좌·우 횡대를 맞춰 도열한 아이들의 얼굴엔 진지함이 깃들었다.
오늘만큼은 각 당의 당주들도 엄숙한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나눠줄 영단은 지난번에 먹은 정심단과는 다르다. 아마 곧장 단전에 변화가 올 테니 즉시 운공을 시작해야 한다.”
오령선화유로 만들어진 영단이 일주일 전 완성이 되었고, 각 당의 어른들이 먼저 먹으며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 어린 제자들의 차례.
사련과 금·은·동 형제들을 비롯하여 유성이와 기존 제자들도 모두 긴장한 표정을 풀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왕소소가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어 제외될 뻔했는데. 사마정이 몇 가지 약재를 바꿈으로써 왕소소도 영단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시간.
각 당의 당주들은 이 순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제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지요?”
“알면 큰일 나지요. 그랬다간 종남이랑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절대 비밀로 해야지요.”
“그래도 일단 영단으로 단전을 조금 단단하게 만들어 놓으면 앞으론 영약을 먹는 데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외당주님께서 바쁘시겠군요.”
당주들이 초롱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고, 아버지는 머쓱한지 고개를 돌리다가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왜 아직도 댓 발 입이 튀어 나와 있어?”
“제가 뭐가 말입니까?”
“어차피 넌 먹어도 소용없다며. 그래서 네 몫을 당주들에게 준 거 아냐?”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영단을 먹기 전 사마정이 태을문 사람들 전체를 진맥을 했는데.
그 와중에 나는 오령선화유를 먹어도 별 소용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단 먹어두면 나중에 약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랬다.
결국 나는 먹지 못한 것이다.
오령선화유를.
빌어먹을.
태을문의 제자들이 한입에 영단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운공을 시작했다.
고요하게 운공을 하는 아이부터, 운공중에 무복이 부푸는 아이, 머리털이 거꾸로 솟는 아이도 있었다.
‘얼추 이제 시작점에 선 것인가?’
명문대파에 비하면 겨우 한 걸음이지만 이제 태을문의 아이들도 한 명의 무사로서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당주님들과 함께 아이들 모두가 운공을 마칠 때까지 그 광경을 하나라도 놓칠까 세심하게 눈에 담았다.
그리고 하나둘 깨어난 아이들은 자신들의 손과 발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금치 못했다.
강채석이 낮은 목소리로 주위를 정숙시켰다.
“일어난 사람은 조용히 한쪽으로 빠져 있어라. 아직 운공 중인 이들이 있으니.”
그렇게 밤이 될 때까지 태을문의 사람들은 연무장을 떠나지 못했다.
변화의 모습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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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사마정의 부름에 의원으로 향했다.
“자네 많이 섭섭한 모양이군.”
섭섭하기만 하겠나.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뭐가 말입니까?”
사마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솔직히 자네가 왜 더 내공에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뭐든 다다익선 아니겠나.
어쨌든 마교에 대비도 해야 하고, 또 전생에 너무 못 먹고 살았던 게 한이 된 걸지도 모르겠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에 욕심이 그득그득한 성격이라 그렇습니다.”
“쯔쯧. 사내 속이 그리 좁아서야 큰일하고 살겠는가?”
“전 작은 일을 주로 하며 살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아!”
사마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작은 목갑 하나를 던졌다.
탁!
아이들이 받은 영단과 같이 손안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목갑.
“이게 뭡니까?”
“보면 모르나? 자네가 환장하는 영단이지.”
“…….”
“사람들이 먹은 것과는 다른 영단이네.”
뭐야, 오령선화유가 안 들어 있다면 소용없는 거잖아.
“그건 재료가 워낙 적어서 만들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었네.”
그렇다면 유일하게 하나만 만든 영단이란 얘기인가? 사마정이?
그럼 또 얘기가 달라지지.
사마정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턱짓으로 목갑을 가리켰다.
“자네에겐 오령선화유보다 그게 더 나을 걸세.”
“……그렇담 진작 그렇게 이야기 하시면 되지.”
괜히 사람 속을 쓰리게 만들고 난리람.
내가 툴툴거리자 사마정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이제 좀 기분이 풀렸나?”
“기분 나빴던 적도 없습니다. 제 식구인 사문 사람들이 먹는 건데요.”
“축 내려갔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는데?”
나 참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원래 ‘웃상’인 사람한테.
전생에 이 얼굴 때문에 ‘비웃냐?’며 시비 걸려 맞은 적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사마정의 놀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목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