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 <복수(4)>
오랜만에 보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떼거리 마교 놈들은 쫓아오질 못했다.
우리도 개고생을 해가며 거쳐온 길이다.
더 먼 길을 더 많은 인원으로 앞지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눈앞에 선 이들이 겨우 세 명이란 사실이 결코 안심을 주는 건 아니다.
‘세 놈만 왔다는 건……. 그걸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더구나 저 중앙에 있는 놈은 제금학과 비슷한 수준.
양옆에 선 이들 또한 가운데 놈과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욱 자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터.
“단주님!”
뒤따라 다가온 사활단원들이 세 인물을 보며 얼굴을 굳힌다.
나는 속히 명령했다.
“부상자들이나 싸울 수 없는 인원들을 모두 물려.”
“……하지만, 세 명인데요?”
물론 숫자로만 보면 우리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생각하겠지만.
저 가운데 놈이 칠마지군의 수준이라면…… 지금 우리 전력 상태에서 머릿수는 의미가 없다.
실력 고하를 떠나 절반 이상이 부상자이고, 그 나머지 절반도 본래 기량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이니.
“크륵, 진- 소운- 네놈 죽여버-리겠-다!”
그때, 오른쪽에 선 흉측한 몰골의 사내가 내게 원한을 표하자 단원들이 놀란다.
“아,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평범한 사람도 저런 얼굴이라면 잊지 못할 텐데.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정말 모르는 얼굴이다.
“그럼 왜…… 단주를 부모 원수 부르듯 부릅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다만 생각해 보면 한 가지 가능성은 있다.
“협객이니까?”
“…….”
“원래 나쁜 놈들은 정의로운 사람을 싫어하잖아.”
음, 이거밖에 없다.
대답이 없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질문을 이어오던 고아렴이 절간부처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도가 문파 제자가 이런 표정이래?’
그때, 거북한 쇳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이 개- 같은 새끼- 감히 모른 척-을 해! 내 네놈-을 끌고 가- 살점 하나하나- 크륵, 발라내-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하게 해주마-.”
끔찍한 증오의 말을 쏟아내는 헝겊인.
그의 울분이 담긴 저주를 차분히 다 듣고 나서, 나는 물었다.
“그…… 진짜 누구세요?”
정말 궁금해서다.
내가 협행을 많이 했고 아무리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악인일지라도 이렇게까지 나를 혐오할 수가 있나?
“크윽! 이- 개새…….”
“아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헝겊인이 내게 뛰어들려 하자 왼쪽에 선 여인이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어쩐지 헝겊인이 뭔가에 잡힌 듯 손을 움찔움찔하는데, 자신의 의도와 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키키키키. 또라이라더니만, 진짜 어지간한 우리 애들보다 더하네.”
어금니가 유달리 큰 미녀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헝겊인이 말할 때와 달리,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학관생들의 몸이 굳는다.
“끄응…… 뭐, 뭐지?”
“심장이…… 심장이…….”
남녀를 불문하고 신체 이상 반응을 느끼는 이들이 속출한다.
‘이건…….’
분명 미혼공 증상이 확실하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자신들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학관생들을 상대로 이 정도의 영향이라니.’
그와 동시에 내 근심은 더욱 깊어진다.
미혼공은 주력 무공이 아닐 터.
마교의 무공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미혼공으로 일가를 이룬 이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었다.
그저 곁가지에 불과한 무공의 파급력이 이리 강력하다는 것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더불어서 여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이 미치도록 안타까웠다.
‘난 왜 전생에 좁밥이었던 거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마교 내에서도 꽤나 직위와 실력이 있는 것 같은데.
본 적이 없으니 상대가 누구인지 어느 수준인지도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어쨌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많았어. 우리 때문에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중원 놈들치곤 꽤 쓸만하네.”
별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축하말에 이어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는 여인.
“사실은 우리가 뭘 좀 찾고 있는데 말이야. 그걸 가지고 있나 해서.”
이 새끼들은 맨날 뭘 찾는데.
그러는 와중에 살인도 저지르고 아주 부지런히들 사는 구만. 부지런히들 살어.
“그것만 돌려주면 우리도 돌아갈게.”
지랄, 진짜 하나도 믿음이 가지 않는 개소리다.
“그게 뭐지?”
하지만 그래도 뭘 찾는지는 한번 들어본다. 어쩌면 그걸 이용할 수있을지도 모르니.
지난번 저 괴물도 반지 찾겠다고 오령선화유를 그냥 지나쳤잖아?
요상하게 생긴 여자가 손끝으로 제 입술을 매만지며 웃음 짓는다.
“태양후의 화정(火定). 사실 빙정보다 더 중요한 게 화정이었거든.”
“…….”
“그것만 돌려주면 진짜 돌아갈 거야. 맹세할 수 있어.”
……역시나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는 마인답게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하는군.
나는 그들의 본심을 찔렀다.
“애당초 그게 목적이었다면, 우릴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없었겠지.”
