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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3화 (23/367)

022-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사람이 타인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감옥에 처박힐 일을 저지른 새끼들이 무례함을 패시브로 탑재한 것일까?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러 들어왔다면 짜증이 났겠지만 오히려 상 받을 일로 들어온 경완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냥 들어왔는데요.”

“개소리는.”

그는 분명 말하기 쪽팔리는 일로 잡혀 들어왔다고 단정을 내리고는 비웃었다. 하지만 경완은 보란 듯이 감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남자를 무시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다.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자, 여기 이불. 그리고 갈아입을 옷.”

구 형사가 경완의 잠자리를 챙겨주기 위해 물품을 가져왔다. 민간인이었다면 잠자리가 개떡 같다며 민원을 넣었겠지만 노숙자인 경완에겐 괜찮은 것들이었다.

“빨래는 어디서 해요?”

“그 옷 빨아서 또 입게?”

구 형사가 오만상을 찌푸리자 경완이 반박했다.

“그냥 때가 좀 타고 흙이 묻었을 뿐이에요.”

무려 절도죄를 각오하고 의류수거함을 털어서 고른 복장이었다. 일반인에게 옷은 패션이겠지만 노숙자에겐 생존장비였으니, 경완이 챙겨 입은 옷은 찬바람만 막으면 어디에서든 누워 잘 수 있는 입고 다니는 이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의류수거하는 업체도 결국 사람들이 기부할 겸 버리는 옷 덕분에 먹고 사는 거 아닌가? 경완 같은 경우는 애교로 봐줘야지.

자신의 후줄근한 옷차림을 옹호하는 경완의 모습에 구 형사는 질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경찰서 내에서 빨래를 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야근과 잠복을 하는 형사들을 위한 일종의 복지시설이었다.

그렇게 삼일 쯤 지나니 경찰서 내에선 경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 = = = =

박정훈에게 병문안은 그리 낯선 이벤트가 아니었다. 선배가, 또는 후배를 종종 병문안하기도 하니까. 불법적인 이익으로 먹고사는 조폭에게 병문안은 학교 가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병문안은 그에겐 처음이었다.

“흐윽! 정훈아!”

사지에 깁스를 차고 반 쯤 병신 몰골이 되어버린 박동칠이 그를 보고는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형님. 무슨 일 있었소? 짜바리 새끼들이 고문이라도 했소?”

사지에 깁스를 해서 간병인의 도움이 없으면 똥오줌도 못 보는 신세가 된 박동칠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심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오른쪽 어깨의 인대가 완전히 끊어져 앞으로 어깨 높이 이상으로 팔을 들기 어렵게 된 것은 물론 오른쪽 다리의 발목, 무릎의 인대도 복합적으로 파열되어 재활을 하지 않으면 평생 절름발이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단다. 설사 재활에 성공하더라도 달리기는 금물.

이런 소견을 듣게 된 박동칠은 아무리 잊으려고 해봐도 그 어린 악마새끼를 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글프고 억울하고 무섭고 원통했다.

박동칠은 엉엉 우는 얼굴로 박정훈에게 부탁했다.

“정훈아! 허엉!”

“진정하고 말해보시오.”

이어진 이야기에 박정훈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박동칠의 우는 소리를 다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시오, 형님. 내 형님 원하는 대로 하겠소.”

“고맙다, 정훈아.”

“그럼 몸조리 잘 하시오.”

박정훈은 사지에 깁스를 한 채 누워있는 박동칠을 뒤로 하고는 병실을 나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형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정훈을 째려보았지만 그는 태연한 태도로 그 시선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박동칠과 나눈 대화를 다시 복기해 보았지만 형사가 그 대화의 진실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박동칠의 말을 간추리자면 자신이 그 걸뱅이 새끼에게 어떻게 당했는지에 대한 내용과 자신은 이렇게 되었으니 동생들의 안위를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그 진실한 의미는 내가 이렇게 당했으니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이고 그렇게 해준다면 조직을 박정훈에게 넘겨주겠다는 뜻이었다. 의리 따윈 없지만 그래서 의리를 강조하는 이들의 화법은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법이다.

박정훈은 박동칠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인자가 따로 있긴 했지만 어차피 짭새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명목상의 이인자에 불과했고 실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어차피 반 병신이 된 박동칠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실권자인 자신에게 조직이 넘어오겠지만 정통성이란 생각보다 제법 중요한 것이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기지 않으면 불순한 마음을 품은 새끼가 정통성을 빌미로 반기를 들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이인자 간판을 달고 있는 그 바지사장이나 다름 없는 새끼..

자칭 의리의 건달이지만 항상 의심하고 감시해야 안심이 되는 것이 바로 건달이라는 족속이었다.

병원을 나온 박정훈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대귀야, 나다. 어. 어어. 멀쩡하진 않더라. 어. 그 외에는 괜찮다. 근데 그 양반이 일생일대의 부탁을 하더라. 그래서 말인데 ○○경찰서에 빨대 있지? 그거 좀 써야겠다. 어어. 맡긴다.”

통화를 끝낸 그는 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밤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 = = = =

“그때 말을 못한 거 이제서 하는구나. 구해줘서 고맙다.”

“그 새끼가 저를 노려서 어쩔 수 없었으니 그리 고마워할 것 없어요.”

장 형사의 말에 경완은 손을 내저었다.

장 형사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계속 조용히 숨어있을 수 있었던 경완이 일부러 모습을 드러냈다는 걸 그는 잊지 않았다.

“내가 퇴원하면 한 턱 쏘마.”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구 형사님께서 오늘 삼겹살 사주시기로 했어요.”

