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9화 (329/357)

329. <신령 사냥(4)>

적광검이 툭 떨어졌다.

“……마, 말, 말을 할 줄 알았던 거냐!!!”

태양후를 부여 잡았지만 눈에선 생명의 기운이 스르르 사라져 갔다.

“왜…… 왜! 진작 말하지 않았던 거냐!!!”

심장에 뚫린 구멍으로 핏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거대한 후회와 반성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조금만 늦게 찔렀다면…….

“내…… 돈…….”

금은보화로 만든 산 위에서 호탕하게 웃는 내 모습이 스르르 사라져 간다.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있다니…….

그렇게 좌절하다가 문득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근데 이 새끼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천마’였지?

“…….”

말하는 원숭이를 만날 확률과 그 원숭이가 내뱉는 첫마디가 ‘천마’일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아무 절벽에나 몸을 던져 기연을 얻는 쪽이 더 가능성 높아 보이지 않나?

“그런 와중에 그걸 몰라보고 죽인 나 새끼는 진짜…….”

끝없이 스스로를 자책하다 이내 머리를 털어버렸다.

‘천마’에 물든 원숭이라니.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써먹기 이전에 이 원숭이가 갈 곳은 무림맹의 집행각 지하실뿐이다.

더불어 원숭이의 주인인 나도 덩달아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되겠지.

원숭이가 말을 하는데 그 주인이 누군지 과연 안 궁금할까? 난 엄청 궁금한데.

무슨 생각으로 원숭이한테 ‘천마’라는 말을 가르쳤는지 그 머릿속을 뒤적거려 보고 싶을 정도로.

“그래…… 잘 죽인 거야. 잘했어, 진소운…… 어라? 왜 볼이 촉촉하지. 비라도 내린 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적광검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그래, 황금으로 산을 만들어 봐야 뭐 하겠어, 내단이 더 낫지.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내단이라면 나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줄 게 분명해.”

암 그렇고 말고.

난 나 스스로를 위안하며 태양후의 가슴을 갈랐다.

쩌저적.

가슴이 갈라지자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잠시 시간을 들여 기다린 후에 가슴을 쫙 벌리자 장기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내단이 있을 만한 곳의 장기를 들어내자 좁쌀만 한 무언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양후는 다른 곳에 내단을 가지고 있나? 그래, 그럴 거야.”

다시금 장기를 들춰보고 속을 뒤져봤지만.

“에이 설마…….”

어디에도 내단 비슷한 것은 없었다.

실화냐?

“…….”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잘 교육시켜 보는 건데.

탕마멸사.

발음도 비슷하니 이걸 외우게 하면 집행각에 갈 필요도 없고 구경거리도 되고 돈도 벌고…….

“으아아아악!”

쾅! 쾅! 쾅! 쾅! 쾅! 쾅!

한참을 그렇게 분풀이를 하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온다.

“하…….”

손가락 끝에 놓인 태양후의 내단을 쳐다보다 입에 넣었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묵림에 신령이 살고 있다.

둘째. 학관생들과 교관들이 신령 중 하나인 손오공…… 아니, 태양후를 사냥하려 했고, 실패했다.

셋째. 우연히 내가 태양후를 잡았더니 얘가 말을 한다.

넷째. 근데 유일하게 내뱉은 말이 ‘천마’다…….

씨발 뭐냐.

긁적긁적.

뒷머리를 몇 번이나 벅벅 긁어보지만, 개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정리했지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사건의 나열들.

만통부에 이 보고서가 올라가면 아마 제갈소명이 갈기갈기 찢어 불태워 버리지 않을까?

“어차피 보고할 생각도 없었지만.”

문제는 셋째보다 넷째다.

원숭이가 말을 한 건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지만, 하필 이 마(魔)오공이 한 말이 ‘천마’라는 것.

묵림의 신령과 천마가 대체 무슨 성관이 있는 걸까.

“이 시부럴 연놈들은 어디 빠지는 데가 없네.”

가뜩이나 원한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그 원한이 더 커졌다.

