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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2화 (12/367)

011-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기분이 팍 상해버린 고 원장이 일기장을 탁 내려놓았다. 분명 보라고 적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2년 동안 소년원에서 지난 경완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그 태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몇 달의 시간에도 내면의 변화가 일기에서 느껴지는데 경완은 그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소년의 장래를 걱정하던 고 원장은 이내 그에 대한 관심을 끊기로 했다. 인연은 여기까지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소년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 = = = =

일련의 행정절차를 마치고 소지품을 돌려받은-딱히 소지품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경완은 소년원을 나섰다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내를 만났다.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인 그를 청소년 보호시설로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말단 복지사였다.

그가 경완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간 곳의 이름은 행복원.

경완이 들어가게 된 보호시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름만큼 그리 행복해 보이는 것 같진 않았다.

“사고치지 마라.”

행복원의 원장은 무척 사무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네.”

경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관심은 그도 사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온 이경완이라는 친구다. 서로 잘 지내라.”

원장의 소개에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아이가 경완에게 다가왔다.

“이철이라고 한다. 잘 지내보자.”

“응.”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철이라는 고등학생 형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보호시설이랍시고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 듯이 좋아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유유상종이라지 않은가? 아무래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니 공감대 형성도 쉬울 터였다.

보호시설의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면 원장의 운영 방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가 알아서란 큰 틀 안에, 원장의 권위를 빌은 이철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안에 몇 개의 무리들로 나뉘어 서로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 나뉘는 기준은 여자와 남자이거나, 학년, 학교, 또는 관심사나 공부 등으로도 나뉘었다. 결국 인간은 유유상종. 서로 공통점이 있는 이들끼리 뭉치기 마련이었다.

거기서 경완은 아웃사이더를 택했다. 동갑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굴러들어온 돌을 순순히 반길 리가 없었고 경완도 딱히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철은 그런 경완을 보며 좀 친하게 지내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경완은 다음과 같이 대꾸할 뿐이었다.

“열심히 살려고 마음먹은 애들하고 나같이 대충 살려고 마음먹은 애들하고는 섞일 수가 없어.”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빨리 철든다. 세상이 보호자가 없는 자신들에게 얼마나 가혹할지 짐작한 그들은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가짐은 그냥 빙의한 김에 살아가는 경완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완의 대답에 이철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는 간섭할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살 지는 자신이 정해야 하니까. 이철은 경완에게 신경 쓰기엔 이미 자신의 삶도 버거웠다.

하지만 이 시설의 맏형으로서, 또한 문제가 일어나면 자신도 힘들어지므로 경완에게 미리 경고했다.

“같이 생활하는 사이에 문제가 일어나면 안 돼.”

“규칙은 지킬게. 하지만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 자신 없어.”

“선만 넘지 않으면 돼.”

이철은 다행히 경완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자 작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완이 이 보호시설에 대한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반찬이 부실하네.”

소시지 몇 개에 풀때기와 김치 조각과 맑은 국이 다라니.. 소년원의 밥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런 경완의 투정에 배식하는 여자아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그럼 처먹지 말던가.”

거친 입담에 경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굶을 수는 없지.”

그러고는 당당히 아침을 받아가 갔다. 배식하는 여자아이가 그런 경완을 흘겨보았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의 의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별꼴이야 정말.

경완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대신 온라인 대안학교에 등록해 검정고시를 보는 과정을 신청했다. 원장이 권유한 프로그램인데 경완은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뭐, 원장이 교복값이니 물려 입은 교복 수선비니 하는 값들을 아끼려는 눈치였기에 원만한 시설 생활을 위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학교에 다녔다면 적어도 더 풍족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 경완의 후회였다.

“다녀오마.”

“잘 다녀오시오.”

교복을 입은 이철이 가방을 매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경완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로 간 보호시설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하지만 경완은 그 쓸쓸함이 마음에 들었다.

잠시 돌아다니며 빈 공간을 구경하던 경완은 밖으로 나가던 원장과 마주쳤다.

“여기서 뭐하니?”

“산책이요.”

하긴 학교를 안가니 그럴 수 있었다.

“검정고시 준비는?”

“뭐 적당히 보면 되지 않을까요?”

경완의 대꾸에 원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왜 너에게 검정고시를 제안했는지 아니?”

원장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넌 많은 것이 없다. 네게 있는 건 젊음뿐이고, 그걸 희생시켜서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다져야해. 최대한 빨리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사회에 나가 일을 해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뼈 때리는 소리였지만, 경원의 삐딱한 생각으론 고등학교를 보내주기엔 돈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명색이 보호시설인데 애를 중졸로 민증 나오게 할 순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경완은 솔직히 대꾸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바쁘신 거 아니셨어요?”

“.. 내 말 명심해라.”

“네.”

대답만은 잘하는 경완이었다.

