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19화 (319/357)

319. <책임소재(2)>

“어…… 어어? 힘 빠져? 응?!”

놀리듯 검을 부딪쳐 올 때마다 손안에 찌릿한 충격이 전해진다.

은호는 억울한 마음에 외쳤다.

“이제 한계라고요!”

그러자 그의 대사형이 비아냥대듯 말했다.

“그래서? 한계니까 죽을래?”

스걱-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적광검이 옷자락을 베어낸다.

작게 쓰라림도 있는 걸 보니 일부러 조금 깊게 베어낸 게 분명하다.

‘망할 인간!’

휴식기에 영단을 두 개 먹고 행공도 완숙의 경지에 들어섰지만, 한계란 게 있는 법인데.

진소운은 그 한계가 어디인지를 너무 잘 아는 듯, 완급조절을 통해 자신들을 완전히 탈진할 지경까지 몰아붙였다.

“하아, 하아── 하아.”

“제길.”

사련 사매는 물론이고 금표 형과 동룡이도 한계에 한계까지 몰린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또또, 도망갈 생각이냐?”

가볍게 들어 올린 검면의 색깔이 붉게 변한다.

꺄아아아아아악──

어디서 시작된 지 알 수 없는 불온한 기운의 비명과 함께, 온몸을 옥죄는 살기에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건만, 진소운은 여지없이 검을 휘두른다.

촤르르르르륵

살기가 가득 깃든 검날이 수십 개로 펼쳐지며 네 사람의 온몸을 옥죈다.

대사형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으리란 걸 잘 알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으아아아아!”

은호는 목이 터져라 악을 쓰듯 검을 흩뿌리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수도 없는 비무에서 깨달았다.

언제나 도망치는 건 답이 아니었다.

가장 두려울 때 오히려 가장 앞서 나가는 것.

그게 결국 정답이었다.

대사형이 늘 그랬듯.

단전을 박박 긁어 행공을 시전한다.

애당초 쓸 수 있는 내공의 양이 워낙 적어 대천검법은 시도도 하지 못한다.

그저 소천검법,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초식만을 사용한다.

‘어차피…… 다는 못 막는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장 결정적인 상처만을 피한다.

적에게 살을, 뼈를 내어주고, 상대의 심장을 취한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스걱─

드디어 적광검을 피해 진소운의 몸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렇게 혼자 와서 뭐 할 거냐?”

진소운은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 발을 들어 올려 은호를 걷어차 버렸다.

퍽!

차아악-

삼(三) 장이나 날아간 은호는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부디 뒤를…….’

남은 세 사람에게 간절히 부탁해 보지만.

퍽! 퍼퍽!

차아악- 차아악- 차아악-

‘나 아직 유언도 다 못했건만…….’

세 사람 또한 뒤따라 은호의 뒤로 날아왔을 뿐이다.

“쯔쯧, 겨우 이거 하고 나가떨어지다니…… 전쟁터에서 이럴 여유가 있을 것 같으냐? 내공이 없으면 그냥 체력으로 싸우는 거고, 체력도 없으면 그땐 악으로 싸우는 거다.”

뭐래, 누가 들으면 전쟁터에서 수십 년은 구른 줄 알겠네.

속으론 불만이 가득하지만,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거야, 벌써 두 시진 전에 불만을 토로해 봤더니, 저 미친…… 아니 대사형이란 작자가 ‘아직 힘이 남아 있구나’ 하면서 대련을 이어 갔으니까.

할 말이 있어도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깨달음도 터득한 것.

“쯧, 이각 주마, 회복시켜 놓거라.”

진소운은 어느새 전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은호를 비롯한 태을문의 제자들은 진소운이 가버렸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아…….”

“주, 죽여줘.”

정말 꼼짝도 못 할 지경이었으니까.

어차피 운공을 이각 안에 마칠 수 없다.

그냥 행공을 운용하면서 조금이라도 쉬는 수밖에.

