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경완이 씨부리는 동안 거의 뛰듯이 성큼성큼 다가온 영철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분노로 핏발이 선 눈은 반쯤 뒤집어져 아무것도 뵈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경완의 왼손에 뭐가 쥐어져 있는지 보질 않았으니까.
경완이 왼손을 뿌렸다. 손아귀에 잘 쥐어져 있던 흙은 도발에 상황판단이 느려진 영철의 얼굴에 뿌려졌고 적잖은 양이 놈의 각막 위에 잘 안착했다.
“악! 이 씹새끼가!”
영철은 낭패감을 느끼며 손에 들린 나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경완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발악이었지만 그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지를 잠시 잊은 영철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콧잔등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악!”
“스뚜~라잌으!”
영철의 얼굴에 힘차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경완은 놈이 한손으로 안면을 감싸 안고 휘청거릴 때 얼른 떨어진 시멘트 덩어리를 주워들고 외쳤다.
“제2구! 갑니다!”
퍽!
“끄악!”
“뚜 스뚜라이크!”
시멘트 덩어리가 얼굴을 감싼 손등을 강타했다. 아파하는 영철의 귀에 경완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제3구 갑니다!”
영철은 저도 모르게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손등이나 얼굴을 맞는 것보다 살과 근육이 많은 팔로 맞는 것이 덜 아프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퍽!
“아악!”
“볼! 볼입니다!”
시멘트 덩어리가 무릎에 맞았다. 무릎이 박살나진 않았지만 박살난 것 같은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야! 넌 내가 꼭 죽인다!”
하지만 놈은 기가 죽지 않고 경완의 접근을 막으려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눈물이 눈에 들어간 흙을 씻어내고 점차 앞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만 뜨면 경완을 칼로 난자해 버릴 생각에 얼굴은 살기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놈이 제대로 앞을 볼 일은 없었다. 대신 놈의 시야가 노랗게 변해버렸다.
“꺼억!”
“홈런! 투런 홈런입니다!”
무릎 꿇고 칼을 휘두르느라 뒤에 대한 방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불완전한 시야, 얼굴과 손등, 무릎에서 올라오는 고통과 그것이 빚어낸 다급함은 경완이 기척을 죽인 채 그의 배후로 돌아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알 두 개를 터뜨린 경완은 비행기 세레모니를 하며 앞으로 고꾸라진 일진 양아치의 뒤통수를 서너 번 정도 퍽퍽 밟고 지나갔다.
곧 세레모니를 마친 그는 땅에 떨어진 나이프를 집게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었다.
“진짜 칼이네? 역시 촉법소년이 좋긴 좋아. 야. 너 도검 소지 허가증이라는 게 뭔진 아냐?”
그가 발끝으로 영철을 툭툭 치며 물었지만 놈은 몸만 부들부들 떨뿐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를 제압한 경완은 놈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망을 못 치게 다리를 비틀어 주니 기절했던 놈도 깨어나 비명을 질렀다.
그런 그의 행태에 여학생이 물었다.
“저 새끼들 어떻게 할 거예요?”
“너 아직 안 갔냐?”
“···.”
“아, 그 꼴로 집에 가긴 힘들겠네.”
경완은 폐공장 안에 가져다 놓은 짐 중에서 추리닝을 꺼내 여학생에게 건넸다. 경완에게는 물론 여학생에게도 작은 추리닝이었지만 헐벗은 상체를 가리기엔 충분했다. 옷이 작아서 얇은 허릿살이 드러나고 상체의 훌륭한 발육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됐지? 이제 가라.”
“.. 저 새끼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가라는 말에도 여학생은 가지 않고 고집스럽게 물었다.
“몰라도 돼.”
“···.”
말없이 쳐다보는 시선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경완의 시선은 그저 가늘어질 뿐이다.
“왜 굳이 얽히지 않아도 되는 일에 얽히려고 하냐?”
“왜 그쪽은 절 도와줬어요?”
“글쎄?”
그럼 경완은 왜 얽혔냐는 반문에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여학생의 시선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방금전까지 저 강간마 새끼들을 조지며 즐거워하던, 광기까지 느껴지던 그와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 이해가 안 돼요.”
당연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아무리 이 세상에 썅놈과 썅년이 천지라지만 그래도 착한 사람은 있다. 그리고 경완은 우연히 그 착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이를 만났고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세상이 좆같지만 그래도 한 번 살아볼만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썅놈, 썅년들과 마주하기보다는 착한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편이 정신 건강에 훨씬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완은 이 일에 끼어들었다. 저기 널부러져 있는 인간쓰레기들을 방치하면 착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썅년과 썅놈이 더 많이 늘어날 테니까.
썅놈썅년과 마주하면 기분 더럽잖아? 굳이 귀찮음을 감수하고 여학생과 일진 양아치들 일에 끼어든 건 더러운 꼴을 본 불쾌감을 씻어내기 위한 것도 있었다.
과연 나쁜 놈들 조지니 속이 시원했다. 착한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빚진 것 같은 부채감도 조금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나쁜 놈들을 조지면 착한 사람들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여학생을 돕는 방법은 이런 폭력적인 방법 외에도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굳이 경완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 것은 삶이 아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선의에는 충분히 보답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악의에는 몇 배의 악의를 되돌려줄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들을 눈앞의 여학생에게 말해줄 순 없었다. 적어도 도움 받은 것에 대해 입으로나마 고맙다고 말 할 수 있는 염치를 가진 사람을 그런 악의로 물들일 필요는 없었다.