원장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경완은 그의 당부를 바로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계속해서 이 미지의 시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빨래방, 부엌, 화장실, 공부방 등 사람이 없는 사람의 공간은 그의 마음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람 없는 곳이 좋다면 사람 없는 자연은 어떤가 싶겠지만 개소리다.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적대적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역시나 인간이 인간의 편의에 맞게 개조한 환경인 것이다.

“하지마!”

경완의 귀에 날카로운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학교 안 간 애들이 있는 건가?

부모도 없는 것들이 등교거부라.. 그 미래가 뻔하다고 경완이 혀를 쯧쯧 차며 반대편으로 걸어갈 때 그의 귀에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왜 자꾸 튕겨? 너도 기분 좋아진다니까.”

“지랄! 하지마!”

경완의 발걸음이 소란이 이는 쪽으로 향했다. 뭔가 문제가 발생해서 자신까지 귀찮아지기 전에 막아야겠지 않겠는가? 사건 조사한다고 사람들이 드나들면 반찬이 부실해질 수도 있었다.

경완이 도착한 곳은 여자아이들 숙소 근처의 샤워실이었다. 그는 한 소년이 한 소녀의 손목을 잡고 벽에 밀어붙인 채 성희롱을 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어린 성범죄자님. 여기 보세요.”

“아, 씨발.”

소년답지 않은 면상의 소년은 경완을 보고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뭔가 고민을 하다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경완에게 제안했다.

“형도 같이 할래?”

그 말에 경완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뭘?”

“알면서 그래?”

경완의 시선이 빨개진 얼굴로 치마를 누르고 있는 소녀에게 향했다. 경완이 액면가가 매우 높아보이는 면상의 소년에게 시선을 돌리며 미소와 함께 물었다.

“너 학교에서 이런 짓은 나쁜 짓이라고 배우지 않았어?”

“어차피 이년도 몸이나 파는 걸레년인데 좀 따먹는다고 뭐가 나빠?”

“하하하.”

경완이 웃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소년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뭐.. 형이 먼저 한다면 양보해줄게.”

경완은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막지 않고 물었다.

“푸하하! 너 네가 이런 짓하는 거 느그 엄빠도 알고 있냐?”

그 말에 소년의 표정이 도저히 소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번에 일그러졌다. 소년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씨발! 한 살 많다고 형 대접 해주니까 간덩이가 부었나!”

한 살 차이의 경완과 소년의 체격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지도 애비애미 없는 주제에!”

소년은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 패드립을 경완에게 되돌려주었지만 타격은 제로였다.

그는 오히려 싱글벙글 보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요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소년을 도발했다.

“안 덤벼?”

“씨발!”

소년은 달려들 것 같이 확! 하고 한걸음 다가오더니 경완을 피해 사라져버렸다.

경완은 남겨진 소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존나 시크한 남자를 연기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더 이상 얽히기 싫었을 뿐, 그의 마음 씀씀이는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하지만 그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 경완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밤 산책을 했다. 본인은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몸이 찌뿌둥했다. 게으른 의지를 배반하는 육체의 부지런함에 경완은 '이러면 나가린데'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움직이면 힘이 들고 힘이 들면 먹어야 한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을 노숙자가 되고서도 몸이 부지런을 떨면 어떡하지?라는 병신 같은 고민을 할 때 경완의 귀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악! 악!'

퍽퍽 이불을 찰지게 때리는 듯한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자 경완은 차라리 소년원이 더 나았다고 속으로 혀를 찼다. 하여간 어른 좀 없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다.

평화로운 보호시설 생활을 원하는 경완은 이 일이 이 시설의 불문율인지, 아니면 자신마저 휘말려 귀찮게 될 사고인지 파악하기 위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갔다.

그리고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내가! 그 새끼들하고! 어울리지! 말랬지!”

퍽! 퍽!

“악! 악!”

이 시설의 맏형, 이철이 달걀만한 굵기의 몽둥이를 쥔 채 벽을 짚고 돌아서있는 누군가의 둔부를 후려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고야.”

이철이 몽둥이를 내리며 자신이 때리고 있던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이 엉덩이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며 그를 보자 경완은 그 소년이 오늘 오전에 보았던 강간 꿈나무임을 알아보았다.

이철이 그 소년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새끼들처럼 살면 인생 망한다.”

“.. 어차피 망했잖아?”

“정고야!”

이철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때 정고가 모퉁이로 머리를 내밀며 구경하고 있던 경완을 발견했다.

자신을 향하던 정고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 걸 느낀 이철이 고개를 돌리자 경완과 시선이 마주쳤다. 경완은 손을 흔들며 인사하며 말했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리고는 태연하게 그 자리를 떴다. 보아하니 사고가 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철과는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같은 방을 쓰는 룸메였으니까.

“고맙다.”

이철이 뜬금없이 감사의 말을 하자 경완은 무슨 의미인지 감을 잡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모른척했다.

“뭘?”

“녀석이 나쁜 짓 하는 걸 막아줘서.”

“보아하니 언제고 또 지랄 할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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