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3화 (323/357)

323. <검은 숲(3)>

영약(靈藥)

대지와 하늘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생겨나는 이로운 존재.

평범한 이들이 먹으면 수명을 늘리고, 무인이 먹으면 상식을 초월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약재.

삶은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고, 힘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기에 영약은 보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인들은 때론 가장 소중한 생명을 담보하여 이 영약을 손에 넣으려고도 한다.

양자평이 보기엔 너무도 바보 같은 생각이다.

‘실제 자신의 목숨과 바꿔야 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

검은 숲이 무림맹 지정 금지(禁地)가 된 데엔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무인들이 함부로 발을 딛고.

너무 많은 무인들이 쉽게 죽는다.

묵림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곤충들 대부분이 지독한 독을 품고 있고, 방만한 환경 속에서 자란 탓에 영맥의 선택을 받아도 마물로 자라나기 십상이다.

길을 잃어도 영약으로 고수가 되면 그쯤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무인의 오만함은, 처음 숲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완전히 바스라진다.

사방에 가득한 독충.

방위를 헷갈리게 만드는 천연진.

밤이고 낮이고 공격해 오는 독물까지.

영약을 찾기도 전에 묵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게 무인의 존재다.

그렇기에 양자평의 남권문이 묵림을 관리하는 존재로서 매해 수만 냥에 달하는 지원금을 무림맹으로부터 받는 것이기도 하고.

방금도 그렇지 않은가.

묵림의 초입에선 절대 나오지 않는 삼갈사가 갑자기 튀어나와 양자평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듯이 말이다.

“……삼갈사에게서 영단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어떻게 삼갈사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삼갈사를 쥐고서 영약을 운운하는 꼴을 보니 학관 대표도 아직 이 숲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독단은요? 이 정도 크기면 꽤 오래 묵은 거 같은데.”

“묵림의 존재들은 애당초 크기의 기준이 중원과 다릅니다. 이 녀석들은 애당초 겨울잠을 자지 않고 일 년 내내 성장하니까요.”

시무룩한 표정의 학관 대표…….

이름이 뭐랬더라. 진 뭐시기라 했던 거 같은데.

“그럼 독은요? 독단은 없습니까?”

듣기론 분명 도가문파의 제자라 들었는데. 독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독에는 왜 관심을 갖는 거지?

설마…….

“독단도 영약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는지 모르겠다.

독단을 먹고 그걸 이겨내면 더 많은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묵림을 둘러볼 때면 열에 여덟은 독단으로 몸이 녹아 죽어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애당초 독단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지녔다면 이곳에 들어올 필요도 없었겠지.’

독단을 소화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건 미약한 내공과 독 내성이 전부다.

그리고 얻는 것에 비해 위험 요소는 너무 높고.

“절대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독단을 녹인다고 내공을 얻기는커녕 죽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요. 애당초 삼갈사의 독은 잠깐의 마비 수준밖에 안 됩니다. 놈들은 바로 먹잇감을 삼켜버리니까요.”

양자평의 말에 여태껏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진소운이 입가에 미소를 내건다.

왜일까? 사람이 웃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불안함이 느껴지는 거지……?

“마비 수준이라…….”

입을 제압하고 있던 실을 풀자 독기가 낭낭하게 오른 삼갈사가 아가리를 쩌억 벌린다.

“자, 잠깐 뭐 하는 겁니까?!”

저 새끼 이름이 뭐랬더라?

원체 남자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그였기에 도저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꼴통은 아무리 남자라도 외우고 있었어야 했는데.

진 뭐시기라는 꼴통이 삼갈사의 아가리를 제 팔에 가져다 대려 하고 있었다.

“지, 진 공자! 뭐 하는 거예요!”

성모란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사련이 정색을 하며 외친다.

“진소운! 그거 내려놔! 당장!”

그래! 저 꼴통의 이름이 진소운이라고 했다.

“진소……!”

꼴통의 이름을 부르며 말리려던 양자평은 보았다.

“싫은데?”

아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제 팔에 삼갈사를 물리는 진소운의 모습을.

콱!

#

마비독.

흔히 사람들은 마비독을 독 중에 그나마 안전한 독이라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마비독은 흔히 의료 행위 중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독물이 마비독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독이 강하지 않아도 자연에서 살아남기 용이했다는 측면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바로 지금처럼.

