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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6화 (26/367)

025-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그들은 경완을 빼고 카드를 더 치려다가 교도관이 접근하는 기색에 서둘러 도박판을 정리했다. 아무리 사정을 봐준다지만 대놓고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자유가 없는 감방에서 최소한의 자유나마 즐기려면 유도리 있게 행동해야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경완과 죄수들은 교도관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당연히 식사는 군대보다 나았다. 거물들과 범털들이 좋아한다는 교도소라 더 그런 모양이었다.

경완은 노숙보다 이곳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5년의 선고를 때린 판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식사 시간이 끝난 후엔 소화시킬 겸 산책과 자유 시간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과다하게 한 공간 안에 있지 않도록 차례와 순서를 정해 교도관들이 죄수를 이동시켰다.

햇빛을 받고 간단히 운동을 할 수 있는 공터에서 경완의 감방 동기들은 각자 볼일이 있는지 흩어져 버렸고 경완만 홀로 남았다. 그는 햇빛 바른 곳에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햇빛의 따사로움을 음미했다.

그런데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느껴졌다. 경완은 앉은 채로 그대로 옆으로 몸을 굴려 그림자를 피했다. 딱히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디오게네스를 오마주한 건 아니었지만 똘끼라는 측면에서 경완과 그는 닮은 측면이 있었다. 참고로 플라톤이 디오게네스를 보고 평하길 ‘미친 소크라테스’라 하였다.

눈도 뜨지 않고 그림자를 피하는 경완의 모습에 그림자의 주인은 기가 차서 입을 열었다. 물론 철학적 소양이 있어서 미친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를 연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허! 이 새끼 보래?”

그 말에 경완이 눈을 떴다. 눈앞에선 몸이 좋은 문신의 사내가 서 있었다. 죄수복은 팔까지 덮을 정도로 길었지만 손목과 목덜미에 드러난 문신의 형태와 색깔은 문신이 적어도 그의 팔이나 어깨까지 덮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무슨 일이세요?”

“사람이 오면 봐야 되는 거 아냐?”

시비조의 말에 경완이 대꾸했다.

“눈 감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건지, 신기해서 구경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요? 용건이 있으면 눈 떠봐라고 한 마디 하면 되잖아요.”

경완의 말에 그는 활짝, 그리고 살벌하게 웃었다.

“허허흐! 이놈이거 물건일세?”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암튼 용건 있으세요?”

경완은 얼른 용건을 물어봐서 햇볕 쬐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 막아보자 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문신의 남자는 눈썹을 꿈틀했지만 이내 용건을 꺼냈다.

“너 조필태랑 같은 방 쓰지?”

“네.”

“혹시 조필태가 뭔가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기억해 놨다가 나한테 몰래 알려줬으면 좋겠어.”

“제가 왜요?”

“그렇게 되면 네 감방 생활은 아~주 편할 거야. 5년이나 있는다며?”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좆 되게 만들어주겠다는 뉘앙스가 가득했다. 듣자 하니 아마 조필태보다 형기가 길거나 교도소 내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았다.

경완은 그제야 심드렁한 눈빛으로 사내를 올려다보며 생김새를 뜯어보았다. 부리부리한 눈, 사나운 인상, 손목부터 어깨까지 올라온 문신. 딱 봐도 성깔 있어 보이는 어떤 부류에 해당하는 사내였다.

“근데 누구세요?”

“네 알 것 없고.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런데 무슨 일이든 계약금부터 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 하. 하. 이 쉐끼. 그래, 네 말이 맞기도 하지. 주말에 네 영치금 확인해봐라.”

“네.”

경완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가버렸고 경완은 쉬는 시간이 끝나 감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조필태에게 자신이 받은 제안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그 새끼 어떻게 생겼는데?”

그 서글서글한 얼굴이 거짓말인 것 마냥 굳은 표정을 한 조필태의 물음에 경완은 그 사내의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다.

경완의 설명을 다 들은 조필태는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어서 사람 좋은 미소로 경완을 보며 물었다.

“넌 왜 그 놈 제안을 이렇게 바로 무시했니?”

