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37화 (337/357)

337. <절망>

심현각.

무림맹 가장 최심처에 위치한 기밀문서 보관소.

누가 관리하는지, 어떻게 정보가 들어오는지 그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곳이기도 하다.

각 문파의 중요 인물의 치부부터 시작해 온갖 중요 정보가 보관되어 있으니까.

예전 철검문에서 시비를 걸던 청죽보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심현각 내에 있던 정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실제 심현각의 핵심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중원 무학에 대한 정보.

오백 년의 세월 동안 무림맹에 기대왔고 동시에 무림맹 또한 기대었던 문파들의 무공 정보.

싸움에서, 비무에서, 시범에서, 전쟁터에서, 조각조각 표출되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모아 그 무공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현각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그렇게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큰 그림은 그 무공에 대한 분석을 가능케 하여, 약점과 강점까지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구파일방을 비롯한 오대세가…… 아니, 그 어떤 문파가 알게 된다 해도 세상이 뒤집어질 만큼 치명적인 정보들.

심현각이 왜 이런 정보들을 모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이 정보들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채, 영원히 심현각 속에 잠들어 있을 운명이었으니까.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지…….’

온갖 비명 속에서 일각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진 시주!!!”

적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짓쳐들었다.

반면 우리는 부대 편성도, 전략도, 대응 방안도 그 어느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

“후우…….”

분명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 장서고에서 심현각의 자료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분석하고 재조립한다.

최선의 방법 따윈 찾지 않는다.

이미 기습을 허용한 순간 ‘최선’이라는 건 저 멀리 북해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대비해야 하는 건 ‘최악’.

“진 시주! 적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구축도 못 한 전선이 유지되길 바라는 건, 바람 앞에 놓인 촛불이 꺼지지 않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크흑…… 놈들이 불을 끄고 있다!”

“다시 어둠 속에 숨고 있어!”

지금 해야 하는 건 방어선 구축이 아니다. 되려 적극적으로 적의 진형을 흔들어야 한다.

“진 시주……!”

심현각의 기밀 자료와 전쟁에서의 기억.

무림맹의 무력단체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마랑단은 어떻게 싸웠는 지를 모두 되뇐다.

“진 시주!!!”

그리고 점차 윤곽이 잡혀가는 대비책.

“일각. 십팔나한은 몇 개나 구축 가능하지?”

“무슨 소리이신지요. 십팔나한은 본디 본산의…….”

“속가제자들 중에도 나한진을 배우는 녀석들이 있잖아! 그것까지 포함하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에 당황한 듯,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던 일각이 결국 대답했다.

“세 개. 세 개를 운용할 수 있지만, 온전하진…….”

“상관없어. 당장 시작해!”

“그게 무슨…….”

나는 곧장 몸을 틀었다.

대답을 들을 시간 따윈 없었다. 곧장 다른 이를 찾아야 했으니까.

“여기 무당파 누가 있나!”

“…….”

한쪽에서 말없이 손을 드는 무당의 제자.

“태극칠성검진을 펼칠 수 있는 제자가 몇이나 있지?”

“……무슨 생각이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시발, 지금 질문할 때라고 생각하나?”

“…….”

“살고 싶으면 따라라. 아니면 다 뒈지든지.”

“……열여섯이다.”

“두 개는 나오겠군. 선풍검 익힌 두 놈 빼고 진을 구축해 소림을 도와라. 선풍검을 익힌 두 사람은 십팔나한진 사이에서 적을 상대하라 하고.”

“무진 사이에 있으면 되려 아군에게 피해가…….”

“선풍검을 익힌 놈들은 되려 힘을 받을 테니까 그냥 해!”

시간이 없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워 다시금 소리쳤다.

“다음 점창! 점창 어디 있나!”

“여기 있다!”

소림의 십팔나한을 중심으로 무당의 태극칠성검진이 구축되자 매섭게 압박되던 적의 공격을 받아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사일검법을 익힌 놈들이 몇이나 되나?”

“대부분 익히고 있다.”

“그럼 무당파를 지원해라.”

일단 단을 쌓듯 켜켜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게 한다.

손발을 맞춰볼 시간 따윈 없기에 각자 개인의 역량에 기댄다.

설사 손발이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최소한 적들의 손에 죽는 것보단 부상을 입는 편이 나을 테니까.

“……무슨 생각입니까, 진 대표.”

“철순직. 지금이 질문할 때가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남화성!!!”

“여기 있다!”

