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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1화 (21/367)

020-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계속 독방에서 지내는 경완이 다른 재소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는 경완의 손에 젓가락이 들려있는 시간이었다.

소장이 심술 맞게 말했다.

“식사 시간에 젓가락을 못 쓰게 해야겠어.”

경완은 이렇게 대꾸했다.

“숟가락도 꽂으면 꽂혀요.”

소장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경완을 보았다.

“자랑이다.”

“딱히 자랑할 게 없으면 그런 거라도 자랑해야죠.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잖아요?”

소장은 질려버렸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이제 경완을 노릴 애들이 없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문제는 상해로 인해 형량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소장이 잘 무마하기로 했다.

소장은 사람 눈을 찌른 경완보다는 자신이 관리하는 교도소 내에서 흉기를 소지한 그 새끼가 더 미웠다. 소장의 눈에도 경완은 건들지만 않으면 얌전히 있는 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습격 사건을 사고로 처리한 소장의 배려 덕분에 경완은 형기가 더 늘어나지 않은 채로 남은 형기를 마칠 수 있었다. 솔직히 골치 아픈 놈을 더 오래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는 했다.

소년원 원장이 그랬듯이 소년교도소의 소장도 형기를 마치는 경완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간 수많은 재소자들을 보아왔지만 그들에게 경완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나가면 어떻게 지낼 거냐?”

“얌전히 지내고 싶어요.”

“그들이 네가 출소하는 걸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시설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다른 곳으로 가려고요.”

그걸 생각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소지품을 다 시설의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는가?

그런 그에게 소장이 물었다.

“갈 곳은 있니?”

“그래서 말인데.. 정착 지원금 같은 거 있으면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완이 손바닥을 비비며 간사하게 웃자 소장은 피식 웃으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경완은 봉투 안을 살펴보고는 깜작 놀랐다. 무려 100만원이나 들어있었던 것이다.

“어이구야! 많네?”

“그 정도면 사글세 비싼 곳이 아니라면 충분히 방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소장은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법무복지공단 등을 비롯해 출소자의 사회정착을 지원해주는 기관이나 단체의 연락처도 알려주었다.

“사회에 나가서 누가 때리려고 하면 그냥 맞아라.”

소장이 경완에게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했다.

그가 8개월 동안 보아온 경완은 근본적으로 나쁜 놈은 아니었다. 경완은 소장이 여태 보아온 재소자들 중에서 감옥이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조용히 지냈다. 물론 독방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독방에 수감된 이들이 흔히 보이는 무기력함이라든지 우울증 같은 증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특기할 만했다.

품성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다만 손속이 과격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소장은 차라리 맞으라고 말한 것이다. 차라리 맞고 상대방에게 금융으로 응징하는 것이 어른, 사회인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완은 동의하지 않았다.

“왜 맞아요? 피해야죠. 맞다가 병신이라고 되면 누가 책임져요? 때린 놈이요? 배 째라고 나오면 다행이죠. 째면 되니까. 하지만 소송이요? 그거 돈 있고 빽 있는 사람한텐 무용지물이에요.”

경완이 맷값 주고 사람 팼다는 재벌과는 인연이 없겠지만 밑물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 조폭 같은 법꾸라지 놈들에게 맞아봤자 재벌에게 맷값 받아가며 맞느니만도 못한 합의금을 받을 뿐이었다.

아니 푼돈이나 받을 수나 있을까? 안주고 버티는 조폭한테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는 일반인이 과연 있겠는가? 일반인들은 거기에 들일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이득인 것이 엄중하게 받아들여하는 현실이었다.

결국 소송이란 본질적으로 서로 견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사이, 즉 평범한 사회인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분쟁해결법이었다. 법은 형평성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법관은 법의 공정한 적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뭐라고? 법조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구글링을 하여 재벌의 범법과 서민의 범법 사이의 형량 차이를 보고 오라.

“암튼! 사회에 나가면 범죄자 되지 말고 건실하게 살아라.”

“건실한 부분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범죄는 안 저지를게요. 범죄자가 되느니 차라리 노숙자가 되자는 게 제 각오거든요.”

경완의 목표를 처음 들은 소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인생에 경완 같은 괴짜는 정말 처음이었다.

= = = = =

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장 형사는 열심히 뛰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수개월 동안 잠복수사한 노고를 이렇게 날릴 순 없었다.

'거기서라, 박동칠!'

외침은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생각보다 훨씬 잘 뛰는 놈을 쫓기 위해서는 한 호흡 한 호흡을 소중히 아껴야했다.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따라 도망치던 박동칠은 작은 공터에서 멈춰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숨이 차서 더 뛰기 힘들기도 했고, 공터에서 더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공터는 어지럽게 난 수풀과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 쌓인 낙엽으로 포위당해 있었다.

“헥! 헥! 박동칠! 이제 그만 와라!”

“헉! 헉! 지랄 좆 빠는 소리하네!”

장 형사의 말에 박동칠은 욕설로 받아치고는 숨을 골랐다.

“허억! 허억! 이보쇼, 장 형사. 하아! 하아!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날 그리 쫓아다녀?”

“야이 새끼야! 형사가 범죄자 잡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처맞기 전에 손이나 들어 이 새꺄!”

“씨벌. 일진 더럽네.”

박동칠은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장 형사의 말에 순순히 뒤로 돌아 손을 들었다.

장 형사는 박동칠의 손을 뒤로 돌며 허리춤에 찬 수갑을 쥐었지만 순간 옆구리에 느껴지는 통증에 수갑을 놓치고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박동칠의 왼손엔 나이프가 역수로 쥐어져 있었고 그 나이프가 장 형사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젠장..”