“끼어들기 싫어서요. 저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두 사람이 알아서 지지고 볶고 볼장 다 보라는 게 경완의 의도였다.

“쒜에~끼.”

조필태는 기분 좋다는 미소를 지으며 경완의 머리를 헝클였다.

경완이 그가 방금 전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손은 씻으셨어요?”

= = = = =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교도소의 생활. 정해진 시간표대로 교도관의 통제에 따라 생활해야 했지만 경완같이 자유에 대한 관점이 독특한 사람에겐 살기 괜찮은 곳이었다. 오히려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심심할 정도랄까?

솔직히 교도소가 아닌 저 밖에서 소위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먹고 사는 걱정을 더 많이 했다. 오늘은 뭘로 때우지? 집주인이 방 빼라는데 어디로 옮기지? 직상 상사 좆같은데 어떻게 버티지?

배부른 돼지로 살 바에야 배고픈 늑대가 되어야 한다지만 솔직히 늑대는커녕 굶주린 돼지에 불과한 것이 많은 이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경완은 그런 면에서 배부른 돼지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를 도축하려 멱을 따려 다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씹새끼야.”

자유시간. 조용히 혼자 있는 경완을 찾아온 불청객이 있었다. 저번에 경완에게 빨대짓을 시키려 했던 그 문신남이었다.

“왜 다짜고짜 욕이세요?”

“이 씨발놈이 편하고 좋은 일 하나 시켜줄라니까 그것도 못 받아 처먹어서 일을 망쳐?”

목소리는 조용조용했지만 어투는 살벌했고 눈빛엔 살기가 돌았다. 평범한 일반 시민이 절로 쫄아들 정도의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경완을 쫄게 만들 순 없었다. 그는 오히려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시미치를 뚝 뗐다.

“영문을 모르겠네요.”

“이 씹새야! 조필태 그 인간한테 내가 뭘 시켰는지 다 꼬발랐잖아!”

“제가요?”

“그래!”

“이상하네?”

“뭐가?!”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말한 기억은 있지만 꼬바른 기억은 없었다. 감히 자신을 프락치 배신자 취급을 해? 나랑 친하세요? 언제 봤다고? 경완은 당당했다.

그의 능청에 남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럼 그 인간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데?”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여기에 주둥이가 저밖에 없어요?”

경완의 거짓말에 남자는 꾸욱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경완이 조필태에서 꼰질렀다는 증거는 없었다. 교도소에 자신이 모르는 귀가 붙어 자신이 저 애새끼에게 제의한 내용을 조필태 그 푸줏간에게 대가를 받고 알려주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경완을 노려보며 더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경완은 정말 억울한 인간인척 주변 사람 들으라는 듯이 한 마디 했다.

“아 씨발 좆같네.”

그 뒤로 며칠 간 경완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몇몇 재소자들이 경완에게 호기심을 보였지만 경완의 두루뭉술한 답변과 흥미 없다는 태도에 더는 지분거리지 않고 물러갔다. 딱히 뜯어먹을 것이 없는 개털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런 평화가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반개한 채로 햇볕을 쬐며 고요히 명상에 잠겨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해할 의도가 역력한 분위기에 반개한 눈이 그리로 향했다. 그랬더니 발바닥이 쑤욱하고 시야를 가득 매웠다.

경완이 신속히 고개를 젖혔다. 발꿈치가 턱 끝에 걸렸다. 하지만 몸 역시 발차기의 방향을 따라 뒤로 물러나는 상황이라 타격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경완의 팔이 주인 모를 발목과 정강이를 덩굴처럼 휘감았다. 허벅지가 무릎을 조이며 발목이 고관절에 붙었다.

올가미가 사냥감을 낚아채는 듯한 신속한 움직임. 그리고 연이어 코어근육이 용틀임 하듯이 힘차게 움직였다.

우드득!

“끄아아악!”

경완의 얼굴에 발차기를 먹이려고 시도한 사람이 기이하게 꺾인 무릎을 쥐고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무릎이 아작 난 게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경완이 서둘러 일어나 누군지 보니 자신에게 빨대짓을 시키려 했다가 혼자 화를 내고 돌아간 그 문신남이었다.