12봉성은 삼원문이 중심이 되어 진영을 구축한다.

일주문과 수라문은 삼원문을 받치고 죽현방이 송곳 역할을 한다.

다음은 오대세가.

그나마 남궁선화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그녀는 아무런 질문 없이 내가 지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 진영을 구축했다.

그렇게 삼방에 대한 방비가 만들어지자, 주둔지 전체에 퍼지던 곡소리가 차츰 줄기 시작했다.

진영의 구조는 간단하다.

전위의 인원들이 방어를 도맡고, 좌익과 우익이 방어를 지원하며 반격을 시도한다.

후익의 인원들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공격대로서 한 번씩 적들에게 대규모 피해를 입힌다.

현 시대에선 절대 시도되지 못할 먼 미래의 전술.

정마대전의 연속적인 패배로 세력이 반의 반토막으로 줄어버린 무림맹이 시도한 문파 초월적 대전략.

그것이 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펼쳐진다.

“조심해! 검의 반경이라고!”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복마검법의 검로는 외워놓는 건데.”

아직까지 손발이 맞지 않아 아군의 공격에 당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더 이상 어처구니없이 어둠 속에 끌려들어 가 마랑단원의 손에 죽는 인원들은 없었다.

“우리 문파의 방진이 삼원문의 권진과 딱 떨어진다니…… 요상한 기분이군.”

“대화는 나중에, 아직 합류 못한 이들이 있어!”

“제길……! 잠깐 나갔다 오면 안 되나?”

피해는 점차 진영의 바깥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진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환한 빛을 피하던 마랑단원들은 더 이상 진영에 대응하기 힘들어했고, 그들의 시선은 아직 진영에 합류하지 않은 인원들로 향했다.

“금표! 진영이 움직이면 사람들을 구해와라.”

“신호를 주십니까?”

“보면 알아!”

나는 곧장 정도회의 진영으로 몸을 날렸다.

“일각! 이제 손발이 좀 맞나?”

“진 시주! 아직 힘듭니다. 아군의 칼에 당하는 이가 더 많아요.”

“그래? 적당하군. 전진한다.”

“그게 무슨…….”

“아까 말했잖나. 반격한다고.”

“…….”

일각이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지만, 별수 없다.

누가 뭐라 해도 결국 실력 면에서 가장 뛰어난 집단은 정도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신의나 신뢰가 아니다. 오직 실력뿐.

그렇기에 반격의 선두는 정도회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가자!!!!”

“진 시주…….”

“가자!!!!”

쩌렁쩌렁한 내 외침에 진영이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목표는 인원이 가장 많이 포진한 동남쪽.

진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학관생들이 크게 흔들렸다.

“자세 잡아! 보폭을 줄여, 그럼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역시나 예상대로 정도회의 인원들은 각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진영을 유지하며, 검진 흉내라도 낸다.

이것은 결국 진영을 보호하는 힘이 되고 대열이 전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크아아악!”

“꺼어억!”

“큭!”

정면으로 격돌하며 마랑단원들의 칼날에 다치는 인원들이 생겨났지만, 죽음에까지 이르는 자는 없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는 한발 더 앞서 움직였다.

“빌어먹을…… 진 소운! 너 혼자 튀어 나갈 생각이냐!”

“진 시주……! 걱정마십쇼! 따라잡겠습니다!”

서걱, 서걱, 서걱.

전위 앞에서 베고 또 베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부 다 처리하진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뒤이어 달려오는 정도회의 정예들이 나머지 마랑단원을 처리할 테니.

나는 그저 최대한 공격을 퍼부어 상대를 뒤흔들 뿐이다.

우르르릉.

이어, 십성의 기운을 가득 담은 광천신장을 쏘아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내공이 확 깎여 나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숲의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광천신장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몸을 트는 마랑단원.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서걱, 서걱, 서걱.

이번엔 비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

목표는 놈들을 물리는 것이니까.

‘적랑! 적랑은 어디 있지?’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이곳에서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놈들은 마랑단원이 전부다.

채채채채채챙

그들의 우두머리인 단장만 잡으면 놈들 또한 처리하기 용이할 터.

“끄억!”

“크아악!”

나는 끝없이 달려드는 마랑단원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쐐액!

강대한 기운에 두 눈이 번쩍 뜨인다.

나는 태을진경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전력으로 적광검을 휘둘렀다.

꽝!

검강으로 부딪쳤지만, 상대를 베어내지 못했다.

