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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화 (25/367)

024-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박정훈과 그 똘마니들은 그 잠깐의 숙고에 그들의 생사가 오갔다는 사실을 몰랐다. 경완이 그들을 파묻어서 없애버릴까라는 생각을 그만둔 이유는 이들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박동칠. 결국 그놈이 이들에게 청탁한 원흉이 아닌가?

그놈까지 함께 왔다면 다 파묻어버릴 생각을 쉬이 버리지 못했겠지만 그놈이 없는 이상 박정훈과 패거리들을 묻는다는 건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괜히 삽도 없이 땅 파느라 개고생만 하겠지.

구 형사가 들것을 든 경찰들과 나타났다. 박정훈의 스마트폰앱으로 확인한 GPS 좌표와 경완이 피운 연기를 보고 최대한 빨리 도착한 그는 박정훈과 똘마니들의 부상정도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경완을 보며 말했다.

“손 내밀어라.”

그 말에 경완은 그에게 손목을 내어주며 말했다.

“나쁜 놈들 잡았는데 소고기 정도는 기대해도 되겠죠?”

“야이눔아! 적당히 좀 했어야지!”

경완의 뻔뻔한 말에 구 형사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적당히 했어요. 그냥 땅에 파묻을까하다가 구 형사님 생각 때문에 신고한 거예요.”

사실은 그게 아니지만 그렇게 생색을 잔뜩 내니 과연 생각대로 구 형사의 잔소리가 멎었다.

하지만 구 형사의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쟤들 중에 한 명이라도 죽으면 넌 그대로 교도소다.”

저 조폭들을 실어갈 때 구 형사는 흉기를 확인했다. 창끝에 녹이 슬어있는 못과 지저분한 쇳조각이 달려있는 것을.

“형사님. 저는 저들을 죽일 의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죽으면 의사선생님이 못 살린 거, 아니면 뒈질 운명이었던 거죠.”

그의 헛소리를 더는 들어주지 못한 구 형사가 한 마디 했다.

“제발 좀 닥쳐라.”

= = = = =

경완은 유치장에 갇혔다. 하지만 자유롭게 감방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가 홀로 사용하는 감방의 문은 잠기지 않은 채 그가 화장실을 드나들고 싶을 때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배고프면 형사가 음식을 시켜주고 눈치껏 TV채널도 돌릴 수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것은 경찰서에 수갑을 차고 온 경완과 그를 앞에 두고 조서를 작성하는 구 형사의 대화에서부터 시작했다.

“형사님. 사법거래 안 하실래요?”

“사법거래? 우리나라에 그런 건 없다.”

“없지만 다 하잖아요?”

“.....”

“박정훈 걔 있잖아요.. 형사님이 오기 전에 제가 살짝 만져주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너 고문까지 했냐?!”

“어쩔 수 없었어요? 첨보는 얼굴이 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는데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넌 도대체 법을 뭐라고 생각하니?”

“나랑 상관없는 거? 저 이래봬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구요.”

구 형사는 찌근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배후는?”

“박동칠이요.”

“그렇군.”

이미 넋을 놓은 박정훈의 입에서 나온 관계라 구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완의 말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겨우 그거가지고 제가 사법거래 하자고 했겠어요?”

이어서 경완의 입에선 박동칠의 행동대장 박정훈이 마약 유통을 위해 사용하는 지점과 창고, 운송수단과 그 방법은 물론 거래처 몇 개의 이름도 튀어나왔다.

구 형사의 입에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히야~~~.”

이건 큰 건이다. 진짜 큰 건이었다. 하지만 우려스럽고 의문이 떠오르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네가 그걸 왜 알아보는데?”

“정말 배후가 박동칠인지 그 말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하려고 크로스체크를 하면서 얻은 부수적인 소득이랄까?”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고 구 형사는 질려버린 표정을 지었다.

무서운 새끼... 노숙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냉정했다.

