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5화 (325/357)

325. <검은 숲(5)>

마물.

영맥의 기운으로 제한된 생 이상을 살며 법칙에 어긋난 힘을 행하는 존재.

통상 일컬어지는 마물의 정의는 대충 이렇지만.

‘사실 영물과 마물을 구분하는 방법은 꽤나 단순한 편이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이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해를 끼치지 않는가로 마물과 영물을 구분한다.

호랑이라도 사람을 잡아 먹으면 마물, 은혜를 갚으면 영물로 취급된다.

반면, 무인에게 있어 마물과 영물의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속에 뭘 품고 있느냐이다.

쓸데없이 독단이나 악단을 품고 있다면 마물이고, 영단을 품고 있다면 영물인 것이다.

왜, 세상 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좋은 거 주면 좋은 놈이고, 나쁜 거 주면 나쁜 놈이지. 암, 그렇고말고.’

나와 우리 조원들은 탐욕 어린 시선으로 철갑대망을 바라봤다.

갑옷같이 단단해 보이는 피부, 황소만 한 대가리 속으로 왔다 갔다 날름거리는 혓바닥.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몸의 길이까지.

흐흐, 저게 영물이 아니면 대체 뭐가 영물인데.

“녀석, 아주 실한 영단을 품고 있게 생겼네.”

내 중얼거림을 들었을까?

양자평이 어쩐지 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단같은 거 안 품고 있습니다.”

“응……? 하지만 저 크기에 영단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이 숲의 주인들은 대부분 저 정도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자 양자평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민감한 놈이니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양자평이 발걸음을 떼는 순간.

뚜둑.

그의 발치에 놓여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잠자던 철갑대망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 하는 건데.

양자평은 하얗게 변한 안색으로 부러진 가지를 들어 올렸다.

“……이, 이게 왜 여기.”

거 현실 도피를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었나.

“시, 실수…….”

쐐액-

혓바닥을 낼름거리던 철갑대망이 순식간에 양자평에게 달려든다.

철갑대망이 입을 쩍 벌리자 진짜 황소 한 마리 정도는 한 번에 꿀꺽 삼킬 수 있을 듯한 동굴이 생겨났다.

“흐읍……!”

양자평은 이제 죽은 목숨이라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나는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라 철갑대망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쾅!

내공을 잔뜩 머금은 손으로 때렸건만 마치 단단한 철벽을 때린 느낌이다.

“호오…….”

이놈 이거, 아무렇지 않은 것 좀 봐.

근데 네놈이 그래서 뭐 어쩔껀데.

나는 적광검을 꺼내어 단박에 내리쳤다.

콰가가가각.

그러나.

“응……?”

놀랍게도 검기를 두른 적광검이 피부를 뚫지 못했다.

내가 황당해하고 있자, 몸을 피해 있는 와중에 양자평이 설명했다.

“철갑대망 피부는 검기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래?

이무기에게 검강을 쓴다는 게 좀 낭비 같지만 어쩔 수 없지.

“거, 검강?”

양자평이 놀라거나 말거나 나는 적광검 위에 어린 검강을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삭!

단박에 베어버릴 작정으로 내리쳤건만, 놀랍게도 놈은 상처만 입을 뿐 몸통을 베어내진 못했다.

캬아아아아악!

독기가 가득 어린 철갑대망이 그 긴 꼬리를 휘둘렀다.

파파팍!

두꺼운 나무가 그대로 박살 나며 사방을 헤집었다.

“으헉!”

“히익!”

일행들이 철갑대망의 몸부림을 피하는 동안 나는 태을팔만신보로 환영 세 개를 만들어 냈다.

철갑대망은 내 환영을 단숨에 집어 삼켰다.

우드득.

환영이 나타났던 자리에 있는 바위까지 집어삼킨 철갑대망은 단숨에 이빨로 바위를 박살 내버리고 입안에 든 돌덩이를 바닥에 내뱉었다.

‘……씹히면 죽겠는데?’

독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삼켜졌다간 아예 손쓸 수도 없을 듯했다.

그런 감상 중에 나는 벽호공을 펼쳐 나무 위로 오른 후 손바닥에 내공을 가득 모았다.

우르르릉.

손아귀 안에서 뇌성벽력이 칠 듯 움찔거리는 기운.

그와 동시에 나무를 박차로 뛰어올라 철갑대망의 머리 위에 광천신장을 내리꽂았다.