상대 또한 검강급의 고수라는 것.

하얀 연기가 가시고, 다른 흑의인들과 다른 적의인이 나타났다.

“적랑…….”

짓씹듯 그의 존재를 내뱉자 복면 위로 개방된 두 눈이 살짝 커진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안다는 듯 곧장 움직였다.

쐐액!

일반 도보다 조금 짧은 길이는 베기와 찌르기를 동시에 하기 위함인지 찔러드는 속도가 매섭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자 적랑은 거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듯 더욱 가깝게 붙어 온다.

‘그렇다 이거지.’

다가오는 놈을 향해 만화무적권을 내지른다.

떠엉, 떠엉, 떠엉.

주먹과 도가 부딪쳤는데 종소리가 울린다.

난 강기를 실었는데.

묘한 일이다. 놈은 도강의 흔적을 보이지 않건만 충분히 강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극한의 효율충인가?

조절만 잘한다면 내공 소모가 큰 비대한 강기는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니까.

자신의 계획에 맞춰 상대를 공략한다. 마랑단의 단주답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건 네 계획이고.”

극한의 효율충은 결국 물량 장사하는 놈한테 안 된다.

“이것도 한번 효율적으로 막아봐!”

만해천지검결을 펼쳐 여섯 자루의 만검을 만들어 낸다. 이어 검강까지 덧씌워 말 그대로 강기의 폭풍 속에 녀석을 가둬버린다.

퍼퍼퍼퍼퍼펑!

내가 이름을 불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의 두 눈이 부릅떠지며, 얇디얇았던 검은 강기가 비대하게 커진다.

네놈도 결국 상대에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거겠지.

콰콰콰쾅! 콰콰쾅!

거대한 폭발 속에서도 매서운 도강이 쏟아져 나온다.

시발 까딱 잘못했으면 찔릴 뻔했네.

폭발음이 사라지고, 움푹 파인 구덩이에선 오른손이 날아간 적랑이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뒈져 이 개새끼야!”

검강을 두른 소천검법을 쏟아내는 순간, 녀석의 모습이 물처럼 쑥하고 바닥으로 꺼진다.

‘젠장!’

설마 마교의 사사유령보를 익혔을 줄이야.

어느새 검을 피해 구덩이 밖으로 도망친 놈은 곧장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놓칠 줄 알고!”

천하독행신을 펼쳐 놈을 쫓아가려는 그때, 누군가 뒷덜미를 확 낚아채 뒤로 당겼다.

‘내가 몰랐다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재빨리 옷가지를 벗어 던져 손아귀에서 빠져 나온 후 적광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 끝에 닿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발, 뭐냐고……!’

당황하여 고개를 돌리니, 시선의 끝에서 비룡조에 낚여 흔들거리는 내 겉옷이 보였다.

“은호?”

“대사형, 놈들이 물러나고 있어요.”

그 말에 마랑단원들을 확인하니 확실히 놈들이 급하게 철수하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대사형 작전이 그대로 맞아떨어졌어요.”

“…….”

이대로 몸을 뺀다고?

나는 이제 시작인데?

“대사형…….”

이곳에 이토록 많은 시체들을 만들어 놓고, 제 놈들은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고 도망치겠다는 것인가?

으드득.

그 비열한 작태에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가 악물린다.

“대사형…… 부상자와 사상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은호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녀석의 손이 내 옷가지를 꽉 틀어쥐고 있었다.

마치 어디로도 보내지 않겠다는 듯.

“그리고 우린……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고요.”

은호가 하는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학관생들을 데리고 저들을 쫓는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호흡을 정리한 후, 돌아섰다.

“부상자와 사망자 파악 먼저, 그리고 멀쩡한 사람들은 정찰조 만들어서 보내. 놈들이 대체 얼마나 준비한 건지 확인해 봐야겠으니까.”

복수의 나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슴속에 꾸욱꾸욱 새기며.

#

오십삼 명 사망.

삼십칠 명 중상.

팔십팔 명 경상.

그 외 부상자 파악 불가.

아침이 밝아올 즈음, 확인된 현황은 처참했다.

대단위 전투에서 이 정도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한 문파의 정예들이자, 엄청난 지원을 받았던 존재임을 고려하면 실질적 손해는 더욱 극심하다.

문제는 지금 당장 중상자를 치료할 방도가 없다는 것.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이들 또한 사망자가 될 것이다.

“대표님. 당장 필요한 건 음식과 상비약입니다.”

