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02-땅이 바닥이고 하늘이 지붕
결국 참다못한 교도관이 그의 문 앞까지 다가와 창문을 열고 언성을 높였다.
“야!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데?”
그 말에 경완이 난타를 멈추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한 마디 했다.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교도관이 절로 '지랄'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든 경완은 다시 눈을 감고 음미하듯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교도관의 눈엔 그 모습이 마치 사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박자란 무엇인가?라며 탐구하는 광기어린 음악가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그만해라, 이 새끼야!”
항복. 좋게 표현하자면 협상하자는 교도관의 말에 경완은 눈을 껌벅였다.
“어? 그래도 되겠어요? 제 부탁 들어줬다가 독방에 갇힌 다른 죄수들이 저처럼 억지를 부리면 다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걸 아는 씹새가 그래?! 교도관은 혈압이 오르는 걸 참고 이를 갈 듯 말했다.
“너 도대체 몇 시간이나 두들겼는지 알기나 하냐?”
“몰라요.”
“하루 온종일 두드렸어, 이 새끼야!”
아침 먹고는 그 좆같은 메들리를 돼지 멱따는 듯한 목소리로 점심때까지 불러재끼더니 하지 말라니까 점심 먹고 나서는 저녁 먹을 때까지 계속 그 좆같은 박자를 두드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도 계속 두드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지 말래서 안 한 것이 아니라 지가 목이 아프니 안 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돼지 멱따는 목소리로 오전 내내 소리를 지르는데 목이 안 쉬고 배겨?
아무튼, 교도관이 감히 단언컨대 이 새끼처럼 독한 새끼, 아니 미친 새끼는 본 적이 없었다. 독방에 갇힌 다른 놈들이 감히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오죽하면 정신병원에 가야 할 놈을 교도소로 보냈다고 동료들과 함께 병신같은 판사새끼라고 씹어댔을까?
그 말에 대한 경완의 감상은 짧았다.
“역시 음악은 마약인 모양이네요.”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 온종일 그렇게 두들겨 댈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개소리를 듣는 교도관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 = = = =
도서관의 책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받은 경완은 도서관에 여러 번 오가면 자신도 귀찮고 그를 감시해야 하는 교도관도 귀찮으니 규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책을 빌렸다.
대부분은 기능시험에 관련된 서적이었다. 교도관의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가 싶었지만 사실은 소설 같은 건 너무 빨리 읽혀 시간을 때우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경완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어마어마한 경험치는 관련 정보에 대한 습득을 가속시키고 그만큼 빨리 질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의 주제의식은 파악이 너무나 쉬웠고 그렇다고 공감하며 즐기기엔 경완은 꽤나 냉소적인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였다. 솔직히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자면 소설이란 결국 인간이란 존재로 인해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갈등과 그 해소를 그리는 것이 다이지 않은가?
하지만 온갖 사람 사는 꼴을 다 봐왔던 경완에게 매체 혹은 장르에서 그려지는 갈등은 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하기 쉬울뿐더러 사건자체도 그에겐 그리 자극적이질 않았다. 오죽하면 어느 영화감독이 말하길 현실이 영화보다 더 해서 각본쓰기 곤란하다 할 정도이지 않은가?
그러나 전기기사 등의 기능과 관련된 기술 서적은 흥미만 붙인다면 시간을 보내기 매우 좋았다.
독방에 갇힌 덕분에 경완은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뭐, 그가 설계한 인생길을 생각하면 도대체 써먹을 데가 있을까 싶었지만 말이다.
= = = = =
한 달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다. 반복된 일상은 시간을 삭제시켰다.
자신이 지내던 감방으로 돌아오니 조필태가 격렬히 그를 반겼다.
“우리 타짜! 돌아왔구나!”
“타짜 아니라니까요.”
조필태는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한 걸 물었다.
“공병 그 놈은 왜 조진 거야? 그리고 어떻게 조진 거야?”
“공병? 그게 누구에요?”
