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0화 (320/357)

320. <책임소재(3)>

만통부.

무림맹의 권력을 삼분하는 기관 중 하나.

무림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휘부 기관이라지만 실상 맡고 있는 실무는 가장 많은 곳이다.

작게는 무림맹의 경비를 몇 시간이나 세울지부터 시작해.

연간 들어오는 예산과 후원을 어떻게 운용할지, 각 행정처에 어떤 형식으로 분배할지도 결정한다.

나아가서는 무림맹의 지부 살림 또한 관리를 하는데.

지부장의 임명 권한이 이 만통부에 있는 걸 생각하면 실상 가장 많은 결정을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비대한 조직이 생각보다 적은 인원으로 돌아간다.

내가 맨 처음 만통부의 서류를 머리에 욱여넣기 시작할 땐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만통부는…… 글씨체를 통일시키는 연습부터 하나?’

사람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는 만큼, 각양각색의 글씨체로 작성된다면 차후에 효율적으로 정보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터.

그런 면에서 꽤나 괜찮은 추리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히 틀리긴 했지만.

만통부의 글씨체가 비슷비슷했던 이유는 그만큼 적은 숫자의 사람을 갈아가며 일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양을 극히 소수의 인원들이 작성했기에 통일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근데 왜 이 인간은 뻔질나게 학관을 드나들 수 있는 거지?’

나는 눈앞의 맹주원을 보며 생각했다.

맹주원 또한 아랫사람을 갈아 제시간을 확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안 바쁘십니까?”

“무슨 소리! 매일 바쁘네! 매일 바쁘니까 여기 오는 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눈두덩이가 검게 변하고 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바쁘긴 한 것 같다.

“아까 밖에서 말씀하신 대로 학관 대표 기숙사는 개인 공간입니다. 이리 약속도 없이 불쑥불쑥 들어오시면…….”

“아아! 그거라면 걱정 말게. 규정을 바꿔놨거든. 맹에 관한 일이라면 만통부 인원들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

아니, 학관 대표의 기숙사에 오는 게 왜 맹에 관한 일인 건데?

맹주원이 콧김을 뿜으며 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내가 곧 만통부 아닌가. 그럼 내 일이 곧 만통부의 일이고 만통부의 일이 곧 무림맹의 일이지.”

영 이해가 안 가는 말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어차피 이 사람이 여기 와서 헛소리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술에 취해 살려달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애당초 왜 나한테 살려달라는 거야?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제금학의 손에 죽었던 이는 제갈소명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맹주원은 간신히 살아남았고, 후에 만통부를 홀로 이끌다 결국 다른 이들의 손에 끌어내려져 은퇴하긴 했지만. 뭐, 어쨌든 타인의 손에 죽지는 않았다.

“……아무튼 무슨 일 때문에 또 오신 겁니까?”

“내가 무슨 일없이 오면 안 되는 사람인가?”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요.”

맹주원의 어깨가 추욱 늘어진다.

“섭섭하군…… 섭섭해!”

“용무 없으시면 이만 바…….”

“전등문과 관련해 향후 이야기를 해주려 했는데, 아쉽군.”

“……로 헤어지는 건 아쉬우니 차를 한잔 드릴까요?”

“차? 차 마실 시간은 있나?”

“마침 좋은 차가 있네요.”

나는 숙소에 있는 제일 싼 차를 꺼내어 맹주원에게 대접했다.

처음 맛보고는 너무 향이 별로라 더 이상 손대지 않았던 물건.

“음…… 향기가 좋군.”

고약한 향이 분명한데 뭐가 좋다는 건지 맹주원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어렸다.

“후후…… 이런 여유…… 자네가 온다면 즐길 수 있겠지?”

“무슨 말입니까?”

“아, 아니네.”

묘한 미소를 짓던 맹주원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곧 맹주령이 선포될 걸세.”

그러곤 다소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금공에 대한 조사는 오직 무림맹만 진행하겠다는 것이지.”

“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까?”

“지금 하루에만 사라지는 문파가 몇 개인 줄 아나?”

“…….”

“한 문파를 멸문지화를 시켜놓은 놈들에게 증좌를 대라 하니 ‘사특하여 불태워 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밀더군. 그런 놈들이 지금 허다해.”

맹주원의 얼굴에 경멸이 감돌았다.

