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검은 숲(4)>
대여정의 안전 관리를 맡은 남권문에서 교관들이 제시한 새로운 임무에 극구 반대를 했다.
“묵림은 함부로 돌아다녀도 되는 곳이 아닙니다……!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양자평의 말에 노진하가 비웃음을 날렸다.
“남권문은 초상비를 쓰지 못하나 보오?”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
양자평이 발끈하며 나서려는 순간, 노진하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학관도 못 나온 남권문 출신 따위가 백호각의 당주인 나에게 이따위 행동을 해?”
“…….”
노진하가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려 할 때.
“그만하십시오.”
양자평과 함께 나온 남권문의 사람이 두 사람을 말렸다.
그러곤 노진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분명 학관 교관님들이 지는 게 맞습니까?”
“흥!”
노진하는 가타부타 대답하는 대신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남권문의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부분은 확실히 이야기 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흰 곧장 철수한 뒤 무림맹에 보고를 할 생각이니까요.”
“하…… 어처구니가 없으려니까.”
“책임은 지시는 겁니까?”
거듭되는 질문에 잠시 눈알을 굴리던 노진하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책임지지.”
“알겠습니다. 그럼 탐사 길잡이는 남권문에서 맡겠습니다. 대신, 학관생들이 길잡이의 안내에 무조건 따른다는 조건을 달아 주십시오.”
“탐사 중 맞닥뜨리는 야생동물이나 마물의 습격은? 그것도 남권문에서 감당할 수 있나?”
이번엔 양자평이 한 걸음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범이나 곰이라면 몰라도 저희는 마물을 토벌할 힘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자 노진하의 얼굴이 의기양양해진다.
“그럼 왜 남권문의 말을 따라야 하지?”
양자평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웃기지도 않는군. 겨우 길 안내를 하는 정도 가지고.”
하지만 양자평도 물러서지 않았다.
“약속해 주십시오.”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노진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학관생 전부를 안내할 필요도 없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혹여 다른 길잡이라도 준비하신 겁니까?”
“그건 이미 남권문이 참견할 일이 아닐 텐데?”
“알겠습니다.”
약속을 받은 양자평이 뒤로 물러나자, 노진하가 각 조의 조장들에게 탐사지역을 배정해 주었다.
하나하나 지역이 정해지고, 가장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탁-
노진하는 묵림의 가장 깊숙한 곳을 짚었다.
“학관 대표라면 이 정도 탐사는 해야겠지?”
묵림 내에서도 마경이라 불리는 곳.
하, 이 사람…….
“왜 겁나나?”
아주 쓸모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사실 이 사람은 태을문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나는 싱긋 웃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제가 청성의 제자도 아닌데 겁날 게 뭐가 있겠습니까?”
“……!”
노진하도 감동을 먹었는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정말이지 화기애애한 사제지간이 아닐 수 없다.
#
다음 날 탐사를 위해 조별로 모여 탐사 준비를 하는 와중에 일각이 내게 다가왔다.
“진 시주…… 조심하십시오.”
일각이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합장을 해온다.
이 인간은 왜 이리 걱정이 많대. 걱정이 많아서 대머리가 되어 버린 건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는지?”
일각이 목소리를 낮추며 탄식을 내뱉는다.
“마경은…… 묵림 내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이라 들었습니다. 사문의 존장이신 태수 스님께서 예전에 마경에 들어갔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한…….”
“…….”
이 대머리,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지?
이게 불교식 저주 같은 건가?
그래도 먼저 들어갔던 사람이라고 하니 궁금함이 생겨서 물었다.
“그분께서 마경에서 영약이나 영물을 얻었답니까?”
“아니요. 일절 없다고 하더군요. 혹여나 저희들에게도 그곳에 들어갈 생각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
진짜 도움 안 되는 대머리네.
우리 조의 길잡이는 다시 양자평이 맡았다.
마경까지 가본 인원이 양자평밖에 없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더 빽빽한 숲속을 걷자니 속도가 정말 말도 못 하게 느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걷는 속도보다 더 느리다고나 할까?
조원 전체가 무인이고 길잡이가 묵림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양자평은 몇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무에 칼로 흔적을 남기고 자신이 왔던 길을 몇 번이나 되짚어 봤다.
확실히 수풀이 우거지고 태양까지 가려진 상태라 방위를 알 수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
“이런 속도로 계속 가야 하는 겁니까?”
