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선배 양아치들에게 맞는 방법이라도 배웠는지 팔로 머리를 감싸는 양아치였지만 경완은 그러한 가드를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양말뭉치가 놈의 무릎과 정강이를 때렸다. 비록 양말이라는 천에 몇 겹으로 쌓여있는 건전지지만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속성을 완전히 커버할 순 없었다.
“아악!”
통각이 몰린 곳을 단단한 것이 때리자 놈이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가리고 있던 팔이 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경완의 블랙잭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묵직한 블랙잭이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치자 반쯤 정신이 날아가 버렸고 두 번째로 귀 옆을 때리자 거의 실신했다.
“야이, 씨발 새끼야 멈춰!”
“꺄악!”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에 동료 양아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표정으로 멍청하게 있다가 경완이 재차 블랙잭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선미의 머리칼을 쥐고 흔들며 경완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완이 누군가? 당연히 그런 수작질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신 발밑에 쓰러진 양아치를 짓밟고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선미야. 내가 구해주지는 못하지만 복수는 오지게 해줄게.”
퍽! 퍽!
경완이 연신 정신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때리자 쓰러져 있던 양아치는 저도 모르게 애원했다.
“그, 그만! 제발!”
“뭘 네 맘대로 그만해? 이 병신 양아치 새끼야!”
경완은 양아치에게 자비를 베푸느니 차라리 예수나 부처에게 돌을 던질 인간이었다.
선미의 머리칼을 쥐고 있던 양아치가 보다 못해 선미를 던지듯 놓아버리고는 달려들었다.
“그만해, 이 씹새끼야!”
“싫은데에~. 메에~.”
경완이 혀를 내밀면서 달려드는 양아치를 약올렸지만 말과는 다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났고, 달려들던 양아치는 앞니와 윗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코와 그 주변을 일그러뜨리면서 칼을 꺼냈다. 팔뚝에 새겨진 해골 문신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경완이 혀를 내둘렀다.
“요즘 양아치는 칼이 패시브냐?”
“닥쳐!”
해골 문신의 양아치는 경완의 도발에 분개했다. 당장에 달려들고 싶었지만 놈과 경완 사이에는 쓰러진 동료가 있었다.
경완이 쓰러진 양아치 동료의 머리를 로우킥으로 후려차며 해골 문신을 도발했다.
“안 덤벼? 이러다가 니 친구 맞아 죽겠다.”
경완의 눈에는 양아치 건달에 불과했지만 해골 문신도 제법 싸움에 이골이 났다. 동료가 한 방에 쓰러진 것을 본 이상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완은 그 신중함을 향해 로우킥으로 도발했다.
퍽!
허리까지 사용한 깔끔한 로우킥에 쓰러진 양아치의 콧잔등이 경완의 발등에 밀려들어갔다. 코의 연골이 뭉개지는 고통에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얼굴을 감싸며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경완은 그 버둥거림에 혹여 발이 걸릴까봐 조금 뒤로 물러났고 해골 문신의 양아치는 그것을 기회로 받아들였다.
“죽엇!”
놈이 쓰러진 동료를 성큼 뛰어넘으며 경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칼끝이 쭈욱 내밀어지며 경완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놈이 동료를 성큼 뛰어넘는 바로 그 순간 경완이 손에 들고 있던 폐건전지 블랙잭을 던졌다.
피할 수 없는 순간, 짧은 거리를 날아간 건전지 뭉치는 정확히 놈의 안면을 강타했고 연이어 경완의 깔끔한 옆차기가 놈의 울대를 강타했다. 묵직한 물건에 안면을 강타당해 멍해지고 시야도 축소된 놈으로서는 그 옆차기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케액!”
숨이 막히고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용케 칼을 놓치지 않는 정신력은 양아치치고는 훌륭했지만 경완이 그의 배후로 돌아가는 것까지 알아차릴 정신은 없었다.
퍽!
“끄륵!”
사타구니에 발등이 박히는 소리와 함께 해골 문신의 양아치가 거품 물고 바닥에 얼굴을 꼴아 박았다.
