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학교는 그런 게 없겠지만 본능은 그런 게 있죠. 이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다, 아래에 있다 견적 내는 건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이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은 경쟁이고, 사회란 유능과 무능을 통해 종의 생존을 책임질 유능한 자를 높은 위계에 놓고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
자신을 이끌어줄 리더를 찾거나 그러한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것. 이를 위해 우위를 확인하려 하는 것. 그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부정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고 원장은 경완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 친구보다 네가 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 거냐?”
“그건 아니에요?”
“그럼?”
고 원장의 물음에 경완을 자세를 바로 하고 책상 위에 손을 올리며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저는 말이죠. 실수는 용납할 수 있는데 멍청한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너한테 맞은 그 친구가 멍청한 짓을 했다? 어떤?”
“일단 친구는 아니고요, 그 병신이 뭐라고 했냐면요. 자신이 밖에서 진따 좀 병신 만들어서 들어왔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아니지, 자랑은 그렇게 병신을 만들고서도 9호 처분인가 뭔가 아버지 빽 써서 단기를 받은 걸 자랑하더라고요.”
“.. 그게 왜 멍청한 짓인데?”
“지 아들 소년원에 오래 있을까봐 얼굴에 먹칠해가며 그 빽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고 허리를 굽실 거렸을 텐데 자식새끼가 되어서는 그런 애비마음도 모르면 병신 아닌가요?”
“그래서 때렸냐?”
“때리진 않았고 한 마디 해줬죠.”
'마늘하고 쑥 좀 많이 먹어라.'
'왜?'
'단군신화 몰라? 사람 좀 되라고 새끼야.'
울컥한 놈이 주먹을 날렸고 경완은 그것을 피하며 반격한 후에 정신 좀 차리라고 안면 원투 펀치, 가랑이 니킥을 먹여주었다.
“잘 때리는 놈이라고 잘 맞지는 않더라고요.”
고 원장은 경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았다.”
“그럼 이만 나갈까요?”
“나가도 좋다. 하지만 벌점이다.”
“네.”
“···.”
고 원장은 너무나 태연한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그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왜요?”
고 원장은 경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복잡한 심경으로 말을 이었다.
“상점이 모이면 가퇴원 되는 거 알고 있니?”
“네.”
“그런데 벌점을 받고서도 태도가 그래?”
아, 벌점 ㅈ같다. 다시는 안 해야지..가 고 원장이 벌점 받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태도였고 여태 그런 아이들을 예외 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경완의 태도는 무엇인가? 벌점이든 상점이든 ‘난 관심 없어요’가 아닌가? 상벌점제도는 언제 엇나갈지 모르는 비행청소년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규칙을 준수하면 상을 받고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원칙을 교육하기 적합한 도구였다. 그래서 고 원장은 소년원의 책임자로서 그것을 개무시하는 경완의 태도에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땡전 한 푼 없는데 나가서 뭐 하게요?”
“아, 음...”
고 원장은 그제야 경완이 천애 고아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유까지도. 가퇴원해 봤자 저 어린 녀석을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는 환경에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부터 기능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어떠니? 내가 아는 업체를 소개해주마. 나가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거다.”
경완은 대번에 거절했다.
“싫어요.”
“왜?!”
설마 이 좋은 제안을 거절할 줄은 몰랐던 고 원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 그의 질문에 경완의 대답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노숙자가 될 겁니다.”
“뭐라고?”
“노숙자, 홈리스가 꿈이라고요.”
“·········.”
고 원장은 입을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멍 때렸다. 퇴소가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을 상대로 꿈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대체로 평범하게, 잘 먹고 잘살고 싶다고 대답하지 노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놈은 그의 인생에 이놈이 처음이었다.
황당한 건 황당한 것이고, 곧 고 원장은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린놈의 새끼가 성실하게 밥 벌어먹을 생각을 안 하고 뭐? 노숙자아~?
“앞길이 창창한 녀석이 왜 그런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니?!”
그 말에 경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노숙자가 왜 쓸모가 없어요?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노숙자가?”
황당하다는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좆같은 갑질과 인간관계에 사표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도 노숙자들이 깡통 놓고 구걸하는 거 보는 순간 좆나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삶의 의욕이 치솟잖아요.”
“···..”
고 원장의 머릿속에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지? 쟤보단 그래도 내가 낫지..라고 말이다.
인간의 치졸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꿰뚫는 통찰력이었지만 그 말을 눈앞의 어린놈에게 들을 줄을 상상도 못했다.
어이가 없어 하는 원장을 보며 경완은 자신의 철학을 재차 강변했다.
“세상 모든 물욕을 버리고 남의 선의에 감사하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겠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나 하나 탈락해서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 이 얼마나 고귀한 희생이자 아름다운 삶의 자세입니까?”
“······. 차라리 스님을 해라.”
물욕을 버리고 살겠다고? 차라리 노숙자보다는 스님이 낫다는 게 고 원장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그 말도 반박했다.
“중들 무시해요? 그 사람들 해탈하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강한데요? 그거 다스리려고 하루 일과도 빡빡하죠. 매사가 수행이라던데, 전 그 짓 못 해요.”
“어차피 노숙자가 될 텐데 돈 없다고 나갈 걱정을 왜하니?”
“노숙자 생활보다는 여기가 더 좋은 걸요? 밥 나오죠, 냉난방 되죠, 저한텐 여기에 오래 있는 게 이득이에요.”
“···.”
허탈해진 고 원장이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너 같은 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들어왔냐?”
“판사한테 물어봐 주세요.”
