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50화 (350/357)

350. <복수(6)>

최악의 상황이었다.

묵림에서 마교의 잔당을 만나고.

뒤로 돌격하는 과정에서 만년토웅을 만났다.

제대로 쉬기는커녕 잠도 계속 줄인 상황에 몸은 한계의 한계까지 몰려있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만년토웅을 상대하면서, 단전과 기경팔맥 혈도 등에는 무리한 피로가 쌓인 상태.

상식적으로 태을진경의 신묘함이 없었다면 진즉 시체로 변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제금학을 만난 것은 기꺼운 일이었다.

그가 동귀어진을 각오한 것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한 줄기 빛과 같았고.

그야말로 최후의 역전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

제금학을 통하면 텅 빈 단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단전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모른다.

모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다면, 저 나머지 마교인들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진 공자!!!”

“진 공자님!!!”

“대사형!!!!”

정작 내 속내를 알 수 없는 조원들이 나를 돕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다는 것.

나는 늦기 전에 저 폭풍 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핑-

핑-

핑-

제금학의 폭풍 속으로 쏘아져 나가던 나는 금은동 형제와 모용재화가 쏜 비룡조에 잡혀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뭔데.

“뭐 하는 짓이야!!!”

“대사형이야말로 뭐 하는 짓이에요!”

내가 정말 죽으려 작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간절하게 말하는 은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쩝, 그게 아닌데…….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고서야!! 저길 혼자 들어가려고요?!”

“은호야…….”

“막말로 뭐 때문에 대사형이 희생해야 합니까! 누구 때문에요!!!”

뭔가 크게 오해를 한 듯한 은호.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어려있는 물기 때문에 나는 쉬이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그…… 희생이 아니라 기사회생인데.

지금 나는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 절벽 끝에 위치한 기연을 마주하고 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제금학의 선천지기는 그야말로 어지간한 영약을 뺨치는 수준이니까.

근래에 어떤 영약을 먹어도 극적인 변화가 없는 나로서는, 위기 상황임을 떠나 제금학이 차려놓은 밥상을 이렇게 걷어찰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상황을 모르는 태을문의 아이들은 간절하기 그지없으니.

도둑질을 하기 위해 밤거리를 거닐다 자식에게 들킨 아비의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는 마인들만을 상대하니까.’

도덕적·윤리적 관념은 집어치우고 일단은 녀석들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잘 들어라. 난 희생 따윈 하지 않는다.”

“…….”

그럼 여태껏 한 건 뭔데, 라는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난 학관생들을 대신해 죽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과거에서의 가장 큰 후회는 최후의 순간에 이 녀석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으니까.

이번 생에선 절대,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난 끝까지 남아 너희들의 앞에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난 절대 죽을 수가 없다.”

“……그게 더 나쁜 거 아닙니까?”

“응?”

“……아닙니다.”

금표가 어쩐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지.

어쨌든, 나는 다시금 녀석들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니 걱정 마라. 내가 죽을 거라 생각했다면 애당초 달려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

제금학이 뿜어내는 푸르고 붉은 바람은 확실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게 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쩐지 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그럼…… 저희도 돕겠습니다.”

거참, 날 보지 않는 게 너희들이 도와주는 거라니까.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희를 걱정하느라 전력을 다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거냐?”

“…….”

“지금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주는 것이다.”

그래야 흡성대법을 보지 못할 테니까.

“그것이 나를 돕는 최선의 길이다.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지?”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들에게 나는 한 가지 덧붙였다.

“대신 너희들이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일러주마.”

아이들의 귀가 쫑긋 섰다.

#

진소운을 잡으러 갔던 이들이 정작 그를 둔 채 돌아오자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대경했다.

“왜 그냥 왔어?”

“…….”

무겁게 침묵으로 답하는 금표에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자 은호가 말렸다.

“누님. 지금 가는 건 대사형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도와야지!”

“아뇨.”

은호의 얼굴엔 은은한 분노까지도 어려있었다.

“지금 대사형에겐 저희가 없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결국 한 손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분한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저희가 가봤자.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콰과과과광

진소운이 폭풍 속에 몸을 던지자 엄청난 폭발음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붉은 바람과 푸른 바람이 뒤엉키고, 그 사이사이로 진소운의 황금색 옥청기가 범람한다.

퍼퍼퍼퍼퍼퍼펑!

거기에 더불어 불꽃이 터져 나오는데, 본래 붉은 바람이 보여줬던 화력보다 더욱 강한 화기가 일렁인다.

과연 한 사람이 저렇게 대단한 화기를 내뿜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

그것은 마치 거대한 불길 속을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보였다.

수십, 수백 개의 환검이 애써 대응하고 있지만, 폭발하는 커다란 기의 폭풍은 도저히 인세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련은 보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서려 했다.

“사저!”

그녀의 어깨를 짚은 건 은호.

“놔! 저건 대사형 혼자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대사형을 방해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그저…….”

“대사형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

사련은 그 어느 때보다 낯선 은호의 모습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평생 ‘사저’ ‘사저’ 하며 뒤따르기만 했던 아이다.

자신보다 키가 큰 뒤에도 으름장 한 번이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던 은호가 갑작스레 자신을 막는 모습에 더 당황스러웠다.