경완은 떨어진 양말 덩어리를 들고는 휘휘 돌리며 정고에게 다가갔다. 정고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붙들고 있던 소년을 놓아줬다.
경완이 그런 정고의 어깨에 한손을 올렸다. 경완은 움찔하는 소년을 보며 물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말해줄래?”
“···.”
그 물음에 정고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말해줄 수 없는 이유가 있는지 잔뜩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경완에겐 굳이 입이 아니라도 대답을 듣는 방법이 있었다.
그는 우선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서 상상력을 발휘해봤다. 그가 양아치와 얽힐 이유로는 정고 밖에 없었다. 그가 정고와 얽히게 된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미연이 때문이지?”
“···.”
정고는 대답이 없었지만 굳어진 신체 상태는 충분히 Yes라고 대답했다.
“혹시 그 새끼들이 미연이를 데려오라고 한 거야?”
“···.”
이번 반응도 예스.
“그래서 넌 놈들이 미연이 따먹기 전에 네가 먼저 따먹어 보려고 한 거고?”
“···.”
이 대답에도 예스.
“그런데 내가 방해했고, 저놈들에게 나를 치워야 미연이를 데려올 수있다고 야부리를 깐거지?”
“.. 꿀꺽!”
정고는 굳어버린 표정으로 경완의 미소를 마주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도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개새끼.”
이야기를 듣던 선미가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고 경완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정고는 그 미소가 무서웠다.
“재밌네. 넌 참 재밌는 놈이야.”
“자, 잠깐!”
경완이 그대로 어깨를 쥐며 블랙잭을 쥔 손을 들자 정고가 당황하며 외쳤지만 그 외침이 무색하게 그대로 둔중한 무게감이 안면 위로 떨어졌다.
퍽!
“아악!”
퍽! 퍽!
“넌 참 재밌어.”
“악!”
“참 재밌는 애야.”
“그만!”
“싫엉.”
퍽! 퍽!
블랙잭이 정고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경완이 휘청거리는 놈의 어깨를 잡아 흐트러지는 균형을 잡아주며 즐겁게 웃었다.
“푸하하하!”
그리고 다시 손을 휘둘렀다.
퍽! 퍽!
“오, 오빠! 그만해!”
이러다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아 선미가 다급히 말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경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뭐야? 아직 안 갔어?”
“가긴 어딜 가, 바보야!”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위험을 감수한 경완을 버려두고 갈만큼 선미는 양심 없는 소녀가 아니었다.
그런 착해빠진 소녀를 보며 경완이 혀를 찼다.
“쯧쯧쯧.”
“왜?”
“좀 약게 살아라. 골치 아픈 일에 얽힐 것 같을 땐 멀찍이 물러나는 게 최고라고.”
경완의 개소리를 더 들어주지 못한 선미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암튼 빨리 가자!”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솔직한 바람이었고 광기 어린 흥분이 순식간에 식어버린 경완은 정고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얼른 시설로 돌아왔다.
뒷일 감당하기가 좀 걱정되기는 했지만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다. 일이 커져봤자 기껏해야 교도소 같은데 들어갈 뿐이었다.
그가 선미와 효군이라는 이름의 소년과 시설로 돌아온 지 며칠 뒤, 시설은 난리가 났다. 붕대와 깁스, 목발까지 한 양아치 둘과 그 둘의 어깨에 팔을 걸친 떡대, 눈팅이밤팅이가 된 정고, 거기다 경찰까지.
원장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싶었다.
그는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경완을 불렀다.
“경완아! 야이~! 어우 경완아!”
명색이 보호시설의 책임자였기에 골치 아픈 일을 만든 경완을 향해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삼킨 원장은, 아마 보는 눈이 없었다면 바로 욕설을 내뱉었겠지만, 경찰 앞이라 욕설 대신 목소리를 높여 경완을 불렀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기에 경완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똘똘한 시설의 아이들은 경완에게 원장이 그를 부른다는 사실을 전달해주었다.
“부르셨어요?”