“같은 백도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정도네. 흑도를 때려잡을 때보다 더욱 가혹한 짓거리들을 벌이고 있으니.”

흑도와 싸울 때보다 더욱 잔인하고 무도한 손속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고한 자를 칠 때는 반격당할 일말의 틈조차 남기지 않아야 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천혈사에서 흐른 피가 너무 적었나?’

사천혈사로 흘러나왔어야 할 피가 물길을 틀어 이쪽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내가 아무리 역사를 바꿔도 피를 보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까지는 바꾸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로들은 동의한 겁니까?”

맹주령이 발동되면 곧장 시행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원로들이 그냥 지켜보고 있을까?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맹주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느 정도는……. 그래도 다들 표면적으론 이 상태가 오래가면 위험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니까.”

그러곤 덧붙였다.

“다만, 너무 빨리 맹주령을 공표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자들은 있네.”

“아직 자기들은 못 써먹었다는 겁니까?”

맹주원의 표정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자네는…… 참으로 신기한 존재란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영문을 묻자 그는 금세 말문을 틀었다.

“맞네. 자신들이 못 써먹었다는 것에 아쉬움을 갖는 거지.”

이런 강호의 풍조는 무림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나온다.

어떤 적이 나타나더라도 무림맹은 무너지지 않으리란 그 신뢰가, 외부의 적을 내부 이권 다툼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막상 진정 위험한 적이 출연했을 때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맹주원이 경고했다.

“그러니 자네도 적당히 하게.”

“응? 뭘 말입니까?”

“교관들과 척을 지는 행동 말일세.”

“……애당초 교관들이 고작 일 년 만에 바뀐 게 문제 아닙니까.”

“그건…… 이미 그 일로 총군사께서 교육각을 한바탕 뒤집어 놨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으시게.”

“뒤집어 놓았다고요?”

“자넨 몰랐나? 교육각에서 이번에 몇 명이나 잘려나갔는지.”

호오. 이건 좀 유용한 정본데?

맹주원이 턱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이미 임명된 교관을 또다시 교체할 수는 없다는 게 교육각과 만통부의 공통적인 의견이네.”

“외부 시선 때문에 말입니까?”

“교체할 수가 없지. 이미 새로 온 자들의 서류에 임명 도장이 찍혔기에 총군사께서도 어쩔 수 없이 용인한 거니까.”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뭐가 좋다는 건지. 어쨌든 지금 새로 온 이들이 졸업 평가를 결정 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게나. 저들이 안 좋은 평가를 내린다면, 결국 자네와 자네 사문의 아이들 성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글쎄, 난 이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생각이 드는데.

“……그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엥? 뭐가 말입니까?”

시치미를 떼자 맹주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자꾸 사고 치지 말게. 가뜩이나 정도회와 백도회가 계속 자네를 주시하고 있으니까. 자꾸 이러면……”

이내 그는 아주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 듯, 내 어깨를 꽉 붙들었다.

“나중에 자네가 만통부에 들어오기가 힘들어져.”

“…….”

나 참, 대체 왜 내가 만통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꺼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전에 한번 만통부를 들어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얼마나 난리가 났던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후후…….”

대답을 안 했더니 맹주원은 어쩐지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곤 돌아갔다.

#

이틀 뒤 교관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맹주원의 경고가 먹히긴 먹혔나 보다.

겨우 이틀짜리이긴 했지만.

어쨌든 학관장인 북원평까지 참여하는 대담 자리였기에 나는 그들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뭐, 같이 가줘요?”

“진 공자님. 제가 함께 갈게요.”

별걱정 안 하는 듯한 성모란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남궁선화가 나섰지만 나는 거절했다.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교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고 무서워할까 봐?

“허 참! 뭐래? 진 공자가 사고 칠까 봐 걱정돼서 하는 소리잖아요!”

대체 이 사람들은 나를 뭘로 보는 거지? 나처럼 차분하게 이성적인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뭐 가끔 참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건 다 상대가 선을 넘었을 경우이다.

자고로 사내대장부로서 참아선 안 되는 때가 있단 이 말…….

“또 사고 칠 생각 했죠……!”

나는 서둘러 대표실을 나섰다.

#

대담은 교무부의 회의실에서 열렸다.

긴 탁자의 끝에 북원평이 앉아 있고, 한쪽 자리에 교관과 교두들이 주르륵 앉아 있다.

