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경완은 반병신이 된 박동칠을 내버려두고 공터 중앙에 마른 낙엽과 나뭇가지 등을 모아 불을 피웠다. 좋은 세상이었다. 누군가가 버린 일회용 라이터가 있어 손쉽게 불을 피울 수 있었으니까.
올라오는 연기를 보았는지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칼에 맞았다고 하니 신속하게 출동한 모양이었다.
경완은 헬기의 바람이 점점 거칠어지자 서둘러 불을 껐다. 바람에 불씨가 날려서 산불이라도 나면 자신의 거처도 타버린다.
헬기에서 레펠로 내려온 구조대원은 멀쩡히 서있는 경완을 보며 말했다.
“부상자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그는 경완이 가리킨 장 형사에게 다가가다가 반병신이 되어 울며 신음하는 박동칠을 보며 눈이 동그래져서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 모습에 경완이 서둘러 손짓했다.
“아아. 그 사람이 범인이에요. 그냥 팔다리만 분질러놨을 뿐이라 생명에 지장이 없어요. 하지만 여기 형사님은 피를 많이 흘려서 위험해요.”
“아.. 네.”
그 말에 구조대원은 더 많이 망가진 박동칠 대신 장 형사에게 다가가 상처를 확인하고 급히 응급처리를 한 다음에 싣고 날아갔다.
경완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구조헬기를 보고는 박동칠을 보며 흥얼거리듯 말했다.
“형사님이 갔네? 가버리셨네?”
멀쩡한 한 팔과 다리로 소리 없이 기어가던 박동칠이 뚝 멈춰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높이 뜬 해가 드리운 짙은 그림자. 그 시커먼 그림자가 짓는 하얀 미소가 섬뜩했다.
“아저씨는 경찰 아저씨들이 올 때까지 나랑 좀 놀아요.”
“아, 안 돼!”
“짜아아릿 할 거예요. 아파서 말이죠.”
“으, 으악! 으아악!”
박동칠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 =
“에이 십할! 장동균 이 미친 새끼! 헥! 헥!”
구 형사는 파트너인 장 형사를 욕하며 숨을 헐떡였다. 미친놈이 좀 잘 뛴다고 혼자 마약사범을 쫓아갔다. 목숨이 두 개여야 가능한 짓이다.
결국 육상출신이라고 잘난 척하던 그 병신은 칼 맞고 구급헬기에 실려 갔다. 그 와중에도 용케 자신에게 연락을 한 덕분에 구 형사는 출동신고를 받고 사건 장소로 출동하는 경찰과 함께 사건이 일어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한 거지꼴을 한 청년과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박동칠을 말이다.
“제발.. 그마아아안....”
약을 빤 듯 코맹맹이 소리로 애원하는 박동칠의(얼굴이 눈물과 콧물, 흙먼지로 엉망이었다.) 등판에 앉아서 코를 파는 노숙자 청년이 하는 말이 요상했다.
“그건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잖아요. 싫어하는 사람한테 강제로 뽕 놔줄 때 기분이 어땠냐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자, 잘못 했어요오~. 다시는 안 그럴게요오.”
“허~참. 사람 말을 개좆으로 듣는 것도 아니고.”
“그만! 그마안! 아악!”
경완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발목을 잡아당기자 박동칠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억울했다. 싫어하는 사람한테 강제로 마약을 주사할 때 기분이 어땠냐고? 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얼마만큼 좋았어요? 이만큼?’
‘얼마만큼 안 좋았어요? 이만큼?’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이만큼?’
무슨 대답을 하든 저 셋 중의 하나로 반문하며 지금처럼 자신에게 고통을 가할 것이 뻔했다. 지금까지 아무리 성실히 대답을 해도 그랬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얼버무리면 귀신같이 알아채서는 아주 즐겁게 웃으며 자신을 병신으로 만들어가니 박동칠로서는 울면서 용서를 비는 것 외에는 심리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제발 웬수같은 경찰이라도 빨리 와줬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다행히 경찰이 도착함으로써 박동칠이 악마 같은 노숙자에게 붙잡혀 있는 시간은 끝이 났다.
