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4화 (14/367)

013-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경완은 우연히 귀에 들려온 음습한 대화에도 나서지 않았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본인의 역량에 달려있었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정고의 말이 100% 거짓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다만 정고가 달달한 꿀이라는 듯이 설명하는 시나리오대로 성공하는 사람이 열에 하나라도 후할 뿐.

제안을 받는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는 걸.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가 선택의 갈림길이라는 걸.

요즘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점점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고, 일부는 거칠어졌다.

다만 언제나 냉정함을 보였던 원장의 카리스마가 시설 내에서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지침을 아이들의 머리속에 떠올려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은 오래가지 않아 끊어지고 말았다.

'꺄악! 누, 누가 좀 도와줘요! 읍!'

어떻게 배곯지 않는 노숙자가 될 수 있을까? 노숙자 복지가 어디 지역에 가장 잘 되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의 쓰레기 같은 고민은 하며 밤산책을 하던 경완의 귀에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자신한테까지 불똥이 튈만한 간 큰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또 너냐?”

경완은 정고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놈에게 붙잡혀 있는 여학생을 보며 또 입을 열었다.

“또 너고?”

여학생은 경완의 시선을 피하며 옷을 추슬렀다. 그런 그녀를 보며 경완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너는 쟤 싫어하는 거 맞냐? 정말 싫으면 칼을 숨겨 놨다가 배때기에 콱 쑤셔버리기라도 하면 되잖아?”

“야. 씨발, 입조심해라.”

바지를 추스르던 정고가 이를 갈며 경완에게 경고했다.

경완은 고작 한 살 더 처먹었다고 손윗사람 대접을 바라는 꼰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정고의 경고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사기도 세 번 당하면 본인 잘못이다. 그 정도로 넌 멍청한 거니? 아니면 쟤한테 정말 몸이라도 줄 마음이 있는 거니?”

“내가 입조심하라고 했지?”

정고가 바지를 다 추스르고는 일어나 으르렁 거렸다. 그때 여학생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저 새끼 뒤에 무서운 사람들이 있어요. 흑! 거절하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는데?”

경완이 대답해보라는 듯이 정고를 보자 그는 목과 어깨를 풀며 침을 뱉었다.

“퉷! 어쩌라고?”

“뻔뻔하네?”

“뻔뻔한 건 저년이지. 내가 씨발 잘 먹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얼마나 공들여 설명을 했는, 억!”

경완이 말을 듣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놈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평소에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조용히 있던 경완이 말하는 중간에 기습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정고는 무방비로 맞은 음낭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며 주저앉았다.

그런 정고를 보며 경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더 들으려고 하니까 달팽이관이 썩다 못해 귀에서 고름이 나올 것 같아서 못 듣겠더라.”

양아치가 남 생각을 한다니? 고양이가 쥐 젖먹이며 키운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이, 이! 씹새끼가!”

존나 아파서 눈을 희번덕거리면서도 가오를 잡는 모습은 경완이 그래도 사정을 봐가며 걷어찼다는 증거였다. 알이 터졌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유자체가 없을 테니까.

경완이 물었다.

“너 철이 형은 무슨 얼굴로 보려고 자꾸 이런 사고를 치는데?”

“안 볼 거야, 이 씹새야!”

정고가 벼락같이 일어나 달려들었다.

하지만 경완은 이미 그러한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옷깃을 붙잡으려는 녀석의 손목을 쳐내며 다리를 걸었다. 그리고는 제풀에 나동그라진 놈을 열심히 밟아댔다.

“우리! 모두! 다함께! 탭댄스를! 춰봐요! K팝! 문화강국! 두유! 노우! 싸이! 렛츠! 홀스 댄스!”

“으아아!”

짓밟히던 놈이 악을 쓰며 일어나 달려들었지만 냉정해도 감당하기 힘든 경완의 기술을 흥분한 놈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고는 다시 나동그라져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밟히고 또 밟혔다.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졸지에 야밤의 체조로 힘을 빼게 된 경완은 밟다가 열이 뻗쳤는지 한층 더 가열차게 놈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

“커억!”

소란이 그쯤 되자 아이들이 나타나고 원장도 나타났다.

“이게 뭣들하는 짓이야!”

원장이 소리를 질렀다.

= = = = =

원장은 경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는 정고를 보며 물었다.

“정말이냐?”

“···.”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피해자를 데려와 대질심문을 시키면 바로 거짓말임이 들통날 테니 말이다.

원장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말이 없는 정고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사실이냐고!”

“에이! 십팔!”

정고는 욕설을 거하게 내뱉으며 그대로 원장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정고의 모습에 원장은 한숨을 내쉬며 뒷목을 잡고 의자에 기댔다.

그런 원장을 보며 경완이 물었다.

“경찰 부를까요?”

“··· 뭘 불러?”

“이 정도면 상습범이잖아요. 콩밥 먹여야죠.”

경완의 말은 정론이었다. 하지만 원장은 그저 경완을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경완은 그의 표정에 섞인 곤란함을 개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신고할까요?”

“하아.. 소용없다.”

“뭐가요?”

“경찰은 믿을 게 못 돼.”

“와우.”

청소년 보호시설 원장이라는 인간이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랄 수밖에.

“정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경찰하고도 연관이 있어요?”

경완의 물음에 원장은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일축했다.

“··· 넌 몰라도 된다.”

