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늦겨울의 칼바람(2)>
목갑 안에선 진하고 쓴 향이 확 풍겨왔다.
평범한……, 아니 영단에 평범한이란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통상적인 영단에선 느낄 수 없는 향.
나는 절로 삐딱해지는 시선으로 사마정을 바라봤다.
“마음에 안 드나?”
“이게 뭡니까?”
“태을문에서 자네만 먹을 수 있는 영단이지.”
“……냄새가, 아니 향이 독약 같은데요?”
당서희가 이것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독을 쓴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사마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반적인 무사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겠지. 먹으면 내공이 좀 줄어들 테니까.”
응? 이 사람 이거 위험한 사람이었네. 내가 이 내공을 모으기 위해 무슨 개짓거리를 다 해왔는…….
“대신 먹으면 다신 뼈가 부러질 일이 없을 걸세.”
“뼈가 부러지지 않는다고요?”
사마정이 눈썹을 한번 들어 올린 후 내게 물었다.
“금강청이라고 들어봤나?”
“그거 살 빠지는 약 아닙니까?”
수백년 된 흑오목의 진액을 청화벌이 먹고 만드는 꿀이 금강청이다.
먹으면 희한하게도 병에 걸린 사람처럼 살이 쭉쭉 빠진다.
다만 살이 쭉 빠질 뿐 다른 데는 문제가 없기에 여인들 사이에서 미용 목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먹는 양을 줄이지 않아도 살이 빠진다니 얼마나 좋은가.
다만 수백 년 된 흑오목 수림을 찾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청화벌까지 찾아야 하기에 꿀 중에선 구하기 힘든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고 보니 금강청을 먹으면 피부가 맑아진다나 뭐라나.
아무튼 구하기 힘들고, 가격도 비싸다곤 하지만 무인이 먹을 만한 약은 아니다.
내공 증진에 도움도 안 되는데 살만 쪽 빠진다니.
그야말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 되는 것 아닌가.
겉모습이 일단 칠(七) 할은 먹어주는 강호에서 굳이 금강청을 구해 먹을 무인을 없을 것이다.
“일반인이 먹으면 그렇지. 그런데 왜 살 빠지는지는 아나?”
잠자코 듣고 있자니 내게 계속 눈짓을 보내는 사마정.
뭐지? 대답을 원하는 건가?
“모르죠.”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사마정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금강청을 먹으면, 뼈가 흡수하기 때문이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더욱 미간이 일그러졌다.
생기를 흡수한다니…… 그냥 독약인 거잖아.
“근데 무인이 금강청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내게 반응을 구하듯 말끝을 흐리는 사마정.
근데 이 양반 아까부터 자꾸 뭐 하자는 거지?
나는 삐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되는데요?”
“후후후, 놀라지 말게.”
사마정이 양 손을 쫙 펴며 덧붙였다.
“내기만 흡수한 뒤 뼈가 금강석처럼 단단해진다네.”
“…….”
“금강청을 먹은 여인들은 평생 팔이 부러지거나 발이 부러진 적이 없다더군.”
거야, 평생 팔 부러질 일이나 발 부러질 일이 없는 부자들이 먹었기에 그런 거 아닌가?
나는 왠지 불로장생의 묘약을 파는 사기꾼 약쟁이에게 설명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 처음 봤을 땐 이런 느낌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어떤가? 입맛이 확 당기지? 바로 먹어 보고 싶지?”
두 눈을 희번뜩 번쩍이며 내게 바짝 다가오는 사마정.
왜 이래 진짜.
나는 목갑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먹기 싫은데요.”
“응? 왜?”
“뼈가 단단해지면 뭐 합니까? 그걸 어디다 써요.”
“이 친구가! 생각해 보게, 내공이 다 떨어지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네. 그때! 상대의 몽둥이가 자네의 손을 부러뜨리려 해도 자네 손은 부러지지 않는다니까?”
“애당초 무인들은 칼이나 도를 씁니다.”
“아아, 그렇지. 음…… 그럼 뼈가 안 잘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 양반 마지막에 말을 애매하게 하네?
‘안 잘릴 수도 있다’고?
내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 가자, 사마정이 다급히 말을 잇는다.
“그럼 이건 어떤가? 자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어. 적들에게 막 쫓기다가 절벽 끝에 몰린 걸세!”
“…….”
“자네는 선택을 해야겠지. 적에게 죽임당하거나 절벽에 떨어져 뼈가 부러져서 죽거나.”
잠시 말을 멈춘 사마정이 결연한 표정으로 목갑을 탁 열며 내 눈 앞에 들이댔다.
