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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4화 (4/367)

003-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이런 큰일을 겪은 아이 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했다. 종종 물정 모르는 순진한 모습을 목격할 때는 역시 애는 애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 위화감을 느낄 때에는 그런 모습마저도 연기는 아닐까라는 근거 없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심을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증거 없는 억측에 불과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치운 한 변호사는 경완이 말한 민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실 그것이 문제였다. 민사에선 국선 변호사를 위임할 수가 없으니까.

원고측이 2심까지 가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바로 민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억울한 일이지만 저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저 경완에게 앙심을 풀고자 하는 것뿐.

가진 것도 없고 부친도 없는 경완을 괴롭히는 건 분명 저들에겐 쉬운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경완은 미성년자라 배상의 책임이 없지만, 1년 후면 성인이 된다. 그때가 되면 '책임능력'을 저들이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니 충분히 소송을 걸 여지가 생긴다. '소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사실심 판단 선고시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판례도 있기에 이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되면 재판에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소송비용만으로 경완은 말라 죽게 된다. 사회경제적 살인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가난한 소년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가능성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썩어가게 되겠지..

한 변호사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짰다.

“방법은 두 가지란다.”

“두 가지나 돼요?”

그는 소년의 놀라워하는 모습에 흡족함을 느끼며 손가락을 차례로 폈다.

“하나는 저들이 이 사건을 빨리 잊는 기억력이 있거나 혹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공을 하는 것이지.”

“첫 번째는 무리예요. 걔들이 집요한 면이 있거든요.”

경완의 말에 한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자택까지 따라온 놈들이다. 그 부모라는 것도 만나보니 과연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인간들이라 이 사건을 까먹지도, 자비를 보여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역공을 취하자는 것이다.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한 변호사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쪽도 만만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저들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이빨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저쪽이 상해로 고소를 걸면, 이쪽은 학교폭력과 괴롭힘으로 고소를 걸면 된다. 승소가 아니라 합의를 통해 이 원한관계를 해소하자는 것이 그의 노림수였다.

그의 계획에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민사잖아요. 저 돈 없어요.”

법률적 지식이 없다면 변호사를 고용해야 했다. 그 점은 한 변호사도 잘 알고 있었다.

여태 그가 말한 것은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르쳐 주마.”

“아저씨가요?”

“그래. 내 사무실에서 알바하면서 배우면 된 단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법률적 지식이 있으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었다. 돈 없는 경완에겐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런 그를 경완은 묘한 표정으로 보았다.

그 시선에 찜찜해진 한 변호사가 물었다.

“왜?”

“변호사 아저씨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네요.”

“크흠! 그냥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안을 제시했을 뿐이야. 넌 스스로를 변호할 능력을 얻고 난 싼값에 알바를 고용할 수 있고.”

경완이 너무 침착해서 똘똘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점도 조금은 영향을 끼쳤다. 한 변호사가 아까움을 느낄 정도로 명석한 아이가 아니였다면 이런 제안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할래?”

한 변호사는 다시 물었다. 그는 소년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예상했지만 그러한 예상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 소년으로 인해 깨어져버렸다.

“안 할래요.”

“그래, 좋, 아니 왜?”

“결국 아저씨 방안은 스스로 법률적 지식을 습득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말씀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게 돼요.”

“아니, 그렇지 않다.”

“국선 변호사라서 돈도 잘 못 버시는데 그럴 순 없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요즘 세상엔 도서관도 있고 인터넷도 있어서 혼자서라도 법을 공부할 수 있잖아요.”

한 변호사는 아이의 독립심과 자립심에 속으로 감탄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 공부하기에 법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혼자서 공부하면 힘들텐데..”

“모르는 게 있으면 아저씨에게 물어볼게요. 그때 상담료를 무료로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거야 얼마든지 괜찮지. 나 시간 많다.”

시간이 많은 변호사란 곧 능력 없는 변호사라는 걸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껄껄 웃으며 힘든 길을 선택한 경완을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상해소송은 일단락 되었다. 얼마 후 경완은 한 변호사로부터 검사가 2심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여전했다. 학교는 퇴학 당했고, 손에는 돈 몇 푼 없어 다음 달에는 집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경완이 떠올린 의문이었다. 이어 한 변호사의 호의도 떠올랐다. 그의 호의에 기대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합리적 이성이 질타했다.

하지만 이내 양심적 이성이 반박했다. 한 변호사 같은 착한 사람 옆에 자신 같은 인간이 붙어있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막 사는 놈이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 듯 그냥 되는 대로 사는 인간.

그런 인간이 한 변호사 같은 인간 옆에 붙어 있어봤자 기생충 밖에 더 되겠는가? 양심에 찔린다고 한 변호사에게 맞춰 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궁합이라는 것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경완이 한 변호사에게 했던 말은 그저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좋은 세상이네.”

경완은 세상을 둘러보며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바로 노숙자.

노숙자에게 무료로 밥 주는 곳도 있지, 뭐라 할 사람도 없지, 딱히 거창하게 살 욕심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 생각인 경완에게 이보다 더 나은 직업(?)이 또 어디있겠는가?