촤르르륵.

삼갈사의 마비독이 그리 강하지 않다지만, 그거야 묵림의 기준이다.

독이 퍼지기만 해도 신체가 녹아버리는 심각한 독에 비해 반나절 정도 꼼짝하지 못하는 독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사냥감에게 마비독을 쏜 삼갈사는 다리부터 사냥감을 휘감기 시작했다.

두둑, 두둑, 두둑.

어지간한 사람의 뼈 정도는 가볍게 부러뜨리는 삼갈사가 진소운의 몸을 휘감자마자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사람 머리만큼 크게 벌어진 삼갈사의 입에서 독액이 뚝뚝 떨어진다.

“제길!”

“막아!”

진소운의 일행들이 일제히 삼갈사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본능대로 움직이는 삼갈사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터업!

머리 부분을 한입에 삼켜버린 삼갈사의 모습에 성모란이 혼절해 버리고.

양자평은 주위를 향해 얼른 외쳤다.

“우, 움직이지 마!”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말.

하지만 지금은 예의를 차릴 때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지금 자극하면 단박에 저 미친…… 아니, 진 대표의 머리를 뜯어내려 할 테니까.”

이게 묵림의 무서움이다.

중원의 뱀들은 먹잇감을 삼키는 도중 공격을 당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 영악한 삼갈사는 공격을 당하는 순간, 입속의 먹잇감을 무서운 치악력으로 찢어발긴 후 다음 사냥을 이어간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

어떻게 하냐고?

애당초 삼갈사에게서 사람을 구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는 양자평에겐 너무 무거운 질문이었다.

“일단, 입을 고정할 만한…… 강력한 철봉이 필요합니다.”

어지간한 나무로는 안 된다. 그야 너무도 쉽게 산산이 부수어 버리니까.

그러나 설사 철봉이 있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다.

누가 삼갈사의 아가리를 벌릴 것인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결국 눈앞에 놓인 선택지라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볼지 빠르게 죽어가는 것을 볼지, 잔혹한 양자택일밖에 없었다.

다만 절망스러운 진실을 말해줄 수 없기에 그저 철봉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다.

묵림 한복판에서 어떻게 철봉을 구해온단 말인…….

“이 정도면 될까요?”

그의 코앞에 스윽 내밀어지는 철봉.

딱 봐도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아, 제 궁이 철궁인데 시위를 풀면 이런 모양입니다.”

“…….”

아니, 이게 여기서 나오면 안 되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죠?”

이어 철방패를 든 이가 앞으로 나섰다.

양자평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아가리를 벌리고 철봉을 고정하면…….”

그러나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삼갈사에 잡아먹힌 인간을 구하는 건 구조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사냥을 방해받은 삼갈사는 그 어느 때보다 흉폭해지니까.

“고정하면……, 고정하면…….”

그런 양자평의 심정을 알아차린 것일까?

삼 형제 중 둘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이가 한숨을 내쉬며 나섰다.

“……대사형이 저지른 똥은 우리가 치워야지.”

직접 나서겠다고?

삼갈사의 무서움을 모르기에 부릴 수 있는 만용이라 생각하며 말리려는 찰나.

“형이랑 사저께서 한쪽씩 입을 고정해 주세요. 그럼 저와 동룡이가 철봉으로 고정을 할 테니까. 그리고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면, 다른 분들이 나서 주시고요.”

익숙한 듯 지휘를 하곤 삼갈사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

“잠깐! 삼갈사는 상상 이상으로…….”

“네. 뭔 말인지 알겠어요. 양 대협이 그런 반응 보인 것만 봐도 충분히 파악되니까.”

“…….”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그가 목 아래밖에 보이지 않는 진소운을 불경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내젓는다.

“……망할 놈이긴 해도 대사형이니까.”

마비가 되었다고 귀까지 머는 건 아닌데…….

네 사람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삼갈사에게 뛰어들려는 순간.

두둑, 두둑, 두둑.

가죽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삼갈사가 진소운을 더욱 옥죄어 뼈가 부러진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로 진소운을 옥죄고 있던 삼갈사의 몸이 서서히 풀리는 것 아닌가?