경완의 대꾸에 고 원장이 그의 시선을 주시하며 물었다.
“넌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냐?”
“뇌요.”
“··· 하아~.”
고 원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냥 문제아라면 이렇게 골치가 아프지 않을 텐데 경완은 또래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괴짜였다.
골치가 아플 때는 원칙대로 해야 하는 것이 최선. 그는 경완에게 벌점을 먹이며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로 문제는 그다음이다.
“주의해라.”
“넵.”
대답은 잘한다.
고 원장의 입술이 비틀렸다.
= = = = =
소년원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반복된 일상은 지루하지만 지루한 만큼 변화를 느끼기도 힘들어 문득 깨닫고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경완아.”
“왜?”
“나 나간다.”
상습절도로 단기 3개월을 선고받은 공태식이 어느덧 나갈 때가 되었다.
경완이 말했다.
“잘 가라.”
“···.”
“왜?”
“넌 정말 정이 없는 새끼야.”
그 말에 경완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피와 살이 될 조언을 해주었다.
“하고 싶은 거하고 살아라.”
“.. 하고 싶은 거?”
“적어도 도둑질을 하고 싶진 않은 거 아니야?”
초등학교 어린애들에게 꿈을 물어봤을 때 도둑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애들은 없다. 천사소녀 네티? 애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의로운 절도범(?)을 동경하지만 현실을 모르진 않는다. 아이들이 학급에서 발표하는 자신의 꿈, 직업들은 하나 같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적 동물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공태식이 대꾸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넌 정말 좆같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해.”
“네가 아직 대가리가 덜 여물었다는 소리다.”
“씹새끼. ··· 나 간다.”
“나가서 눈탱이 맞지 말고 뭔가 싸하다 싶으면 튀어.”
경완의 조언에 공태식은 피식 웃으며 방을 떠났다.
공태식이 나간 빈자리는 금방금방 채워졌다. 사회는 발달해도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진 만큼 가정이 파괴되고 그만큼 소외된 아이들도 늘어나니 자연히 소년범죄 역시 증가했다. 소년원의 빈자리는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졌다.
“안녕, 차현국이라고 한다.”
“이경완.”
차현국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동기는 폭행으로 들어왔다. 피해자가 그리 크게 다치지 않았고 합의를 본 덕분에 두 달 단기로 들어왔다.
폭행으로 들어온 놈답게 약간의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는데 경완과 같은 방을 쓴 덕분에 분노조절 ‘잘해’로 바뀌어 나갔다.
-오늘은 차현국이라는 녀석의 뺨을 때렸다. 별말 안 했는데 혼자서 열폭해 가지고 발작했다. 애새끼가 폭행으로 여기에 들어왔으면서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친 모양이다. 별수 없이 내 한 몸 희생하는 수밖에.
-몇 대 쳐맞고 나니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나는 애새끼한테 말했다. 너보다 쎈 놈한테도 분노하면 정의로운 거지만 너보다 약한 사람한테만 분노하는 거라면 인간쓰레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 말이 예민한 곳을 찔렀는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다. 내가 이래봬도 나라밥을 먹고 있는데 선생들의 계도 작업에 한 손을 보태야....
“야!”
“아우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고 원장은 경완의 일기를 더 읽지 못하고 거칠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옆에 딱지가 있었으면 단번에 넘어갈 정도였다.
“내가! 사고 치지 말랬지!”
“와우!”
짝! 짝! 짝!
“뭐야!”
고 원장은 자신의 노성에 경완이 전혀 쫄지 않고 감탄한 듯 박수까지 치자 눈썹을 부릅떴다.
그런 그에게 경완이 이유를 설명했다.
“전 그 일기장으로 몇 대 맞을 줄 알았거든요. 그걸 참으시다니.. 대단한 인격자시네요.”
고 원장은 하도 기가 막혀서 허허허허 웃었다. 그리고 번개같이 일기장을 주워들어서 경완의 머리 위를 내려쳤다.
“그렇게 원하면 맞아라, 이놈아!”
탁! 탁! 탁!
경완은 피하지 않고 눈을 감고 겸허한 자세로 일기장을 맞았다. 돌돌 말아서 휘둘렀다면 고개를 빼서 피했겠지만 말이다.
경완의 희생으로 인해 어느 정도 분이 풀린 고 원장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진짜 성질 버린다! 정말!”
“에이, 저보다 더 쓰레기 같은 놈 많이 보셨을 텐데 왜 엄살이세요?”
“너같이 내 복장을 뒤집는 놈은 처음이다!”
“그야 저한테 희망을 가져서 그렇잖아요.”
“···.”
그 말에 고 원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이 그러했다. 경완은 똑똑했고, 정의가 뭔지 알았으며, 최소한 사람의 도리가 뭔지 알고 있었다. 고 원장이 종종 보곤 하는 '저놈은 조만간 또 들어오겠군', '저 새끼는 도저히 안 돼'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놈들하고 비교하면 경완은 그럭저럭 사람 말을 알아 처먹는 부류에 속했으니, 범죄 청소년 교화라는 업을 수십 년간 해온 고 원장의 직업병은 경완에 대한 안타까움을 유발했다.
“포기하면 편해요.”
염화시중 같은 미소로 저런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고 원장으로서는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무튼 너하고 그 녀석하고 더 이상 같이 둘 순 없으니 그렇게 알아라.”
“제가 옮기는 거예요, 아니면 녀석이 옮기는 거예요?”
“아무나.”
“그럼 걔가 옮겼으면 좋겠어요. 짐 꾸리기 귀찮거든요.”
“.. 네가 옮긴다.”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