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경완은 만화(萬禍)의 근원은 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자신의 주둥이를 탓했다. 너무 입을 가볍게 놀린 모양이었다.
방으로 돌아간 경완은 선생의 감시 하에 짐을 꾸렸다.
“꼬시다.”
차현국이 이죽거리자 경완이 한 마디 해줬다.
“넌 평생 그리 불효자식으로 살아라.”
딴에는 훈계의 의미였지만 놈은 울컥하는 표정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변하질 않는 모양이었다.
새로운 방에 도착한 경완은 새로운 얼굴을 만났다. 이름은 정엄문. 하지만 그는 경완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경완과 마찬가지로 장기로 들어왔지만, 최대한 자격증을 따고 상점을 모아 한 달 뒤에 가퇴원하는 소년이었다.
경완은 고 원장이 자신을 이 아이와 같은 방을 쓰게 한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밖에 나가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뭐를 좀 느끼고 배우라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고 원장의 상상 밖에 있는 존재였다. 그는 정엄문과 서로를 소개한 이후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 보름이 흘렀다.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도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경완도 이상한 놈이었지만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먼저 말을 걸지 않겠다는 뚝심을 지킨 정엄문 역시 독한 놈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너 상해로 여기에 들어왔다며?”
“어떻게 알았어?”
경완보다 정엄문이 한 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에 개의치 않는지 경완의 반문에 대답했다.
“선생님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
“그래?”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은 경완의 말에 정엄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난 사실 네가 일진인 줄 알았어.”
“아닌데.”
“네가 일진들을 병신으로 만들고 들어왔다고 들었어.”
“선생들 참 문제가 많네.”
그런 이야기들을 떠들고 다닌단 말이야?
“그런 말이 자주 나오진 않아. 나도 우연히 들은 거야.”
“그렇구나.”
경완은 무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생각해봤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엄문은 경완이 더 이상 말이 없자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경완과 마찬가지로 일진을 병신 만들어 여기에 들어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경완과 좀 다르게 정엄문의 피해자는 그를 괴롭히던 일진의 짱이었다. 하루는 칼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자신을 때리기 시작하는 한 놈의 눈에 칼을 박아 넣고 다른 놈은 얼굴에 크게 칼자국을 그어주었다.
평소에 당했던 원한과 악의를 가득 담아서.
그러한 그의 고백에 경완은 감탄사를 담아 박수를 쳤다.
“잘했네.”
“.. 잘.. 했다고?”
“그렇게 반항하지도 못하고 자살한 애들도 있을 거 아냐? 너 같은 녀석이 많아지면 남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병신들은 줄어들겠지.”
혹은 남을 괴롭히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을 하거나.
소위 문명인이라는 자들이 야만인보다 더 무례한 이유는 무례한 말을 해도 대가리에 도끼가 박히지 않기 때문이라던가?
폭력은 나빠요라고 교육받고 그것을 착실히 지키는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에게 희생당하는 상황은 과연 정당한가? 아니라는 것이 경완의 대답이었다. 그건 문명이 오히려 야만을 권장하는 행태가 아닌가?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준법정신이니 법치주의니 하는 핑계로 정당화하는 인간을 경완은 혐오했다.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들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것들이 인간의 머리 위에 올라타 주인이 되는 걸 경완은 용납할 수 없었다.
도구에서 주인이 되어버린 것들은 주인이었던 인간을 물화(物化)시키고 노예로 만든다. 경완 역시 인간이었기에 그 대상이 될 것이고 경완의 광기는 그러한 억압을 참아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경완은 사회가 정한 규범을 벗어나서라도 원한을 갚은 정엄문의 용기를 인정했다. 혹자는 복수를 정의(正義)로 정당화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디테일한 부분을 살피지 않는 안이하고 게으른 태도에 불과했다.
왜 복수물이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가?
그것은 악이 징벌 받고 정의가 구현되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않은 현실에서 정의에 대한 갈증이 대리만족으로써 해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정엄문에게 한 마디 했다.
“하지만 방법이 멍청했어.”
“.. 멍청.. 했다고?”
“여기 소년원에 들어갈 짓을 하지 않더라도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지.”
정엄문이 표정이 딱딱해졌다.
“.. 네가 뭘 안다고?”
“너도 지금은 잘 알걸? 소년원에 들어오지 않는 방법으로도 놈들의 괴롭힘을 막을 방법이 있었다는 걸.”
그 말에 정엄문이 별안간 폭발했다.
“없어! 없었다고! 씨발! 선생이라는 새끼들은 귀찮은 표정을 짓고 나한테는 문제가 없냐고 이 지랄을 떨지! 아비라는 씨발놈은 바람나서 집에 들어오지도 않지! 애미라는 년은 교회에 미쳐 가지고 기도하면 다 잘 될 거라고 개소리나 하지! 내가 뭘 더 어쨌어야 하냐고!”
폭발한 그를 보며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니야!”
“그딴 정신머리로는 또 여기 들어온다. 아니지. 그때쯤이면 성년이 됐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교도소로 가겠네.”
“···..”
말없이 노려보는 그를 보며 경완은 자신을 따라하라는 듯이 입꼬리를 광대뼈로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웃어. 활짝. 좆같은 새끼들은 네가 그렇게 열폭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치며 오히려 좋아하며 조롱할거야. 놈들이 싫어하는 짓을 해야지.”
경완의 모습에 정엄문은 언제 화를 냈다는 듯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새끼는.. 뭔가 다르다.
그런 그에게 경완은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을 인정하자고. 네가 그렇게 당했던 건 약해서 그랬던 거야. 무지는 곧 나약함이지. 여기서 많은 걸 공부하고 배운 네가 지금의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도 똑같이 할래?”
