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사활(5)>
“으아악!”
“크헉!”
“초 형!”
뒤쪽에서 계속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죽는 건 학관생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마인 놈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건 커다란 압박으로 느껴진다.
‘홍마대!’
빌어먹을.
적음마랑단도 충분히 위험하기 짝이 없건만 홍마대까지 왔을 줄이야.
좀 좌절하고 싶어도 할 여유가 없다.
홍마대가 끝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너네가 끝이냐고 남자답게 물어보면 솔직히 대답해 주려나.
‘그럴 리 없겠지.’
축 늘어졌던 적광검을 다시 틀어쥐며 앞으로 나아간다.
과거의, 검을 피하고 막기에만 급급하던 고기방패가 아니니까.
채채채챙!
그저 눈앞에 쇄도하는 검과 도를 피해 상대의 급소에 검을 찔러넣는다.
서걱, 서걱, 서걱.
기둥이 잘린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놈들을 지나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는 광경은 뒤로 물러서던 광경과 확연히 다르다.
수많은 동료들이 앞에 서 있었음에도 온몸을 떨며 분노마저 잊었던 과거와 달리.
살기와 마기를 줄줄 흘리는 마인들이 수없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절망 때문에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더욱 큰 분노가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간다.
퍼퍼퍼펑!
베고 또 베며, 나아간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한 사람을 더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스걱, 스걱.
온몸에 상처가 생겨난다.
무복은 이미 넝마가 된 지 오래.
이런 난장판에서 비무 때처럼 고고하게 싸울 순 없다.
상대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 역시 포기한 지 오래.
그저 급소를 피하고 절명에 이를 공격만 흘려낸다.
그럼에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마기에 격중되고 나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크헉!”
참을 수 없는 기침과 함께 한바탕 핏물을 쏟아낸다.
“진 단주! 괜찮으시오!”
대여섯 걸음 떨어진 일각이 대경한다.
반들거리던 그의 두피가 어느새 핏물로 뒤덮였다.
자기나 신경 쓸 것이지.
내상이 깊지 않은 건 다행이다.
‘적양장에 격중 당하고도 치명상이 아니라니.’
확연히 나 스스로 과거와는 다른 존재임을 재인식하는 기회였다.
그러니 나도 답례를 해야겠지.
우웅…….
일 장가량 뻗어낸 검강으로 쌍천검결을 쏟아낸다.
퍼퍼펑! 퍼퍼펑! 퍼퍼퍼펑!
환검과 뒤섞인 진검이 사방을 초토화하며 마인들의 팔·다리를 사방으로 날린다.
떼로 몰려드니 이런 건 좋네. 굳이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빈공간을 다시금 채우는 놈들의 행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가져온다.
“그래, 우리가 포기할 때까지 계속하겠지.”
마음이 꺾이는 순간 힘도 꺾여버리는 법.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이용하는 놈들이다.
“누가 먼저 꺾이는지 한번 해보자.”
우르르릉.
손안에서 뇌성벽력이 요동을 친다.
이상함을 느낀 홍마대의 마인들이 급하게 자리를 뒤로 물린다.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달려가 놈들에게 광천신장을 쏟아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숲의 일부가 터져 나가며, 또다시 휑한 구멍이 생겨난다.
시전자인 나도 질려버릴 정도의 파괴력.
이 정도면 아무리 용맹한 무사들이라 할지라도 명령에 쉽게 복종하긴 힘들 테…….
“……빌어먹을 마인 새끼들.”
하지만, 감정이 거세당한 듯 다시금 구멍을 채우며 달려든다.
조금의 거리낌도,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 행동.
아니, 더 나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구멍을 막고 달려오는 모습에 되레 학관생들이 위축된다.
저 빌어먹을 집요함이 전생에 무림맹을 쓰러트렸다.
그걸 잘 알기에, 이를 악문다.
“하긴…… 네놈들은 그저 개일 뿐이니까. 감정 같은 건 없겠지.”
나는 곧장 적광검을 착검시켰다.
그리고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백월제천삼식
제 一식.
극쾌(極快)
검기도 검강도 쓰지 않건만, 광천신장과 버금갈 만큼 내공이 소모된다.
그 순간.