떼거리로 몰려온 모습이 제법 볼만하네.

“전 어디 앉아야 합니까?”

내 물음에 가운데 앉은 교관이 쌀쌀맞게 답했다.

“아무 데나 앉아라.”

“그럼…….”

“……그냥 가운데 앉아라. 이 일은 어디까지나 학관대표와 교관들 사이에서 해결할 일이니.”

북원평과 가까운 곳에 앉으려 하니 가운데 앉은 교관이 작게 불만을 터트렸다.

아니, 진작 그렇게 이야기하던가.

내가 자리에 앉자 어쩐지 교관들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똑바로 앉아라.”

“계속 자잘한 걸로 시비 걸면서 시간 끄실 겁니까? 저 바쁜데?”

“……이, 근본도 없는…….”

“어? 학관장님 이 사람이 저 욕하는데요?”

북원평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그만하지. 진소운 학관생은…… 탁자에서 발 내리고, 노진하 교관 자네도 욕지거리나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겠지?”

“…….”

잠시간의 소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노진하 교관, 그러니까 나한테 내공으로 처발린 교관이 말했다.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겠지?”

“모르겠는데요?”

“네가 먼저 공개적으로 사과한…… 응?”

노진하 교관이 말을 하다 말고 붕어라도 된 것처럼 입을 뻥긋뻥긋거렸다.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교관에 대한 공격행위는 엄중 처벌 대상으로…….”

“그거야 교관님이 실력을 증명하라 했으니까 증명한 거잖아요. 지가 시비 걸…… 아니, 본인이 시켜놓고 그걸 왜 나한테 뭐라 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경탄했다.

“아! 꼴사납게 처발라 버려서 문제가 되는 겁니까?”

“…….”

“근데 그게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렇다고 교관님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내 마지막 말에 노진하의 얼굴이 슬쩍 누그러진 듯 보인다.

왜 벌써 안심하고 그래. 나 아직 말 다 안 끝났는데.

“다 멍청한 제자를 키운 청성파 잘못 아니겠습니까.”

쾅!

탁자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네놈이 진정 죽고 싶은 거냐! 감히 사문을 욕보여!”

으드득.

턱이 부서질 듯 이를 가는 노진하.

쯧, 그러니 그 힘으로 내공 대결에서 이기지 그랬어.

나는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고 나직이 읊조렸다.

“청성파는 욕보이면 안 되고 태을문은 욕보여도 되는 겁니까?”

“…….”

“태을문처럼 일류 사문이든 청성파처럼 삼류 사문이든 자신의 사문에 대해 애착을 갖는 건 다 똑같습니다. 강자라는 이유로 상대 사문을 먼저 욕보인 건 교관님이셨죠.”

노진하 교관을 비롯해 다른 교관들의 얼굴이 굳는다.

“더구나 이제는 잘못이 없는 저를 데려다가 사과하라며 압박까지 하고 있고요.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따라야 합니까?”

사문의 이야기가 나오자 노진하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그 옆에 선 서글서글한 인상의 교관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자자, 서로 죽자고 여기 모인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곤 노진하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자리에 앉혔다.

“그만 자제하게. 진하 자네가 수업 중에 너무 열의를 발휘한 것 같구만. 그건 분명 잘못이네.”

“…….”

쟤 이름이 뭐였더라…… 같은 청성파 출신인데…… 그 탁…… 그래, 강순탁!

강순탁이 노진하를 책망하다가 나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었다.

“이해하게. 대대로 교관과 교두들은 엄숙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학관생들을 욕 보이는 경우도 있네. 우리 때도 다 있었던 일이지.”

이야, 이제 ‘나 때’도 등장하시고.

“어쨌든 진하 이 친구가 선을 넘은 건 확실하니 내가 대신 사과하지. 작은 ‘실수’ 아닌가. 이런 건 호탕하게 넘어가 줘야 남자 아니겠는가. 하하! 그렇지?”

상대의 감정 따윈 고려치 않고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왜 이들은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있을 텐데.

“그렇다 해도 어떤 사정이든 간에야 교관이 학관생에게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건 향후 교육에 있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네. 그러니 조금이라도 스승의 권위를 세울 수 있도록…… 자네가 공개적으로 노 교관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일을 끝내는 게 어떤가?”

하지만 이제 안다.

이들은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은 우리의 입장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전에도 그들은 항시 위에 있었고, 앞으로도 항시 위에 있을 거라 자신하니까.

