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03-인간쓰레기통의 짬처리꾼
“설레이느은~ 내- 마음~ 그댄~ 알까~”
“육구팔팔! 멈춰!”
“지랄맞은~ 불쾌함을~ 어떻게 전할까아~”
퍽!
교도관이 급히 문을 열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흥얼거리는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스탭을 밟으며 반 대머리의 뒤로 돌아간 경완이 놈의 사타구니를 힘껏 올려찼다. 발등에 느껴지는 감각으론 투 스트라익이 분명했다. 그의 불쾌했던 심정도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크어어억!”
놈이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뒤집었다. 파열된 눈알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눈물은 서둘러 방에 들어오는 교도관의 발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섬뜩했다.
더 섬뜩한 것은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고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인지 각기춤인지 모를 춤을 추는 경완의 모습이었다.
“대머리의~ 좆같은 아저씨가 나보고 윙크하네~ 얼~쑤!”
그 모습은 그야 말로 미친놈, 광기의 화신이었다.
= = = = =
급하게 독방으로 이송되는 경완의 표정은 그야 말로 유쾌상쾌통쾌였다. 이 좆같은 교도소로 이송되어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좋은 방법이었다. 경완은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이 좋은 방법을 애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인생 스트레스 쌓아봤자 병만 생긴다.
하지만 산뜻해진 경완의 기분과는 반대로 교도소장 홍창영의 기분은 좋을 수가 없었다.
흉악범, 중범죄가 수용된 교도소라 종종 사고가 났지만 이번처럼 재소자가 심하게 다친 건 드문 일이었다.
다친 게 아니라 아예 병신이 되었다. 두 눈은 완전히 파열되었고 음낭 역시 완전히 파열되어 고자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언론이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다. 어린 여자 아이를 강간하고 심한 부상을 입혀 격렬한 국민적 공분을 산 범죄자가 제대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장애를 얻게 되었으니 클릭수에 목메는 기레기들이 얼마나 달려들 것인가?
차라리 자살 사건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사건의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벌써부터 면회신청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 사건의 당사자인 이경완에 대한 면회는 아직 없었지만 아직 기자들이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고 있기에 조용히 있을 뿐,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면 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홍창영은 결국 이경완을 불러 한 번 얼굴을 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새끼인지 파악이 되어야 어떻게 대처할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류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서류의 사진만 봐서는 얌전하고 멀쩡하고 평범하게 생겼는데 서류에 나온 폭력전과와 그 정도는 생김새와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경완과의 첫 대면은 홍창영을 적잖이 곤혹스럽게 했다. 교도관으로서 또 교도소장으로서 적잖은 재소자들을 만나 보았지만 경완처럼 공손하게 인사하는 재소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황을 헛기침으로 감추며 경완에게 책상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수갑을 팔다리에 찬 경완은 자신의 양옆에 선 교도관들의 인도를 따라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로 의자에 앉았다.
그쯤 되니 홍창영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실한 청년인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런 짓들을 한 건가?”
그 모습에 경완은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소장님도 농담이 참.. 제가 건실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곳에 안 오죠.”
“....”
순간 홍창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경완의 말이 맞았다. 건실한 사람이 이런 흉악범만 수용하는 교도소로 올 리 없었다.
벙찐 그를 보며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냥.. 저랑 법이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뭐 어쩌겠어요?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죠.”
“어떻게 안 맞는다는 말인가?”
“건실한 사회인은 좆같은 일을 당해도 준법정신을 발휘하거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참고 넘어가는데 저는 손이 먼저 나가거든요. 자력구제가 기본마인드로 장착이 되어 있는 터라..”
영원한 이방인, 무한전생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력구제 마인드는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사회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법이라는 걸 별로 개의치 않는 개썅 마이웨이의 면도 한 몫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홍 소장의 입장에선 납득하기 힘든 소리였다.
“그런 마인드를 고쳐볼 생각은 못했나?”
“뭐, 애비한테 강제동반자살 당할 뻔하다가 혼자 살아남으면 딱히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더라고요.”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고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즉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사회의 구성원, 건전한 준법시민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대충은 맞는 소리였다. 훔치고 강도질하고 저 새끼를 내가 등쳐먹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소리였다.
홍 소장은 경완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애비가 자식까지 죽이려 했다는 경완의 사연은 홍 소장 같이 멀쩡한 사회인에겐 전가의 보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교도관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홍 소장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일로 자네 형량이 더 늘어나게 생겼어. 그 좋은 젊은 시절을 이 감방에서 보내게 생겼다는 말일세.”
딴에는 경완이 입을 손해를 상기시켜 행동을 교정코자 했지만 그가 말한 손해가 경완에게 딱히 그리 대단한 손해는 아니었다.
“어차피 밖에 있어도 그리 좋은 시절을 보낼 것 같진 않아요. 이 자본주의사회는 저같이 빽 없고 못 배우고 부모까지 없는 사람을 착취하기 마련이거든요. 착취당하다 열불 나서 사고 치느니 차라리 이렇게 사회와 격리되는 게 사회도 좋고 저도 좋은 일 같아요.”
“... 자네는 꿈같은 거 없나?”
“뭐 더러운 꼴 안 보고 사는 거? 그 외는 딱히..”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은 분명 예전 부친과의 그 일이 경완의 인격 형성에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고 오해했다.