“근데! 사실 자넨 금강청으로 만든 영약을 먹은 거야! 그럼 절벽으로 뛰어내려도 뼈가 부러져 죽진 않겠지! 그럼 거기서 기연을 만나 몸을 회복하고 다시금 복수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아닌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고 있었더니만,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네.
아니, 애당초 적들에게 쫓겨 절벽으로 몰리면 안 되지. 도망을 치려면 활로가 있는 곳으로 도망을 치는 게 무인의 기본이니까.
나는 한숨이 내쉬며 나직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 보십쇼. 이거 약 확실한 겁니까?”
들떠있던 사마정의 눈빛이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사실은 무인이 먹는 걸 보고 싶어서 말일세. 여인들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충분한데 무인에게도 같은 효과가 날지 궁금해서 말이야.”
“…….”
시바 지금 나를 실험체로 쓰겠다 이거야?
사마정이 황급히 두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아! 그래도 걱정은 말게, 효과가 없을지언정 부작용은 없을 테니까. 이건 정말로 확신하네!”
내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웅얼거렸다.
“하긴, 아무리 작은 내기라도 손실되는 건 무인에게 큰 손해겠지. 미안하네. 자네가 워낙 큰 단전을 가졌기에 내가 욕심을 좀 부려봤어…….”
그러곤 억지로 웃음을 내보였다.
“걱정 말게. 내가 곧 자네가 양보한 영단 대신 더 좋은 영단을 만들어 줄 테니까. 대신 재료가 모일 때까지 좀 기다려 주게.”
축 저진 어깨로 목갑을 닫고는 돌아서는 사마정.
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그의 곁으로 가 목갑을 빼앗았다.
“어? 자네 설마?”
어차피 만든 건데. 아깝잖아.
진짜 뼈가 단단해진다면, 태을문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약속은 꼭 지키십쇼.”
만에 하나, 절벽 아래서 떨어진 후에 기연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때 뼈가 부러지면 좀 억울 할지도.
꿀꺽.
쓴 영단이 목구멍을 거칠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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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을 먹고 나자 한동안 오한이 든듯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더불어 단전에 단단히 박혀 있어야 할 내기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처음엔 너무 많은 양이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생각보단 그리 많은 양이 빠지지 않았다.
한 오 년 치 정도?
전생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양이지만, 지금 생에서는 사실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정도.
“그리고?”
“근육이 좀 당기는 느낌인데요?”
사마정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내 상태에 대해 하나하나 질문했다.
내 표정이 어떤지 살피고 기분이 어떤지 묻고, 신체의 변화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어나갔다.
“확실히 무인을 대상으로 실험하니 이런 건 편하군.”
이 양반 지금 대놓고 실험이라고 한 거야?
“자, 그럼 다음 실험을 해볼까?”
“…….”
이야, 이젠 아예 숨길 생각도 없구만.
내가 황당해하든 말든 사마정은 어디선가 가저온 벽돌로 단을 쌓기 시작했다.
각각의 단은 허리 높이 만큼 올라왔고, 단의 사이엔 팔뚝 하나를 딱 올릴 수 있을 만큼의 간격이 있었다.
“여기에 팔을 올려보게.”
“…….”
“응? 왜 그렇게 쳐다 보나? 아아, 내가 설명이 불친절했네, 사과허이. 뼈가 단단해졌는지 실험을 해보려는 것일세.”
……저기, 사과할 지점이 틀린 것 같은데 흠.
그래도 나는 그의 말에 따라 팔을 위로 올렸다.
현 상황이 짜증나긴 했지만, 사실 나도 궁금하긴 했으니까.
내기를 흡수해야 할 정도로 뼈를 단단하게 만든다는데 얼마나 단단해질지 궁금했거든.
……실험 대상이 내 몸이라는 게 좀 문제긴 하지만.
내가 단 위에 팔을 올려놓자 사마정이 길다란 몽둥이를 가져왔다.
손때가 묻은 듯 단단해 보이는 몽둥이.
나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때릴 힘은 있습니까?”
“나도 어느 정도 내공은 있네. 아 참! 내기는 일으키지 말게. 그럼 실험이 안 되니까.”
의원이 내공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어.
라고 생각했을 때 멈췄어야 했다.
뻑.
“…….”
단단한 몽둥이가 부러지고 가루가 사방에 흩날린다.
나는 너무 아파서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끄윽! 시바 뭐야!!!’
얼마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단을 지지하고 있던 벽돌 두 장이 그대로 바스러졌다.
이건 안 봐도 부러졌다.
얄짤 없이 팔이 부러진 게 확실하다며 눈을 번쩍 떴을 때.
