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8화 (8/367)

007-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증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면 되겠니?”

“불성실한 태도로 변호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였으니 판사님도 납득할 텐데요? 증거가 있니 없니 해도 피고가 변호사의 불성실한 태도에 신뢰에 금이 갔다고 하면 교체할 수도 있죠.”

“재판 중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왜 못하겠어요? 보아하니 참관석에 기자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한테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잖아요? 언론에서 떠들어주면 판사님도 잡음 끼는 게 귀찮아서라도 받아들이실 걸요?”

김석용은 마른침을 삼켰고 경완은 말을 이었다.

“기껏 청탁을 받았는데 변호사 선임이 취소되면 참 볼만하겠죠?”

“··· 난 그런 적 없다.”

김석용은 끝까지 부인했지만 경완은 그의 어깨를 짚은 손에서 그가 아주 곤란해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제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

김석용은 입을 다물었다. 변호사로서 변호인에게 불리하도록 변호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경완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김석용이 입을 다문 건 그러한 압박감과 자신의 부정(不正)을 인정할 수 없는 현실적 판단의 결과물이었다.

“눈을 감고 턱을 들어요.”

“왜? 난 아무런 청탁도 받지 않았단다.”

“아아. 청탁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제가 판사님께 국선변호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계속 제 변호 맡고 싶어요?”

“···.”

눈알을 굴리면 김석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통수였다.

경완이 말했다.

“그럼 눈을 감고 턱을 들어요. 너무 많이 들었어요. 옳지 적당해요.”

김석용은 불안한 마음으로 경완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눈을 감았는데 눈앞이 번쩍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쫙!

“컥!”

뺨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김석용은 경완이 자신의 따귀를 때렸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번쩍 일어났다.

“이 자식이!”

“거 청탁 받고 의뢰인을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돌면 변호사 생활 못 할 텐데요? 설사 청탁해온 당사자가 약속을 지켜서 원하는 로펌에 들어가도 거기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겠어요?”

“난 그런 적 없다고!”

“증거가 없다고 자신만만한 것 같은데, 본인이 알고 제가 알잖아요. 그리고 제가 빽 있냐고 물었을 때의 태도를 보면 쓸 만한 빽도 없는 것 같은데 그에 관한 의혹을 퍼뜨릴 기자들 주둥이를 막을 수 있겠어요? 그런 의혹이 퍼지면 일이 잘 풀려도 거기 아저씨가 소속될 곳에서 입지가 별로 안 좋을 텐데?”

“···.”

김석용은 정말이지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새끼가 여태 네네 거리며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하던 그 애새끼가 맞나 싶었다. 갑자기 마귀가 씌워져 이러는 것은 아닐까? 김석용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떠올렸지만 퇴마하기엔 이미 늦었다.

“약속할게요. 절대 아저씨가 피고 측 가족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소리를 안 할 테니까.”

그 제안은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

“앉아요.”

경완의 말에 김석용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졸지에 어린놈에게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키고 따귀까지 맞아 경황이 없었는지 그러한 행동이 사실상 자신이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임을 그는 인지하지 못했다. 청탁을 받지 않았다면 따귀를 맞은 순간 바로 경완에 대한 변호를 포기했을 테니 말이다.

짝! 짝! 짝! 짝!

연신 따귀가 날아왔다. 김석용은 연신 눈앞에 번쩍거리고 얼굴 한 쪽 면이 얼얼해졌다. 아픔을 참지 못한 그가 소리쳤다.

“그, 그만해! 사람들이 본다고!”

“그거야 제 알 바 아니죠. 남의 눈치가 보이면 반창고나 붕대로 가리던가.”

쫙! 쫙! 쫙!

“가드 내려요, 가드. 남자가 되어 가지고 그것도 못 참아요?”

“이 씹새끼야!”

참다못한 김석용이 팔을 휘둘러 경완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경완이 자신의 뺨을 내밀었다.

