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경완의 시선이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주먹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있는 꼰대들과 손톱을 세워 할퀼 준비가 되어 있는 아줌씨들을 향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얄밉기 짝이 없는 새끼.
하지만 얄미운 건 얄미운 것이고 소란을 일으키는 주축이 피해자의 부모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으므로 일단 경찰들은 부모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자식이 고자 병신이 된 와중에 진정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범인이 반성의 기미는커녕 도발만 해대는 와중에 말이다. 결국 경완을 창살 안에 가두어 피해자 부모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은 후에야 소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소란이 진정된 후에는 이런 저런 조서를 꾸몄는데 다시 소란이 일었다. 자식들이 고자가 되었는데 강간미수, 성추행 등으로 또 고발이 되었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억울한 그들은 모든 걸 경완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억울해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경완을 노려보며 위협했다.
“너 이 새끼 평생 콩밥 먹을 줄 알아!”
“응, 촉법소년.”
물론 경완에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했다.
경완의 어디서 개가 짖나라는 반응에 부모들은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이 병신이 되었지만 죽진 않은 것이 문제(?)였다. 상해치사도 길어봤자 최대 5년에 불과하니 경완이 소년원에 가더라도 그보다 더 빨리 사회에 나올 가능성이 더 컸다.
게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여고생을 구하려 했던 의도와 흉기까지 든 다수를 상대로 싸웠다는 점까지 참작하면 형량은 더 줄어들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수수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각오해라. 최대한 소년원에서 썩게 만들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낭비된 헛된 시간이 네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겠지.”
하루아침에 고자 아들을 두게 된 변호사 양반이 살인 낼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한 말이었다.
이에 경완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쯧쯧쯧. 내 인생은 진즉에 끝났어요, 이 아저씨야. 도발을 하려면 우선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했어야죠. 그 머리로 변호사는 어떻게 됐대?”
조롱조의 말에 변호사의 입술이 들리며 이빨과 잇몸이 드러났다. 아마 창살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않았다면 변호사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변호사답게 머리는 있는지 눈알만 부라리고 돌아갔다. 아마 다음에 그들을 볼 땐 법정일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돌아간 후 드디어 경찰서엔 평온이 찾아왔다.
그 평온을 경완의 목소리가 깨뜨렸다.
“경찰 아저씨! 저 배고파요!”
그 뻔뻔함에 담당 경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 =
공판날, 참관석엔 여러 사람들이 앉아 소란을 피웠다.
“판사님! 꼭 저놈에게 정의가 뭔지 보여주세요!”
“우리 자식 병신으로 만든 저놈에게 엄벌을 내려주세요!”
원고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의 하소연에 경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국선변호사인 김석용 변호사에게 속삭였다.
“뭐래, 지들 새끼가 강간범으로 잡혀왔으면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했을 인간들이? 안 그래요, 변호사 아저씨?”
“크흠. 조용히 해라.”
김석용 변호사는 경완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는 서류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성실하게 법정에 임하려는 변호사의 자세였지만 경완은 그런 김석용 변호사를 오묘한 눈빛으로 관찰했다.
“조용히! 조용히 하세요! 법정을 소란스럽게 하면 퇴장 시킬 겁니다!”
법관의 경고를 받고 나서야 참관석이 조용해졌고, 이윽고 원고 측 검사의 발언부터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건의 쟁점은 정당방위이냐 아니냐였다. 김석용 변호사는 경완에게 최대한 정당방위를 밀어붙여 보겠지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걸 각오하라고 미리 말했다.
검사가 피고석에 앉은 경완을 심문했다.
“왜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았지?”
“휴대폰이 없으니까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21세기에?”
“21세기에도 가난에 시달려 자식새끼랑 동반자살하려다가 자식새끼는 놔두고 혼자 뒈지는 세상인데 휴대폰 하나 없는 게 대수겠어요?”
“예 아니오라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그 자식새끼가 바로 저거든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휴대폰이 있겠어요?”
“넌 지금 네 불우한 사정을 통해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건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휴대폰이 왜 없냐고 물어서 왜 없는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요?”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굳이 여섯이나 되는 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단 말이야.”
“검사님이 그 자리에 없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럼 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존만한 새끼들이구나, 겁만 좀 주면 똥줄 빠지게 도망가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의외로 죽일 듯이 달려들더라고요.”
“예상치 못했다? 그럴 리가? 수가 많은 쪽이 겁을 먹을까?”
“여자한테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서 힘으로 어찌 해보려고 하는 찌질이잖아요.”
“찌질이라지만 수가 많았지. 네가 굳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어.”
“검사 아저씨. 사건 제대로 파악한 거 맞아요? 사건 현장에서 휴대폰도 없는 사람이 도움을 청하러 갔다오면 이미 강간당할 그런 장소였거든요. 안 그래요, 변호사 아저씨?”
김석용 변호사는 경완이 자신을 찌르자 머뭇거리며 검사의 말에 반박했다. 경완이 먼저 세 사람을 제압한 이후 피해자인 여학생 김신영을 돌려보냈지만 뒤에 온 세 명에 의해 붙잡혀 도로 인질이 된 사실을 꺼냈다.
즉, 사건 현장에서 도주시킨 피해자가 도로 인질로 잡혀왔으니 범행 현장에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었다.
