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신령 사냥(5)>
사련이 기억을 더듬은 결과 노진하가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일단은 노진하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왔다는 점이 의심스러웠고, 두 번째는 밤새 소란스럽게 묵림을 수색했다고 했으니까.
만약 내가 태양후와 도망가는 광경을 봤다면 그곳을 중점적으로 살폈겠지.
‘그나마 다행인가.’
태양후의 내단으로 내공이 늘지 않아 속으로 마오공을 한참이나 욕했는데, 이게 결론적으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내공을 확인해 본다 한들 그 양이 늘어난 기색은 찾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외부적으로 티가 나게 바뀐 부분도 없…….
“근데 진짜 신령 내단 먹은 거 아녜요? 피부가 엄청 깨끗해 보이는데…….”
“어허, 나는 원래 피부가 좋지 않았느냐.”
“또 개소…… 아, 아니! 뭐랄까…… 지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아요. 머리카락도 묘하게 빛이 나는 것 같은데…….”
마오공 개새끼.
“…………교관과 학관생들 수백이 달려들어도 못 잡은 놈을 나 혼자 어떻게 잡는다는 말이냐.”
“하긴…… 대사형이 뭐라고 묵림의 신령을 혼자 잡겠어요.”
“…….”
뭐지? 돌려 까는 건가?
나는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사련과 함께 이동했다.
노숙했던 곳으로 도착하니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표정이 왜 이리 굳어 있는 거지?
“노진하가 왔었습니다.”
“그래?”
“그리고…….”
말을 하던 은호가 멈칫하곤 양자평을 슬쩍 흘깃거리자, 양자평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노 교관이 진 대표가 신령을 잡으러 갔다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지?
“사실 제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
양자평의 말을 끊고 은호가 다시 나섰다.
“대사형이 없는 걸 가지고 학관생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며 꼬투리를 잡기에 제가 결국 말했습니다. 영맥을 읽을 수 있다고.”
노 교관은 학관생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걸 가지고 남권문을 압박하려 했고, 보다 못한 은호가 나서서 그를 지키려다 말해버렸다는 것.
그를 듣고 노진하는 내가 영맥 읽는 능력으로 신령 막타를 치러 갔다고 확신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 알겠다.”
“……그게 끝입니까?”
은호도 양자평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중요한 거라고 그리 뜸을 들이나 했네.
“내가 영맥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신령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고. 설사 할 수 있다 한들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노진하를 비롯한 교관들에게 압박은 좀 받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고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면 증거가 없는 한 나랏님도 어쩌지 못하는 건데.
지들이 뭐 어쩌겠어.
“밥 준비는 됐냐? 배고픈데.”
밤새 마오공이랑 푸닥거린 탓에 엄청 허기가 졌다.
#
아침이 온 후에도 우리 조는 별일 없이 마경 탐사를 계속했다.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 봐야 의심만 쌓일 테니까.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뜨고 결국 져버렸음에도 노진하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눈이 벌겋게 변해서 쫓아올 줄 알았더만.’
다만 다시금 묵림의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에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해가 진 이후에도 계속 시끄러운 소리와 폭음 같은 것이 터져나왔다.
“아직도 신령 사냥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대사형이 이미 신령 사냥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만 결국 다시 신령을 찾았나 보네.”
금표와 은호가 방금 전 폭음이 터진 방향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마오공은 학관생들에게 쫓겨온 게 분명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나한테 그리 쉽게 잡힐 리 없었을 테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신령을 또 발견한 것인가?
나는 한쪽에서 묵묵하게 죽을 뜨고 있는 양자평을 바라보았다.
“신령 말입니다. 원래부터 묵림에 있던 존재들입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연히 본래부터 있었던 존재지요.”
양자평은 묵림과 신령이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음…… 그럼 말입니다. 신령이 사냥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묵림은 세상과 단절되어 독자적인 법칙으로 이루어져 스스로 움직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신령이 부재하게 될 경우, 다른 신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고 들었습니다.”
“…….”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묵림은 스스로 부족함을 자각하고 그것을 채운다는 뜻인가? 사람처럼?
내 침묵이 의아함의 표현임을 알았는지 양자평이 설명을 이어갔다.
“작은 웅덩이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낸다 한들, 그 부분만 사라지고 뻥 뚤려있는 일은 없지요?”
이윽고 그가 숲을 가리켰다.
“숲의 나무를 베면, 그 자리에는 볕과 양분을 쬐며 새로운 나무가 자라납니다. 이는 자연의 이치지요. 묵림은 이 당연한 것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소라 보시면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신지(神地)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조금 더 이해가 가는 듯했다.