“억울해요? 그럼 쌍방 갑시다. 변호사 배지는 내려놔야 되는 거 알죠?”

“···.”

김석용은 억울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새끼가 이런 미친놈인 줄 알았다면 그때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 받아들였다고 해도 이 미친놈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이나마 변호하는 척을 했어야 했는데..

“딱 여기서 스무 대만 더 맞읍시다.”

“도대체 이래서 너한테 무슨 득이 된다고 이러니? 내가 열심히 변호한다고 해도 어차피 넌 실형을 살 수밖에 없어! 이미 상해로 집행유예 상황이잖아?”

김석용이 청탁을 받은 것엔 그러한 이유도 있었다. 아무리 여학생을 강간으로부터 구하려했다는 명분이 있다고 하나 피해자가 병신이 되어버렸기에 판사가 정당방위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았다. 더구나 이미 경완은 상해로 집행유예 상황이지 않은가?

즉, 자신이 열심히 변호한다고 해도 경완이 실형을 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사실이 그를 청탁에 넘어가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기분은 나쁘겠지. 하지만 현실을 인정해라. 내가 잘되면 영치금도 많이 넣어줄 테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당장 뺨이 아픈 그는 경완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차후 경완이 출소하게 될 때 반드시 돈이 필요할 테니 수작 부릴 위험이 없는 방법으로 자신이 그 돈을 지원할 용의가 기꺼이 있다고 말이다. 돈? 이번에 청탁을 받은 대가로 로펌에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 말에 경완은 음충맞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흐흐! 그깟 형기 줄이는 것보단 당신 같은 인간 뺨 때리는 게 더 보람찬 일 아닐까요?”

“....”

미친놈. 완전 미친놈이다.

놈이 말하는 ‘보람’이라는 단어가 왜 김석용의 귀에는 ‘재미’로 들릴까?

“돈은 주든 말든 알아서 하고요, 일단 가드부터 내리세요. 옳지! 그럼 계속 갑니다.”

경완이 말과 함께 손을 들었다. 김석용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이를 앙 다물었다.

쫙!쫙!쫙!쫙!....쫙!쫘악!

“커억!”

마지막 따귀는 역시 마지막이라 그런지 강렬했다. 그렇게 20대를 다 맞아버린 김석용의 한쪽 뺨은 누가 봐도 따귀를 맞은 듯이 부어있었다.

하지만 경완은 오히려 자신의 손을 털며 엄살을 피웠다.

“아우 손이야. 낯가죽이 많이 두꺼우시네요.”

그 말에 김석용은 이를 갈며 살기어린 눈빛으로 경완을 보았다.

“약속 안 지키면 죽여 버린다.”

이에 경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 목숨 거는 거만큼 스릴 넘치는 거 없죠. 서로 죽고 죽여 볼까요?”

“... 내가.. 실언했다.”

살기, 아니 광기 어린 미소에 간담이 서늘해진 김석용은 시선을 피하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신은 절대! 결코! 자기 나이에 절반에 불과한 어린놈에게 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미친놈하고 드잡이질 해봤자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쩝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경완의 표정에 김석용의 머릿속은 오직 빨리 이 새끼를 소년원에 처박고 연을 끊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공판이 다시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판사가 김석용 변호사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자네 얼굴이 왜 그런가?”

“..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그게 아닌데? 판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서둘러 공판을 진행했다. 뜻하지 않은 소란 때문에 스케줄이 밀렸다. 빨리 처리해야하는 공판이 많았다.

김석용 변호사는 판사가 별말하지 않고 넘어가자 경완을 힐끔 거리다가 공교롭게도 시선이 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김석용 변호사는 제발 이번 고비만 넘기를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국내 굴지의 로펌에 들어가 커리어를 빛낼 수 있게 된다.

그는 제발 저 미친놈이 약속을··· 응?!

그제야 김석용 변호사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자신은 저 미친놈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단 말인가? 어른의, 변호사의 뺨을 겁 없이 때리는 미친놈인데?