사마정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거 보게! 역시 안 부러졌어!”
“…….”
“이 나무가 사실은 흑오목으로 만든 몽둥이거든. 어지간한 강철보다 강하다고 하던데. 이게 산산이 부서졌는데도 뼈가 멀쩡하다 이 말이네. 거 보게! 내 말이 맞지?”
얼 빠진 얼굴로 팔을 내려다보니.
강한 충격 때문에 피부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주먹을 쥐어보니 힘도 제대로 들어갔고.
아파 뒈질 것 같지만, 그래도 진짜 금강청의 효과가 있는 듯 보이긴 했다.
왠지 멍이 진하게 들 것 같아 내가 걱정하고 있는 사이.
사마정이 내 팔을 보곤 살짝 놀란 눈으로 말했다.
“자, 잠깐 기다려 보게.”
그러곤 의원 내부로 후다닥 들어갔다.
그래도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나 보네.
하긴 지금 내 팔이 부러지지 않았다 뿐이지, 피도 좀 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무인에겐 별것 아닌 상처이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엔 꽤나 중한 상처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쩝…… 본성은 괜찮은 사람인데.’
의학에 미쳐서 가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게 문제인데.
뭐, 그걸 꼭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훌륭한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사마정의 약초와 금창약을 기다리는 사이.
스릉.
심상치 않은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읏챠!”
사마정이 내부에서 길다란 도를 들고나왔다.
대체 뭐지?
“……금창약 가지러 들어간 거 아니었습니까?”
“응? 금창약이라니.”
“…….”
사마정이 겨울을 녹이는 햇살과도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나게 조잘거렸다.
“실험을 계속해 봐야지! 기록에는 어지간한 칼날에도 뼈가 완전히 잘리지 않는다고…….”
내가 착각했다.
이건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타닥-
나는 천하독행신을 전력으로 펼쳐 의원을 벗어났다.
“어, 어디 가나! 자네! 잠깐만 한 번만 해보면 안 되겠……나!”
……미친자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
난 휴식기 대부분을 태을문에서 보냈다.
백해광에게 하루 반나절 수련을 받고, 장도원의 대장간에 가서 다음 신기를 언제 만들지 닦달을 좀 한 다음.
……내 팔을 잘라 보고 싶어 하는 사마정을 피해 태을문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휴식기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힘든 시기의 시간은 그리도 안 가더만 달콤한 휴식시간은 어찌나 이리 빠르게 흐르는지.
문주님과 당주님들은 다시금 학관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위해 작은 연회를 열자 의견을 냈지만, 돈을 꽉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가 탐탁지 않아 했다.
내가 황천현에서 벌인 일 때문에 아직도 꽁해 있었던 것.
어쨌든 연회의 주인공에 나만이 아니라 사련과 금·은·동 형제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결국 아버지는 작은 연회를 열어 주었다.
덕분에 간만에 태을문에 소속된 제자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리고 태을문의 사람들 모두가 초대되어 연회를 즐겼다.
“거참, 어쨌든 잘 풀렸고만 왜 그리 전전긍긍하시는지.”
내 말에 술잔을 넘기던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 썩을 놈아! 내가 네놈에게 묻어 있는 흑도의 흔적을 지우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
아, 화난 게 전등문 때문이 아니었어?
“대천상단이 지나갈 때마다 흑도 문파들이 옆에 붙어 호위를 하고 있단다 호위를! 그것도 공.짜.로!”
음…… 좋은 거 아닌가?
“잘됐네요. 비용절감도 되고 안전성도 확보되고 일석이조…… 억!”
나는 내 얼굴로 날아드는 술잔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천하의 우리 아버지가 술잔을 날리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이 자식이! 네놈도 알 거 아니냐! 없는 흠도 잡아 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스스로 흑도의 탈을 뒤집어쓴다고……!”
아아, 그 걱정을 하고 계셨던 거구나.
나는 술잔을 넘기며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아무리 흠이 없다 해도 절 미워할 사람은 어떻게든 미워할 겁니다.”
“…….”
“…….”
“…….”
응? 뭐지?
갑자기 연회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들이 다들 이쪽을 바라본다.
내가 뭐 크게 잘못된 말을 한 건가?
그건 아닌데……?
나는 주변 분위기를 대충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아무리 성과를 올리고 증명을 해도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고 시비를 걸 사람은 시비를 걸어왔지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나는 그간 내가 느꼈던 것들을 담담이 말했다.
학관에 입학하고 수석을 하면서 스스로를 증명하면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수백 년간 강호를 지배해 온 이들도.