‘하아……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자빠진 상태로 행공을 하다 자괴감이 든 은호가 눈알만 돌려 사련을 바라봤다.

“사저, 혹시 뭐 때문에 대사형이 저러는 줄 아십니까?”

어제오늘 내내 얼굴이 굳어있는 사련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다고.

그러나 굳은 표정에 말 한마디 내뱉지 않는 사련을 보며 차마 묻지 못했더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대로 며칠만 더 했다간 아마 학관에서 수련 도중에 죽은 최초의 학관생이 될지도 모르니까.

“…….”

무림맹 목전에 가보지도 못한 채로 죽은 원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은호는 다시금 사련을 재촉했다.

“사저, 이러다 저희 다 같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전 사실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금표 형과 동룡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이리 애를 쓰고 있는…….”

“대사형은…….”

결국 은호의 앓는 소리에 사련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걱정되나 봐.”

이렇게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면서 대체 뭘 걱정한다는 거지?

“자신이 없을 때, 우리를 보호할 수 없을까 봐.”

“…….”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은호의 표정이 순간 확 풀렸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금표와 동룡은 눈을 부릅뜨고 사련을 바라본다.

“대사형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사형 대신 우리를 싫어하고 괴롭힐까 봐.”

사련이 고개를 들어 어린 사제들을 바라봤다.

굳어있던 사련의 얼굴에서 왠지 슬픔이 묻어나왔다.

“그게 걱정되나 봐.”

분명 힘이 다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숨 쉴 여력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까드득.

턱에 강한 힘이 들어가며 이가 갈린다.

여태껏 대사형에게 향하던 분노가 이젠 적개심이 되어 스스로에게로 향한다.

‘또 짐이 되어버렸나.’

철검문에 다녀왔을 때도, 정시를 치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홀로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진 그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그의 짐을 덜어 보려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그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덜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느새 자신 또한 그의 어깨 위에 짊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자괴감에 빠졌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조금은 성장했다 생각했건만, 자신은…… 형제들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관들과의 일 때문이겠군요.”

어느새 차갑게 내려앉은 은호의 목소리에 사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점수를 낮게 받건 차별을 당하건 그런 것 따위엔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

사련이 여전히 슬픈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봤다.

“학관에서 끝나지 않으면?”

“…….”

“무림맹에 가서도 계속되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때면? 그때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어?”

슬프게 내뱉은 말들은 금·은·동 형제의 가슴을 깊게 난자한다.

검진을 이뤄 함께할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지만 개개인의 실력으로 따지면 그들은 학관 내에서도 중위권 정도.

무림맹에 가면 더욱 큰 격차가 날 것이다.

문파라는 보호막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그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겠는가.

“제길…… 제길, 제길, 제길!”

지금 가장 고민스러울 사람은 교관과 척을 진 대사형일 터였다.

그런 와중에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걱정 마라]

스스로가 아닌 자신들이었다.

그게 은호의 분노를 활화산처럼 태웠다.

퍽, 퍽, 퍽, 퍽.

대리석 바닥에 부딪힌 맨주먹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마치 연약하기 그지없는 자신들처럼.

“…….”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 누구도 쉬이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은호와 같은 심정일 테니까.

그때.

저벅, 저벅, 저벅.

연무장으로 일단의 인물들이 들어섰다.

사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이곳은 어디까지나 진소운의 개인 연무장.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련이 들어오는 이들의 면면을 보곤 작게 신음했다.

“……으음.”

그들은 다름 아닌 새로 부임한 교관과 교두들.

그들의 맨 앞에는 파리한 안색의 사내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진소운이 여기 있다지?”

교관의 질문에 사련이 머뭇거리는 사이.

손에서 흐르는 피를 제대로 닦지도 않은 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련 앞에 나섰다.

“여긴 학관 대표의 개인 연무장입니다. 나가주시죠.”

“……넌 누구지?”

은호의 말에 교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왜 너 따위가 내 앞을 막고 있냐는 듯.

은호는 자신이 이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처절하게 분했다.

