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그런 경완을 보며 양아치스러움을 벗지 못한 두 사람이 물었다.
“너 우리가 왜 왔는지 아냐”
“보아하니 별로 시답잖은 이유겠죠.”
경완이 턱 끝으로 정고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노란 머리 삼형제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란 머리. 어디 개나리 나무 밑에서 도원결의 따위라도 한 걸까?
경완의 담담한 태도에 두 사람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프하하하하!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난놈은 난놈이네.”
“어?”
웃던 그들은 뒤통수를 짱돌로 맞은 듯이 멍해졌다. 별안간 경완이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 거기서!”
서란다고 서는 병신은 온 세상을 뒤져보면 한 명쯤 나오겠지만 적어도 경완은 아니었다.
그는 정고의 등장에 두 양아치가 결코 호의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일행도 없어지고 홀몸이 되었으니 바보처럼 가만히 있다가 한 대 얻어터질 순 없었다.
맞는 게 겁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얌전히 맞을 리도 없었다. 그저 저런 똥과 엮이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일일 뿐이었다.
열심히 뛰는 경완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지자 자신의 게으름을 후회했다. 평소에 운동을 적당히 해왔다면 이렇게 뛴다고 숨이 차진 않았을 텐데..
맞서 싸운다는 선택지가 있기는 했지만 조폭 따까리하고 드잡이질을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까지 멈추지 못할 거라는 건 뻔했다.
그래서 경완은 열심히 뛰었다. 두 번 들이 쉬고, 한 번 푹 내쉬고. 굵은 대퇴부의 힘이 소실되지 않도록 무릎과 발목의 탄력, 엉덩이 근육까지 의식하여 쭉쭉 땅을 뒤로 밀었다.
머릿속엔 근방의 지도가 그려졌다. 어디에 있는 모퉁이를 언제 어떻게 돌아야 놈들의 시선을 벗어날 수 있는지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경완은 이윽고 정고를 비롯한 세 놈을 따돌리고 시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씹새끼가 어디로 간 거야!”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서 끝내 경완을 놓친 반건달 양아치가 노성을 질렀다.
= = = = =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경완은 자신이 겪은 일을 곧장 원장에게 일러바쳤다. 그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경완은 원장에게 그 정도까지의 능력은 없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원장에게 그 일을 알린 것인가?
“그래서 당분간 학원에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경완의 말을 들은 원장은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네가 여기 있으면 그들이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을까?”
“찾아오려고 했으면 진즉에 왔겠죠, 왜 길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어요?”
“하아~. 그건 그렇지.”
경완의 말에 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시설에 찾아오는 것은 원장 스스로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저들도 굳이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 그 선은 지키고 있는 것이고.
경완이 원장의 결단을 재촉했다.
“며칠 두고 보죠.”
“.. 일단 그러자.”
잠깐 고민하던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경완과 같이 요리 학원을 다니는 선미로부터 경완의 요리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가 그 결정에 한몫했다. 실력이 좋다면 며칠수업을 빼먹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뭔가 다른 수를 고민했을 것이다.
아무튼, 경완은 원장의 결정 덕분에 3일 동안 꿀을 빨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미연이 물었다.
“오빠. 안 불안해?”
“뭐가?”
“이것저것.”
미연이 말하는 이것저것이란 아마 정고와 놈이 데려왔던 양아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도 포함하는 것이리라.
사실 그녀로서는 열심히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에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완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런 그녀에게 경완은 인생의 진리를 설파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게 뭔지 아니?”
“뭔데?”
“시간 낭비.”
그러한 대답에 미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완은 그 시선에 담긴 경멸의 의미를 가볍게 흘려버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해야 할 일이 쌓여있을수록 더욱 사치스러워지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지성의 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 있었다. 현재를 인내하면 미래에 더 큰 과실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곧 미래가치, 기회비용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무궁한 가능성. 그 가능성을 허비하는 허송세월이야 말로 세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리라.
“그래서 오빠는 지금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네?”
“응.”
뻔뻔한 경완의 대답에 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버렸고 경완은 평화로운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을 얼굴로 받으며 명상에 잠겼다.
명상이란 자신의 내면을 살피며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경완에겐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명상을 하는 것은 그만큼 시간 때우기 좋은 방법도 없기 때문이었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모든 번뇌들을 멍하니 흘려보내고 나면 어느 새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의 내면에 떠오르는 번뇌의 대부분은 대부분 체념이었다. 그는 본인이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열심히 살기엔 많이 지쳐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번뇌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은 차마 놓지 못한 한줄기 희망이었다.
그는 그 희망을 저 멀리 내면으로 흘려보냈다. 체념도 희망의 뒤를 따라갔다. 희망과 체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희망하지 않는다면 체념이란 개념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희망과 체념이란 두 얼굴을 가진 미련을 흘려보내자 그것에 억눌려있던 욕망이 떠올랐다.
그는 떠오르는 욕망을 하나하나 고요한 심상에 녹여냈다. 빙산의 위를 녹이면 수면에 잠겨있던 부분이 올라오는 것처럼 하나의 욕망을 지우니 또 하나의 욕망이 모습을 드러냈다.
