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15화 (315/357)

315. <늦겨울의 칼바람(3)>

아버지가 난리(?)를 피운 덕분에 연회는 끝나버렸다.

처음에 같잖지도 않은 중년 아재가 시비를 걸어오니 눈을 부라리던 흑룡채 인원들은, 이내 그가 내 아버지라는 걸 알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 큰 채주님이셨습니까!”

“…….”

어쩐지 더 화가 난 아버지가 당장에 흑룡채 애들을 내쫓아 버렸다.

그들이 가져온 사납금과 함께.

어어, 저게 다 얼만데.

나는 별수 없이 연회가 다 끝난 후 새벽을 틈타 흑룡채 인원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가져왔나?”

“아, 네. 채주님.”

“거 채주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 채주님!”

“…….”

흑룡채 채주로 불리는 건 나도 싫다.

애당초 녹림도가 아닌데 채주로 불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말씀하신 대로 전표로 바꿔왔습니다.”

“그래?”

하지만 돈에는 죄가 없잖아?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꾹 눌러 참으며 전표 금액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귀금속도 있었는데 전부 제값을 받아왔네?”

“아! 놈이 장난질하려 하기에 조금 교육을 해줬습니다.”

“…….”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전장을 상대로 이 정도 수완이라니.

내가 몰랐던, 오늘 처음 본 부하들은 꽤나 능력이 좋은 것 같았다.

얘들 은근 마음에 드는데.

“크흠.”

“하명하십시오!”

내 기침소리에도 이렇게 민첩하게 반응하다니.

더 마음에 들잖아?

“잘 들어라.”

나는 혹여나 녀석들이 착각을 할까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댁들의 채주가 될 수 없는 사람이고, 될 생각도 없다.”

“그게 무슨…….”

“내가 누구인가?”

내 물음에 흉악하게 생긴 사내들이 소심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흑염룡…… 채주님이시죠.”

“아니 그거 말고. 대외적인 내 직위가 뭐냐고.”

“무림학관 수석…….”

“그치!”

흑룡채는 녹룡채와 함께 운용되는 곳이다.

두 개를 하나로 묶어서 봐야 한다. 그리고 이 쌍룡채의 채주는 방두칠이고.

나는 전표를 손에 꽉 틀어쥐며 말했다.

“백도의 기둥이 될 사람이 산채의 채주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

“…….”

녹림도들은 어쩐지 내 손을 한번 바라보더니 주인을 잃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들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사납금을 나한테 직접 보내, 전표로 모두 바꿔서.”

“네?”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부하들.

“아버지가 아시면 큰일 나니까.”

“음…… 그게 무슨? 방금 채주가 아니시라고…….”

왜 말을 못 알아듣지?

나는 손에 든 전표를 그들 앞에 흔들어 보였다.

“나한테 돈을 주고 싶은 거 아닌가?”

“…….”

그렇게 억지로 주고 싶다는데 나로선 안 받을 도리가 없잖아.

상대의 마음을 거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난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매달 정해진 날에 보내줘. 한 번에 큰돈을 보내면 자금 추적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

녹림도들은 어쩐지 벙찐 얼굴이 되었다.

다음 날, 예정대로 우리는 학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천상단을 나섰다.

태을문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외당주님이 안 보이시네요.”

아버지만 빼고.

사련이 걱정스러운 듯 나를 보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뭐 바쁘신가 보지.”

그때, 강채석이 작은 보퉁이를 가지고 다가왔다.

“받아라.”

“뭡니까?”

“네 아비가 너 주려고 지난여름에 준비해 둔 거다. 뭐…… 어제 불태워 버리겠다며 장작 옆에 올려두긴 했지만.”

하여간 아들 바보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보퉁이를 풀었다.

그 안엔 내가 자주 입는 검은색의 무복이 들어있었다.

“수석을 하면 부모들이 옷을 해주는 게 관례라지? 뒤늦게 그 이야길 들은 네 아비가 동네에서 수를 제일 잘 놓는 사람한테 여러 번 부탁한 거다.”

은색의 실로 잔잔한 무늬들이 박혀 있고, 소매엔 ‘태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가슴팍에 ‘수석’이라 적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보퉁이를 다시 싸면서 웃었다.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왜 쓸데없는 짓을 했냐며 욕을 하겠지.”

