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0화 (30/367)

029-03-인간쓰레기통의 짬처리꾼

홍 소장은 다시 규정대로 경완을 독방에 집어넣어 기자들의 접견을 막았다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저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관심은 식질 않았고 접견신청도 그치질 않았다.

접견은 재소자의 권리. 규정상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교도소장이라고 정당한 근거 없이 접견을 막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말이다.

결국 몰려드는 접견신청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홍 소장은 경완에 대한 접견 신청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언론쪽 신청이었고 언론과 척을 지면 힘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경매일보의 최충곤 기자입니다.”

최충곤 기자는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드디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그 재소자와 접견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최초로!

특종, 또는 단독기사로 인한 흥분이 치솟았지만 인터뷰 대상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놀랍게도) 기자는 재보자, 또는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흥분한 모습으로는 신뢰를 얻기 힘들지 않은가?

“이경완입니다.”

최충곤 기자가 경완을 만난 첫인상은 놀랍게도 매우 예의가 바르다는 점이었다. 얼굴도 멀끔한 것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 나름 잘생겼다. 최 기자의 예상으론 과거 예쁘고 잘생긴 범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잘 꾸미면 신드롬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기자로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기자는 그저 사회에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적어도 최충곤 기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만큼은 대중을 계도해야 한다는 교조주의적 엘리트 언론과는 다르다고 자부했다.

“접견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래서 말인데 혹시 기자와 접견을 허락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식을 기대해서요.”

“사식이요?”

“혹시 빈손으로 오셨나요?”

최 기자는 당황했다. 솔직히 그는 갇혀 지내기만 하는 재소자에게 기자가 접견 신청을 하면 좋다구나하며 당연히, 아무런 요구사항 없이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뭔가를 원하는 상황은 뜻밖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실망시켜서 인터뷰에 지장을 줄 순 없었다.

“제가 나가면 곧장 영치금을 넣어드리겠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영치금으론 치킨을 못 먹어서요.”

“네? 치킨이요?”

순간 최 기자의 머릿속에 ‘죄수 주제에 제 주제도 모르고 치킨이라니’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다음에 접견 올 때 사오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네.”

“당신을 접견하려고 했는데 한동안 안 되더군요. 독방에 계셨습니까?”

“네.”

“혹시 독방에 갇혀야 할 정도의 일을 하셨습니까?”

“네.”

“외람되지만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 이야기는 치킨을 뜯으면서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최 기자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급히 경완을 설득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경완의 표정은 마치 더 듣고 싶으면 요금을 내라는 것 같았다.

최 기자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억지로 물어봤자 제대로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그는 경완에게 한 가지 당부를 부탁했다.

“그럼 다음에 치킨을 사오겠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그때까지 최 기자님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꼬리를 흐리는 최충곤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경완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최충곤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경완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특집 기사 한 편이 나왔다.

[그들은 받아 마땅한 죗값을 받지 아니하였다.]

-얼마 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교도소내 상해 사건을 기억하는가? 본 기자는 매우 운 좋게 그 일의 당사자와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본 기자가 그와의 첫 만남에서 느낀 것은 죄수복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예의 바르고 싹싹한 청년이라는 점이었다. 사람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힌 상해범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한 동안 접견이 금지되어 있던데 독방에 계셨나요?

○○○: 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 짬처리를 좀 해서요.

-짬처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 사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를 처리했죠.

- 쓰레기란 A씨와 B 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그 쓰레기에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니 참으로 과분하네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청년의 표정은 참으로 평온했다. 그 얼굴에서 그가 상해를 입힌 자들에게 대한 그 어떤 적개심도 읽을 수 없었던 본 기자는 자연히 그런 일을 저지른 동기가 궁금해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있나요?

○○○: 그것들이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신세였다면 저도 그렇게까진 안 했죠.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형량을 받고 나가잖아요? 그것도 피해자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바로 그때쯤이요. 제가 그것들과 같이 생활해 봐서 아는데 그것들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이라든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그저 재수가 없었다,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라는 자기합리화 뿐.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내려진 형량은 제가 봐도 너~무 가벼워서 가히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될 정도였죠. 그래서 제가 짬처리라고 한 거예요. 법 만들고 그걸 집행하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외면한 피해자를 생각해서요.

-피해자를 생각해서요? 왜요? ○○○씨는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요.

○○○: 허 참. 기자님. 그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지셔서 기사는 어떻게 쓰세요? 기자님은 그 피해자들이 가엾지 않아요? 그 두 새끼가 다시 출소하면 무서워서, 그리고 억울해서 잠이나 잘 수 있겠어요?

-여기서 본 기자가 느낀 점은 그는 결코 평범한 상해범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가 애당초 교도소에 들어온 이유도 다수의 조직폭력배와 싸우다 그들 중 한 명이 죽어서였다. 혹시 조폭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이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아니었다. 당시 ○○○씨는 노숙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일로 형량이 늘 수밖에 없는데 후회는 되지 않습니까?