“…….”
저 보라지, 당황한 표정.
“그보다 대체 묵림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응?”
“감히 ‘무림맹’을 상대로 이런 짓까지 벌인 이유를 묻는 거다.”
나는 일부러 ‘무림맹’을 강하게 언급했다.
학관생들에게 저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
바로, 저들이 무림맹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무림맹이 뭐 대순가?”
내 예상대로 여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고, 학관생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겼다.
여인은 괴기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묵림은 우리에게 중요한 장소야. 그런 장소를 너희들이 휘저어 놨으니 그냥 둘 수 있어야지.”
“그래서 우리를 ‘말살’하려 했나?”
“너희가 제대로 취하지도 못할 중요한 물건을 가져가게 할 순 없잖아?”
여인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온다.
“미친…… 겨우 물건 하나 때문에 우릴 말살하려 했다고?”
“대체 저 새끼들이 뭐기에…….”
내 예상대로 직접 언급하지 않고도 놈들의 위험성이 제대로 전달되었다.
분위기가 술렁이지만 여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화정만 주면 더 이상 쫓지 않을게.”
“우리에게 없다면?”
“……그런 거짓말은 별로 좋지 않아. 이미 태양후의 사체를 발견했으니까. 그걸 먹으려 했다면 온몸이 불로 화해 그 자리엔 핏덩어리와 화정만 남아 있었겠지. 고로 너희 중에 누군가 화정을 가지고 있어.”
시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었다고?
몸에 좋다면 아무거나 입에 처넣는 버릇을 버리든가 해야지.
아무튼 그건 그거고.
지금 와서 사실 내가 흡수했다고 양심고백을 할 순 없었다.
애당초 놈들이 약속을 지킬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믿을 거 같나?”
“흐음,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믿지 않을 모양이네.”
여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와중에 헝겊인이 입과 고개를 마구 뒤틀더니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진- 소운-!!”
여인과 헝겊인이 소란을 일으키자 중앙에 선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화정은 모두 죽인 후에 찾으면 그만이니.”
“……아이참 거의 다 넘어왔었는데.”
여인이 손짓하자 그녀의 주위로 붉은색 천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나풀거렸던 궁장이 둘리니, 여인은 본래 무복을 입은 사람처럼 복장이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본 순간, 여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혈군 빙화사.’
칠마지군 중에서도 손속이 가장 더럽기로 유명한 마녀.
전생에서 그녀가 지나간 전장엔 찢어 발겨진 시체와 미라로 변한 시체밖에 남지 않았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
언덕 위를 올라서는 학관생들을 내려다보는 빙화사의 눈빛에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숫자가 얼마가 되든 처리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뭐- 어떻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비무 형식으로 할래? 아님 너희들이 잘하는 일 대 다수로 할래? 난 어느 쪽도 상관없는데.”
우드득, 우드득.
빙화사의 말과 함께 가운데 선 사내의 피부와 뼈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어 평범했던 그의 키가 불쑥 커지고 주둥이는 짐승의 그것처럼 불쑥 튀어나왔으며, 손과 발에선 만년화웅의 것처럼 날카로운 무기가 돋아났다.
“부디 맛 좋은 녀석이 있었으면 좋겠군. 안 그럼 이 임무도 보람이 없을 테니.”
태평한 놈들의 모습과 반대로 학관생들은 난리가 났다.
하나하나가 괴이하고 괴랄한 모습들.
중원에선 상상할 수 없는 그 행위들로 하여금 현실감각을 상실케 한다.
나는 목소리에 내기를 가득 담았다.
“전투 준비!!!”
혼란으로 가득하던 이들이 순간 바짝 정신을 차리며 검을 뽑아 든다.
채채채채챙
그래. 지금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의문감을 가질 때가 아니다.
그저 바로 싸워야 할 때.
“가자!”
마지막 싸움을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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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사람에 불과하지만 하나하나가 내뿜는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마치 일인 군단이라도 된 듯.
숱한 지원 속에서 나름 고수라 칭송받으며 자라난 학관생들을 상대로, 당연한 듯 다대일의 싸움을 마다치 않는다.
그리고 그 괴이한 광경에 되려 학관생들은 위축된다.
“……정말 단 셋으로 싸울 생각인가?”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는 건 무인들에게 치명적이다.
“대주들만 앞으로 나서라! 대원들은 본래 사문의 이들과 합을 맞춰!”
내 명령에 당연스레 맞서 싸우려 하던 이들이 멈칫거린다.
단 셋을 상대로 내가 내리는 명령이 과하다 생각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당장 설명할 시간 따윈 없다.
그렇기에 먼저 놈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도록 보여줄 수밖에.
나는 가장 강해 보이는 가운데 짐승을 향해 달려갔다.
‘변변괴마공’
마교 칠(七) 대 괴공 중 하나.
정상인이 없는 마교 내에서도 특이함으론 손꼽히는 이 마공은 그 괴랄한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쾅!