상황도 적절했다. 학교는 퇴학 당했고, 방도 빼야할 상황이다. 게다가 자신이 노숙자가 된다면 김인규나 박태진이 더는 손을 쓸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선 완전히 나락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일단 경완은 남은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일단 옷가지부터 챙겼다. 노숙자에겐 밤이슬을 견뎌낼 옷가지가 풍부해야했다. 여름엔 덥겠지만 겨울엔 얼어서 죽을 수 있으니까.

얼마 안 되는 현금은 비상금으로 챙긴 그는 적당한 거처를 탐색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무료 급식소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비바람과 밤이슬을 피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잘 안 보이는 그런 곳이 목표였다. 퇴학도 당했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그가 사는 곳은 수도권이라지만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개발이 늦는 동네였다. 경제가 안 좋아 그나마 진행되던 개발이라든가 기업 입주마저 무산되어 비어서 방치된 공장 건물도 있었다. 근처에 농경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 개발되어 버려진 농업용 창고 같은 것도 있었다.

잘 찾아보면 경완이 밤이슬을 피할만한 곳은 충분히 찾을 수 있으리라. 설령 없다고 해도 간단한 손재주로 몸 하나 눕힐 곳을 마련하는 건 무한전생자인 그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을 투자한 그가 발견한 곳은 어느 고등학교 인근의 폐공장이었다. 넓직한 폐공장은 사실 방풍이 전혀 되지 않기에 아늑한 곳은 아니었지만 맨바닥보다는 나았다.

경완은 혹여 임시시설로 사용하던 컨테이너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그는 집과 폐공장을 오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옷가지란 옷가지는 물론, 이불과 담요, 찬바람을 막을 비닐 등도 말이다.

그런데···

“하지마! 제발 놔줘!”

“오호! 제법 앙칼진데?”

“발버둥 친다. 제대로 잡아.”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란에 경완은 이마를 좁혔다. 애원하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와 그것을 비웃고 조롱하는 남자들의 목소리. 무슨 상황인지 딱 바로 감이 왔다.

경완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네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여학생으로 경완이 가져다놓은 담요 위에 강제로 눕혀진 채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경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저기.. 얘들아?”

“넌 뭐야?!”

“거기 내 잠자린데..”

“뭐 어쩌라고?!”

친구들이 여학생을 겁탈하는 걸 비열한 미소로 구경하고 있던 놈이 위협하듯 언성을 높였다.

경완이 대답했다.

“꺼지라고.”

저것들이 더러운 짓을 한 담요 위에서 잘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찝찝함을 느끼는 경완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대답은 청소년의 탈을 쓴 범죄자들을 자극하기는 충분했다.

“뒤질래?”

'어쩌라고'라며 경완을 위협했던 놈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경완은 조금도 미동을 보이지 않았고, 그런 경완의 모습은 놈에겐 잔뜩 쫄아서 얼어붙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 있게 주먹을 들어 힘차게 내질렀다.

하지만 경완은 쫄아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날아오는 주먹을 옆으로 쳐내며 동시에 소매를 잡아 채 힘껏 잡아당겼다.

“어!”

균형을 잃고 낭패감에 소리를 지르는 놈의 덜미를 쥐고 몸을 축으로 270도 회전해 놈을 가속시켰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걸어 균형을 잃게 하고는 놈의 목덜미를 누르며 놈의 몸에 붙은 관성 그대로 힘차게 내달리며 외쳤다.

“블러디 안면 봅슬레이~!”

폐공장의 거친 시멘트 바닥 위로 안면이 미끄러졌다. 아니 갈려나갔다. 청소년 범죄자의 두 팔 힘만으로는 경완의 체중까지 실린 안면 낙법을 지탱할 수 없었고, 때가 낀 시멘트 바닥 위로 붉은 차로가 그려졌다.

“!!!!!!!!!!!!”

경완에게 달려들었던 청소년 강간범은 안면이 갈려나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몸을 부르르 떨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핏줄까지 손상되었는지 죽은 듯 누운 얼굴 옆으로 피웅덩이가 스멀스멀 고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학생의 두 팔을 잡고 있던 놈과 허리에 올라타 있던 놈들이 급히 바지를 추스르며 일어났다.

“씨, 씨벌! 저 새끼 뭐야?”

“대답해 줄까?”

경완이 여상한 어조로 대꾸하자 한 놈이 소리를 질렀다.

“뭐냐고! 이 씨벌놈아!”

“사람인데?”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이 씨발아?! 형기야! 형기야!”

오? 날 사람으로 봐주다니 고마운 걸?

전생엔 하도 괴물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들은 경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욕설을 쏟아내고는 급히 쓰러진 친구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의 윤간 공범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발! 넌 죽었다!”

친구 한 명이 순식간에 쓰러진 모습에도 아직 자신이 둘이라는 것에 자신감을 잃지 않았는지 둘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경완에게 달려들었다.

경완이 자세를 잡았다. 살짝 무릎을 굽혀 무게 중심을 잡고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려 전후좌우 언제 어디로든 위치를 옮길 수 있는 균형잡힌 자세였다.

“죽어, 이 새끼야!”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경완은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 전 오른쪽에 있는 놈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놈이 주먹을 날렸지만 허공을 갈랐고, 놈의 예상보다 더 가까이, 더 빠르게 다가온 경완은 달라붙다시피 접근해 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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