내가 못내 불만을 터트리자 양자평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묵림은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길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걸려도 이렇게 들어가야 합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묵림이라 한들 결국 숲 아닌가?
중원에서 보지 못할 만큼 높이 자란 나무들이긴 하지만 무인이 오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면 태양이든 별자리든 파악하여 방향을 알 수 있고.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다면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역시나…… 중원인다운 사고방식이군요.”
어쩐지 허탈함이 느껴지는 웃음.
그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드리는 게 더 낫겠군요.”
양자평이 주변의 마른 나뭇잎들을 모았다.
이어 품 안에서 부싯돌과 솜뭉치를 꺼내더니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차칵, 차칵.
이윽고 솜에 불이 붙고 그 불이 마른 나뭇잎에 옮겨붙어 번지기 시작했다.
불길이 점점 거세지자, 그는 갑자기 젖은 이파리들을 꺾어 불을 확 덮었다.
이파리에 붙은 수분이 날아가고 불길이 약해지며 매캐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을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양자평.
“이제 한번 올라가 보시겠습니까?”
“…….”
나는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파리가 무성한 꼭대기 부분을 제외하곤 나무에 가지가 많이 달려있지 않았다.
더구나 가지 사이의 간격이 꽤나 넓어서 연속으로 발디딤 하기는 불편한 상황.
그렇다고 오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핑.
나는 비룡조를 던져 나무에 박아 넣은 뒤 천잠사를 감으며 그 힘으로 다시금 나무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렇게 세 번쯤 반복하자 나무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다.
‘확실히 중원에 비하면 엄청 높긴 하군.’
꼭대기에 다다를 즈음, 발을 디딜 가지들이 무성해져서 더 이상 비룡조의 도움은 필요가 없었다.
맨몸 그대로 가지들을 박차고 숲을 뛰어오르려는 찰나.
“어엇!?”
내 몸은 숲 위를 가로질러 허공을 나는 것이 아닌.
쑤우욱.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
“미친!”
신나게 바닥을 박차고 오른 탓인지 떨어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나는 비룡조를 쏘아내어 몸을 나무에 고정한 뒤 다시금 위를 살폈다.
분명 나뭇가지들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대사형! 거기서 뭐 하세요!”
더구나 내 일행들은 십 장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대체 무슨 조화지?’
나는 다시금 나무를 박차고 위로 올랐다. 그러나 떨어질 것을 대비해 이번엔 조심스레 움직였다.
다행히 이번엔 숲 위로 올라 태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지?’
양자평이 바로 아래에서 지핀 것으로 보이는 연기가 이십 장 거리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자평이 불을 끄고 다른 조가 피운 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
나는 나무들을 밟으며 연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연기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아닌가?
“미치겠네.”
그때, 양자평의 전음이 들려왔다.
-연기를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
기이한 일이다.
분명 눈에 확실하게 보이고 냄새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찌하여 계속 멀어지는 걸까?
-아까 보니 재미난 도구를 가지고 계시던데, 그대로 내려오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양자평의 말대로 비룡조를 풀어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도착할 때쯤 되니 양자평이 수풀을 헤치고 내게 다가왔다.
“어떠셨습니까?”
“……대체 무슨 조화입니까?”
“영맥의 영향입니다.”
“영맥이요?”
양자평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묵림은 지상과 천장 양쪽에 천연진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하나의 동굴과 같은 형태가 되지요. 거기에 더불어 묵림에 사는 곤충들이 내뿜는 분진이 사람의 감각에 혼선을 가져옵니다.”
산중에 천연진이 생겨나는 일이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무가 자란 위쪽에도 천연진을 만들어 버린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거기에 어디서 나오는 지도 모르는 미혼향을 계속 마시고 있다는 것 아닌가.
“허공을 딛고 하늘을 날아 영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대표님이 말하신 대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양자평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나무에 발을 딛는 순간, 방위가 틀어질 겁니다. 대표님께서는…… 방향을 구분하여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최소 허공답보나 능공허도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말을 참으로 쉽게도 이야기한다.
더구나 그저 길을 헷갈리게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개 숲이 금지(禁地)로 지정되고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다 고혼이 되어서야 나간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다시는…….”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깝치지 않겠습니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양자평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뭐가 잘못됐습니까?”
잠시 말을 고르던 양자평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 면모를 가지신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
뭐, 어쨌든 내가 설친 건 잘못했으니.
나는 다시금 예의를 차려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이동이 시작되었다.