정엄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인터넷 세상이었다. 증거를 모아서 경찰, 경찰 아니면 기자에게 찔러 이슈를 만들기만 해도 일진에게서 괴롭힘 당하는 상황을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상황만 벗어나랴? 놈들에게 금융치료란 응징도 가할 수 있었다. 퇴소를 앞두고 자본주의 정글에 던져질 미래가 불안한 정엄문으로서는 놈들의 면상에 주먹질을 하는 통쾌함보다 금전이 더 달달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게 죄인 거야. 당하는 놈도, 저지르는 놈도 말이야.”
양심도 지능을 따라간다. 자본주의 사회에 정보화 인프라가 결합하는 현상이 가속될수록 점점 신용이 중요해진다. 그런 사회에서 자신의 신용을 갉아먹는 짓이 제 살을 갉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양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이라는 것 역시 깨닫지 못한다.
돈과 권력, 명성은 함께 가는 것이다. 명성을 잃을 짓을 하면 돈과 권력에도 타격을 받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의 원리였다. 이 원리를 거역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끝내 붕괴했다.
정엄문은 분노가 수그러들고 조금 민망한 기색으로 경완에게 물었다.
“그렇게 잘 아는 너는 여기에 왜 있는데?”
“푸흐흐!”
정엄문은 경완이 갑작스레 웃자 의아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유 없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한편, 경완은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새삼 자각했다.
방법이 멍청했다고? 과연 정말 멍청했을까? 만일 독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평생 가슴속에 가시가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남은 정엄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 흉터가 어떻게 마음을 일그러뜨렸을까? 트라우마라는 개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완은 잠시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소년원에 들어오게 된 일련의 경험이 지금의 정엄문이란 인간을 존재할 수 있게 했는지도. 확실한 건 인간은 결코 시련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인간은 시련이 없으면 결코 변하지 않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시련을 달갑지 않아 해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란 존재가 쉽게 변할 수 있겠는가?
경완이 지적했던 '멍청하지 않은 방법'이란 결국 사회의,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효율적이고 똑똑한 방법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일까? 적어도 경완의 관점에서 자신의 조언은 시련의 극복하라는 말이 아니라 회피하라는 말에 가까웠다.
적어도 삶이란 이름의 시련을 진지하게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경완이 가장 가혹했던 시기에 용기 낸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좀먹는 분노에 불과 할지라도 말이다.
경완은 이러한 긴 사유를 한 단어에 압축했다.
“멍청해서?”
“···..”
정엄문은 다른 건 모르지만 경완이 지독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 = = = =
인연이란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다. 가끔 바위처럼 그곳에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끊임없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소년원만큼은 아니었다.
정엄문이 퇴소하고, 이천수라는 녀석이 퇴소하고, 강원래라는 녀석이 퇴소하고, 마침내 경완이 퇴소하는 날이 왔다.
고 원장은 이례적으로 경완을 불렀다.
“내일 나가는구나.”
“그동안 잘 먹고 편안히 잘 지냈습니다.”
경완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고 원장은 헛헛하게 웃었다.
“답답해하는 녀석은 봤어도 너 같은 녀석은 본 적이 없다. 좁은 방이 답답하진 않았니?”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는 티끌에 불과하고, 인간은 그 지구 위에 존재하는 티끌보다 못한 존재죠. 좁은 방이나 저기 강남 타워 팰리스나 티끌에 불과합니다.”
“언제부터 그런 우주적 인생관을 가졌니?”
고 원장이 경완의 말을 받아쳤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골 때리는 녀석과의 선문답을 제법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감방 안에 누워있든 스위트룸에 있든 길거리에 나자빠져있든 결국 마음에 달린 문제라 이겁니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그 다음은 자기 욕심에 달린 거죠.”
경완의 말은 도저히 그 나이 또래에서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고 원장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노숙자가 될 생각이냐? 차라리 절에 들어가라니까.”
“예에~, 예에.”
귀찮아서 대충 대답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고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녀석과 자신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더 뭐 해줄 생각도 없었다. 맹랑하기만 하고 재미는 있었지만 예쁜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럼 잘 가라.”
“네.”
“남한테 폐 끼치지 말고.”
고 원장이 소년원을 나가는 아이들에게 항상 바라는 점이었다.
경완이 원장실을 나가자 고 원장은 경완이 2년 동안 쓴 일기를 최근의 것부터 다시 살폈다.
-이 소년원의 애새끼들은 하나 같이 대가리에 나사가 빠졌는지, 아니면 붕어랑 합성된 뮤턴트인지 했던 말을 또 해도 당최 알아먹질 못한다. 꼭 쳐 맞아야 기억을 하는 걸까?
-하루 종일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놈의 선생들은 계속 앉아있으라고 한다. 앉는 자세가 허리에 얼마나 안 좋은데.
-물구나무 서는 걸 보고 뭐라 하는 룸메 새끼한테 욕설을 한 바가지 퍼부어줬다. 맨날 헐벗은 걸그룹이나 보고 헤벌래해서는 밤에 화장실 가서 몰래 딸딸이나 치고 있는 걸 눈감아 줬더니 아주 그냥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다.
-이 시설의 선생들은 냉정해서 아주 좋다. 서로 할 일만 하고, 지킬 것만 지키니 잡음이 나지 않는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란 말인가?
-원장샘이 자꾸 이런 시험 저런 시험 치라고 권유하는데 아주 그냥 귀찮게 죽겠다. 어차피 노숙자가 되겠다는데 그런 자격증이 무슨 소용일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 미련을 머리카락에나 좀 쏟지.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