“이제 그만해라.”
구 형사가 다가오며 말렸다.
경완은 반가워하며 앉아있던 박동칠의 등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표정자체는 박동칠이 더 반가운 기색이었다. 드디어 이 악마 같은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구나!
경완이 그런 놈의 머리통을 꾸욱 밟으며 구 형사에게 설명했다.
“오셨네요. 여기 이 새끼가 범인이구요, 흉기는 저기에 떨어져 있어요. 저는 손 안 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구 형사는 경완이 범인의 머리통을 밟은 걸 외면하고 그의 두 손을 잡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다. 덕분에 멍청한 후배놈이 살았다.”
솔직히 박동칠이 멀쩡한 꼴이었다면 자신이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몰골을 보니 굳이 자신이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구 형사의 감사에 경완은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떨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하필 저 병신의 운이 나빴던, 응? 뭐하시는 거예요?”
경완은 어느새 자신의 팔목에 채워진 은팔찌에 어이 없어했고 구 형사는 무안한 듯 그의 시선을 피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어.... 그게 아무리 용의자라도 너무 많이 좀... 음... 병신이 됐잖니? 이 나라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거든.”
사지가 기괴하게 꺾인 박동칠을 본 경찰들 역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경완의 손을 붙잡고 있는 구 형사에게 한 마디 했다.
“구 형사님. 들것이 필요하겠는데요?”
장 형사가 구조헬기에 실려나간 후에 기어이 멀쩡했던 팔다리마저 꺾어버린 경완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름 준법시민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치킨 두 마리. 콜?”
경완의 조건에 구 형사는 잠시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콜.”
= = = = =
경완을 앉혀 놓고 조서를 작성하던 구 형사는 결국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후배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이것저것 사정을 다 봐줬는데, 거주지 없음, 연고지 없음, 주민등록불명에 폭력전과까지 있었다.
은인을 보는 시선이 점차 요상하게 변하는 건 형사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엉사닝. 꿀꺽! 저는 선량한 시민한테는 아무런 짓도 안 해요.”
경완은 마지막 닭다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콘치즈 맛 치킨이 제법 입맛에 맞았다.
“넌 걱정도 안 되냐? 그 새끼가 너 고소하면 어떻게 할래?”
“고소하면 고소하는 거죠. 배 째라고 하세요.”
“너 그러다가 감방 간다.”
“가면 가는 거죠.”
배 째라. 나는 두렵지 않다..라는 경완의 태도에 구 형사는 못 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앞길이 창창한 녀석이 그러면 안 돼.”
“앞길이 창창하다니요?”
“젊은 녀석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립할 생각을 해야지. 노숙자라니?”
“그게 다~ 젊은이들의 열정페이를 빨아먹으려는 기득권 기성세대의 선동에 불과하거든요.”
“서, 선동?”
기껏해야 꼰대 같다는 소리나 들을 줄 알았던 구 형사는 황당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경완의 열변이 이어졌다.
“솔직히 요즘 젊은 애들이 열심히 일해 봤자 나이 마흔 전에 집 살 수나 있어요? 존나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어찌어찌 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조빠지게 돈 모아서 서른쯤에 대출 끼고 집 사봤자 그때부턴 은행에서 빌린 돈이나 갚는 하우스푸어 노예로 살아야 하는데 그 따위 인생 형사님이면 살고 싶어요?”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마라.”
“비관적이 아니라 논리적 분석에 의한 결론이죠. 위기감지도 지능이거든요. 돼지를 보세요. 그 짐승들도 먹이가 부족해지고 주거환경이 안 좋아지면 출산율이 확 떨어지는데 세계 2위의 평균 지능지수를 가진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고 나서야 아, 이 길은 노예 인생 직행이구나라고 깨닫겠어요? 안 그래요. 이미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이 나라 젊은이들의 지능을 증명하고 있잖아요?”