김석용 변호사는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해도 속으로는 전전긍긍했다. 저 미친놈이 제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기를 예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는 동안 다시 심문이 시작되었다. 검사는 절대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을 꼬집었다.

“굳이 그들의 성기를 파열시킬 정도로 공격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리를 부러뜨린 것만으로 충분히 과할 정도로 제압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에 경완은 자신의 변호사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 고자로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다수를 제압하려고 하다보니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네가 다리를 꺾어 십자인대가 모두 끊어졌다. 그런데도 그들의 성기를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검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경완에게 향했지만 경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마 제가 못 배워서 그런 걸 거예요.”

“못 배워서?”

“잘 모르니까 어느 만큼 힘을 줘서 어느 만큼 꺾어야 완전히 제압되는지 저는 그걸 모르잖아요? 관절기를 잘 배운 사람이라면 십자인대니 십자꼰대니 하는 거 끊어먹지 않고 깔끔하게 탈골을 시키지 않았을까요?”

“여섯이나 되는 이들이 장애판정을 받을 정도로 다리가 망가졌다. 네가 정말 못 배운 걸까?”

“제 생각보다 제가 힘이 센 모양이에요.”

“이미 무력화된 이들의 성기를 공격한 건 사실이지.”

“무력화되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어디에 몰래 칼을 숨겨두고 있다가 뽑을 지도 모르잖아요?”

검사는 계속해서 경완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짚어나갔고, 경완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결국 실형을 피할 순 없었다.

“.. 범죄를 막겠다는 동기는 인정하나 그 손속이 매우 과해 정당방위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보호처분 10호, 그 기간은 2년을 선고한다.”

판사의 선고를 받은 경완이 감탄했다.

“이야~아. 판사 아저씨도 그 변호사 아저씨한테 부탁 받았나보네.”

폭행상해는 대체로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소년원보다 더한 곳인 소년교도소에는 살인, 강간, 강도 등을 저지른 중범죄자들이나 가니까.

그런데 소년교도소로 보내지는 보호처분 중 가장 강한 보호처분 10호도 최대 2년의 소년원 수감만 할 뿐이었다. 역시 촉법소년.

그럼에도 그 2년을 꽉꽉 채워서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는 경완이 강간 피해자를 도왔다는 점, 흉기를 든 다수와 싸웠다는 점 등이 저~언혀 참작되지 않았거나, 판사가 고자가 된 윤간범들의 사정에 너무 과하게 공감한 것이 아닐까?

도저히 남일 같지 않다는 개인적 공감에 의해서 경완에게 강도 높은 처벌을 내린 것은 아닐까? 일단 피해자 부모 중에 변호사라는 법조인이 있지 않은가?

혹시 지 자식들이 경완에게 당한 놈들과 비슷한 개종자라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감히 법조인을 건드려?!라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신이 발휘된 것이 아닐까?..라고 경완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았다.

경완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판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대꾸할 가치가 없어 의사봉을 두드리며 폐정을 선언했다.

그러자 참관석에서 고성이 쏟아졌다.

“2년이라니! 고작 2년이라니! 우리 애가 병신이 되었는데 고작 2년이라고?!”

“이게 나라냐?! 어!”

소년법에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강간범 애새끼들의 가족들도 불만을 표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경완이 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해주었다.

“댁들 자식들도 멀쩡했으면 소년법 덕분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텐데 너무 억울해하는 거 아니에요?”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었다.

그런 경완의 말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닥쳐! 이 찢어죽일 새끼야!”

“네 다음 윤간 일진 애비애미요.”

“야아아!”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경완의 도발에 눈이 뒤집힌 피해자 가족들이 달려들었지만 법원 경비에게 제지당했다.

졸지에 힘쓰게 된 법원 경비는 경완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좀 입 닥쳐라.”

“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는 자신을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는 피해자 가족들을 향해 쌍중지를 내밀었다. 입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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