콰과과과광!

범위를 최대한 축소한 탓에 위력도 살짝 죽었지만 머리를 날려버리기엔 충분한…….

‘아니네.’

광천신장이 해소되고 드러난 철갑대망은 여전히 몸을 움찔거리며 살아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악!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 두꺼운 갑옷 같은 피부가 대부분 벗겨지며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것 정도?

단박에 제압할 생각으로 적광검에 검강을 일으키고 뛰어들려하자 놈이 위기를 감지했는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이렇게 도망간다고?

“뭣들 하냐! 못 도망가게 잡아!”

내 외침과 동시에 멍하니 있던 조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철갑대망을 보며 안도하던 양자평이 깜짝 놀랐다.

“에? 왜 잡습니까?!”

양자평이 쓸데없는 말을 하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왜 잡냐니.

아무리 꽝이 많다 해도 일단 까봐야 하는 거 아니겠나.

나는 재빠르게 지시했다.

“재화랑 설란이는 뒤에서 지원을!”

“네!”

“금표는 놈을 막고.”

“……제가요? 이걸로요?”

금표가 제 방패와 철갑대망을 가리키며 황당한 반응을 보인다.

영단 나와도 얜 안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 공격하지 않게 붙잡아 두기만 해!”

“아, 네!”

이어 금표가 철갑대망의 앞을 막고 살기를 쏘기 시작하자마자 다른 이들은 살기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쾅!

철갑대망이 몸으로 금표를 때리자 금표의 몸이 이 장이나 밀려났다.

바닥에는 금표의 발을 따라 길게 줄이 그어졌고.

녀석을 밀어낸 철갑대망이 방향을 틀어 도망치려는 순간.

쐐액─

퍽!

재화가 쏘아낸 화살이 철갑대망의 눈에 명중했다.

캬아아아아아아!

눈알에 깊숙하게 화살이 박힌 철갑대망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마구 비틀기 시작했고, 고요한 숲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마지막 방점으로.

“흐아아압!” (이동)

검강이 일렁거리는 적광검을 그대로 철갑대망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퍼억!

캬아아아아아!

바닥에서 움직이던 철갑대망은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끝도 없이 길게 몸을 일으켜 하늘로 솟아올랐다.

일 장, 이 장, 삼 장.

나 역시 적광검에 몸을 의지한 채 허공에 몸이 붕 뜬 순간.

철갑대망의 하나 남은 눈이 뒤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듯 철겁대망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적광검을 뽑아내어 놈에게서 떨어졌다.

쿵!

녀석은 바닥에 쓰러진 뒤로 잠시 꿈틀거리다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보물 추가로구나.

“허…… 대망을 사냥하다니.”

양자평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 이게 이렇게 쉽게 사냥될 게 절대 아닌데…….”

세상에 절대가 어딨나. 다 상대적인 거지.

나는 작게나마 콧노래를 부르며 철갑대망의 배를 갈랐다.

역시나 철갑대망의 배를 가를 때도 검강을 써야 했다.

그런데.

“…….”

“없네요?”

은호의 말에 녀석을 째려보니 녀석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냥 없는 걸 없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비아냥댄 거 아냐?”

“절대! 그럴 리가요!”

이어 철갑대망의 몸통 전체를 갈라 보았지만 결국 영단은커녕 독단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그냥 몸뚱어리만 큰 이무기잖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양자평이 위로하듯 말했다.

“본래 저희 문파도 마물 사냥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초라하니까요. 그러니 이제 얌전히 마경까지…….”

그래 마경!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마경에 가면 더 많은 마물이 있다 했지요?”

양자평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하지 않으셨군요.”

당연하지!

애초에 독 내성도 올리고 내공도 증진시키는 게 이번 대여정에서의 내 목표였으니까.

주저하던 양자평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영단을 품은 놈들이 있긴 있습니다.”

“에?”

양자평이 철갑대망의 사체를 바라본다.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위험해서 알려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실력은 충분하신 거 같으…….”

“어디! 어디 있습니까!”

“자, 잠깐 그렇게 달려들지 않아도 말씀드리려…….”

“당장 갑시다! 당장!”

그래, 이런 곳에 영단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겠어?

묵림 탐사는 이제 시작이다.

#

양자평의 경로는 이전까지 이동했던 것과는 달라졌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 힘들어졌으며, 대낮에도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 밤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풀이 우거진 느낌이라기보단 되려 늪지대 같은 느낌이 날 정도.