아무튼 실적이 고픈 형사들에겐 아~주 좋은 정보였기에 구 형사는 경완에게 뭘 원하느냐고 물었고, 그 조건을 듣고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이 원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그러니까 자유롭게 화장실을 드나들 권리와 저번처럼 편안한 잠자리, 맛있는 식사와 TV채널 변경권 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건에 양념을 쳐서 죄를 감해달라는 것도 아니었기에 구 형사를 필두로 한 강력반 형사들은 경완을 두둔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마음대로 유치장을 들락날락 하는 거? 이제 와서 경완이 도망갈 리도 없었고 원리원칙을 핑계 삼는 꼰대 같은 형사가 뭐라고 한 소리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형사가 경완이 물어온 고~오급 정보로 실적에 눈이 멀어버린 상황이었다.

퇴원한 장 형사는 어떤 광기와 같은 열기에 잠긴 직장의 분위기가 어색했다. 어차피 자신은 부상이라 사무실 대기였기 때문에 경완이 준 정보로 실적을 얻지 못해서 제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경완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그.. 박정훈 일당 중에.. 한 명이 죽었단다.”

항생제를 잔뜩 맞아도 패혈증으로 인해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 소식에 대한 경완의 감상은 짧았다.

“한 많은 세상 잘 갔네.”

“....”

황당해서 멍해진 장 형사에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아. 전감옥 가겠네요.”

“.. 내가 어떻게 해줄 게 없다.”

당연하게도 형사 역시 공무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완은 개의치 않았다.

“장 형사님이 잘못한 건 없어요.”

그저 이 나라의 법률과 경완의 삶이 서로 사맛디 아니할 뿐이었다.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거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형사님.”

구 형사도 경완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조서를 작성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 경완은 치안을 어지럽히는 놈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의도 깍듯했고 말이다. 경완의 손에 당한 놈들은 죄다 이 사회를 좀 먹는 범죄자 아니었던가?

하지만 판검사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피고는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사건에서 과한 폭력을 휘둘러 사람을 상하게 하였고, 이번에는 끝내 사람의 생명까지 잃게 만들었다. 설사 그들이 용서 받지 못할 정도의 범죄자라고 해도 피고의 손속은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가며 또한 법은 사적보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다.”

판결을 들은 경완이 한 마디 했다.

“와우. 센데?”

경찰들이 최대한 경완에게 유리하게 조서를 꾸몄지만 소용없었다.

“저는 노숙잡니다. 병원 갈 돈이 없어요. 부상을 입는다는 건 병신이 되거나 죽는다는 의미죠. 그러니 저에게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은 제가 필사적으로 부상을 피했기 때문입니다.”

“멧돼지 같은 게 갑자기 나타나면 쫓아내려고 만든 거예요. 누가 사람한테 쓰게 될 줄 예상이라도 했겠어요?”

이런 항변 역시 묵살되었다. 다른 놈들은 사람 병신 만들어도 집행유예로 잘만 빠져나오던데 경완은 여러 가지를 정상 참작할 만 한 요소가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좀 억울할 만도 했다.

하지만 판사도 사람이다. 실수할 수도 있고 지 꼴리는 대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잖은가? 그러나 판사의 몸에 손을 대지 못했던 경완으로서는 판사가 지 꼴리는 대로 판결을 내린 것인지 좆 꼴리는 대로 판결을 내린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얌전히 판결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에게 대한민국의 감방은 약간의 자극적인 요소가 있는 잠자리에 불과해서 큰 유감이 없었다. 경완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는 장 형사와 구 형사가 오히려 더 미안해했다.

“미안하면 생각날 때마다 영치금이라도 조금씩 넣어주세요.”

경완에게 목숨을 빚진 장 형사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걱정 마라. 넉넉히 보낼 테니까.”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형사 월급 얼마 된다고 넉넉히 보내요? 감방에서 돈을 써봤자 얼마나 쓴다고요. 그냥 치킨 사먹을 정도만 보내주세요.”