“아우 시벌 놀래라.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세요. 간 떨어질 뻔 했네.”

“이 씨발놈이! 죽인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

“그런 말을 하면 제가 손을 안 쓸 수가 없잖아요.”

말만 그리 하는 일반인도 아니고 딱 봐도 조폭 나부랭이인데..

경완이 자세를 낮춰 문신남의 멀쩡한 다리를 붙잡았다. 교도관들이 저 멀리서 '멈춰!'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지만 경완의 튼튼한 코어근육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무릎을 감싸고 있는 인대들을 비틀어 끊어버렸다.

“끄아악!”

문신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완은 그의 무릎관절에서 소리와 손끝의 감각에서 목표한 바를 완수했음을 알자마자 다리를 놓고 일어나 두 손을 들었다. ‘저는 교도관에게 반항하지 않습니다’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이 새끼야!”

하지만 교도관 중 한 명이 경완을 향해 삼단봉을 휘둘렀다. 얇은 서류파일도 아니고 그걸 맞아줄 경완이 아니었다.

“이 새끼가?!”

삼단봉을 쥔 손목이 턱 하고 잡히자 교도관은 '네가 감히?'라며 눈알을 부라렸고, 그런 교도관을 향해 경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불필요한 폭력은 삼갑시다.”

“미친놈! 지랄하네!”

그 교도관이 경완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용을 쓸 때 경완은 다른 교도관을 보며 말했다.

“이 아저씨가 저를 때리면 제가 고소해도 되죠?”

“김 교도관. 그만하죠.”

동료 교도관이 말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 교도관이 경완을 째려봤다. 험악한 둘 사이의 분위기에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봐 다른 교도관이 경완을 데려갔고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이 되었다.

교도소 내에서 폭력을 일으킨 죄로 경완은 독방 한 달을 조치 받았다. 배식도 독방 안에서 받았고 자유시간도 극히 제한되었다.

TV도 없어서 할 짓 없는 경완이 할 수 있는 건 명상을 하거나 교도관을 통해 책을 빌려보는 것뿐이었다. 혼거실에 있을 때는 도박도 하고 용돈도 벌고 제법 덜 심심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독방에서 시간을 죽이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명상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하루 온종일 명상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도 닦는 스님도 아니고 억지로 명상을 강행할 이유는 없었다.

“교도관 아저씨! 도서관 좀 가게 해주세요!”

경완이 독방 문에 달린 작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완이 매일 빠짐없이 책을 요구해왔기 때문이었다. 죄수를 도서관에 데려다 주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경완은 집요했다. 교도관이 대답 없이 자신의 말을 개무시하자 도서관을 보내 달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너무 지쳤어요! 독방! 독방! 기다리다 지쳤어요 독방! 독방! 책 없이는 이 방이 너무 너무 추워요~오!”

트롯트를 개사해서 부르다가,

“예에~! 한국 교도소의 또라이! 내가~ 돌아왔다~! 병신 of 독방 다 쪼까!”

“암어 책고다이 머더booking 책고다이 혼자서도 잘해 형은 책 or 다이!”

깽스터 힙합을 개사해서 부르다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책을 봐~. 보고 보고 또 보지 울긴 왜 울어.”

동요 비스무리한 것도 개사해서 부르다가,

“내 책 땀 눈물~! 내 마지막 꿈을! 예에~.”

K-팝도 개사해서 부르다가, 나중에는 메들리로 만들어서 (일부러)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로 부르는데 더는 참다못한 교도관이 소리를 질렀다.

“야! 안 닥쳐!?”

경완은 그 말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입만.

탕! 타탕! 탕 탕탕탕탕!

경완이 갇힌 독방의 철문은 어느새 타악기가 되어 굿거리장단부터 시작해 다양한 장단을 섭렵하더니 이내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묘한 엇박을 요란하게 타기 시작했다.

타라탕! 쿵쿵! 타라탕! 탕! 탕탕탕! 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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