아무리 불공평한 기준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불평등한 상황을 강제해도, 내가 그것들을 뚫고 나아가면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긴 개뿔…….’
하지만 그들이 막아놓은 벽을 뚫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들이 쌓아올린 성벽을 타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 큰 견제를 받고 위협을 받았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그래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절 미워할 사람들이라면 빨리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술잔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이렇게 제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적이 될 사람은 빨리 적이 되고 아군이 될 사람은 아군이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내 말에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체로 뭔가 씁쓸해 보이는 표정들.
적과 아군을 구분한다 했지만, 실제 아군이 생길 가능성은 낮으니까.
태을문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문파가 과연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던 거겠지.
그때.
“저…… 계십니까?”
누군가 대천상단으로 들어왔다.
“아, 미안합니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이라…….”
강채석의 말에 손님은 고개를 저었다.
“일을 의뢰하러 온 게 아닙니다. 물건을 배달하러 왔습니다.”
“물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어 들었다.
“일주문의 문주께서 태을문의 진소운 소협에게 보내는 선물이라 합니다.”
“…….”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강채석이 벌떡 일어나 남자에게서 종이를 받아 들었다.
“‘강호의 혼란을 야기할 위협적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진소운 소협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외다. 일주문주 조성협’ ……이게 무슨.”
편지를 읽은 강채석을 비롯하여 태을문의 사람들이 얼떨떨해하는 사이.
또 다른 이가 대천상단에 들어섰고.
그의 뒤로 가득 짐을 든 쟁자수들이 따라 들어왔다.
“여기, 진소운님 계십니까? 천검방에서 보낸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소운 소협…….”
“진소운님 계십니까?”
“진소…….”
여러 곳에서 끝도 없이 선물들이 대천상단 안으로 들어왔다.
연회를 하던 이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을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보낸 전서에는 대부분 이번 전등문 사건에 대한 칭송과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느새 고요해진 연회장 내부.
전서를 들여다보던 강채석이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진짜…… 아군이 생기려 하는 건가?”
강채석이 얼떨떨한 심정으로 말하자 홍문기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뭘 그렇게 얼떨떨해하는 건가? 소운이 말대로 이루어진 건데.”
“…….”
“선물…… 열어 보고 싶지 않은가?”
홍문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금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당주들과 아이들은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가득 들어온 선물을 까보기 시작했고, 내용물을 볼 때마다 입을 떡 벌렸다.
“전 이렇게 부드러운 비단은 처음 봐요.”
“어…… 외당주님, 여기 은원보가…….”
“여기 검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옆으로 다가갔다.
“거 보십시오. 제 말이 맞지요?”
“…….”
“작은 흠이 있다 한들 저를 제대로 볼 사람들은 제대로 볼 것입니다.”
아버지는 복잡함이 담긴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툭 치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당주들이 은원보를 몇 개 빼돌리려 하는데 안 가보실 겁니까?”
결국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고 마는 아버지.
“……그건 안 되지.”
다시금 왁자지껄한 연회 분위기가 이어지려는 찰나.
탁, 탁, 탁.
웬 험악하게 생긴 이가 대천상단 내부로 들어왔다.
딱 봐도 얼굴에 ‘나 흑도요.’라고 써놓은 얼굴로 들어선 이에 의해 연회는 다시금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스윽-
몇몇 당주들은 선물로 들어온 검들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연회장 한가운데 서서 소리쳤다.
“여기가 대천상단이 맞소?”
“그렇소이다.”
강채석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댁들은 뉘시오?”
사내는 강채석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그의 뒤로 열 명의 험악한 사내들이 관같이 기다란 상자를 하나씩 매고 들어섰다.
“진소운 대협은 어디 계시오?”
“……대협?”
강채석이 설명을 요구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인걸.
사내는 강채석의 시선을 따라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포권을 쥐었다.
“채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응? 채주?
……나보고 하는 말인가?
“얘들아 뭐 하냐? 내려놓거라.”
“옛!”
쿵. 쿵. 쿵. 쿵.
열 명의 사내들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활짝 열었다.
그 안엔 동전부터 시작해 은전과 보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내게 고했다.
“흑룡채에서 채주께 드리는 작년 치 사납금입니다. 늦게 시작한 탓에 수익이 변변치 않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시바 무슨 개소리야.
“흐, 흑룡채?”
“사, 사납금?”
태을문의 문도들이 뜨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작은…… 흠이라고?”
고개를 돌려보니.
“흑룡채가?”
아버지는 당장 살인이라도 불사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 난 진짜 모르는 일인데.
진짜 너무너무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