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7화 (17/367)

016-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교도소? 그게 뭐 어쨌는데?라는 경완의 태도에 경찰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서류를 작성해갔다. 그냥 규정대로 하면 될 텐데 뭐가 저리 골치 아픈 표정과 한숨을 짓는 것일까?

경완은 먼저 시설을 나선 이철의 말을 떠올렸다. 경찰도 한 패라고 말이다.

그러자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졌다. 분명 저쪽 떡대는 이걸 빌미로 자신에게 엿을 먹이거나 그에 준하는 짓을 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경완은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떡대는 물론 그의 떡값을 받은 경찰들이 상정한 전제가 모두 무너진 것이다.

“너 그러다 진짜 감옥 간다.”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이 위협하듯 말했지만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수 없잖아요. 돈이 없으니까요.”

배 째라고 나오는 경완의 말에 경찰이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와중에 동료 경찰이 와서 말했다.

“김태구 그 사람이 조건을 봐서 합의해 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어차피 대질 심문해야 하니까 데리고 와보죠.”

조서를 꾸미고 있던 경찰이 동료 경찰의 말을 받았다. 경완이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졌다.

“원래 피해자랑 가해자랑 이렇게 서로 만나게 해주는 건가요?”

“어.. 서로 합의하는 게 이득이니깐.”

“경찰 아저씨들이 편하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요?”

경완의 물음에 두 경찰이 서로 마밇러삐나따빠이를 교환하는 와중에 다른 경찰이 그 김태구라는 사람을 데려왔다. 정황을 봐서 뻔했지만 역시 팔뚝 문신의 떡대였다.

그는 붕대를 감은 양아치 둘을 뒤에 세워두고는 의자를 끌고 와 경완의 옆에 앉았다. 경찰서를 편안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경완은 그런 떡대의 행동에 한 걸음 정도 의자를 띄워 앉았다. 경찰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경완에게 손짓했다.

“왜 그리 떨어졌어? 가까이 붙어.”

“가까이 가면 맞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김태구가 타이르듯 말했다.

“야야.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그러자 경완도 한 마디 했다.

“제가 맞는 건 문제가 아닌데 제가 가만있지 않고 때릴 것 같아서요. 경찰서에서 싸움 낼 순 없잖아요.”

그런 경완의 말에 김태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네가 친다?”

“맞고만 있으면 좆같잖아요.”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김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맞기만 하면 좆같지. 그러니 얘들은 얼마나 좆같겠냐?”

그가 뒤에 있는 둘을 가리키며 말하자 경완은 이렇게 대꾸했다.

“남이사? 그리고 양아치는 원래 좆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새삼 좆 됐다고 난리 피우면 쪽팔리지 않아요?”

“이 씹새끼 보래?”

역지사지의 개념은 밥 말아먹은 말에 끝내 김태구의 입에선 험악한 말이 튀어나왔다.

분위기기 험악해지자 얼른 경찰이 끼어들었다.

“아아. 두 사람 그만해요. 경완 군. 피해자 쪽에서 합의조건을 제시할 테니 잘 생각해봐요.”

“쌍방 아니었어요?”

“암튼!”

경찰은 끝까지 쌍방을 주장하는 경완의 태도를 묵살하며 은근히 합의를 요구했다. 여기서 마무리 되는 것이 서로가 좋지 아니한가?

김태구가 입을 열었다.

“학생. 돈이 없다며? 부모도 없고?”

“아저씨는요?”

“···.”

돈이 없냐는 물음일까, 부모가 없냐는 물음일까? 여태 이 새끼가 말하는 본새를 보면 아무래도 후자 같은 느낌이라 경완을 보는 김태구의 눈이 살벌하게 가늘어졌다. 아마 여기가 경찰서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멱살을 잡아서 죽탱이를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공갈 협박은 깡패, 양아치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모델 아니던가? 그는 나름 비즈니스맨답게 냉정을 유지하며 경완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상단에는 계약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곧 성인이지? 걱정 마. 벌어서 갚으면 돼.”

그리고는 자화자찬하듯이,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이야~. 내 동생들 병신 만든 새끼 용서해주고, 일자리도 주고. 이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겠니?”

경완은 계약서를 훑어봤다. 계약서엔 김태구가 말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합의금을 법정 이자 한도 내에서 빌려주겠다. 대신 소개해준 일자리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 계약서의 골자였다.

언뜻 보면 후한 계약이기는 했다. 담보도 없는 천애고아가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하니까.

문제는 일자리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슨 일을 하게 되는데요?”

“일종의 인력조달 사업이지.”

“신안 염전 노예 조달, 중국 원양어선 노예, 뭐 이런 거요?”

경완의 물음에 그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경고하듯 말했다.

“나도 세금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득세 얼마나 내세요? 직장인들만큼은 내시죠?”

“···.”

“탈세는 안 하셨죠?”

분명 탈세했을 거야라는 뉘앙스에 김태구가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부라리다가 주변을 힐끗 거렸다. 보는 눈이 많았다. 더구나 그 눈의 주인이 경찰들이었다.

아무리 뒷구멍으로 커넥션이 있다고 해도 공적인 자리에선 지킬 건 지켜야 했다.

“너 자꾸 이렇게 나오면 합의 안 해준다?”

“그런 거에 제가 쫄고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결국 열이 받은 김태구가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리며 언제든 달려들 듯이 상체를 숙이며 위협조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너 교도소 가면 편할 것 같냐?”

교도소에 가도 편할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러자 경완이 경찰을 향해 말했다.

“저 이 아저씨 무서워요. 협박죄로 고소되나요?”

본인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당사자가 그리 생각한다는데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야이, 새끼야!”