경완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원장이 뭐라고 하기 전에 팔뚝 전체에 문신을 한 떡대가 끼어들었다.
“네가 우리 애들 개 패듯이 팬 새끼냐?”
“우리 애라뇨?”
“얘들.”
떡대가 자신이 어깨동무한 두 환자를 턱 끝으로 차례로 가리켰다.
그 말에 경완은 이렇게 말했다.
“엄청 동안이시네요.”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은 떡대가 잠시 머릿속이 혼란해져 있는 사이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저렇게나 장성한 아드님이 둘이나 있고, 일찍 결혼하셨나봐요?”
“.. 허허허. 이거 맹랑한 놈일세?”
그제야 경완이 말장난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떡대가 환하게, 그러나 그를 알고 있는 이라면 살벌함을 느끼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경찰이 끼어들었다.
“이경완 군? 맞나?”
“네.”
“자네가 저들을 저렇게 팬 것도 맞나?”
“팼다니요? 싸웠는데요?”
“그래서 팬 거 맞잖아.”
“경찰 아저씨. 저는 쌍방을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쌍방?”
“이게 뭔 개소리야?!”
경찰이 뜻하지 않은 주장에 어리둥절했고, 문신 떡대는 눈알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애들은 반병신이 되었고 저놈은 저리 멀쩡한데 쌍방이라니?!
하지만 경완은 태연했다.
“설마 경찰 아저씨는 제가 저 건장한 남성 셋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 비현실적인 추론을 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실일 리가 없잖아요?”
“그럼 넌 왜 다친 곳이 없는데?”
“잘 피했으니까요. 한 대라도 맞았으면 그대로 붙잡혀서 두들겨 맞고 지금쯤 병원에 있었을 걸요?”
그럴싸한 변명에 경찰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무기를 썼다는 증언이 있다.”
“그냥 양말에 건전지 좀 넣어 갔어요. 아무리 상대 대가리가 많다고 하지만 피를 볼 순 없잖아요? 그런데 넣어가길 잘했죠. 저쪽에선 칼을 뽑았거든요.”
그 말에 경찰이 인상을 찌푸리며 떡대를 보았다. 떡대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증거 있어?”
“증인은 있죠. 댁 아드님들이 저를 부른답시고 납치했던 애가 있거든요.”
“야이 새꺄! 아들 아니거든!”
제발이 저려 엉뚱한 소리에 반박하는 걸로 화제를 돌리는 떡대를 향해 경찰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골치 아픈 일이지만 대충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들으면 들을수록 더 골치 아픈 일이 아닌가?
“일단 경찰서로 가서 이야기하자.”
까딱하다간 혼자 독박 쓰게 생겼다고 판단한 경찰관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당연히 떡대는 반발했다.
“아니!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팼는데 안 잡아갑니까?”
“쓰읍! 경찰서 가서 얘기하자니깐.”
경찰이 인상을 쓰자 떡대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건달 양아치에게 공권력은 쥐약이었다.
“이름.”
“이경완이요.”
“나이.”
“근데 저 용의자로 잡혀온 거예요, 아니면 참고인으로 온 거예요?”
“나이.”
“용의자에요, 참고인이에요?”
경완의 나이를 물어보던 경찰관은 짜증나는 시선으로 경완을 보았지만 신경전은 경완의 판정승이었다.
“일단 흉기를 휘두른 건 맞잖아?”
“안 그랬으면 아저씨는 절 병원에서 봤을 걸요?”
“정당방위라는 거야?”
“쌍방이요, 쌍방.”
“어휴..”
경완의 주장에 경찰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면 개소리 하지 말라며 서류철로 머리를 한 대 갈겨줬을 텐데, 쌍방이란다. 문제는 그게 합당하다는 거다.
“너도 알겠지만 넌 다친 곳이 없어.”
“알아요.”
“저쪽은 부상을 심하게 입었기 때문에 합의금이 좀 많이 나올 거다.”
“돈 없어요.”
“합의가 안 되면 입건될 수도 있어.”
“이 기회에 나랏밥 좀 더 먹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