놈들을 만나면 골통을 부순 다음 꼭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원숭이가 말을 하냐고.

돈 때문은 아니다. 진짜 아니다.

“후…… 돌아가자.”

마침 구덩이가 놓여 있었기에 태양후를 그 안에 넣고 흙으로 덮었다.

파묻은 것이 선명하게 티가 나지만 주변이 이미 엉망진창이라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게 입을 꼭 다물고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화르륵.

단전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

묵림 내에서 독단도 내단도 다 먹어봤지만, 실제로 운기조식을 한 적은 없었다.

이미 단전의 내공이 방대했기에 행공만으로도 외부에서 들어온 기운을 흡수하기 충분했고, 청룡환을 이용해 흡수하면 그마저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작게 시작한 불길이 어느새 단전에 든 내기들을 연료 삼아 불을 더욱 키워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말하는 원숭이를 잃은 일로 상심이 크건만. 그 원숭이 내단이 내공을 갉아 먹고 있다.

“이건 또 뭔 개 같은…….”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을 시작했지만, 불씨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되려 기운을 더 많이 땡겨 미친 듯이 불을 태우고 있다.

단전에서 시작한 열기가 혈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간다.

풍령으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끓어오르는 열기가 온몸을 태워버릴 듯 휘감았다.

‘아, 안 돼!’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단전의 내공이 내단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게 어떻게 모은 건데……!

나는 안간힘을 써서 단전의 기운을 모두 모아 단박에 열기를 뒤덮었다.

망망대해같이 엄청난 기운이라면 좁쌀만 한 열기 따위야 금방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그만해 미친놈아!’

열기는 계속해서 끓어오르고 그 범위를 확장해 간다.

기운을 옥죄면 옥죌수록 더 크게 퍼져나간다.

잘못하다간 내 몸뚱어리가 촛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미쳐버리겠네.

어떻게든 열기를 제어해야 한다. 아니면 빼내든…….

‘응? 빼내?’

태양후가 했던 행동들이 떠오른다.

갈기를 불태우고 열기를 내뿜던 모습.

……근데 사람이 그걸 따라 해도 되나?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시간 따윈 없었다.

이대로면 혈맥이 다 타버릴 것 같았으니까.

“후…….”

단전에 위치한 내공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열기만을 움직인다.

혈맥을 따라 열기를 전하던 태양후의 내단이, 제어를 풀어주자 더 신나게 온몸을 쏘다니기 시작한다.

혈맥과 세맥의 통로를 따라 뻗어나가기 시작한 열기 때문에 손가락 끝부터 발끝까지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치 온몸이 불구덩이 속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순간, 주취를 온몸으로 내뿜을 때처럼 열기를 밖으로 뿜어냈다.

화르륵!

어둠만 가득한 눈꺼풀 너머로 환하게 빛이 비춰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성공한 건가?’

확실히 혈맥이나 세맥의 온도가 확연히 떨어진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단전에서 시작된 열기가 다시금 올라오려 했기에 나는 재차 열기를 모공 밖으로 내뿜었다.

화르륵!

종전보다 더 확연한 불빛.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주변에 작은 불꽃들이 마른 이파리를 태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열기가 이렇게 빠져나갔다는 것도 놀랍지만, 내가 진짜 불길을 내뿜다니.

어쨌든 효용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더 이상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화르륵.

화르륵.

거듭 배출할 때마다 화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단전에 타오르던 불꽃은 서서히 그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아의 상태에서 정신을 차렸을 땐, 단전을 갉아 먹던 화기가 사라진 후였다.

“후…….”

단전 안의 불꽃이 사라졌지만, 태양후의 내단이 사라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니, 되려 그 반대.

눈앞으로 손을 들어 주먹에 의념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주먹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아마도 태양후가 보여줬던 그 능력일 터.

단전을 살피니 내공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태양후의 내단이 깎아 먹은 걸, 태양후의 내단이 다시 채운 정도가 되겠지.

“……태양후의 내단에 이런 효능이 있었나.”