“사대 신령 말입니다. 언제부터 묵림에 있었던 겁니까?”
“방금 말했다시피 사대 신령은 언제나 묵림에서…….”
“아니요. 태양후, 청설빙백사, 만년토웅, 금갑붕조. 이 네 마리 말입니다. 이들이 수백 년 전부터 계속 있었던 겁니까?”
“…….”
양자평이 처음으로 멈칫거렸다.
“……만년토웅과 청설빙백사는 일갑자 전부터 이미 존재해 있었습니다.”
“흐음, 태양후와 금갑붕조는 아니라는 말이군요.”
“……왜 그러십니까?”
“태양후와 금갑붕조의 이전의 신령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신령은 묵림의 균형을 유지하다 기력이 다하면 스스로 최후를 맞이하니까요.”
그렇다기엔 너무 인위적이지 않나?
“그렇다면…… 신령이 처음 발견된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이백 년 전이었죠. 저희 선조 중 한 분께서 처음 불양만조를 발견하셨습니다.”
“묵림이 금지로 선정된 때로군요.”
“……그 이전에도 묵림에 대한 위험성은 계속해서 주장되었습니다. 근데 왜 그러십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나는 양자평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내젓곤 웃어주었다.
“아닙니다. 묵림이란 곳이 하도 신기해서 말입니다.”
“그렇지요?”
“네.”
묵림의 신령은 중원의 영물들과 그 괘를 달리한다.
이제야 태양후의 내단이 좁쌀만 한 크기였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묵림의 신령으로 산 지 육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거니까.
신령이 사냥된 적이 없었기에 내단을 먹어본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내단에 특수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아는 이가 드물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더 꺼내었다.
“혹시 말입니다. 스스로 최후를 맞이한 신령의 사체를 발견한 적도 있습니까?”
양자평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못 말리는군요. 영단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시는 거지요?”
뭐,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는 아니지만 알면 좋으니.
“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없습니다. 신령은 최후를 맞이할 때가 되면 묵림에 숨겨진 무덤으로 숨어든다고 하니까요. 그곳은 남권문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나는 신기하다는 듯 맞장구쳐 주었다.
“정말 신묘한 이야기군요.”
“묵림은 그런 곳이니까요.”
양자평이 그 두툼한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난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 가지 가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너무 잘 들어맞는데?’
묵림이 금지가 된 것도.
신령이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것도.
심지어 신령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이상할 만큼 너무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우연이라 넘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럴 수가 없다.
원숭이가 ‘천마’라고 말까지 했는데, 이게 우연이라고?
뭐, 마신의 계시 그런 건가?
만통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심현각에도 묵림에 관한 정보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무림맹은 진즉 묵림을 금지로 선정하고 관심을 꺼버렸다는 이야긴데.
아무래도 이건 하오문을 통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일은 대부분 소문의 조각조각들 사이에 진실이 숨겨져 있는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타다다다다닥.
누군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풀을 해치고 거칠게 달려오는 일단의 인원들.
‘뭐지?’
곧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저기야! 연기가 저기서 난다!”
“가자!”
숲을 가로지르던 이들은 한참이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더니 또다시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제길……! 여기가 아니잖아! 저기 있잖아, 저기!”
“비켜! 내가 길을 찾을 테니까!”
“이 빌어먹을 숲!! 망할 숲!”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던 목소리들이 다시금 가까워지기 시작하다가 이내 오른편으로 훽 하니 방향을 틀어 멀리 사라져 간다.
“젠장! 여기도 아니야!”
“미친, 누가 어떻게 좀 해봐!”
……대체 니들 뭐 하냐?
결국 하는 수 없이 내가 녀석들 쪽으로 걸어갔다.
천연진 두어 개를 지나자 곧 녀석들이 보였다.
대체 얼마나 달렸던 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학관생들.
“누, 누구? 지, 진 대표!”
“진소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마…… 너도 길을 잃은 거냐?”
뭐래는 거야.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고 물었다.
“연기를 쫓아오던 거 아니었어? 뭔 깡으로 길잡이도 없이 니들끼리만 돌아다니고 있어?”
“설마…… 저 연기 네가 피운 거냐? 그, 그럼 여기가?”
“그래, 마경이다.”
“……여기까지 오려던 건 아니었는데.”
여섯 명의 학관생들은 다름 아닌 교관과 함께 움직이던 녀석들이었다.
외부 길잡이들과 함께 움직이던 놈들이 교관과 길잡이는 어쩌고 자기들끼리만 움직이는 거람.