“공남병. 네가 무릎을 아작 낸 그 놈.”
무릎을 아작 낸 놈이 한 둘은 아니지만 조필태가 말한 놈이 그 문신남임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경완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이름이죠? 저한테 빨대 되라고 한 사람.”
“맞아. 너한테 그 얘기 듣고 그놈을 아주 좆 되게 만들어줬지.”
조필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서렸다.
“아~. 그래서 그놈이 저한테 와서 꼰질렀냐고 물어봤구나.”
“그래서 싸운 거야?”
“그건 아니에요. 저는 꼰지른 기억이 없거든요.”
“뭘 안 꼰질러?”
“제가 누구 부하도 아니고 뭘 꼰질러요? 그냥 저는 솔직했을 뿐이에요.”
“푸하하하! 이 새끼 물건이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저는 꼰지른 적이 없으니까 그냥 갔죠. 그런데 다음번엔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네가 꼰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경완의 말에 조필태는 감방에 있는 다른 두 사람에게 차례로 시선을 보냈다. 사기꾼 방상훈은 범털이라서 건들진 않았을 것이다. 범털은 소중하니까.
하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김춘재. 바람난 연인의 남자를 때려서 병신을 만들고 복역 중인 남자.
그를 보는 조필태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너냐?”
“아, 아니에요!”
“그럼 그 새끼가 어떻게 타짜가 꼰지른 걸,”
“안 꼰질렀다니까. 그리고 타짜도 아니에요.”
“쓰~읍! 아이, 새끼가 참. 넌 좀 가만있어.”
경완이 억울해서(?) 한 마디 하자 조필태가 끼어들지 말라고 제지한 후에 김춘재의 어깨에 턱하니 손을 올렸다.
“춘재야. 내가 너 같은 새끼들을 자~알 알거든. 이 새끼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딱 보면 안다 이거야.”
“오호~!”
그 말에 경완이 감탄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남 등쳐먹고 살았던 (자칭) 전직 조폭에게 그런 재주가 있다고?
경완의 그런 반응에 조필태는 분위기 초치지 말라고 눈치를 주고는 김춘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바른 대로 말 안 할래?”
“마락께요! 마락께요!”
경완은 조필태가 김춘재를 심문하는 과정을 살폈지만 그리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그냥 폭력이나 심리적 압박을 통해 자백을 유도하는 것일 뿐.
조필태가 멱살을 놓자 김춘재의 자백이 이어졌다. 조필태의 예상처럼 김춘재는 빨대가 맞았다. 그리고 경완의 고자질을 그 공남병인가 뭔가하는 문신남에게 확인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고분고분한 자백에도 조필태의 주먹이 김춘재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조필태가 참을 수 없었던 점은 김춘재가 공남병의 빨대로 활동한 시기가 경완이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였기 때문이다.
“이 씹새가!”
“아아! 진정하세요.”
오히려 경완이 조필태의 팔을 붙잡고 진정시켰다.
“춘재 아저씨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요? 그 공 뭐시기 하는 인간이 협박해서 그랬겠지.”
“그, 그래요!”
김춘재는 자신이 엿을 먹인 경완이 오히려 자신을 두둔하자 화색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필태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 씨발! 그래도 사내새끼가 좆이 달렸으면 어! 뚝심이 있어야지!”
“춘재 아저씨는 건달도 아니고 그냥 실수 좀 한 일반인이잖아요? 건달이 작정하고 협박하면 버틸 수가 있겠어요?”
“허우~!”
맞는 말에 더는 조필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김춘재의 멱살을 놓았다.
김춘재는 경완을 보며 말없이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꽉 문 게 고맙다는 표현이 가득했다. 경완 역시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그 뒤로 며칠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면회를 다녀온 조필태가 공남병이 무릎 병신이 되었다는 소식과 더는 김춘재가 협박을 받을 일이 없을 거라는 소식을 전하고 나서는 분위기가 풀렸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엔 사기꾼 방상훈이 출소했고, 겨울엔 김춘재가 출소했으며, 봄엔 조필태가 출소했다.