게걸스레 달려들던 마인들의 모습이 일순간 슬쩍 흔들린다.
공간의 비틀림 현상과 함께 뒤늦게 파공성이 들려오고.
핑.
마치 범람한 저수지가 일거에 무너지듯.
촤르르르르르륵!
달려들던 마인들이 일제히 핏물을 쏟아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숨이 차오른다.
그렇게 수련을 했는데. 이 정도라니.
백해광 사부 진짜 사람 맞아?
타타타타타탁.
그리고 저 마인 새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또 한 번 지체없이 달려들고 있다.
‘미친놈들.’
근데 나도 제정신은 아니어서 말이지.
휴식기 내내 기절해 가면서 백해광 사부에게 배운 것을 써먹어 볼 차례.
백월제천삼식
제 二식
극강(極强)
백월제천삼식의 공식적인 방어식.
극쾌에 못지않은 속도로 검이 휘둘러진다.
검기의 잔상이 허공에 남으며 팔방 전부를 촘촘하게 막아서기 시작한다.
채채채채채챙.
사방을 둘러싼 마인들이 검막을 뚫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다행히 검막은 뚫리지 않는다.
‘진짜 미친 사람이야 백 사부는.’
이를 악물고 여태껏 펼치던 초식을 정반대로 펼친다.
격한 기의 흐름 때문에 연약한 혈도는 터질 것처럼 늘어난다.
여태껏 쏟아냈던 기의 방향과 정반대되는 검기들이 미칠듯한 속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기존의 막과 부딪치면서 폭발을 이룬다.
검기와 검기가 맞부딪치며 발생하는 검기의 폭발을 이용한 방어식.
근데 애당초 이걸 방어식이라 할 수 있나?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극강의 검기는 시전자를 제외한 일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모든 걸 분쇄한다.
단단한 병장기는 물론이고, 연약한 신체까지 모두.
거기에 마인들이 내뿜던 검기까지 폭발에 휘말리면.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검기의 폭풍은 더 크게 사방으로 번져나간다.
부러진 병장기와 폭발하는 검기의 폭풍이.
쿠쿠쿠쿠쿠.
뒤에 서있던 마인들에게까지 피해를 번지게 만들고.
화살처럼 달려들던 마인들은 한 줌의 고깃덩이가 되어버린다.
“꺼어억…… 꺼어억…….”
단전이 미친 듯이 당겨온다.
마치 안 쓰던 근육을 전력으로 쓰고 난 다음처럼.
기경팔맥도 혈도도 마치 과부하에 걸린 듯 온몸을 찢어버릴 만큼 당겨댄다.
“우엑.”
백해광 사부는 대체 뭔 생각으로 이따위 검법을 만들었을까.
또 한 번 핏물을 쏟아낸 뒤에야 내부가 조금 가라앉았다.
정신을 겨우 붙들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시바, 마교에는 ‘적당히’란 단어가 없는 거냐.”
수십의 마인들이 곤죽이 되어 사방에 깔렸음에도 여전히 무감한 몸짓으로 달려드는 마인들.
대체 얼마나 더 죽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더 죽여야.
덜덜덜덜.
달려드는 마인을 직시하며 적광검을 쥐었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발이라도…….’
그렇게 무쌍을 찍어놓고 이런 죽음이라니.
죽어서도 어이가 없고 억울해서 저승사자도 못 따라갈 노릇이다.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 겨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내기들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움직여! 움직여……!!’
진정되던 단전이 다시금 억지로 요동치면서 내기의 흐름이 이어지고.
다시금 검을 내뻗으려 하는 순간.
“끄아아악!”
바로 옆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돌아보니.
“끄읍…….”
이(二) 대 대원 금태종이 나를 대신해 검을 맞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소천검법을 쏘아내어 마인의 목을 꿰뚫고,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금태종을 부여잡았다.
“커헉…….”
상태가 심각한지 입에서 끝도 없이 핏물이 흘러나온다.
“뭐 하는 거냐!”
“그러게 지휘관은 앞에 나서는 거 아니라니까…….”
“좀만 버텨라, 좀만 버티면……!”
쩍 벌어진 상처 속으로 핏물이 줄줄 흐르고 허연 뼈까지 보인다.