경완은 자신이 결코 선하지 않다는 걸, 오히려 나쁜 놈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을 보며 부채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좋은 세상이 유지되는 건 그런 착한 사람들 덕분이니까. 그래서 저기 나뒹굴고 있는 양아치 새끼들에게 더욱 불쾌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돼.”
그는 일축하며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더 이상은 여학생도 고집을 부릴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내 이름은 김신영이에요!”
“안물안궁.”
여학생은 작별인사 대신 자신의 이름을 남겼지만 경완은 한귀로 흘려버렸다. 앞으로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꼼짝 마!”
“경찰이다!”
생각보다 인연이란 질긴 모양이었다.
= = = = =
경완이 뒤에 나타난 양아치 세 명을 처리하는 가운데 먼저 정신을 차린 일진 중 한 명이 몰래 문자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경찰들과 형사들이 곧장 출동했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심각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기본이 음낭 파열이었으니까.
경완은 현장에서 잡혔고 여학생 김신영과는 경찰서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피해자의 피해자로서 잠시 참고인 조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경완은 현행범으로 유치장으로 들어갔으며,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일진들은 병원으로 향했다.
상황은 명백히 경완에게 불리했다. 그를 앞에 앉혀두고 조서를 꾸미고 있는 오 형사의 시선으론 그게 분명하게 보였다.
“왜 그랬냐?”
“꼴보기 싫어서요.”
“야 이 새끼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경완의 대답에 오 형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또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그럼 형사님은 여럿이서 힘없는 여자애 윤간하러 드는 놈들이 보기 좋으세요?”
“야! 그래도 정도가 있지! 아예 병신을 만들어 놨잖아!”
“촉법소년에게 아주 관대하신 이 나라 법률을 생각하면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게 추가 피해자가 안 나오도록 예방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네가 판사냐?! 공권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참다 못한 오 형사가 서류로 경완의 머리를 내려치자 경완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씨.”
“아씨이~?”
“묵비권 들어갈까요? 잘 협조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습니다.”
오 형사는 뭐 이런 앞뒤 없는 새끼가 있는지 그저 기가 막혔다.
“야 임마. 넌 지금 상황이 얼마나 불리한 줄 알아?! 지금 니 편은 나밖에 없어!”
“형사님은 형사님 본인 편이지, 무슨 제 편이에요?”
“허! 이 녀석이?”
“그럼 형사님은 그 새끼들 병신 만든 것에 본인은 나름 통쾌해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시는 건가요?”
“···.”
오 형사는 뒷골이 뻐근해지는 것 같아서 목을 주물렀다. 그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잘 들어라. 너 이대로 가면 그대로 소년원행이야.”
“요즘 소년원은 밥 잘 나와요?”
“야!!!!”
참다 못한 오 형사가 고성을 지르자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동료 형사가 다가와 오 형사를 진정시켰다.
“야, 왜 이래? 목소리가 너무 커.”
“이 새끼 완전히 또라이 새끼야! 지가 한 짓에 대해 반성이 전혀 없어!”
동료 형사는 오 형사의 말을 듣고는 못 볼 걸 봤다는 눈빛을 경완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오 형사를 향해 말했다.
“어쩌겠어? 법대로 해야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할 일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오 형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조서 작성에만 집중했다. 동료들이 불필요한 소란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사회생활이니까.
하지만 동료의 충고가 무색하게 피해자의 가족들이 찾아오자 소란이 일었다.
“그 새끼 어딨어!? 그 새끼!”
자식이 고자가 되었고 무릎 관절이 병신이 되었는데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버님, 어머님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 자식을 그 꼴로 만든 새끼가 누군지 얼굴 좀 보자는데!”
도저히 얼굴만 볼 기세가 아니라서 만나게 하기 싫었지만 결국 피해자의 부모들을 막을 순 없었다. 그들 중에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부모 중 한 남성이 경완을 보자마자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너 이 새끼야! 너지?! 컥!”
그리고 그대로 경완의 박치기에 멱살을 놓고 코를 부여잡았다.
“함부로 잡지 마시죠?”
“이 새끼가!”
참지 못한 남성이 부모의 마음으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얌전히 맞아줄 경완이 아니었다. 그는 얼굴을 돌려서 주먹을 흘려냄과 동시에 남성의 가랑이를 올려 찼다. 남성이 사타구니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허리를 숙이자 그대로 머리를 향해 무릎을 올려쳤다.
“악!”
남성이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코피가 터졌는지 손을 타고 선혈이 흘렸다.
코피를 본 남성이 눈이 뒤집혀 손가락에 힘을 주고 달려드는데, 그제야 경찰들이 개입해 흥분한 사람들을 뜯어말렸다.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했다가 뭔가 큰일이 더 터질 것 같아서 얼른 정신을 차린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야! 내가 맞았잖아! 내가 맞았다고! 근데 왜 날 잡아!”
싸움을 말린다? 일방적으로 맞은 사람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경찰이고 경찰서이기에 몇 대라도 때리라고 놓아줄 순 없었다. 그러다가 흉기라도 휘두르면 골치가 아프다.
“아버님, 진정하시고,”
“저도 맞았어요. 멱살 잡혀서 목이 아프고 주먹에 맞아서 얼굴도 아파요.”
경완이 호소했다. 하지만 저 후줄근한 티로 멱살이 잡혀봤자 얼마나 목이 아프겠는가? 그리고 주먹에 맞았다고? 생채기는커녕 붉어진 자국도 없는 얼굴로 아프다고 말하니 경찰들 눈에는 깐족거리는 것으로 보이고, 코피 터진 남성에겐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넌 좀 가만히 있어!”
남성이 발광하자 그를 붙들고 있던 경찰이 경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경완은 쫄지 않았다.
“저도 얌전히 있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