“대사형은 목숨을 걸고 저희를 위해 생사대적을 치르고 있습니다. 아니, 분명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그럼 도와야지…….”

은호의 박력에 어쩐지 기가 죽은 사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은호는 더더욱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이곳에 저 혼자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대사형만큼은…… 살리려 했을 겁니다.”

은호의 시선이 사련에게로 향한다.

이윽고,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동룡에게도 향한다.

대사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상대는 동귀어진까지 각오한 상태.

더구나 그가 내뿜는 기운들은 하나하나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선, 사람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대사형을 도우러 가는 건 정작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수를 구하기 위해선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

과연 그 희생을 누구에게 강요할 것인가?

대사형은 스스로 그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동룡과 사련,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은호는 알 수 있었다.

왜냐, 만약 은호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사련과 동룡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은호의 실력은 저 무서운 상대의 희생양이 될 수조차 없는 수준이다.

콰콰콰콰콰콰쾅!

퍼퍼퍼퍼펑!

진소운뿐만이 아니다.

일각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도 철순직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도, 피해의 여파가 점점 커진다.

적은 소수인 데 반해 그 공격의 파괴력이 크고.

아군은 다수인 데 비해 마땅히 싸울 수 있는 인원들이 적다.

그 어느 곳에도, 지금 있는 인원들이 낄 전투 장소는 없다.

더구나.

“대사형께서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

틈을 타 대피시키라는 명령.

대사형은 임시에 불과한 사활단장의 직위라도 그 책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은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사형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것만이라도.

자신은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저희가 해야 할 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주는 겁니다. 대사형도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대장은 부하들을 두고 혼자 도망칠 수 없다.

더구나 책임감이 형용하기조차 힘들 만큼 큰 진소운이라면, 남들보다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지금 도울 수 있는 최선은 언제든 대사형이 도망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는 것.

부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몰리지 않았을 때 도망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어서 움직이도록 하지요.”

입술을 얼마나 강하게 물었는지 핏물이 배어나오는 은호의 말에 다른 이들은 결국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무겁게 이야기하는데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무거운 마음으로 은호는 소운이 달려든 곳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음양쌍마.

음양기라는 역천의 무공을 익힌 데다 그 비상한 두뇌가 항시 사람을 농락하여 무림맹에서 머리 둘 달린 괴물이라 불렸던 존재.

지금의 제금학은 전생의 음양쌍마 위용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사흑련에서 보았을 때는 충분히 위협적인 면모가 있었고, 그 당시 나 또한 녀석처럼 동귀어진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 맞은 공멸권 때문인지 머리가 이상해진 제금학은, 전생의 음양쌍마는커녕 사흑련 때의 제금학에도 못 미쳤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목숨이라는 제한을 풀어버린 제금학은 또 다른 위협적인 존재로 변했다.

전생의 음양쌍마 수준으로 음양기를 다루고, 남화성만큼의 권각술을 보인다.

사흑련에선 꼼짝 않고 [얼음방벽]에 의지해 상대를 가지고 놀던 놈이 지금은 마치 적수공권이 주력인 듯 미친 듯이 공격을 해 온다.

퍼퍼퍼퍼퍼퍽!

무슨 신체 개조를 한 건지, 주먹과 발이 때릴 때마다 뼈가 부러질 듯 아프지만 다행히 그뿐이었다.

진짜 무리를 익히지 않았기에 아슬아슬하게나마 치명상은 비껴가고 있는 상황.

진짜 문제는 그가 내뿜는 붉고 푸른 바람이다.

쐐액-

권각술에 있어 부족한 깨달음을, 이 바람이 채우고 있었다.

녀석의 빈틈 어린 부분을 치고 들어가 만화무적권을 쏟아부으려 하자 붉은색의 바람이 짓쳐 든다.

퍼퍼펑!

폭발을 해소하고 검을 내려치면 어느새 [얼음방벽]으로 변해 있는 푸른색의 바람.

딱 한 번.

딱 한 번만 틈을 볼 수 있다면.

그 한 번이면 되는데.

그 기회가 잘 생겨나지 않는다.

생명력을 태우고 있는지 그의 얼굴에 실시간으로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안 돼!! 내 영약…… 아니, 크흠.’

나는 질겁하는 심정으로 만검을 흩뿌렸다.

그리고 전력으로 쌍천검결을 펼쳤다.

폭풍 속에서 막아서야 할 공격이 많아지자 붉은 바람과 푸른 바람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뒤져라 이 새끼야!!!”

남은 내공을 박박 긁어 쏟아붓자 내가 만들고도 현실이라곤 쉬이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진다.

수없이 많은 바람들을 쪼개는 황금색의 검기.

그 검기에 지지 않으려 저항하는 음양기.

그 양 극단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

퍼퍼퍼퍼퍼퍼퍼퍼펑

한 치 앞도 분간되지 않는 무수한 양의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퍼퍼퍼퍼퍼퍼펑!

그렇게 얼마나 폭발음이 터져 나왔을까.

이지를 상실한 제금학이 멍청한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를 향해 친절히 알려주었고.

“여기다.”

그가 질겁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턱.

나는 텅 빈 단전을 느끼며 전력으로 청룡환을 발동시켰다.

온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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