손톱과 검강이 부딪쳤는데 손톱이 썰리는 게 아니라 폭발음이 인다.
“지난번에 이야기했을 텐데.”
짐승의 입에서 유창한 사람 말이 튀어나오니, 어지간히 이질적이다.
하지만 더 이질적인 건 바로 놈의 힘.
끄그그그극.
검강을 통째로 밀어내는 놈의 힘은 가히 비상식적이다.
“그거 거북하다고!”
아슬아슬하니 목을 지나는 수강을 피해낸다.
옥청천상력을 품은 채로 쌍천검결을 펼친다.
촤르르르르륵.
황금빛 검강의 폭풍이 짐승을 덮치려 하지만, 놈은 몸을 웅크린 채 단박에 바닥을 차고 벗어나 버린다.
퍼퍽!
피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건가?
나는 조금 더 빠르게 쌍천검결을 쏟아내었다.
촤르르륵.
번쩍거리는 검강이 놈의 피부를 잘라낸다.
“크윽, 따끔하네.”
그렇게 검강의 폭풍을 뚫고 나온 짐승이 곧장 주먹을 내리꽂는다.
나는 연화(蓮花)를 펼쳐 놈을 잡아당겨 보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녀석은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돌려 다시금 자리를 잡는다.
“이화접목의 수? 별 잡스런 재주를 다 가지고 있…….”
그때, 놈이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바닥을 박차고 높이 뛰어오른다.
그리고 그곳으로 강력한 권경이 내리꽂힌다.
“진 단주!”
어느새 전선에 합류한 일각.
“저쪽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그가 다급히 헝겊인 쪽을 가리켰다.
“진 단주의 일행을 노리고 있습니다.”
씨발, 저 빌어먹을 새끼가.
하지만 일각만으로 괜찮을까 주저하던 때에 남화성이 달려와 짐승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으악, 빌어먹을 몸땡이……! 뭐가 이리 단단해?!”
그래 이놈은 전에 철강시랑 맞짱을 떠봤더랬지.
이어 고개를 돌려보니.
타다다다-
학관생들이 하나둘 나뉘어 달려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여길 맡겨도 되겠지.
나는 일각과 남화성을 향해 소리쳤다.
“놈의 방어력과 공격력이 상상 이상이야. 조심해!”
“진 단주도 보중 하십시오.”
“빨리 와! 우리 다 뒈지기 전에!”
뒈지기는. 누구보다 끈질기게 살아남을 녀석이.
나는 남화성의 말을 무시하고 내 일행들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는 길 뒤쪽에선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일었다.
콰콰콰쾅.
혈군 빙화사의 손이 휘둘러질 때마다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폭발력이 터져나온다.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이곳을 떠나도 되는 게 맞나.
“이 빌어먹을 종자가……!”
“잠깐 뒤로 조금 물러난 뒤에 공격해라!”
“칫! 두고 보자!”
하지만 악에 받친 학관생들이 적절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
다시금 제 문파 인원들끼리 뭉쳤지만, 대주의 명령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한다.
그래, 지금은 저들을 믿을 때다.
나는 다시금 재빠르게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五) 대와 육(六) 대는 지원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상자를 후송하는 역할도 겸했다.
헝겊데기가 그쪽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무수히 많은 피해가 번질지도 몰랐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기분 나쁜 헝겊인이 보인다.
그리고 놈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살기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빌어먹을 온전치도 못한 강시 따위가!”
우르르릉.
손안에 모은 광천신장을 한 점에 모아 폭발시켰다.
콰콰콰콰콰콰쾅
돌벽을 산산이 부수며 쏘아져 나간 광천신장은 그대로 헝겊데기 인간을 산산이 조각내어 버릴 듯 짓쳐들었다.
“감히- 이따-위 걸로-”
고개를 돌린 헝겊인이 손을 치켜든다.
콰광.
커다란 크기의 얼음 방패가 나타나며 광천신장의 장로를 통째로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퍼퍼퍼펑.
허공으로 분사한 광천신장이 터져 나감과 동시에, 얼음 방패는 산산이 부서지며 헝겊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
헝겊인의 모습이 내 기억 속 한 존재와 일치되었다.
시벌, 그걸 살았다고?
나는 불쾌하게 기워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금학.”
“그래- 이제야 알아보다니-”
헝겊인이 한쪽 입꼬리를 들쳐 올렸다.
기괴하고 괴랄하기 그지없는 모습.
그래도 미공자 같았던 과거의 얼굴을 떠올리니 어쩐지 지금의 모습은 매우 안쓰럽다.
나는 짧은 감상평을 들려주었다.
“많이 변했네…….”
아, 이건 너무 짧아서 좀 상처일려나?
“그, 음…… 전보다 나은 것 같은데?”
“주, 죽여- 죽여버-리겠다-!”
나로선 위로의 말을 건넨 것뿐인데.
어쩐지 제금학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