내가 뭔가 손을 써보기도 전에 금태종은 제 상처를 보더니 핏물을 뱉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난 잠깐 쉬다 가지. 술 마시려면 너무 지치면 안 되니까.”
내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금태종은 나를 밀쳐내고 바닥에 쓰러졌다.
왜?
왜지?
왜 나 때문에 몸을 던진 거지?
가만히 있었으면 살았을 텐데.
……나를 보호하란 명령 따윈 내린 적 없었는데.
의문에 답을 찾을 시간도 없이 또다시 짓쳐 드는 마인들.
채채채채챙.
적광검은 전생의 진소운처럼 힘없이 휘둘린다.
복잡한 머리와 더 복잡하게 얽혀버린 내부.
아무리 힘을 주어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죽을 건가? 저 마인들의 손에?’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움직인다.
콱.
혀를 깨물자 비린 맛이 확 느껴지며 잠들어 가던 온몸의 신경이 찌르르 깨어난다.
빠져나가던 힘이 다시금 손안에 감돌고 혼미하던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온다.
“……단주가 ……하다!”
“단주…… 지켜!”
“……단주님을 따라……달려!”
복잡한 전장 속에서 누군가 외치고, 또 다른 누군가 답하는 목소리가 언뜻언뜻 들린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 나아가야 하는지.
왜 구하려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 따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멈칫한 순간 학관생 하나가 죽는다.
각 문파에서 소중하게 키운 존재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이며, 누군가의 사형제인 이들이 죽는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이유를 생각할 시간 따윈, 사치이니까.
“지, 진 단주!”
옆에서 죽어라 달리던 일각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여태껏 한 번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 적 없었으면서.
눈앞을 가리는 핏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자, 빼곡한 횃불들이 보인다.
그렇게나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이 정도라니.
대체 이 숲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아니면 애당초 학관생들을 말살하기 위해 준비한 건가.
“그래…… 슬슬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까지 했으면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
우리도 충분히 마인들을 갉아 먹어 피해를 입혔으니까.
놈들도 언제까지 차륜전을 펼칠 생각 따윈 없겠지.
“진……시주……. 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사방에 쓰러진 나무들과 타버린 숲의 흔적이 가득하다.
놈들은 이곳에서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 건지, 일대의 모든 천연진을 다 지워버렸다.
자신들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떻게 하긴, 뚫고 가야지.”
“뚫는……다고요?”
“그나저나 이런 최후 결전이면 대화를 나눌 대장 정도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목소리를 크게 높여 외쳤지만, 횃불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이는 없었다.
“여기가 학관생들의 무덤이다, 내가 네들 장례 치를 장본인이다! 기세등등하게 말할 놈도 없어? 너희들 다 벙어리들이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병장기를 꺼내는 소리.
스르릉 스르릉 스르릉
마치 연주라도 시작된 듯, 일제히 뽑혀 나오는 병장기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횃불에 비치는 검날과 도날의 반사광만이, 이 일대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자리하고 있는지 보여줄 뿐이었다.
겨우겨우 아수라장을 벗어난 상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절망.
“네놈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군.”
마교만의 전투 방식.
상대를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전술은 그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법이었다.
척, 척, 척, 척, 척.
마치 발이라도 맞춘 듯 성큼성큼 다가오는 마인들.
“다, 단주님!”
“진……시주. 놈들이 오고 있소!”
“도, 돌격? 돌격이냐?!”
여태껏 단 한 번도 뒤로 물러난 적 없던 학관생들조차도 움찔거린다.
과거의 무림맹 부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말이야.”
하지만 나는.
“똑같은 수법에 매번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과거의 고기방패가 아니다.
곧장 품 안에서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여분의 신호탄을 모두 챙겨둔 것.
나는 첫 번째 신호탄을 가장 중앙에 있는 놈들에게 쏘았다.
피잉- 펑.
화려한 불빛과 함께 신호탄이 터지며 일대를 확 밝혔다.
불빛 아래에서 미동도 않는 수없이 많은 마인들이 보였다.
신호탄은 금세 다른 마인의 발에 밟혀 그 빛무리가 꺼져버렸다.
그리고 이동을 계속 이어가는 그때.
쇄액.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이어 내가 던진 신호탄이 터졌던 곳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쾅.