“학관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따로 약속을 잡고 대표실에서 만나시죠. 여긴 대표님의 개인 기숙사입니다.”

“누군지 물었을 텐데……. 그리고 기숙사 또한 학관 시설이다. 교관이 가지 못할 학관 시설이란 게 뭐가 있지?”

너무도 당연한 일조차 상대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상대로 하여금 작은 위협조차 느끼게 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아무리 학관 교관이라 할지라도 학관생의 개인 생활 공간에 마음대로 들어설 권리는 없습니다. 더구나 연무장이라는 민감한 시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차갑게 뇌까리는 은호의 태도에 교관들의 얼굴에 불쾌감이 감돌았다.

“누구냐고 세 번을 물었다. 교관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할 생각인가? 네놈도 퇴관을 당하고 싶은 것인가?”

네놈……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분명 대사형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퇴관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진소운의 퇴관이 정해져 있다는 듯한 저 말에 덜컥 가슴이 떨려온다.

‘대사형이 걱정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단지 말 한마디에 휘둘리고, 작은 움직임에 동요하는 그런 연약함.

은호는 억지로 입가에 비웃음을 내걸었다.

늘 보았던 누군가를 따라 하는 거짓 표정.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망칠 것만 같아서.

그 사람이 그랬듯 한껏 여유를 부리며 비아냥조가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질문에 대답을 안 한다고 퇴관이라…… 혹여 지난 휴식기에 제가 모르는 학관 규정이라도 생겼나 봅니다?”

“…….”

상대 얼굴에 작은 균열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흉내를 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효과가 있는 듯했다.

“교육각에서 동의한 내용입니까? 힘들게 뽑은 정시 인원을 이렇게 막 퇴관 시켜도 된다고? 아니면 교관님들께서 즉석에서 만들어 낸 규정입니까?”

작은 균열이 점점 커지고, 그 사이로 지금까지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이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떨어!”

“아, 제가 틀린 말이라도 한 겁니까? 아니면.”

신기한 일이었다. 상대가 불꽃 같은 분노를 토해내자 은호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혹여 정곡을 찔려서 흥분하시는 겁니까? 흐음…… 저희 대사형을 상대로도 만용을 부리다가 그 꼴을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

상대는 대꾸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입을 꾸욱 다물었다.

눈앞의 감각만을 더듬더듬 짚어가던 중이었는데 운이 좋게 역린을 건드렸다.

은호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속으로 작게 환호를 하는 사이.

상대의 눈에는 불이 들어왔다.

뿌드득.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땐, 교관은 이미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감히 한낱 삼류 문파의 제자들 따위가…… 나를 쌍으로 무시해?”

진소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날카로운 살기.

그리고 온몸을 옥죄는 찐득한 기파.

이성이 날아가 버린 듯 움직이는 교관의 모습에 동료들이 그를 말려보지만.

“이보게…….”

“놔!! 내 오늘 저놈의 목을 베지 않으면 콱 죽어버릴 테니까.”

그는 마치 더 이상 뒤가 없는 사람처럼 진심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최소한 내공이 있다면 도망이라도 쳐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어나 있는 것조차 힘들 만큼 간신히 몸을 붙들고 있는 상태.

더구나 뒤에 서있는 사련이나 형제들이 도와주기엔 이미 늦었다.

흑도에 비해 정도가 있다지만, 결국 백도인들도 무인은 무인.

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 이리 실력행사를 하고 만다.

은호는 어떻게든 검을 들어 대응하려 했지만, 최소 중상을 입고 말 것이란 예측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그때.

“그만하지. 노진하 당주. 청성파의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나?”

여유로운 말소리에, 눈이 뒤집힌 듯 덤벼들던 교관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청성을 들먹……!”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노진하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의 시선 끝에서부터.

“하여간…… 무식하게 시끄러워선.”

학사 차림의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은호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누구지?’

정돈이 안 된 머리카락과 피골이 상접한 몰골. 내공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행세까지.