○○○: 오히려 뿌듯한데요?

-뿌듯하다고요?

○○○: 좋은 일 했잖아요.

-··· 좋은 일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본 기자의 반문에 그는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마냥 유쾌하게 웃었다.

○○○: 하하하! 기자님은 기자라서 더 잘 아시잖아요. 세상엔 사람의 탈을 쓴 유해조수가 있다는 걸.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씨에겐 이득이 없지 않습니까?

○○○: 이득을 챙기기보다는 빚진 것부터 갚자는 마인드라..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 지금의 제 잠자리, 제 끼니. 그 모두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서 사는 사람들이 낸 혈세잖아요. 교도소도 결국 정부 예산을 타내서 운영하고, 저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답니다. 얼굴도 모르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그.. 장애를 입은 자들도 세금은 냈을 텐데.

○○○: 그런 쓰레기들 돈은 먹고 입 닦아도 돼요.

-좀 더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접견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에 여기서 인터뷰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본 기자는 그와 다시 접견 약속을 하고 접견실을 나섰다.

-본 기자는 그에게 더욱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특히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그 모습이 이기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이타적으로 보였다.

-그런 이가 중범죄자를 주로 수용하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거기에 의문을 품은 본 기자는 두 번째 인터뷰 전까지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노숙자 시절에 어떤 형사의 생명을 구했다면서요?

○○○: 그랬죠.

-그 일에 끼어드신 것도 저번에 말씀하신 이유와 관련이 있나요?

○○○: 따지고 보면 그렇죠. 당시에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었거든요.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까? 들어보니 당시 형사는 범인의 칼에 찔려 죽을 뻔했다던데..

○○○: 목격자가 있다고 모습을 드러내면 거기서 멈추고 튈 줄 알았죠. 그런데 입을 막겠다고 덤벼들더군요.

-그럼에도 목숨 걸고 싸우셨지 않습니까?

○○○: 딱히 목숨 걸진 않았어요.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저에게 사람 조지는 재능이 있다는 걸 좀 알고 있었죠.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면 UFC 선수 같은 것을 해도 좋았을 텐데 그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 생각은 해봤는데 하기는 싫었죠.

-어째서요?

○○○: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그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는지 아세요? 전 그렇겐 못 살아요.

-노숙자의 삶보단 그들의 삶이 더 낫지 않습니까?

○○○: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 씨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딱히 거기에 대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물 흐르듯 세월 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자신의 삶을 개선할 의지 같은 건..

○○○: 그래서 사람들의 선의가 감사한 거죠.

-일견 듣기엔 엉뚱한 대답이었다. 본 기자는 '그럼 사람들의 선의에 빌붙어 살겠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접견은 거기서 끝났고, 그의 진의를 알기 위해 다시 접견을 요청했지만 그땐 그의 접견이 막혔다는 대답을 받았다. 다시 독방에 갇힌 것이다.

-필자는 그의 과거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조사한 끝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강간을 당하려던 여학생을 구한 육고자 사건의 주인공이었으며, 학창시절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괴롭힌 일진에게 흉기를 휘두른 왕따였고,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부친과 함께 죽을 뻔하다가 혼자 살아남은 가여운 소년이었다.

-누구라도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과거를 겪고서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 본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선의에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이런 청년이 지금 교도소에 있는 이유는, 스스로의 삶을 개선한 의지조차 없었던 이유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우리의 부조리한 사회 때문은 아닐까?

홍 소장은 짜증이 나서 인터넷 뉴스 창을 꺼버렸다. 이경완 그놈을 무슨 사회의 피해자인양 적어 놨다.

인터뷰의 파급은 엄청났다. 지랄 맞은 팬카패가 벌써 생겨나 있었고 언론은 가벼운 양형기준에 대해 성토하고 있었으며 경완의 영치금은 여러 사람들이 보낸 돈으로 벌써 한도까지 꽉 차 있었다.

경완이 조진 그 새끼들, 그 새끼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경완에게 감사의 의미로 돈을 부쳤던 것이다.

그뿐이랴? 직접적으로 감사인사까지 하려고 접견신청까지 한 상태였다. 이경완 그 새끼가 또 사고치지만 않았다면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접견을 허락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접견이 만일 언론을 탄다면···.

그 여파가 도저히 상상이 안 돼서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을 홍 소장은 얼른 머리에서 털어버리고 경완이 친 사고를 떠올렸다.

이번에 경완에게 당한 놈은 사기꾼이었다. 무려 50억을 해먹은 사기꾼이었다. 한 번에 그런 것이 아니라 5억씩 자잘하게(?) 무려 13년에 걸쳐서 해먹은 액수가 그만큼이란 뜻이었다.

사기꾼답게 이름과 신원을 바꾸는데도 도가 터서 무려 13년 동안이나 도망 다녔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