“사회 나오면 연락해라.”
“저 출소하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조필태는 흐흐 웃었다.
“나 그리 의리 없는 놈 아니다.”
경완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조폭의 의리란 언제나 배신 가능한 것. 그냥 경완이 쓸 만해 보여서 내민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완은 입에 발린 말을 해주었다. 립서비스라면 그도 자신 있었다.
“그럼 제가 나갈 때까지 전화번호 바꾸시면 안 됩니다.”
“푸하하! 알았다. 가끔 내가 영치금도 넣어주마.”
그렇게 조필태가 출소했고 기존의 감방 멤버는 완전히 물갈이 되었다. 방상훈, 김춘재가 나간 이후에 들어온 이들은 그냥 출소를 간절히 바라는 일반인일 뿐이었으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 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평화가 너무 길었을까? 경완은 심히 그를 자극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저씨.”
“···.”
“아저씨!”
“왜!”
“왜 전 이것 밖에 안 줘요?”
삼겹살 고추장 볶음이 나오는 날이다. 하지만 배식을 하는 죄수가 경완에게 준 고기반찬의 양은 다른 죄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양, 좀 과장해서 말하면 찌꺼기 수준이었다.
하지만 배식하는 죄수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언성을 높였다.
“빨리 꺼져! 배식해야 하니까!”
경완의 뒤 차례를 기다리던 죄수도 한 마디 했다.
“빨리 가라.”
경완은 황당해서 입을 벌렸다. 하지만 손은 기민했다.
“이 씹새가!”
경완이 고기 퍼는 국자를 탁! 하고 낚아채자 배식하던 놈이 욕설을 하며 지랄을 했다.
“야이 씹새야! 그거 안 내놔?”
하지만 경완은 그의 개소리를 개무시하고는 차별당한 자신의 고기반찬을 원상복귀 시킨 후에야 국자를 이중잣대에게 집어던졌다.
“아저씨.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경완은 경고를 날리고 식탁으로 향했다. 뒤에서 '저 개 씹새끼가!'라고 욕설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뭔가 일이 터질까봐 달려올 준비를 하던 교도관들이 긴장한 자세를 풀었다. 하지만 경완과 배식 담당 죄수를 향한 감시의 시선은 더욱 강해졌다. 사소한 갈등이 폭력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빈자리를 찾은 경완은 자리에 앉아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평화는 저 먼 곳에 있었다. 갑자기 누가 뒤통수를 쳐서 입안에서 밥알이 튀어나온 것이다.
경완이 고개를 돌리니 경완의 뒤에서 배식 차례를 기다리던 죄수였다. 뒤에서 놈이 뭐라고 한 소리 할 때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꽤나 험상궂게 생겼다.
놈이 옆자리에 앉으며 시비조로 말했다.
“야이 새끼야. 내가 앞으로 빨리 가라한 말 못 들었어?”
경완의 입장에선 참으로 개소리였다. 그는 놈이 마치 시비를 건 적 없는 것처럼 무시하며 숟가락으로 고기반찬을 퍼서 입에 넣었다.
“허허? 이 새끼 좀 봐라?”
놈은 이런 개무시는 난생 처음이라는 듯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경완의 팔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단단히 쥔 망치 주먹이 놈의 안구를 후려쳤다. 경완이 놈을 보지도 않고 눈알이 있는 위치를 머리 속으로 정확히 그려서 후려쳤기에 완벽한 기습이었다.
“크악!”
놈이 눈알이 터진 것 같은 고통에 두 손으로 눈을 감싸자 곧장 경완의 이타가 그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허리를 비틀어 완벽히 힘을 끌어올린 정권이 놈의 울대뼈를 가격했다. 우두둑 울대뼈가 부러지는 손맛이 쥑여줬다.
“끄륵!”
놈은 혀를 길게 빼물며 고통과 함께 호흡 곤란 증상을 보였고 교도관들이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