욕망을 녹여 흩어낼 때마다 오감이 희미해졌다. 성욕을 지우자 미각이 사라지고 수면욕을 지우자 청각이 사라졌다. 식욕을 지우자 후각이 사라지고 생에 대한 본능을 지우자 시각이 사라졌다. 파괴욕구를 지우자 촉각마저 사라졌다.
그렇게 오든 오감을 지우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속삭임 같기도 하고 간지럼 같기도 하며 희미한 빛이자 산뜻하고 은은한 맛과 향이기도 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수행한 수행자가 그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깨달음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스스로 확신했겠지만, 경완은 그러한 깨달음마저 흘려버렸다.
그럴수록 제6의 감각이 그를 유혹하듯 선명해졌다. 허나 그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잊어갔다.
산들바람이 불었다. 뿌리에서 떨어져 노랗게 말라비틀어진 풀잎과 흙먼지가 산들바람을 타고 그의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했다.
누가 봐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은 어떤 소년의 다급한 외침으로 흐트러졌다.
“경완이 형! 경완이 형!”
그와 동시에 무궁한 세계로 침잠해가던 경완의 감각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년을 보았다.
“왜?”
“정고 형이! 형 불러오래!”
“싫다고 그래.”
“하지만 선미 누나가...”
말꼬리를 흐리는 소년을 보며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소년을 모를 리 없었다. 같이 요리학원을 다니며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요리팀에 속한 아이였다.
“선미가 왜?”
“붙잡혀 있어.”
소위 인질이 있다는 말이었다.
경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인질극이라니 당하는 입장에서야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실행하는 입장에선 이보다 가성비가 좋을 수 없는 협상 수단이었다.
“가자.”
경완의 말에 소년이 앞장섰다. 하지만 이내 경완이 엉뚱한 곳으로 발걸음을 하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어디가!”
“잠시 들를 곳이 있어.”
경완은 말 그대로 잠시 어디를 들른 후에 선미 누나가 다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소년의 뒤를 따라 인질범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호시설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 드문 공터에서 그는 네 명의 남녀를 볼 수 있었다. 세 명은 이미 한 번 조우했던 정고와 형님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붙잡힌 선미였다.
“왔네?”
경완이 도착하자 그들이 마치 친구를 반기듯 경완을 반겼다. 하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주 우릴 좆뺑이 치게 만드셨어.”
“씨발 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몰라요.”
“몰라? 하! 이 씹새끼 말하는 거봐라.”
두 양아치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경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자 경완은 그대로 성큼성큼 뒷걸음질 쳤다. 놈이 오는 보폭과 정확히 똑같은 보폭으로 뒤로 물러나니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 새꺄! 일루 안 와?”
“그전에 잡은 애나 풀어주시죠?”
“야이 새끼야! 누굴 병신으로 알아?”
이미 그들은 경완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었다.
경완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내가 또 튈 거라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요.”
“씨발, 그게 아닌데?”
상식적으로, 대화의 순서대로 생각해보면 경완이 '어떻게 알았지?'라고 말한 순간 그들은 병신이 되었다. 하지만 경완은 그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자신은 그 뒤에 이어질 말, 혹은 생략된 말, 행간을 알아듣고 대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에도 양아치들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고 더욱 찜찜해지고 더러워졌다. 그래서 화를 냈다.
“이 씹새끼가 아직도 장난질이야!? 너 이리 안 와?!”
상식적인 사람은 뭔가 자신이 오해를 한 것 같으면 기분이 나빠도 그것을 내색하려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양아치는 그걸 사람을 가려가며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오해든 아니든 지들보다 센 놈한테는 헤헤 웃고, 자기보다 약하다 싶으면 인상부터 찡그린다.
“애부터 보내라니까요.”
경완은 상대가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 말에 경완에게 다가오던 양아치가 뒤를 돌아보며 친구인지 똘마니인지 모를 놈에게 눈치를 주었다.
“어이.”
놈에게 붙잡혀 있는 선미를 턱짓하자 놈이 선미의 배를 후려쳤다.
“컥! 흑!”
“누나!”
입이 벌어지고 침이 흘렀다. 숨을 들이 쉴 수 있을 만큼 고통이 가실 때쯤 선미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경완을 안내했던 소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가 정고에게 붙잡혔다.
그 모습에 경완은 혀를 내둘렀다.
“양아치네, 양아치야.”
“우리가 우리 물 먹인 새끼한테 말랑하게 굴 줄 알았냐?”
“약간의 체면이라도 차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양아치일 줄은 몰랐지.”
경완은 존대를 버리며 양아치를 비웃고는 곧장 정고에도 비웃음을 날렸다.
“야. 이게 니가 원하던 가오가 좔좔 흐르는 인생이냐?”
정고는 시선을 피했고 경완에게 양아치가 다가왔다. 경완은 이번에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형님들한테 얼마나 망신, 컥!”
경완의 멱살을 잡으려던 손끝이 옷자락에 닿는 순간 경완이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있는 양말이 허리춤에서 빠져나와 놈의 턱을 강타하자 놈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한 주먹이나 되는 폐건전지를 양말로 몇 겹이나 감싼 둔기의 위력은 상대보다 머리 반개쯤 작은 경완이라도 상대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완은 한방으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고 놈의 머리를 노려 연신 건전지 블랙잭을 휘둘렀다.
퍽! 퍽!
“억! 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