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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1화 (31/367)

030-03-인간쓰레기통의 짬처리꾼

홍 소장은 표창장 위조 사건에 붙은 검사의 절반만 여기에 붙었어도 놈이 13년 동안이나 자유롭게 사기치고 돌아다니진 않았을 거라고 속으로 욕을 했다. 아니지, 그런 놈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방면했던 판사의 빙구같은 눈깔이 문제인가?

아무튼 그놈이 경완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가하면 혀의 3분의 2가 잘려나갔다. 그 잘린 혀는 경완의 손에 변기로 흘러가 버렸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을 목격한 같은 방 재소자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성 밝은 친구군. 반갑네. 김봉규라고 하네.”

두 사람은 만남은 처음엔 꽤나 화기애애했다. 경완 역시 싹싹하게 굴었고 사기꾼 김봉규는 원래 말 잘하고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그러지 못했다면 사기를 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조차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딱히 할 것이 없는 감방 안에선 수다가 킬링 타임으론 제격이었다. 이 수다에는 여자, 돈벌이, 성공, 위험요소 등 다양한 주제들이 포함되었는데 자연히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한 간접경험은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되니, 마약을 운반하는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이라든가, 탈법을 통해 사업장의 이권을 확보하는 방법, 능력 좋은 바지사장을 길들이는 방법 등 과연 어느 부류가 교도소를 학교라고 부를 정도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김봉규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 역시 그러한 것들이다.

“사기라는 게 말이야, 내가 사기 치겠다고 해서 쳐지는 게 아니거든. 호구의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야 돼. 거기까지 미끼를 뿌리는 게 전부다 이거야.”

화투판에서 하는 말이 있다. 호구를 자리에 앉히기만 하면 끝이라고. 거기까지 앉히는 게 문제지 그 다음은 도살장에 끌려간 가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기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은근히 뽐내는 김봉규의 모습에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진 다른 재소자가 물었다.

“그래서 얼마 해먹었어요?”

“나? 얼마 안 해 먹었어. 한 번에 백억씩 해쳐먹는 고래에 비하면 난 피라미에 불과해.”

“아이, 그래서 얼마나요?”

“쏠쏠 할 때는 10억 정도 적으면 1억 정도?”

“와! 그 정도면 많이 버는 거 아니에요?”

“투자금이 있잖아, 투자금이. 사기가 입술만 달싹인다고 다 되는 줄 알아? 판을 까는데 드는 돈을 생각해야지.”

“바람잡이가 있어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사람 몇 명만 있으면 한 명 바보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경완은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역시 사기꾼들은 사람의 탐욕을 잘 이해하고 자극할 줄 알았다.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탐욕에 눈이 멀어서였다.

“그런데 자네는 무슨 일로 들어왔나?”

김봉규가 경완의 호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완은 적당히 대답했다. 사람을 실수로 죽여서 들어왔고 부모님은 없으며 개털이라고 말이다.

“아, 개털! 돈 없으면 참 서럽지. 그래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좀 오래 있어야 돼요. 몇 년 정도?”

“쯧쯧. 안타깝네. 교도소도 자본주의 사회라 돈 없으면 괴로운데.”

김봉규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교도소에 있으면서 할 만한 괜찮은 돈벌이를 알려줄까?”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요?”

“자네 우표깡이 뭔지 아나?”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규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다니 잘 됐군. 알다시피 우표깡을 할 때 문제가 되는 게 수수료거든. 불법이니만큼 그만큼 수수료도 높게 책정되지. 장물아비가 괜히 반값 후려치기 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서요?”

“내가 아는 업체가 있어. 전국구 조폭하고 연이, 아니 그냥 바지 사장 신세를 못 면하는 놈이 있는데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놈이거든. 그런데 녀석이 이번에 우표깡 시장을 크게 먹어 보겠대.”

“어떻게요?”

“수수료지 수수료. 수수료를 낮춰서 경쟁자를 고사시키고 시장을 독점하겠다는 거야. 어디 아마존인가 뭔가 하는 외국의 큰 IT업체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나?”

마진율을 줄이는 대신 시장을 더 크게 먹어서 이익을 남기겠다는 전략이었다. 원래 아마존은 인건비도 아끼기 위해 사람을 갈아넣는다는 경영방식도 있지만 김봉규는 그 부분은 모르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나야 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가는 몸이라 이 사업에 맞지는 않지만 자네 같은 개털인 장기수에게는 솔직한 이야기지 않아?”