그러니까,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 결국 자신들의 의도대로 원상태를 유지하면 그만인 것이다.

바로 이렇게.

“자네가 공개 사과를 하고 우리도 그걸 받아들임으로써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겠는가?”

저들은 알고 있다.

약자들이 불의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그러니 적당히 얼러주며 포기하게 만든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본래대로 잠잠해질 테니까.

전생에서 숱하게 겪은 일이다.

부담을 안고 대응하다. 상대의 달콤한 몇 마디를 믿고 포기한다.

힘이 없었으니까. 두려웠으니까. 저들의 거짓말에 기대서라도 절망적인 현실이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이렇게 정의가 서는 것이고. 안 그런가?”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싫은데요.”

“……으응?”

저들의 병신 같은 정의를.

그리고 믿고 있다. 나의 힘을.

“싫다고요. 내가 잘못을 안 했는데 왜 사과를 합니까?”

이 위선자들은 상대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본색을 드러낸다.

바로 이자처럼.

“……자네 감당할 수 있겠나? 우린 자네와 자네 사제들이 졸업할 때까지 평가를 할 걸세.”

“그 말은 교관님의 감정에 따라 점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

“아니라고 말은 안 하는군요.”

강순탁이 피식 비웃음을 내비친다.

“별호에 염(念) 자가 들어간다더니…… 역시 생각이 얕군. 그리 적대해서 자네에게 좋을 게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상대를 내려보는 시선.

“아, 그건 알고 있나? 이후 무림맹에 가게 된 후에도 여기 있는 자들이 자네를 평가할 거야. 장밋빛 미래를 여기서 똥통에 처박고 싶나?”

그래서 들이받는 게 중요하다.

결국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면 결단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으니까.

“왜 저만 피해를 입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뭔가 손해 볼 게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인간이란 자고로 자신의 몸에서 피가 나야 조심을 하는 법이니까.

“학관 수업 절반이 교관이나 교두들과의 시범 수업입니다. 그중 비무가 열 번도 넘고요.”

“……응?”

나는 여유로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북원평을 바라봤다.

“학관장님. 학관 수업에서 실시하는 비무 중에 교관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 이것부터 물어야겠군요. 그런 전례가 있습니까?”

“……야! 진소운…….”

북원평이 얼마나 놀랐는지 경어 대신 반말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였다.

“흠…… 그럼 교관님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회복하지 못할 장애를 갖게 되면 자연스레 퇴직 처리가 되겠죠?”

득의양양 이야기하던 강순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친다.

“자네 미쳤나? 그따위 짓을 하고도…….”

“뭐가요? 그냥 작은 ‘실수’인데.”

“……!”

네놈들이 그랬지. 그저 작은 ‘실수’라고.

“더구나 어차피 제 미래나 태을문 제자의 미래는 이미 똥통에 처박히지 않았습니까.”

“…….”

“왜 피해가 한쪽으로만 쏠릴 거라 생각하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근데 이걸 어쩌나.

작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건 네놈들만이 아니거든.

“제가, 그리고 제 사제들이 그냥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성격처럼 보이셨습니까?”

교육각에서 더 이상 새로운 교관을 보내지 못한다는 건, 결국 이들이 알아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

맹주원은 이들이 교체되지 않는 데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나는 되려 반대로 생각했다.

이들이 교체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이 새끼들을 구석에 몰아넣고 팰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잖아?’

이들이 먼저 대담 신청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스로 얼굴에 똥칠을 한 이상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에헴 거리며 교관 생활을 할 수 없겠지.

그래서 내게 다른 무엇도 아닌 공개 사과를 요청한 것일 테고.

한마디로 저들이나 나나 고립된 함정에 갇힌 건 똑같은 처지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립된 함정에서 살아남는 건 독기가 더 강한 쪽이고.

“아니면 사문에서 그리 가르쳤습니까.”

“…….”

더 이상 사문을 들먹거려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하십쇼. 마음대로 하십쇼. 아니, 부디 제발 그렇게 해주십쇼.”

나는 가볍게 조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그래야 저도 교관님들께 손을 쓸 때 죄책감이 들지 않을 테니까요.”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눈동자에 어느새 공포가 어렸다.

나는 이번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꼭! 꼭 그렇게 해주십쇼.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게 왜 착한 사람을 자꾸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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