이곳 무림학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사내가 천천히 노진하의 칼끝에 다가갔다.

“이거 안 치우나?”

“…….”

“이거 찌르겠구만. 응?”

“……아,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 미친개처럼 거품을 물었던 노진하가 바짝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섰다.

대체 저 사내가 누구기에.

“백호각 팔당주가 굳이 학관까지 온 이유가 학관생을 죽이려고 한 것이었나?”

“……부장님이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어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자네 전출 도장도 결국 내가 찍었는데…….”

기이한 일이다.

무공이라곤 하나도 익히지 않은.

아니, 어찌 보면 평균 남성보다 더 연약해 보이는 사내의 말에 노진하가 창백하게 질려 안색을 바꾼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유로 전출을 온 거 보면…….”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가 노진하를 바라보며 산뜻하게 웃는다.

“팔당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 그게 무슨!!!”

“학관생을 죽이고 팔당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내가 그딴 걸 허락할 거 같아?”

“……그, 그런 거 아닙니다.”

노진하가 바짝 기합이 들어서 대답했다.

“아니긴 뭘 아니야. 딱 보아하니 더 이상 무림맹 생활에 미련이 없어 보이는데. 방금까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나?”

“저, 절대 아닙니다.”

“진짜 아닌 거 맞아?”

“그렇습니다.”

학사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파리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그만 가봐.”

“……그건.”

그러더니 은호에게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이 친구 말이 맞는데 왜? 여긴 어디까지나 학관대표의 개인 연무장 아닌가. 교관이 침범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곳이지.”

“…….”

노진하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여기서 그냥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뭔가를 더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내적 갈등을 겪는 듯.

그러다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진소운과 이야길 나누려 합니다.”

그러나 학사 사내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단칼에 잘라낸다.

“그건 나중에 따로 자리를 잡든가. 어쨌든 오늘 약속이 된 상태는 아니지 않은가?”

“…….”

노진하도 그 뒤에 선 교관들도 어쩐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사내가 두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으론 자신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아무리 부장님이라 한들 저희에게 이래라저래라할 권한은…….”

“그러고 보니 백호각주가 무슨 예산을 늘려달라고 떼를 쓰던데……. 안 그래도 백호각이 요즘 자금 사용이 방만하다 해서 감찰을 한번 할 생각…….”

“일단 돌아가겠습니다.”

“응?”

“……다음에 다시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쉽게 돌아간다고? 그 난리를 피워 놓고선?

은호는 돌아가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학사 사내는 귀찮다는 듯 다시금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가봐!”

사내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노진하는 은호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이내 몸을 홱 하니 돌렸다.

교관들이 빠져나가자 부장이라 불린 사내가 은호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며 물었다.

“소운이는 안에 있지?”

멍하니 부장을 바라보던 은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십니까?”

“응? 나는 소운이와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지.”

“아니, 제가 궁금한 건…… 대체 어떤 일을 하시길래…… 저 사람들을 저리 부리실 수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은호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사내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응? 아! 하하하. 뭐가 궁금한가 했더니 그거였나?”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별호가…….”

은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사내에게선 정말 일말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혹시라도 절대 고수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난 무공을 익히지 않았네.”

사내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의외였다.

“네? 그럼 저들이 왜……. 혹시 사문이나 가문이 대단하신 겁니까?”

청성파에다 백호각 당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치다.

그런 이가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의 말 몇 마디에 자신의 감정까지 눌러가며 돌아갔다니.

도무지 쉬이 믿기지 않았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내가 엷게 미소 짓는다.

“그야 물론 내가 만통부 부장 맹주원이니까.”

“만통부…… 부장…….”

사내의 직위를 입안에서 굴려보던 은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 자리에 가면…… 무공이 없어도 그런 힘이 생기는 겁니까?”

“후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배경과 무력만이 힘은 아니지 않겠나?”

부장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은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은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맹주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존나…….’

어쩌면 저 사람에게 자신이 찾는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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