내가 깝치다 어떤 꼴이 되었는지 깨달은 조원들은 얌전히 양자평의 뒤를 따랐다.
나 또한 더 이상 속도를 내자는 둥 채근은 하지 않았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깊숙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독물을 구하기가 점점 쉬워졌다는 것.
“……그걸 계속하려고요?”
“성 소저도 하시겠습니까?”
챙!
“당장 치워요! 죽여버리기 전에!”
깜짝이야. 원래 성질이 저렇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빨리 치우라고요!”
“넵.”
처음엔 얼마나 독이 강한지 알 수 없어 하나하나 양자평에게 물어봤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색깔이나 모양에 따라 얼추 독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덧 삼십 개에 달하는 독을 서서히 중화시키며 내성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걸으며 독을 중화시키고 또 다른 독을 구해서 중화시키는 연습을 하자니 이것 또한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확실히 한번 중화를 시키고 나면, 반복적으로 그 독에 당하더라도 독성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라면 대여정이 끝날 때쯤엔 아주 위급한 독이 아니고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묘한 기대감까지도 생길 정도.
그러면 그럴수록 욕심이 생겨나 나도 모르게 사제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쩝, 녀석들도 해야 하는데.’
다른 조원들은 몰라도 태을문도 인원들한텐 독 내성을 키우는 훈련을 시키고 싶었는데 사련이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애당초 금표와 은호도 원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대사형, 이거 먹어 봐도 되겠죠?”
순수하게 눈을 반짝거리는 녀석.
동룡이 손에 들린 보라색의 버섯을 흔들어 보인다.
딱 봐도 위험한 독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동룡이도 벌써 스무 개가 넘는 독을 소화시켰다는 말씀.
나는 녀석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먹어 봐라. 혹여나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내뱉고.”
정 위급하면 내가 내공으로 독기를 내보내 주면 되는 일이니까.
이 짓도 삼 일 차쯤 하고 나니, 우리 일행은 물론이고 양자평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마경으로 이동을 한 지 나흘 차, 재미난 일이 생겼다.
“……어째서 대사형이랑 동룡이는 벌레에 안 물리는 거죠?”
간밤에 벌레에 물려 볼따구가 땡땡 부은 금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야 풍령을 품에 소지하고 있었으니 애당초 묵림에 들어올 때부터 벌레가 꼬이지 않았다.
동룡이는 둘째 날까지 고생을 하곤 셋째 날부턴 벌레에 물리는 일이 줄었다.
“…….”
양자평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당가의 사람들도 묵림 내에서 벌레에게 잘 물리지 않더군요.”
“……!”
“…….”
“…….”
정확한 원인을 꼽을 순 없지만 대략 뭔가가 맞아떨어지는 답변.
동룡이와 내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나머지 일행들은 얼굴을 찡그렸고, 성모란은 곧 죽을 사람처럼 얼굴이 시꺼멓게 변했다.
나는 은호에게 물었다.
“해볼 테냐?”
“…….”
한참을 고민하던 은호는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차에 밤새 벌레에게 물리며 한숨도 자지 못했던 게 큰 영향을 끼친 듯했다.
“어차피 백독단을 사줄 생각은 없으시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젠장…….”
입 아프게 뭘 묻고 그래.
은호가 울 듯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고.
“그래, 어서 오고.”
나는 여태껏 독 내성 작업을 했던 벌레들 중에 적당한 것을 잡아 은호의 팔을 물게 했다.
“크흡……!”
이내 은호의 얼굴이 금방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체에 변화가 생기자마자 은호는 운기조식에 들어갔고, 그다음으로 금표, 재화, 설란 등이 뒤를 이었다.
나는 남은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아…… 내 의지로 직접 이걸 할 줄이야.”
결국, 사련이와 남궁선화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다들 묵림 내의 벌레 때문에 고생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까.
그 와중에.
“꺄아악! 싫어! 싫어요! 차라리 뱀으로 할래!”
벌레를 극렬히 거부하는 성모란까지 물리고 나자, 양자평은 이제 질린다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 얘기를 사문에 전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당장 외공을 수련할 수는 없으니까요.”
“…….”
더구나 독 내성도 챙기고.
얼마나 좋아.
그렇게 주둔지를 떠난 지 오 일 차.
“쉬잇──.”
앞장서던 양자평이 손을 들고 일행을 멈춰 세웠다.
한참이나 숨죽이던 양자평이 나직하게 얘기했다.
“마물입니다.”
드디어 첫 번째 보물상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