‘마비독이 벌써 풀렸다고???’

삼갈사에게 다가가던 태을문의 제자들도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우두커니 삼갈사를 바라보았다.

두둑, 두둑, 두둑.

벌어지는 삼갈사의 몸 틈 사이로.

수우욱.

……양손이 뻗어나와, 머리를 집어삼킨 뱀의 아가리 양쪽을 꽈악 틀어쥔다.

“……감히 ……하늘 같은 대사형에게…… 망할 놈이라고?!!!”

우드득, 우드득.

그러더니 쩍 벌어진 삼갈사의 아가리를 더욱 크게 벌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더욱 힘을 옥죄며 진소운을 꼬옥 움켜쥐던 삼갈사의 몸이 풀리더니 이제는 어떻게든 진소운의 손을 빠져나가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소운은 삼갈사의 아가리를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넓게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드득.

퍼더덕, 퍼더덕.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삼갈사의 몸뚱이가 사방으로 채찍처럼 휘둘린다.

양자평을 비롯한 선두조의 인원들은 삼갈사의 꼬리에 맞지 않기 위해 몸을 마구 뒤틀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턱.

너덜너덜하게 찢겨 진 아가리의 삼갈사가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삼갈사의 아가리 속에 스스로 들어갔다 나온 진소운은 지휘를 했던 이를 보며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은호! 네놈 목소리가 분명하렷다!”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목소리를 바꾸는 이은호.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리 와 이 자식아!”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온 태을문도들.

주변인들도 한숨을 길게 내쉬지만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죽음을 경험했다거나 하는 후유증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이 인간들은?’

중원인들이 보기에 오랑캐라고 보일 만큼 거칠게 살아온 자신들이었지만 태을문도들은 그런 자신이 보기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

“뭐……라고요?”

요즘 이 표정 자주 보네.

나는 사련에게서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건 중원에선 못 하는 거니까…….”

“뭐라고요?”

“그러니까 이건 중원에서는…….”

“뭐.라.고.요?”

분명 못 들은 게 아닐 텐데.

계속 되묻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나도 작전을 바꾼다.

“무인이 어떤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많이 죽는다 생각하는 거냐?”

“갑자기…… 왜 말을 돌려요?”

“독과 암기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얼른 사련의 말을 끊었다.

“난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태을문의 부흥과 수호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난 절대 쉽사리 죽어선 안 된다.”

“…….”

“암기는 어찌어찌 막을 수 있다 쳐도 독은 쉽사리 막을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 사정에 당가가 판매하는 백독단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백독단은 당가가 판매하는 독 내성 단환이다.

무인이 가장 많이 당해 죽는 백 가지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주는 특수 독단인데, 비교적 안전하게 독 내성을 길러주는 만큼 가격이 말도 못 하게 비싸다.

사련 또한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입을 뻥긋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나는 일부러 절규하듯 외쳤다.

“나는 무엇보다 절실하다. 만독불침은 못 될지 몰라도 최소 천독불침은 돼야 사제들과 태을문의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던 사련의 눈빛이 슬프게 바뀐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모습을 보니 달리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역시 ‘설득’보단 ‘이해’가 더 쉽다.

“하아…… 차라리 백독단을 사요.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얘가, 얘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백독단이 얼만데!!! 여기선 공짜 아니냐!”

이야기를 듣던 사련이 짜증 난다는 듯 제 머리칼을 마구 헝클인다.

“아악! 몰라!! 알아서 해요! 독에 절어 죽든지 말든지!!”

사실 방법을 좀 바꿀 필요가 있긴 하다.

살아있는 놈들의 독이 더 신선할 거란 생각에 일부러 물리긴 했지만, 방금 전처럼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더구나 삼갈사의 입안에 들어갔던 경험은.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

“지, 진 대표님…… 진짜 독 내성을 키우려고 일부러 물린 겁니까?”

양자평이 어쩐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물어왔다.

이 사람 왜 이러지?

큰 몸에 꽤나 자부심이 있는 것 같더니만.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그것도 있고요. 사제들이 훈련하기 전에 얼마나 위험한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사제들까지???”

큰 덩치의 양자평 얼굴이 왠지 하얗게 질려버린다.