죄책감마저 섞인 듯한 음성에 경완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 가는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원래 깡패와 치안기관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 수밖에 없어서 서로 이해타산이 맞는 상황이 되면 악어와 악어새처럼 짝짜쿵을 맞출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강남클럽에서 약을 빨아도, 물뽕 몰래 먹여 강간해도 '우리 귀하신 기득권 자제분들의 깨끗한 이력서'란 대의명분(?)을 위해 관할 경찰서와 클럽을 운영하는 조직이 입을 맞추니, 그 수준이 발정 난 연인들의 프랜치 키스, 설왕설래 저리가라 할 수준이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이 시설에 얽힌 두 조직 간의 이해관계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비슷하리라. 그러니 원장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추론이 사실이라면 정고 그놈과 그놈의 뒤를 봐주는 조직을 고발해봤자 정의구현이 제대로 될 거란 기대는 하기 힘들 뿐더러 오히려 시설만 손해를 본다. 그들이 주는 돈이 더러워도 돈은 돈이었다.

“그만 가봐라.”

“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방을 나왔다.

이후 정고는 시설에 돌아오지 않았다. 원장도 굳이 찾지 않았다. 엇나간 놈 하나를 위해 다른 아이들을 방치할 순 없었다. 원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이 시설을 나가서도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뿐이었다.

설령 그곳이 방심하면 언제든 손가락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장이라도, 직원을 가좆같이 다루는 가좆회사라도, 화류계에 몸담거나 깡패나부랭이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었으므로.

고로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졸이 된 경완에게도 반강제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제빵이나 요리가 좋지 않겠니? 굶긴 힘든 직업이니까.”

“음..”

경완이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자 원장은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럼 공장은 어떠니? 기술을 배워 놓으면 먹고 살 길이 그리 힘들진 않을 거다.”

“흐음···.”

그것 역시 자본주의 사노비행이라 경완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경완을 보는 원장의 시선이 점차 냉랭해졌다. 시설 내에서의 사고를 막은 공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눈치 챈 경완이 얼른 대답했다.

“요리할게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실습하면서 맛있는 거나 실컷 먹자는 생각이었다. 그제야 원장은 경완을 여느 아이들을 보는 시선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경완에 대한 아이들의 경계심, 혹은 경원시 하는 태도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친근해진 건 아니지만 피해자였던 미연이란 이름의 여학생이 경완의 편을 들어준 덕분이었다. 그녀 말에 따르면 그냥 경완이 독특한 성격에 숫기가 없고 낯을 가려서 그렇다나?

아무튼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납득했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결코 미연을 돕지 않았을 테니까. 거친 세상에 부모라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경완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그 사건을 약점 삼았을 가능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미연은 아침을 배식하다 경완과 마주하자 감사 인사를 했다.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고마우면 고기 좀 더 줘.”

“안돼요.”

“흐음.”

단호한 거점에 경완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미연은 얼른 이유를 설명했다.

“정량 배식을 안 지키면 싸움 나요.”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먹는 문제만큼 원초적이고 예민한 것도 없었다. 아이들이 예민해질 만도 하지.

정량 배식으로 아침을 먹은 경완은 요리학원에 가는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요리학원에 다니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 중 최연장자는 경완보다 한 살 나이 어린, 조금 통통한 체형의 여학생이었다. 이름은 선미.

경완은 아이들을 통솔하는 그녀의 리드를 얌전히 따랐다. 나이가 좀 많답시고 꼰대질을 하지 않고, 그녀의 리더 자격을 인정하며, 조용히 그녀의 지시에 따라 학원을 드나들자 경완에 대한 평판이 좀 더 유해졌다.

덕분에 아이들로부터 실습의 결과물도 종종 제공 받게 된 그가 요리학원을 다니게 된 지 약 일주일 쯤 되었을 무렵.

“여. 보기좋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껄렁해 보이는 양아치 둘이 일행에게 접근해왔다. 요리학원과 보호시설을 오가는 길이지만 하필 주변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경완은 두 껄렁한 양아치 뒤에 있는 노란 머리를 놓치지 않았다.

“정고야. 아는 사람들이니?”

누가 들었다면 친형제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였다. 정고는 경완이 자신을 알아보자 조심스럽게 껄렁한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그런 정고를 보며 껄렁한 태도의 한 놈이 입을 열었다.

“경완이 누구냐?”

“글쎄요.”

경완이 마치 자신은 경완이 아닌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선미를 비롯한 아이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모았다. 뻔뻔하다 못해 여유롭기까지 한 모습이 오히려 상대를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도발이라니?

그런 경완의 태도는 껄렁한 두 덩치를 실소 짓게 했다.

“허. 이 새끼 앙큼한 것 좀 봐라.”

“성깔 있다고는 들었는데 요망하기까지 하네.”

말하는 걸 듣자하니 경완이 누구인지 이미 확실하게 특정하고 온 모양이다.

“저.. 저희는 먼저 가봐도 돼죠?”

선미가 저보다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듯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물론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경완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녀는 두 청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속보로 얼른 자리를 떴다.

“이야~. 가스나. 참 의리 없네.”

그 신속한 결단력과 행동력에 경완은 감탄사를 터뜨렸지만 정작 원망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험한 세상이다. 희생할 줄을 모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특히 아무도 지켜줄 사람 없는 고아라면 더욱. 선미의 입장에선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을 확실히 구분해서 우선순위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결코 기분 좋은 선택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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