경완의 말에 장 형사와 구 형사가 피식 웃었다. 폭력적이고 이상한 놈이지만 이래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분명 형사라는 입장에선 혼을 내야 하는 게 맞는데 직업상 온갖 인간쓰레기들을 접해온 두 사람으로서는 놈들을 보고 경완을 보면 선녀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걸 고려해서 넉넉하게 보내준다고.”

“감사합니다.”

“아참. 감방 안에선 사고 치지 마라.”

장 형사 다음에 구 형사가 노파심에 한 마디 하자 경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절대 제가 먼저 건드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말에 구 형사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걱정이다, 걱정이야.”

= = = = =

경완이 가게 된 교도소는 최근에 리모델링하고 규모를 확장한 교도소라 시설이 좋았다. 시설이 좋다는 말은 많은 수형자들이 오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말은 빽과 돈이 있는 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막내야. 넌 무슨 일로 들어왔냐?”

방금 봤으면서 막내는 뭔 막내?

하지만 4명이서 사용하는 감방의 분위기가 제법 편안하고 좋았기에 경완은 그 분위기를 씹창 내지 않기 위해서 고분고분 대답했다.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하네요.”

“네가 죽인 건 아니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경완은 깡패와의 싸움, 그 싸움에서 사용된 지저분한 무기, 패혈증과 치료 실패로 인한 사망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경완에게 질문한 방장은 모순적이지만 서글서글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깡패였는데 경완의 대답에 혀를 찼다.

“운이 안 좋았구먼.”

“뭐 사는 게 그런 거죠.”

“뭐, 그래도 한 번에 4명하고 싸우고. 뚝심은 있네.”

“한 번에 4명하고 싸운 게 아니라 차례로 무찌른 거죠. 한 번에 4명하고 붙어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경완의 대답에 방장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야~. 그놈 참 싸울 줄 아네. 나중에 출소하고 나서 먹고 살기 궁하면 나한테 연락해.”

호의에 ‘조까! 조폭 양아치 새끼야!’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라 경완은 안면 가득 가식어린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실 거렸다.

“감사합니다, 형님!”

경완은 방장으로부터 앞으로 같이 살 사람들을 소개 받았다. 우선 사기전과로 들어오신 범털 방상훈, 범털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개털도 아닌 여친의 남친(?)을 폭행한 폭행범 김춘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칭 전직 조폭인 조필태.

당연하게도 경완이 가장 젊었다. 하지만 경완의 출소일이 가장 멀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그런 경완을 두고 킬킬 거리며 놀렸다.

역시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돈 많은 방의 분위기는 제법 여유로웠다. 심심해서 문제였지만 그 심심함은 교도관의 시선을 피한 카드놀이, 쉽게 말해 도박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허락되지 않은 일이지만 심심해하는 재소자들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교도관들이 약간의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풀하우스 나왔네요.”

“야이씨! 너 폭행범 아니지? 도박하다 잡혀왔지?”

경완이 자신의 패를 밝히자 투 페어를 쥐고 있던 방상훈이 짜증을 내며 카드를 내던졌다.

경완은 담요의 가운데에 놓인 우표와 담배를 조심히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교도소 내에서 화폐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흡연자들의 기호품인 담배는 담배라는 이유만으로 화폐의 역할을 했고, 재소자들 사이에선 우표로도 교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표는 우표깡이라는 방법으로 영치금으로 전환할 수 있었는데 모아서 외부 업체에 편지로 보내면 일정수수료를 제하고 영치금으로 넣어주는 방식이었다.

범털 방상훈이 호구가 되어준 덕분에 경완은 이번 주에도 일용할 치킨 값을 벌 수 있었다.

“전 치킨 값 벌었으니 여기서 그만할래요.”

“얄미운 새끼.”

“돈 한 푼 없는 천애고압니다. 돈 많은 형님들께서 자비롭게 봐주세요.”

경완이 서글서글 웃자 모두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경완이 따가는 돈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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