경완의 말에 장 형사의 시선이 구 형사에게 향했다. 구 형사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장 형사가 그걸 보고 다시 경완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누라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하던데..”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참 특이한 놈이다. 장 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병문안을 끝낸 경완과 구 형사는 약속대로 곧장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장 형사는 요양만 좀 하면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다. 아마 한 달쯤 뒤엔 복귀할 것이다.

구 형사는 삼겹살을 구우며 경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박동칠 그 새끼는 걱정할 것 없다.”

“범인 이름이 그건가 보죠?”

“그래.”

구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동칠의 부상은 제압과정에서 일어난 불가피한 부상으로 합의를 봤다. 지난 3일의 시간은 이를 처리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놈이 변호사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장 형사가 자신을 죽일 의도로 칼을 찌른 놈을 위해 증언할 리도 없었다. 문제 생기면 까짓 거 시말서 좀 쓰고 말지.

“그럼 이제 집에 가도 되겠네요?”

경완의 말에 구 형사가 피식 웃었다.

“너한테 집이 어디 있냐?”

“어디든 정 붙이면 고향이고 눈감고 편히 잠들 수 있으면 집이죠.”

“넌 지붕 하나 없는 그 공터가 편하더냐?”

“뭐 지금은 부족하지만 좀 편하게 해먹 같은 것도 걸어둘 생각이에요.”

그런 경완을 보며 구 형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노숙자 보호시설에 들어가는 게 어떠니?”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시설에서 돈을 받진 않을 텐데?”

“돈을 받진 않아도 사회재활의 의지는 가져야죠. 저 같은 놈이 들어가면 민폐예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가 없는 자선이라고? 정말 대가가 없는 줄 알고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순간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질 것이다. 그 눈초리를 무시하면 대가 없는 호의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기초수급 받는 아이들이 돈가스 먹는 거보고 사치스럽다고 분수에 안 맞는다고 궁시렁거리는 인간들이 설치는 세상인데 노숙자 쉼터야 오죽하랴?

구 형사는 삼겹살을 뒤집다 말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경완을 보았다.

“그래서 평생 그렇게 살 거라는 소리냐?”

경완은 구 형사의 손이 멈추자 얼른 그의 손에서 집게를 낚아채듯 빼앗고는 삼겹살을 뒤집으며 대답했다.

“삶이란 마치 늪과 같은 거라 아등바등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죠.”

“어린 것이 인생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이 먹었다고 꼭 인생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더라고요.”

그저 더 뻔뻔해지고 낯가죽이 두꺼워질 뿐. 자신의 과오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참된 어른은 찾기가 힘들었다.

“아니면 한동안 경찰서에서 지내는 게 어때? 알바도 좀 하고.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지내면 나중에 고생한다.”

구 형사의 잔소리는 순전히 은인에 대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완이 어찌 그것을 모를까?

하지만 그래서 문제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타협하기 시작하면 결국 욕심이 고개를 쳐드는 거예요.”

경완은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인생 담백하고 깔끔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삶은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았다. 나름 노력이란 게 필요한 것이다.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경완의 태도에 구 형사를 고개를 젓다가 삼겹살을 몇 점 집어 경완의 앞접시에 놓았다.

“마~안이 먹어라.”

장 형사를 구해준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근성이 썩어 빠진 놈에게 그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다음날 경완은 경찰서를 떠났다. 올 때와 달라진 것은 그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어서 때깔이 고와진 안색과 빨아서 깨끗해진 옷뿐이었다.

= = = = =

몸에 착 달라붙은 쫄쫄이 티셔츠에 캐주얼 양복바지라는 양아치스런 스타일의 사내 넷이 산기슭으로 들어왔다.

살집이 있는 건장한 몸매, 팔뚝까지 새긴 울긋불긋한 문신은 그들이 과연 그들의 패션만큼이나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씨불!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야?!”

한 남자가 열불을 토하자 다른 남자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진정해라.”

“.. 네, 형님.”

그의 말에 화를 내던 남자가 화를 삭이며 입을 다물었다. 저 말을 무시했다가는 아구창을 처맞을 수도 있었다.

부하의 입을 다물게 한 남자, 박정훈은 박동칠이 사업에 지장을 주는 마약반 형사를 조지기 위해 준비했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는 박동칠이 뛰었던 길을 걸으며 곧 자신의 것이 될 조직을 떠올렸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저위험에 고수익을 실현하는 실속 있는 조직이었다. 불법약물 유통의 허리를 맡는 조직으로 발이 넓은 박동칠 덕분에 풍족한 일감과 인맥이 있었다.

곧 박동칠이 은퇴할 것 같지만 걱정되진 않았다. 그간 조직의 굳은 일을 전담하며 박동칠의 인맥들과 안면을 익혀온 자신이 아니던가?

박동칠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그 인맥들을 고스란히 먹을 수 있는 정통성이 생긴다.

그는 그 정통성의 제물이 될 이경완이라는 놈을 찾아 이 공터까지 들어왔다.

그 놈이 여전히 있을지 없을지 성급히 확신할 순 없었지만 한 번쯤 확인해 봐도 좋을 만한 정보를 확보했다.

장 형사를 구했다는 이 젊은 노숙자는 마치 경찰서를 제집처럼 사용해 유명해졌다. 그냥 계속 노숙자를 하겠다는 썩은 근성까지 말이다.

거기다가 왔던 곳 근처까지 경찰차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니 아마 원래 거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박정훈의 판단이었다.

“여긴가 봅니다, 형님.”

박동칠이 말했던 공터가 맞는지 GPS앱으로 확인한 박정훈이 주변을 확인했지만 경완이라는 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놈이 여전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건 남은 흔적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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