무인이 화공을 익히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내단 하나로 이런 힘을 얻었다는 게 알려지면 노진하나 교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신령이라 불릴 만하구나.”

태양후의 내단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아직 해가 뜰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이러다간…….”

옷이 다 타버려서, 빨가벗고 돌아가게 생겼거든.

#

풀을 엮어 대충 만든 옷을 입고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후, 전음으로 여분의 옷을 가져오라 시켰다.

잠시 후 인기척과 함께 금표가 다가왔는데.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꺄악!”

뭐야, 금표 녀석 목소리가 왜 이상…….

“…….”

비명을 지르며 옷을 놓쳐버리는 사련.

금표를 불렀는데 어째 쟤가 온 거람.

나는 얼른 비룡조를 쏘아 옷가지를 잡아챘다.

“발가벗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반응이냐.”

대충 만들었다곤 하지만 나름대로 온전한 옷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다.

굳이 놀릴…… 아니, 놀랄 점을 찾자면 좀 원시적인 모습이라는 것뿐.

“그, 그…… 옷은 또 어쨌는데요?”

왠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련이 왠지 어색하게 시선을 자꾸 피한다.

얘가 이러니까 나도 이상하네.

“……그냥, 뭐 조금 일이 있었어.”

“그게 뭔데…… 킁킁, 그거 그냥 입을 거예요?”

“왜?”

“킁킁, 이 냄새 안 나요? 어디 마물 똥통에라도 들어갔다 온 거예요?”

사련의 말마따나 팔에 코를 대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태껏 피부가 깨끗하기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

오는 길에 봐뒀던 연못에 들어가 돌로 몸을 문지르니 웬 누런 꾸정물이 흘러나왔다.

“우웩…… 대체 얼마나 안 씻고 다니는 거예요?”

쟤는 왜 따라온 거야. 먼저 가라니까.

“그나저나 금표를 불렀는데 왜 네가 온 거냐? 네 불침번 차례는 아니었을 텐데.”

사련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또 뭐.”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간밤에 노진하 교관이 얼마나 난리 쳤는지 알아요?”

“응?”

“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대사형 어디 있냐고, 신령 사냥하러 간 거 아니냐고. 당장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난장을 피웠다구요.”

사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교관은 난리 치지, 어째서인지 대사형은 자리에 없지. 그러니까 진짜 대사형이 신령 사냥이라도 간 줄 알았잖아요.”

태양후를 추적하다가 내 부재를 알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태양후를 쫓아가는 모습을 봤던 걸까.

전자인지 후자인지에 따라 대응해야 할 방법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더구나 태양후의 영약을 내가 먹었단 사실이 밝혀지면 후에 엄청난 문제로 점화할 가능성도 있고.

그냥 내단을 누가 먹었냐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태양후를 사냥하는 와중에 누구의 기여도가 컸느냐부터 시작해, 내단의 소유권이 결국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로까지 나아갈 것이고.

“음, 좆됐군.”

잘못이 인정되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태양후의 내단에 관한 배상금?

난 죽어도 그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꼴 못 본다.

애당초 그런 돈 자체가 우리 태을문에 존재치 않기도 하고.

나는 몸에 물을 재차 끼얹으며 사련에게 물었다.

“흠…… 정확하게 어떻게 이야기했느냐? ‘신령 사냥하러 간 거 아니냐!’라고 지랄…… 아니, 난리 치더냐?”

“그걸 제가 어떻게 기억해요. 대사형도 아니고.”

“생각해 봐라. 꽤나 중요한 문제니까.”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

“‘신령 사냥하러 간 거 아니냐!’와 ‘신령 사냥하러 갔구나!’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고, 그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방법이 달라지니까.”

“……대사형.”

순간, 사련의 얼굴 위로 경악의 감정이 떠오른다.

“설마…….”

그러곤 연못 쪽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근데 손에 돌은 왜 들었냐.

“신령 잡았어요?”

하여간 내 사제들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원.

이거 비밀이 지켜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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