물론 인과는 잘못 짚었지만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 경완은 어딘가, 아니 정신이 아주 많이 이상해진 놈임은 분명했다.
“아무튼 한 달간 자네는 독방이야.”
“심심할 텐데 책 같은 거 들고 들어갈 수 있어요?”
“안 돼. 어떤 이유에서든 자네는 사람에게 치유할 수 없는 장애를 입혔어.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하네.”
홍 소장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요? 제가 언제요?”
“자네가 저지른 짓을 벌써 까먹었단 말인가?”
그제야 경완은 생각났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아. 그 구더기 말이구나. 사람이라 하셔서 잠깐 헷갈렸어요.”
진심인듯 한 말에 일순간 홍 소장도 할 말을 잃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물론 악독한 놈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한 일이 정당화될 순 없어.”
“전 딱히 정당화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걸 정당화 하려고 했으면 억울하다고 했겠죠. 그냥...”
“그냥?”
“그냥 11명이나 되는 힘없는 여자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구더기가 사람이랍시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꼴은 보기 불쾌하잖아요.”
“불쾌해서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잖아요. 쓰레기가 옆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으면 피해가거나 치우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유리조각이 떨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이 밟고 지나갈까봐 걱정해서 주워버리기도 하잖아요? 그 와중에 손에 오물이 묻거나 살짝 작은 생체기가 나는 건 감수하는, 그런 마인드인거죠.”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은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눈앞의 청년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음이 틀림없었다.
굳어진 홍 소장의 표정을 보며 경완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흐뭇하지 않아요? 놈이 멀쩡하게 출소하면 놈에게 당한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괴롭겠어요? 하지만 이제 놈은 감히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는 몸이 되었죠. 소장님은 이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 자네는 지금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
“법도 바뀌잖아요? 전 법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법은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일세.”
“그래서 제가 여기에 얌전히 잡혀 있는 거랍니다. 저도 나름 준법시민이라고요.”
준법시민 다 뒈졌다.
홍 소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눈앞의 청년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왔다. 설명하기엔 좀 복잡하지만 반사회적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법은 결코 사적제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쯤하지.”
홍 소장은 경완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언론을 생각했다. 골치가 더 아파졌다. 저런 놈이 이름을 알리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그걸 생각하면 서둘러 놈을 독방에 집어넣은 건 참으로 잘한 짓이었다. 한 달쯤 지나면 언론의 관심도 사그라져 있겠지.
홍 소장은 그렇게 작은 희망을 품어보았다.
= = = = =
[연쇄 미성년자 강간범 ○○○ 1급 시각 장애되다!]
뉴스가 터졌다. 국민적 공분을 산 범죄자가 병신이 되었다. 그 사실은 관련 사건을 취재하던 사회부 기자에 의해서 입소문이 났고 이거다 싶어서 조사한 기자들로 인해 사실로 드러났다.
교도소측에선 재소자 사이의 싸움으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일축했고 사람들은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야!”
“네, 소장님.”
“이번엔 왜 그랬어?!”
홍 소장의 분노 어린 물음에 경완은 헤헤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좆같이 나쁜 놈이더라고요.”
나쁜 놈 맞다. 연쇄 부녀자 강간범이었으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지 입으로 자랑하더라고요. 들키지만 않았으면 쌔끈한 여대생 둘은 더 따먹었을 거라고요.”
“....”
홍 소장은 참으로 기분이 좆같아졌다. 경완이 그 새끼를 시각장애1급의 고자로 만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범죄를 자랑하던 새끼가 고작 3년을 선고 받았기 때문인지.
정신이 혼란해진 홍 소장에게 경완이 손을 비비며 간사하게 말했다.
“저.. 소장님? 이번에도 독방인가요?”
“그래.”
“설마 한 달?”
“그래.”
“아쉽네요.”
“뭐가?”
“PX를 못 쓰잖아요. 매일 짬밥 먹기가 심심한데.”
“여기가 군대야!”
“아 맞다. 군대보다 밥은 잘 나오죠?”
‘그럼 짬밥은 아니네요’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홍 소장은 교도관에서 손짓했고 경완은 얌전히 교도관에게 붙잡혀 소장실을 나섰다.
그런 경완의 뒷모습은 홍 소장의 시름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도대체 저 새끼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그냥 출소 때까지 독방에 집어넣어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것도 힘들었다. 왜냐?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동 성범죄자에 이어 연쇄 강간범까지 똑같이 눈알 병신, 거시기 병신이 되어 실려 나오자 이번에는 인과응보라는 반응대신 ‘도대체 누가?’라는 반응이 터져 나와 버렸다.
게다가 두 사건이 동일한 교도소에서 터져 나왔으니 똑같은 이가 그랬음이 분명했고 그만큼 그가 누구인지 밝혀지기 전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은 이미 첫 사건부터 범인으로 경완을 특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은 관심이 식으라고 독방에 넣어놨다고 접견을 막아놨을 뿐.
첫 사건 이후엔 시간이 지나며 국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그에 따라 경완을 접견하지 못한 기자들도 포기했는지 접견 요청도 사라졌다. 그런데 다행히 잘 넘겼다고 안심하는 와중에 저놈이 다시 똑같은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