“그래도요.”

송별회는 짧았다.

이미 지난 밤의 일로 인해 태을문의 모두가 진태산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올 때와 달리 이번엔 표국을 이용해 편안하게 학관으로 향했다.

합비에서 무한으로 가는 동안 확연하게 날씨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차가 움직이는 동안 끊임없이 조잘대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표국의 쟁자수들이 차려주는 음식을 챙겨 먹었다.

표국과 함께하는 여행의 최대 장점은 불침번을 따로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정해진 객잔에서 잠을 자지만 가끔 노숙을 할 때도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학관에 도착할 때쯤.

학관에는 봄꽃이 조금씩 피고 있었다.

“어? 오늘 도착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합비에서 같이 올 걸 그랬다.”

성모란이 남궁선화와 함께 우리와 같은 날 학관에 도착했고.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요!”

왠지 고향을 다녀온 뒤로 기분이 한층 기분이 좋아 보이는 은설란이 이틀 뒤에 도착했다.

“하아, 형님…….”

삼 일 뒤에 모용재화가 도착했는데, 어쩐지 녀석의 허리춤에는 검이 패용되어 있었다.

“할아버님이 화살이 다 떨어지면 어쩔 거냐고 하셔서.”

궁을 쏘는 것에 대해선 더 이상 반대는 하지 않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검술을 익히라는 말에 모용재화는 선뜻 동의를 했고.

“으으…….”

그것이 이번 휴식기를 지옥으로 바꾸는 말이었다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휴식기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모용강과 단독 수련을 했다나 뭐라나.

“그거 좋은 거 아냐?”

절대 고수에게 개인 수련을 받는데도 투덜거리는 모습에 은호가 핀잔을 주자, 모용재화는 울먹거리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했다.

“이, 이렇게, 이렇게, 막 검으로 목을 찌르고, 진짜로 살도 막 잘리고 으으…… 맞다가 기절했다고. 그, 근데 뭐가 가장 무서웠는지 알아……?”

“…….”

“너무 아파서 죽을 거 같은데 그다음 날 또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같은 날이 반복되고…… 진짜 진짜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었는데…….”

모용재화의 생생한 증언에 그에게 핀잔을 주던 은호도 깊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쓸어 주었다.

“암, 암, 알지 진짜 못 하겠는데 또 할 수 있는 그 기분 잘 알지……. 그래, 울어. 울어도 돼!”

……근데 저 녀석 왜 날 쳐다보냐?

곧이어 학관 대표실의 인원들도 모두 복귀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대표님.”

“이번 전등문에 대해선 이야기 들었습니다.”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대표단 내부는 한동안 전등문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다들 개학을 기다려 온 것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백도 무문 내에 금공을 익힌 자가 숨어 있었다니.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학관생이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이야기하자, 다른 학관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저희 고향에서도 한 문파가 금공을 익혔다는 혐의를 받고 공격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시작으로 대표단 인원들 사이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 제 사문 근처에서도 한 문파가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저희도 그런 문파가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약속이나 한 듯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곧 이상함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문파들이 금공을 익혔다고?”

비상식적인 상황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금공을 익힌 문파들이 많다 한들 그들의 혐의를 쉽게 밝혀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이리 단시간에 많은 문파들이 색출된 것일까?

‘벌써 시작한 건가.’

정적 제거.

신고당한 문파들 대부분이 신고한 문파들의 경쟁자임을 생각해 보면, 이는 너무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굳이 무림맹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금공을 토벌하기 위해 상대를 치고, 훗날 혐의가 드러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기습을 당한 문파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누명을 바로잡을 필요조차 없다.

‘맹주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를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무림맹에서 맹주령을 선포하기 전까진 신고와 기습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늦추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문제를 불러온 건가?’

사천혈사를 짧게 단축함으로써 희생을 줄였다 생각했건만, 이런 식으로 일이 번지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입맛이 썼다.

차후 진짜 마공을 익힌 자들이 세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찌 될지는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지금 ‘금공’의 등장으로 흥분해 있는 강호인들을 자제시키기 위해선 무림맹의 빠른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저희 사문의 어른께선 감찰각 쪽에 선을 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문파들이 그렇게 무림맹에 선을 대려 하는 거죠.”