“....”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구 형사를 향해 경완이 혼잣말하듯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젊은이들 차~암 착해. 나 같았으면 집값 가지고 장난치는 투기꾼 새끼들, 원가 공개 안하고 분양가 장난치는 건설사 새끼들이랑, 지금 당장 영혼 안 끌어모으면 벼락거지 된다고 겁주는 기레기 새끼들 죄다 껍질을 벗겨버렸을 텐데..”
“에휴~. 치킨이나 먹어라.”
급 피곤해진 구 형사가 화제를 종료하자 경완은 입을 다물고 치킨을 열심히 뜯기 시작했다. 그러다 뻔뻔한 표정으로 물었다.
“맥주는 안 돼요?”
“야! 경찰서거든!”
경찰서에서 음주라니? 그것도 형사과에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콜라나 맥주나 간에 주는 부담은 똑같은데..”
어우 지랄은. 거친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구 형사는 경완이 후배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라는 걸 되새기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잡았냐?”
“그 병신이요?”
“그래.”
“제가 행색이 이래서 그런지 방심하더라고요.”
“아니, 장 형사 그 녀석이 못 당한 놈을 방심했다고 네가 잡았다고?”
“그 칼 맞은 형사 아저씨도 방심만 안 했으면 지금 병원에 있을 일이 없었죠.”
경완이 여기에 와서 치킨을 뜯을 일도 없었고 말이다.
경완의 말뜻을 알아들을 구 형사는 이를 갈았다.
“어우, 이 병신 새끼가..”
자기가 육상출신이라는 걸 티를 못 내서 혼자 달려 나가더니 아주 그냥 형사 망신은 혼자서 다 시켰다.
조용히 욕설을 내뱉은 구 형사는 조서를 다 꾸렸지만 걱정이 되었다. 왜냐면 경완이 거처가 없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형사가 칼에 찔린 사건의 주요 참고인이었다. 그런데 거주지가 불명이라는 것이 참으로 골치가 아팠다. 범인에게 과한 폭력을 사용한 것을 빌미로 구치소에 가둘 수도 있지만 구 형사는 명색이 은인인 경완에게 그런 짓을 하기가 좀 그랬다.
하지만 일단 형사라는 입장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어서 다른 핑계로 설득을 시도했다.
“저기 경완 군.”
“왜요?”
“지금 골치가 아픈 문제가 있어.”
“뭔데요?”
“네가 거처가 없다는 거지.”
“그 공터가 제 거처인데요?”
지금은 공터지만 조금씩 자신만을 위한 보금자리로 꾸밀 예정이었다. 비닐과 줄 등을 이용해서 태풍과 비바람, 이 추운 반도의 겨울삭풍도 막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상식인에게 경완의 말은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움집 비스무리한 것도 없는데 거처는 무슨..
“하지만 네가 원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거처가 아니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노숙자니까.
그런 그에게 구 형사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잠시 경찰서에서, 정확히는 1인 감방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잠시 고민하던 경완이 조건을 달았다.
“1일 1치킨.”
“그거면 되겠냐?”
“편안한 잠자리도요.”
“그래, 알았다.”
표정은 ‘니 똥 굵다’였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그래, 후배형사 목숨 살려준 녀석에게 그 정도도 못해주겠냐? 그리고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박동칠 그 새끼가 이 녀석을 고소하지 못하게 압박을 넣을 때까지만 보호할 생각이었다.
그가 치킨은 마저 뜯는 경완을 흘끔거렸다. 젊은 녀석이 노숙자라니...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지만 은인에게 그럴 순 없잖은가?
아무튼 경완은 그렇게 잠시 경찰서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니 반대편에 수감되어 있던 남자가 물었다.
“야. 넌 무슨 일로 들어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