그렇게 이동하던 무리는 곧 붉은색의 반점을 가진 커다란 뱀을 만났다.

잔뜩 긴장한 양자평이 나직이 읊조렸지만.

“혈영화독사라고 독이 아주 독하니…….”

“뭣들 하냐! 영약이다 잡아!”

펑!

콰가가각!

챙!

툭.

양자평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인 진소운의 일행들은…….

“보물이다! 보물!”

그야말로 눈깜짝 할 사이에 혈영화독사 한 마리를 찜쪄 먹었다.

‘……저게 그래도 멧돼지를 한 입에 삼키는 놈인데.’

사실 너무 좋은 조합이기도 했다.

조원 중에 궁을 전문적으로 쓰는 무인이 있고, 그 희귀하다는 빙공을 쓰는 이도 있었으니까.

여기에 양가기공을 쓰는 이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묵림 탐사의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었다.

“차, 찾았드아아!”

마치 영약 찾는 데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마물을 사냥하고 배를 따내는 진소운과 그의 사제들.

진소운이 방긋 웃으며 피 묻은 손으로 작은 구슬을 치켜들었고, 양자평은 그 모습에 기함했다.

‘저! 저! 피에도 독성이 있을 텐데!’

묵림 초입부터 독 내성인지 뭔지 미친짓을 하더니만, 진짜 독 내성이 생기기라도 했는지 저 미친놈…… 아니, 진소운은 아무렇지 않게 혈영화독사의 독단을 쥐고 있었다.

양자평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영단이 아닙니다. 독단이죠.”

“이, 이게?”

눈동자가 격하게 떨리는 진소운.

양자평은 굵은 가지를 가져와 혈영화독사의 배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다가 좁쌀만 한 크기의 뭔가를 보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영단입니다.”

그러자 진소운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고개를 기울인다.

“……아닌데, 그건 그냥 소화 덜 된 쌀 알갱이 같은데.”

“……혈영화독사는 쌀을 먹지 않습니다.”

“아니, 분명 여기서 영엄한 기운이…….”

확신하듯 독단을 다시금 치켜든 진소운.

그런데.

치익.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선 하얀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저게 얼마나 독한 독인데.

“이게 뭐여!!!”

진소운이 급하게 독단을 바닥에 내던지자, 독단은 주변의 마른 나뭇잎을 검게 물들였다.

“씨, 씨바…….”

진소운의 손가락 끝은 짓물러 붉게 변해 있었다. 독에 의해 피부가 녹아버린 것.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손해가 더 극심할 거라고.”

묵림의 거지 같은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점이다.

영단을 가진 마물들은 그 대부분의 영력을 독단에 모아 소모하기에 영단 자체의 크기가 작다.

이는 가혹한 묵림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의 법칙.

그로 인해 묵림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금지(禁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직접 사냥을 해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생각하는 양자평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정작 몸으로 경험하는 것에 비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이제 영약, 영약 거리지 않겠…….

“이런 놈들이 묵림에는 많겠지요?”

“그……렇지요.”

왠지 기대만만한 눈빛으로 말하는 진소운.

“다들 들었지? 만족할 만큼 영약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응……? 포기한 거 아니었어?

양자평은 마음이 심히 불안해져 더듬거렸다.

“계, 계속 사냥하시겠다고요? 겨우 저걸 위해서?”

좁쌀만 한 영단으로 얻을 수 있는 내공은 얼마 없을 건데.

“당연하지요! 티끌모아 태산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

실제 티끌로 태산을 만들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나?

학관생들이 묵림에서 보내는 시간은 겨우 한 달인데.

하지만 혈영화독사의 피를 바른 채 피부가 짓무른 손으로 주먹을 쥐는 진소운을 보며 양자평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단 못 먹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그의 눈은 이미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듯 반짝거리고 있었으니까.

……저런 걸 광기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결국 포기한 양자평은 그들의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철갑대망을 잡은 것도 그렇고, 혈영화독사를 잡은 것도 그렇고.

쉽게 묵림에 집어 삼켜질 인물들은 아닌 듯해서.

더불어 그들이 얼마나 실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기도 했으니까.

양자평은 무릎을 탁탁 털며 몸을 바로 세웠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길 안내를 시작한 양자평은 바닥에 떨어진 혈영화독사의 독단이 어느새 사라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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