결국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이는 김태구.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보는 경찰들의 입에선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 =

경완은 결국 입건되었다. 도무지 합의할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김태구의 두 똘마니도 합의할 생각을 버렸다. 콩밥 먹고 인생 좆 되어보라고 민사까지 걸 거라며 경완을 위협했다.

하지만 빈손으로 온 세상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던가? 무소유 정신이 투철한 경완에게는 민사조차 무섭지 않았다.

원장은 짐을 처분하는 경완을 보며 물었다.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니?”

“아니요.”

“왜?”

“할 만큼 했잖아요?”

평범한 부부에게도 애 키우는 일은 큰일이었다. 이런 시설을 운용하는 원장에겐 자신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원장은 경완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미안하다.”

그 말에도 경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경완은 많지 않은 자신의 짐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구속과 징역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선미는 자신을 납치하고 폭행한 것을 빌미로 합의를 종용하자고 했지만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눈치를 보니까 저쪽에선 널 납치한 그 세 놈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겠더라.”

저쪽은 이 일을 자존심 싸움으로 받아들였고 경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도 감수할 기색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생각하기 힘들겠지만 조폭 양아치에게 교도소는 학교라고 불릴 정도라, 오히려 인맥도 넓히고 조폭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조언이나 노하우도 얻을 수 있기에 이쪽 입장에서 역고소는 그리 좋은 협상카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합의금을 받는 게 나아. 넌 나 때문에 피해를 본 피해자고 나하고 선을 긋지 않으면 놈들이 너한테까지 피해를 줄 거야.”

놈들에게 붙잡히고 맞았던 일을 경완을 위한 합의 조건이 아니라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한 밑천으로 삼는다면 경완과 선미 사이에 선이 그였다고 보일 것이다.

경완의 이야기를 듣는 선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빠.. 흑! 악!”

경완은 그런 소녀의 머리에 충분히 아프도록 꿀밤을 먹여주었다.

“어디서 울어? 네가 지금 울 정신이 있어? 적당히 착하게 살아. 영웅이 되겠다고 나대지 말고.”

전장에서 가장 빨리 죽는 사람은 영웅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영웅이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은 용감하거나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전쟁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적당히 용기를 희생해서 현실과 타협할 필요가 있었다.

“오빤 나쁜 놈이야!”

선미는 아픈 머리를 두 손으로 가리고 소리를 빽 지르고 사라져버렸다. 기껏 걱정해준 마음을 길바닥에 내던져버리다니!

그 모습에 경완은 피식 웃었지만 그에게 용무가 있는 이는 선미만은 아니었다.

“오빠.”

그가 정고와 양아치와 얽히게 된 일의 근원인 미연이 저녁에 몰래 찾아왔다.

“왜?”

“감옥 간다며?”

“그래서?”

경완의 물음에 미연은 윗옷의 단추를 하나 풀며 이렇게 말했다.

“떼고 갈래?”

전등에 드러난 새하얀 쇄골에 경완은 어이없어 하며 꿀밤을 먹여주었다.

“떼긴 뭘 떼? 어린 것이 발랑 까져서는.. 이것아. 방으로 돌아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한 살이라도 어릴수록 더 좋다던데?”

“착각하지 마라. 어린 게 좋은 게 아니라 예쁜 게 좋은 거다.”

“나 예쁘잖아?”

미연은 보란 듯이 한 바퀴 빙 돌았다. 스커트 자락이 원심력에 펼쳐지며 팬티가 아슬아슬 보일 때까지 올라갔다. 그 밑에 새하얀 허벅지가 탐스러움을 드러냈다. 과연 정고 그 거시기에 털도 다 안 자란 애새끼가 발정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경완은 심드렁했다.

“또 착각하네. 야. 예쁘다는 게 뭐냐?”

“예쁜 게 예쁜 거지.”

“예쁘다는 건 귀하다는 거야. 귀하다는 건 비싸다는 거고. 이런 식으로 값싼 년 되지 마라.”

비싼 년이 되어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조언이 있을까?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미연의 표정이 놀라움이 떠올랐다가 이내 다소 몽롱한 듯한, 또는 유혹하는 듯한 표정으로 경완에게 말했다.

“나.. 오빠라면 괜찮을 것, 악!”

“헛소리 하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

경완의 말에 미연은 아픈 머리를 감싸면서 배시시 웃었다.

“같이 잘까?”

“맞는다.”

경완이 눈앞에서 주먹을 흔들자 미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추가 달려있니마니 하는 문제로 경완을 비하하다가 우울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새끼들.. 포기 하지 않겠지?”

원래 보물은 지킬 힘이 없으면 빼앗기는 법. 미연의 미모는 솔직히 천애고아가 지키기 어려운 보물이었다.

“넌 포기할 거냐?”

“그러긴 싫어.”

“그럼 어떻게 네 몸을 보호해야 할까?”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어?”

미연의 한탄에 경완은 그녀에게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유명해져라.”

“뭐라고?”

“네 미모면 뭘 하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사람 많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뭐든 해봐. 노래를 불러도 좋고 길바닥에 똥을 싸도 좋고 암튼 유명해져. 연예인이 되라. 유명해지면 놈들도 함부로 못 건드려.”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 돼.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기 싫으면.”

“연예계도 양아치 많다던데..”

“어쩌겠어? 안 걸리길 기대해야지.”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놈들의 수작질에 나락에 빠질 지경이었다. 경완의 판단으론 미연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든 해야 했다.

경완의 말에 미연은 개안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오빠. 나중에 꼭 갚을게.”

“돈으로 다오.”

속물적인 말에 미연은 키득키득 웃더니 기습적으로 그의 뺨에 키스하고는 수줍어하며 냉큼 도망가 버렸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