나는 삼갈사의 어금니 하나를 뽑아냈다.

우드득.

이빨과 함께 긴 독낭이 딸려 나오고.

금·은·동 형제를 바라봤다.

사련이는 지금 분위기상 안 될 거 같거든.

물론 금표와 은호는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 있지만.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산뜻하게 눈꼬리를 휘어 보였다.

“내가 갈까? 니들이 올래?”

그때, 옆에서 멍하니 보고 있던 동룡이 용기 있게 다가왔다.

“대, 대사형 제가 먼저 할게요.”

역시나 셋 중에 동룡이가 제일 똘똘하다니까.

어차피 할 거 맞기 전에 하면 좋잖아?

팔을 내민 동룡이의 팔뚝에 삼갈사의 어금니를 찔러 넣으려는 순간.

동룡이가 깜짝 놀랐다.

“대, 대사형!”

“아직 안 찔렀다.”

“그게 아니라 뒤, 뒤에…….”

“응?”

고개를 돌린 곳엔 악귀 같은 표정의 사련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젠 사제들까지 끌어들여?!”

나는 황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어딜 가!”

근래에 무공 수위가 원숙해진 사련의 손을 피하긴 이미 늦었다.

짝.

등짝에 인두로 지진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

선두조가 도착하고 하루 뒤에 본대가 도착했다.

이어 우리 선두조는 본대를 두고 다시금 숲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묵림의 중심에 위치한 주둔지.

이미 전대 기수들이 사용하던 주둔지를 정리하는 수준이었기에 선두조가 힘들 일은 없었다.

첫날 이후 어쩐지 웃통을 까지 않고 다시 옷을 입기 시작한 양자평의 말로는, 처음 묵림이 학관생들에게 공개된 이후로는 매번 같은 곳에서 훈련을 해왔다던가?

“아무래도 묵림에서 함부로 움직이기는…… 위험하니까 말입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 일은 계속하실 생각이십니까?”

침을 꿀꺽 삼킨 양자평이 내 손안에 든 보라 색깔의 독버섯을 보며 물었다.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요.”

여태껏 먹은 독의 숫자는 겨우 열 개 남짓.

주둔지를 확보해야 하는 일 때문에 제대로 독을 찾지 못했다.

삼갈사의 마비독을 먹은 이후에 그보다 더 위독한 독은 아직 보지도 못했고.

나는 독버섯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은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하진 않겠죠?”

이 점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화막이나 빙해와 달리 묵림은 딱 정해진 곳에서만 움직여야 했으니까.

“그렇……겠지요.”

왠지 뜨뜻미지근한 반응의 양자평.

어쩐지 그때 이후로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눠 볼 기회가 점차 줄어든 것 같다.

뭐,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일주일 만에 도착한 주둔지는 초입에서 봤던 곳보다 훨씬 넓은 위치에 형성돼 있었다.

이곳은 그래도 나름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 바닥에 자갈들이 깔려 있어서 큰 나무는 자라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우리는 본대가 오기를 기다렸고, 정확히 하루가 지난 후에 본대가 주둔지에 도착했다.

학관생들이 정해진 구역에 각자 막사를 세우고 앞으로 남은 삼 주를 보낼 준비를 하는 동안.

각 조의 조장들이 교관의 막사에 모였다.

조장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자 노진하가 재미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간의 대여정이 그저 요식행위로 치러진 점이 없지 않단 말이지. 뭐, 이건 우리 때에도 늘 나오던 불만이었고.”

이렇게 밑밥을 깐 뒤.

“지난 기수에서 용소아는 타칸 부족을 토벌하기도 했고.”

경쟁심을 부추겨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은근한 목소리.

“그래서 말인데……. 지난 기수와 비교해도 꿇릴 것 없는 자네들이 그냥 있으면 안 되겠지?”

마지막으로 본론을 꺼냈다.

“이참에 묵림 지도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떤가? 탐사도 하고 마물도 잡으면서 말이야.”

조장들의 얼굴이 저마다 딱딱히 굳은 것과는 별개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고?’

이야, 이 새…… 아니 이 교관, 맨날 처맞는 말만 하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맞는 말도 하는구나?

나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자는 소릴 들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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