“……그게 길을 잃었다.”
“어쩌다가?”
“신령을 쫓다가…….”
“쉿!”
한 학관생이 곧이곧대로 대답하던 녀석의 입을 막아버렸다.
“흐음…….”
나는 지난밤 노진하가 세 번이나 찾아왔다는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신령은 이미 놓쳤다고 하지 않았나?”
“…….”
“…….”
놈들은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양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주저하고 있었다.
거참, 밑바닥 다 보인 다음에 이제 와서 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 도움이 별로 필요 없나 보네. 그럼 대여정이 끝난 후에 보자.”
내가 손을 흔들며 주저 없이 돌아서자, 녀석들이 기겁을 했다.
“자, 잠깐! 우, 우릴 길잡이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줘……. 그럼 얘기해 줄게!”
“야! 그걸 말했다간 교관님들이……!”
쯧,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응, 별로 안 궁금해. 아, 그리고 마경에 마물 많으니까 조심하고.”
그렇게 천연진 속으로 몸을 쓱 숨기자 뒤에서 절박한 음성이 들려왔다.
“마, 말할게! 말한다고!!!”
나는 천연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흐익!”
녀석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눈물 콧물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 진소…….”
“대표님!”
“…….”
거,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호칭은 제대로 해야지 않겠어?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학관생들이 인상을 마구 찌푸린다.
“그, 그래 대표님! 너무도 위대하신 대표님……! 모조리 다 얘기할 테니, 제발 우릴 데려가줘.”
애시당초 녀석들을 다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교관들 책임이 있긴 하지만 녀석들을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
절대 위대하다는 말에 마음이 동한 건 아니고.
암, 그렇고말고.
“그래, 말해봐. 뭔데.”
하지만 녀석들이 풀어놓는 말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다, 다른 신령이 나타났어.”
“다른 신령?”
“그래……! 길잡이가 말하길 만년토웅 같다고.”
“호오, 그래?”
역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복 받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거, 진짜 처음부터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니까.
#
“……굳이 찾으러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둔지에서 다 모이면 될 텐데요.”
양자평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냈지만.
“자기 휘하의 학관생들도 내팽개치고 달려간 인간들입니다. 과연 다른 학관생들이라고 낙오되지 않았을까요? 만약 낙오된 이들이 마경을 헤매다 사고라도 당하면 어쩐답니까.”
“……진짜 그게 목적 맞습니까?”
“크흠…….”
양자평의 의심 어린 시선이 거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참, 왜 이리 사람을 못 믿는데.
나는 누구보다 학관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열변을 토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다간 토웅을 구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방금 토웅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크으흠……! 학관생 중에 토웅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저와 아주 특별한 사이지요.”
“……정도회예요?”
“네.”
한숨 쉬던 양자평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길잡이 없이 묵림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기 그지없으니까요.”
우린 그렇게 방향을 틀어 교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제 내내 들려오던 폭음이 터져나온 곳을 향해 이동하다 보니 예상대로 낙오된 인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 살려줘!”
“살았다!”
“무, 물 가진 거 있어?!”
헌데 학관생들의 상태가 조금 전 구했던 이들보다 좀 더 열악했다.
상처도 꽤 많고, 무엇보다 탈진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학관생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시, 신령이 도중에 공격을 했어.”
“공격하다니?”
“태양후를 잡을 때와는 분명 달라……! 뭔가 살인에 능숙한 느낌이 분명했어. 우린 도중에 겨우 도망친 거야.”
“…….”
낙오자들을 수습하여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간밤에 싸웠던 곳에 도착하자 상황은 조금 더 처참했다.
처음으로 죽은 사람이 나타난 것.
나는 뒤를 돌아보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시, 신령, 신령이 분노한 거야…….”
정신이 나가버린 듯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학관생.
시체 옆에선.
“으, 으으……!”
길잡이로 따라나섰던 엽사 차림의 사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 신령의 저주야! 신령의 저주가 분명해!”
학관생보다 더 심하게 정신이 나간 듯한 엽사 사내.
내가 고개를 돌려 양주평을 바라보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묵림에서 내려오는 소문입니다. 신령이 진노하면…….”
이어 잠깐 숨을 들이켠 후, 번뜩이는 눈으로 이어 말했다.
“묵림의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일단은 부상자를 수습하게 했다. 당장 이들을 데리고서 움직일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고선 시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윽고 손을 뻗어 상흔을 살피려는 순간.
“……!”
드드드드.
왼손에 껴두었던 적봉환이 미약하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