나는 지체 없이 두 번째 신호탄을 쏘았다.
피잉- 펑.
신호탄이 터지며 일대를 밝히자.
쇄액.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또다시 아까의 폭발음이 터져 나온다.
콰콰콰쾅.
학관생들이 대경했다.
“이게 무슨……. 신호탄이 아니었나?”
피잉- 펑.
세 번째 신호탄과.
쇄액- 콰과광.
화살 하나가 마인들의 무리로 떨어져 내린다.
이어 폭발하는 화살촉에 온몸이 꿰뚫린 마인들이 핏물을 흘리며 척척 쓰러진다.
겨울 휴식 기간 모용재화가 완성해 낸 벽력시.
아직 전생의 파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는 어엿한 벽력시라 불릴 만한 파괴력을 갖추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진 단주…….”
“사천에서 재화가 혈교 놈들을 홀로 막았던 거 잊었어?”
“……그렇담 왜 지금까진.”
“빌어먹을 천연진 때문에 재화를 쓸 수가 있어야지. 이 일대는 놈들이 숲을 모두 밀어둔 탓에 이제야 활용할 수 있는 거지.”
“…….”
“쯧, 이제껏 제 놈도 전투에 끼겠다고 얼마나 땍땍거렸는지 원.”
위험한 도박수였다.
놈들이 만약 차륜전으로 계속 나왔다면 결국 묵림에선 재화 녀석의 힘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놈들은 결국 자신들의 습성을 버리지 않았다.
피잉- 펑.
콰콰콰쾅.
신호탄이 터져 나갈 때마다 마인들의 시체가 늘어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목표물은 궁사에게 최고의 과녁.
모용재화는 폭발을 피해 달려오는 놈들에게도 벽력시를 쏘고 또 쏘았다.
콰콰콰쾅.
그렇게 세 대의 벽력시가 날아가자 마인들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주춤거렸다.
나는 쉬지 않고 신호탄을 계속 쏴 주었다.
피잉- 펑.
콰콰콰쾅.
재화 녀석은 그간의 울분을 토해내듯 한 줌의 자비도 없이 연속적으로 벽력시를 쏘아내었다.
하늘을 수놓는 끝없는 신호탄과 벽력시의 향연.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처음으로 마인들 사이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고된 시련 끝에 얻은 승리의 순간이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 환호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지금의 저들처럼 너무 손쉽게 죽어간 누군가를 떠올리며 무거운 침묵으로 상대의 죽음을 바라볼 뿐이었다.
동시에 세 개의 신호탄이 쏘아져 나가고.
나무 위에 몸을 숨긴 모용재화는 자신의 모든 내공과 화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콰콰쾅!
콰콰쾅!
콰콰쾅!
유성처럼 쏟아지는 화살의 폭발 속에서 마인들은 돌진하는 대신 우왕좌왕 도망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는 모용재화의 벽력시 위력이 조금씩 약화되어 가는 것을 감지했다.
“준비.”
일 갑자가 조금 넘는 수준의 내공으로 이만치 피해를 준 것만 해도 충분히 녀석은 무리한 상황.
더 이상 벽력시에 기댈 수는 없다.
아직은 낯선 벽력시에 놈들이 적응되는 순간, 다시금 공격을 재개할 테니까.
“돌격!!!”
그렇기에 움직인다.
그나마 놈들 사이에 혼란이 가중되었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휘익- 쿵.
뒤쪽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옅게 들렸다.
모용재화도 다시금 부대로 복귀한 것이겠지.
단전을 박박 긁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인들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며 기의 폭풍이 몰아친다.
조금씩 식어가던 피가 다시금 들끓으며 숨을 거칠게 만든다.
그렇게 베고 찌르고 밀고 부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끝에.
마인들의 수가 서서히 줄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그렇게 밀어내고 또 밀어내며 돌파한 끝에…….
결국 뚫어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솨아아.
마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태껏 밀어내고 쓰러트려도 쫓아오던 이들이, 마치 무형의 장막에 가려진 듯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 사이로, 사이한 울음소리가 낮게 깔린다.
쐐애애액-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노린내 나는 붉은 눈들이 침입자를 경계하듯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마경이었다.
“도착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묵림의 사지(死地).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음에도 사활단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