“저희도 배정을 잘 받아야 합니다. 어쭙잖게 첫 시작부터 무림맹 생활을 지부에서 출발해 버리면 이도 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학관에 들어온 이들인 만큼 지금 돌아가는 사태의 핵심이 ‘금공’이 아닌 ‘이권 다툼’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참 더러운 일이지.’

무림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무림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이번 ‘금공’ 사태에서 쉽사리 공격받지 않을 것이다.

만약 무림맹에 연줄을 대어 세력을 가진 문파들을 기습이라도 했다간 단지 ‘실수’라는 핑계로 쉽게 넘어갈 수 없을 터.

애초에 ‘실수’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건 상대가 자신보다 약할 때뿐이니까.

갑작스레 벌어진 ‘금공’ 사태가 학관생들의 학업성취 의욕을 고취시키는 광경은 썩 유쾌한 모습이 아니었다.

#

학관생들 대부분이 휴식기를 마치고 학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소 들뜬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겨울 휴식기가 여름 휴식기에 비해 긴 탓인지, 아니면 최근 일어난 ‘금공’ 사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다들 새로 시작하는 새학기에 대비해 준비를 단단히 하는 모습들이었다.

“여.”

나는 학기가 시작하기 전 철순직을 만났다.

그에게 줘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별일 없이 지나갔나 보군요.”

어째 아직 살아있냐? 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쩝.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먹은 걸 보면 놈의 화법에 익숙해지긴 했나 보다.

“종남을 주시했다면 알고 있었겠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새침하기는.

“그나저나 가져왔어?”

내 물음에 철순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제가 뭔가를 받으러 온 건데. 아니, 애당초 내가 진 대표에게 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뭐야, 안 가져온 거야?

나는 짝다리를 짚으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철환.”

“…….”

“회수한 철환 가져왔어야지. 그게 얼마짜린데.”

철순직이 나를 뚫어지게 본다.

음, 나 저 표정 익숙한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하는 표정이 분명하다.

“뭐야, 진짜 안 가져온 거야?”

철순직이 주위를 살피더니 나직이 내뱉었다.

“범죄의 전말은 증거 때문에 항시 밝혀지는 거 모릅니까? 당연히 다 녹여서 버렸습니다.”

아니 그걸 왜 버려?

다른 걸로 만들어 쓰면 되지.

설마 태생이 부잣집 아들이라 아껴 쓴다라는 개념을 모르나.

“쯧, 너한텐 무슨 일을 못 맡기겠네.”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새초롬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 철순직을 보며 품 안에서 작은 자개병을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밖으로 향하려던 철순직의 몸이 우뚝 멈춰 선다.

나는 턱짓으로 자개병을 가리켰다.

“약속했던 거.”

내가 이거 때문에 결국 영약을 못 먹었지.

뭐, 금강청을 먹었으니 크게 손해는 아니지만 말이야.

“…….”

다시금 자리에 앉아 자개병을 가만히 바라보던 철순직이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한다.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진짜…… 주는 겁니까?”

“그럼 진짜 주지, 가짜로 주나?”

철순직이 자개병을 들고 가 뚜껑을 뽕 하고 땄다.

그리고 잠시 향을 맡더니 금세 뚜껑을 다시금 닫는다.

“진짜군요. 양도 예상보다 많고요.”

이어 자개병을 흔들어 보더니 양을 가늠한다.

“……이걸 왜 주는 겁니까? 애당초 양이 많지 않았다, 순도가 높지 않았다라고 얘기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 텐데요.”

“거, 줘도 난리야.”

“…….”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약속했잖아. 난 그 약속을 지킨 것뿐이고.”

“약속…….”

얜 도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지?

“…….”

“싫으면 말고.”

내가 자개병을 잡으려 하자 철순직이 서둘러 자개병을 품 안에 넣었다.

나는 놈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쨌든 우리 거래는 끝났다. 너도 이제 공범이야. 나중에 딴소리 말아.”

이걸로 철순직 입도 막았겠다, 자리에 일어서 나가려 하는데.

“지금 강호가 ‘금공’으로 인해 들썩이는 거 알고 있습니까?”