방심했다. 그렇게 좆 빠지게 도망가던 놈이 이제 와서 순순히 수갑을 찰리가 없는데 너무 뛰어서 머리에 산소가 모자랐던 모양이다. 이런 수작질을 간파하지 못하다니,  그동안 먹은 경찰 짬밥이 쪽팔렸다.

“너 이 새끼..야. 감방에서 더 썩으려, 끄악!”

장 형사는 놈이 칼을 비틀자 비명을 질렀고 박동칠이 그런 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 형사, 이 씹새야. 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뛰어왔는데? 내가 그동안 느하고 느그 짜바리 새끼들 때문에 손해 본 거 생각하면 아주 속이 뒤틀려.”

“아악!”

“지금 니가 느끼는 게 내가 느꼈던 거야. 걱정 마라. 넌 죽는 게 아니라 실종 되는 거니까. 아! 그게 아니지? 몰래 마약 빼돌리다가 내사 들어오니까 쪼려서 튄 걸로 할까?”

“이, 이 새끼가..”

장 형사가 핏발선 눈으로 박동칠의 옷자락을 잡았지만 힘이 점점 빠졌다.

그런 그를 보며 박동칠이 말을 이었다.

“딱 가기 좋은 곳이지 않아?”

“가긴 씨부럴.”

낯선 목소리에 박동칠이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나무 뒤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이가 있었으니,

“거지새끼?”

거지가 아니라 경완이었다.

하지만 쥐어뜯듯이 잘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머리,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몇 겹으로 껴입은 옷과 구멍 뚫린 장갑, 전체적으로 때가 탄 행색은 노숙자,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박동칠을 향해 불만을 토했다.

“아저씨, 왜 남의 집에서 지랄이세요?”

“집? 여기가?”

“살인 장소를 물색해 놓고서는 거기에 주인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 했어요?”

어쩐지 산기슭에 보기 좋은 공터가 있는가 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박동칠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어차피 한 놈 죽일 거 또 한 놈 못 보낼 건 없었다. 그에게 노숙자는 그저 밟으면 찍하고 밟혀 죽어야 하는 버러지였다.

그가 장 형사를 옆으로 밀어버리고 경완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도망가기 전에 붙잡아 목을 그어야 한다.

하지만 경완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에게 달려들던 박동칠은 수북한 낙엽뭉치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숙였다. 놈이 시야를 방해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칼날을 내밀었다.

반드시 놈을 죽여 목격자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기에 그는 그의 후두부로 날아오는, 브라질리언 킥과 같은 궤도로 내려찍히는 발차기를 전혀 보지 못했다.

퍼억!

“컥!”

그대로 뇌진탕으로 균형감각을 잃고 넘어지는 박동칠의 머리에 경완의 사커킥이 날아들었다.

놈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자 경완이 서둘러 장 형사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요?”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얼굴은 새하얗게 입술은 새파랗게 질린 채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저씨, 휴대폰은요?”

“오른쪽..”

경완은 서둘러 119에 전화했다. 119 대원은 형사가 용의자를 쫓다 칼에 맞았다는 말에 서둘러 위치를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산속이에요. 휴대폰 추적해주세요. 제가 불을 피워서 연기를 피워 올릴 테니까 그거 보고 오세요. 경찰에도 신고해,”

“조심!”

장 형사의 말에 경완은 옆으로 몸을 피했다. 기절한 줄 알았던 박동칠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경완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생각보다 터프한 놈이었다.

하지만 경완에게 맞은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는지 여전히 비틀거렸다. 그래도 경완을 죽이고 장 형사도 죽이고자 하는 살기는 여전했다.

“죽엇!”

“웃차!”

하지만 박동칠은 여전히 경완을 경시했다. 그 와중에도 칼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이 방심의 시작이 되어 그만 칼을 쥔 손목이 잡혀 엎어치기를 당했다.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광경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지새끼가 이런 깔끔한 기술을?

고정관념과 현실의 괴리에 인지부조화가 온 박동칠은 폐부에 들어온 충격에 컥컥 거리면서도 칼을 찾으려 땅바닥을 더듬었다.

그러나 경완은 이번엔 봐주지 않았다. 형사의 상처를 확인하고 119에 연락한다고 박동칠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뤘지만 급한 신고는 처리했으니 이제 자신의 거처에 피를 뿌린 이 건방진 폐기물을 응징할 차례였다.

경완은 박동칠의 머리를 걷어찼다.

퍽!

“커억!”

“얼! 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퍽!

“끄억!”

“복수의 그 날 위해 함께 할 원수들이 있잖아요~.”

퍽!

“어억!”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퍼억!

“꺼윽!”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웬수랍니다~.”

“제발! 제발!”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우득!

“끄아악!”

“때로는 모진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만~.”

와드득!

“으아악! 제발! 그만!”

“우리의 원수들과 함께라면 힘들지 않아~”

“흐어어엉! 허어엉!”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원! 투! 원 투 쓰리 포!”

퍽! 퍽! 퍽퍽퍽퍽!

경완은 괴상하게 개사한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박동칠의 머리를 차고 짓밟다가 팔뚝을 꺾어 어깨 관절을 박살내고 이어서 무릎 한 쪽도 작살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동요의 박자에 맞춰 원! 투! 원 투 쓰리 포! 하고 밟아댔으니 그러다 범인이 죽을 것 같아 오히려 장 형사가 전전긍긍했다.

“야! 그만! 그러다 죽겠다!”

“쩝. 아직 한 소절 남았는데.”

경완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자신을 말리는 장 형사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안 그래도 피를 많이 흘려서 힘들 텐데 괜한 입씨름으로 힘 빼게 했다가 저 세상 보내고 싶진 않았다. 범인 잡겠다고 이런 산속까지 좆 빠지게 뛰어 들어오는 형사는 귀한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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