검사는 경완에 대한 심문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판사를 향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지금 피고는 자신의 죄를 축소하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경완은 슬쩍 자신의 국선변호사인 김석용 변호사를 보았다. 그는 뭐가 그리 심각한지 미간을 좁힌 채 검사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있었다.
판사는 다행히 검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글쎄요. 일단 심문 계속하세요.”
검사가 다시 경완을 보았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네가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걸 매우 즐겼다고 한다. 사실인가?”
“관점의 차이죠.”
“관점의 차이?”
“검사 아저씨. 생각해봐요. 1대 6이에요. 제가 헐크가 아닌 이상 진지하게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일곱 명 중에 한 명은 죽었을 걸요?”
“본인이 생각해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충분히 합리적이죠. 사람이란 적을 상대로는 진지해지지만 미친놈은 피하고 싶어 하거든요. 제가 변태도 아니고 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에 희열을 느끼겠어요? 미친 척을 해야 놈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계산을 세운 것 뿐이에요.”
경완의 대답에 검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놈이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검사실이었다면 크게 소리쳐서 헛소리 하지 말라고 기를 죽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여기는 재판장이었다.
“원고측은 심문이 다 끝났습니까?”
“아, 아닙니다.”
황당해서 잠시 말이 안 나온 검사에게 판사가 말을 걸자 퍼뜩 정신을 차린 검사가 심문을 계속했다.
경완에 대한 심문이 끝나자 증인석에 피해자가 나왔다. 경완에게 블러디 안면 봅슬레이라는 신스포츠 종목을 강제로 경험하게 된 일진이었다.
블러디 안면 봅슬레이의 후유증은 그야 말로 심각했다. 뼈가 보일 정도로 안면이 갈린 탓인지 그쪽 눈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반쯤 실명한 상태에다가 얼굴 피부는 재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이식 외에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 가죽이 아닌 곳의 가죽이 붙어봤자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결국 놈은 엉엉 흐느끼며 경완에게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판사에게 간곡하게 애원했다.
검사가 경완을 보며 말했다.
“피고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지?”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증스럽다?”
“그렇잖아요?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없었으면 저놈과 저놈 친구라는 종자들은 무고하고 가련한 영혼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겠죠. 범죄자 주제에 피해자인 척 하니 역겹기까지 하네요.”
“야이 새끼야! 죽여 버릴 거야!”
경완의 대답에 참관석에서 큰 소리가 났다. 보아하니 고자가 된 피해자의 모친으로 보였는데, 그녀가 손톱을 세우며 경완에게 달려드는 것을 급히 법원경비가 붙들어 세웠다.
“조용히! 조용히 하세요!”
판사가 사회봉을 때리며 얼른 소란을 진정시키라고 했지만 눈이 뒤집힌 아줌씨를 금방 제압할 순 없었다.
경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살기 어린 눈으로 보는 아줌마를 보더니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팠다. 그리고는 새끼손가락을 그 아줌마를 향해 튕겼다. 손가락 끝에 달려있던 노란 덩어리가 소리를 지르느라 벌어진 입으로 들어가 혀 위에 안착했다.
경완이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쥐었다.
“스뚜~라이크!”
경완의 개소리에 눈이 뒤집혀 소란을 피우던 아줌마는 혀에 뭔가 이물질이 안착하는 느낌, 그 이물질의 짭짤한 맛, 그리고 그 느낌이 오기 전 경완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를 떠올리자 자신의 입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자각했다.
그리고 그 자각은 상상을 초월한 분노를 일으켰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억! 억!”
소란을 피우던 그녀를 말리던 법원 경비도 귀를 막을 정도의 고성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심폐능력과 목청을 자랑하던 그녀도 혈압만큼은 이길 수 없었는지 뒷목을 잡으며 눈을 까뒤집었다. 법원 경비가 급히 그녀를 업고 나갔다.
소란을 피우던 이가 사라졌지만 참관한 이들의 분위기는 웅성웅성 어수선했고, 판사도 그 영향을 받았다. 판사 평생에 이런 소란도 또 처음이었기에 판사는 1시간의 정회를 알렸다. 지금 상황에서 냉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없는 거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세상에! 코딱지를 입에다가 날리는 소란이라니?
판사의 정회가 선언되자 김석용 변호사와 경완은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여태 쌓아온 변호사와 피고인의 관계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경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이 좀 많았죠?”
“그랬긴 했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변호사는 피고인을 대변한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러던데?”
“어···.”
김석용이 경완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뜸을 들였다. 뭔가 변명할 거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경완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얼마 처먹었어요?”
“뭘 처먹어?”
“아! 돈을 먹진 않고 청탁의 대가로 다른 걸 받았다? 가령 유명 로펌에 취업?”
“···.”
김석용은 순간 눈이 흔들렸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그런 그의 반응에 경완이 범인을 잡은 형사처럼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야~! 프락치 새끼가 여기 있네?”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이해가 되지 않는단다.”
김석용은 얼른 표정을 관리하며 애써 시치미를 뚝 뗐지만 그는 몰랐다. 경완에게 증거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저씨. 뭐 대단한 빽이라도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지?”
“네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나보구,”
“공판 시작되면 판사님께 말할까요? 국선변호사가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변호사의 의무를 위반했으니 교체해 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