철순직은 얘기가 더 하고 싶었나 보다.

하긴 얘도 친구가 별로 없지.

나는 다시금 의자에 등을 기대앉았다.

“근데?”

“학관의 수업이 바뀔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지?”

“학관생들의 평가 방식을 바꾸겠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들이 얻는 이익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각자만의 세력 모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12봉성은 안 하는 것처럼 말하네?”

철순직은 내 이야기 따윈 못 들은 것처럼 말을 이었다.

“교관과 교두들이 모두 교체될 겁니다.”

이제 와서?

“무림맹 내에서 최소 당주급으로 근무한 자들로 교체될 겁니다. 그들 모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는 얘기가 있고요.”

“지원한 사람들은 구파일방에 오대세가 인원들이고?”

철순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당의 당주들과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시행한 일입니다. 그동안 고착되었던 체계를 바꿀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굳이 지금?”

이런 변화라면 준비 자체가 오래 걸릴 텐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기수를 기다리기도 힘들어서 학기 중에 바꾼다?

“너무 급한 거 아냐?”

“……급한 상황이니까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나?

“뭐가 급한데.”

철순직은 대답 없이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은 왜 말이 없어?

“어쨌든 내가 할 이야긴 여기까지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하지 않는 철순직이었다.

어쨌든 이런 정보는 내부에서도 기밀로 분류되는 것인데, 나에게 굳이 얘기해 주는 이유가 뭘까?

철순직은 머뭇거리다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이것의 대가라고 하지요.”

그는 자개병이 들어있는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학기가 시작하기 전날.

철순직의 말대로 교관과 교두들이 모두 교체되었다.

예고 없는 갑작스런 상황에 학관생들은 이의 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당초 이의 제기를 하는 인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기도 했고.

그렇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터벅, 터벅, 터벅.

강당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가만히 서서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다들 갑작스런 사태에 혼란스럽지?”

사내는 호감 가는 얼굴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본래 친했던 교관들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을 것이고…… 이의 제기를 한 이들도 있다지?”

교관은 과연 알고 있을까?

이의 제기를 했던 학관생들이 문제 삼았던 건, 갑작스런 교관의 교체가 아니라 교체된 인원들의 ‘출신’이란 걸.

“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을 거야, 저기 북경의 불알 없는 놈들처럼 말이지.”

교관은 불만 따윈 개의치 않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이번 기수 너희들에게 있다.”

교관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너희들의 성취가 이전 기수들에 비해 한참 떨어지니까 결국 이런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말도 안 되는 내려치기에 한 학관생이 손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역대 가장 살벌한 정시를 뚫고 학관에 입학한 이들이다.

이런 이들의 성취가 다른 기수들에 비해 떨어진다니.

이에 교관은 좋은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곤 순식간에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이대로 너희들을 졸업시켰다간 무림맹에 해를 끼칠 거란 말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으흠, 역시 기수 자체가 수준이 떨어지나?”

“…….”

교관이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가령 이런 거지. 나 때로 따지면 겨우 백랑각에나 가야 할 실력의 학관생이 이번 기수에선 적룡각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

“그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 그러나 걱정 마라. 새로 온 교두와 교관들이 너희들의 실력을 올려줌과 동시에 절대적인 평가를 통해 너희들이 어떤 곳에 배정될지도 정해줄 테…….”

“푸흡!”

교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려 버렸다.

이거 진짜 웃기네?

“크흡!”

“……!”

수업을 시작하려던 교관이 우뚝 멈춰 선다.

이내 날카로운 눈으로 학관생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누구지? 누가 웃음을 흘린 것이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교관이 살기를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앞줄부터 시작해 학관생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나오지 않겠다 이건가? 전부 엎드려뻗쳐!!!”

쩌렁쩌렁한 음성이 강단 전체를 울린다.

저 쓸데없는 연좌제라니. 하여간 무림맹 출신들은 꼭 티를 내요.

꽉 막힌 인간들 같으니라고.

나는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를 발견한 교관이 낮게 으르렁거린다.

“……진소운. 교관이 우습나?”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을 한 탓에…….”

교관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내 말을 끊었다.

“앞으로 나와.”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에 강단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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