“얼마나 부족하지.”

“…….”

장우재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시선을 보내자 그제야 무겁게 말을 내뱉는다.

“……일주일 치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밤에 당한 피해 중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꼽자면, 바로 화재에 의한 물자 손실이다.

어쨌든 물품들은 막사 안에서 보관되고 있었으니까.

본래 대여정 기간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한 달 치의 물자,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또 한 달 치의 물자.

그 막대한 양의 물품들이 하룻밤 사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음식은 물론이고 당장 부상자를 치료할 약재 또한 부족하다.

“딱 맞춘 듯이 남았군.”

“네?”

“아니, 아무것도. 그보다 정찰조는?”

“조기 복귀한 인원들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아마 적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멀리까지 가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학관생들의 문제점 중 하나.

바로, 대부분 정예 인원으로 길러진 탓에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것.

한마디로 부대장들만 모조리 모아 부대를 만든 탓에, 수족 노릇을 제대로 수행할 놈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들 효율적으로 명령 내리는 법만 배워왔기에, 효용성 있는 부대원으로서 기능하기엔 부족하다는 것.

“일단 다른 정찰조가 복귀하면 그때 확인하기로 하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주둔지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비켜! 비켜!”

“자리 만들어! 의술 익힌 사람 누구 없어?!”

“물 가져와!”

소란스런 소리에 장우재와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허공에서 부딪쳤고, 우리는 소란이 이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모여있는 학관생들을 지나쳐 들어간 곳에는 지난밤 본 적 없던 학관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의 두 사람은 이 더운 날씨에 오한이라도 들었는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

바로 알 수 있었다.

‘마기.’

마기에 오염되었을 때 일어나는 극심한 중독 증세.

나는 주변에 선 사내를 향해 물었다.

“이들…… 어디서 온 거냐?”

“우, 우리가 오늘 정찰 나갔다가 만나서 데려왔어.”

“주둔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지?”

“사실…… 그리 멀리 나가지는 않았어.”

나는 황급히 뒤로 돌아 외쳤다.

“혹시 이 녀석들의 탐사 지역이 어디였는지 아는 사람 있나!”

내 말을 듣고 있던 학관생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남쪽 끝이었어. 먼 곳에 걸렸다고 불평했던 걸 기억해.”

남쪽 끝에서 이곳 주둔지까지 길잡이도 없이 왔다고?

이건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몸을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봐. 내 말 들려?”

그러나 대답은 정찰조에서 나왔다.

“전혀 답을 못 해. ……애당초 말을 알아듣는지도 모르겠고.”

극심한 공포와 살기, 마기가 뒤섞여 머리를 엉망으로 만든 탓일 것이다.

이 정도 강한 마기라면…… 대체 얼마나 끔찍한 놈들이 여기 와 있다는 거지?

우웅.

녀석의 손을 잡고 옥청천상력을 천천히 불어넣었다.

심각하게 떨리던 손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기 시작한다.

이어 몸 전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때, 무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건 뭐지?’

자세히 보니, 피부 곳곳에 동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푹푹 찌는 듯한 한여름과 다름없는 묵림의 기온.

대체 이곳에서 동상에 걸릴 일이 뭐가 있을까 고뇌하다 이내 그 생각들이 날아갔다.

파랗게 질려 있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에 핏기가 가시고 있었으니까.

“어…… 어…….”

생존자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내, 내가 왜 여기에…….”

나는 녀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희, 이곳까지 어떻게 온 거냐?”

“어?? 진소운……? 네가 왜…… 여기에?”

“너희 남쪽 끝으로 갔었다지? 다른 이들은 어디 있지? 중간에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았나?”

내 질문에, 주술이라도 외듯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 다른 사람들…….”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던 그가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다, 다른 사람들…… 다른 사람들……. 포위…… 도망쳐서…… 도망쳐서……. 도망쳐야 돼…….”

벌떡 일어났던 생존자가 고개를 치켜들며 나를 쳐다본다.

“지, 진소운…… 진소운…… 네가 왜 여기에??”

그러더니 다시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고, 얼굴은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얼른 옥청천상력을 불어넣기 위해 녀석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가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곤 살기 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주, 죽여야 해……!”

“죽여? 뭘?”

생존자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물었고, 생존자는 한참을 부들부들 떨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죽, 죽여…….”

나를 가리켰다.

“지, 진소운. 진소운을 죽여야 해! 진소운을 죽여야 해……! 진소운을 죽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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