다른 재소자가 그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끼어들었다.

“형님. 50억이나 해먹었으면서 어떻게 빨리 나가요?”

“십년 넘게 걸린 건데 어떻게 그 금액을 다 구형을 때려? 검찰도 증거가 없어서 겨우 5억 정도만 구형을 때렸지. 그에 따라 선고가 내려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사기에 관대하잖아?”

국해의원분들의 핏속에 떼놈 피가 섞여 있는지 당한 놈의 사정은 잘 봐주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떼놈들이 자식한테 강조해서 가르치는 게 남에게 사기 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당하지 말라는 것이라지 않은가?

피해자에겐 별로 관심없는 국해의원분들의 핏속에는 분면 떼놈 피가 진하게 섞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격세유전으로 발현했다든지.

아무튼, 경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자네 직업훈련 나가지?”

원래 교도소에 갇히면 노역을 하게 되는데 인권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강제로 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 과거라면 노역하기 싫어서 꾀병 같은 걸 부렸으면 교도관들이 정말 병이 나게 해주었을 텐데 요즘 같이 인권 단체가 지랄하는 세상에서 그러면 큰일 난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교도소에서 노역이 아니라 노동으로 돈 벌 구석이 생겼다. 이른바 직업훈련. 재소자들의 재사회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로써 나가서 먹고 살기 위해 직업훈련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는데 상품도 만들고 그만큼 훈련장려금도 나왔다.

그런데 그런 데를 경완이 왜 나가?

“안 나가는데요?”

“안 나가? 왜?”

“그냥요?”

경완의 말에 김봉규의 얼굴엔 잠시 곤란함이 서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젊은 나이에 실수로 이런 곳에 들어와서 잠시 방황할 수도 있지. 그래도,”

“아유, 잔소리는 됐고. 듣자하니까 직업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이 말하려는 거잖아요.”

경완이 말을 끊어도 그는 전혀 불쾌해하는 기색도 없이 옳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훈련에 나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냐? 여태까지의 과오를 씻고 나가서는 새사람이 되어 성실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렇죠.”

경완이 맞장구를 치자 김봉규는 그런 이들이야말로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고 또 한 그러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며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설명했다.

같은 방의 재소자들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화려한 화술이었다.

“그러니까 우표깡 수수료도 줄 일 수 있으면 줄이고 싶어 하는 게 그들이라 이 말이지.”

“그러니까 제가 그들을 상대로 우표깡 장사를 하라는 건가요?”

“그렇지. 우표를 모아다가 내가 말하는 곳으로 편지를 보내면 돼.”

김봉규의 말에 다른 재소자들이 한 마디씩 했다.

“형님. 저희는요?”

“너희는 얼마 안 있어 나가잖아? 이 친구에게 맡겨야지.”

그 말에 다른 재소자들이 부럽다는 듯이 경완을 보았다. 김봉규는 그의 결단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어때? 하겠나?”

경완은 손을 내민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하하! 결정 잘했네. 사실 이 사업은 교도소에 있는 다른 조폭들의 복지를 위한 거야. 그 바지사장 친구가 바지사장 노릇을 벗어나려면 다른 조폭과의 인맥이 필요하거든. 비단 돈만 보고 가는 사업이 아니다~ 이 말이지. 자네에게도 물론 좋은 일일세. 자네가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는 지에 따라 그 친구가 자네를 눈여겨 볼 수도 있거든.”

경완은 화려한 그의 말솜씨를 음미하며 잡은 그의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사기꾼이라고 하셔서 솔직히 걱정했거든요.”

“에이. 내가 여기서 무슨 사기를 쳐? 얼마나 번다고?”

“그래서 말인데.. 혀 좀 볼 수 있을까요?”

경완의 말에 김봉규는 살짝 당황했다.

“혀? 혀는 왜?”

“사기를 칠 땐 혀가 길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선생님 혀를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아요.”

“허참. 그 친구 참 독특하네. 에. 이거면 됐나?”

“입 벌려서 보여주면 모르잖아요. 입 밖으로 얼마나 나오는지 봐야 긴지 아닌지 알죠. 참고로 일반적으로 혀 길이는 이만큼이래요.”

경완이 시범적으로 말하며 자신의 혀를 내밀어 인중을 핥았다. 혀끝이 인중 중간에 간신히 닿았다.

그 시범에 김봉규가 자신도 똑같이 따라하며 경완에게 이거면 됐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때 경완의 팔꿈치가 김봉규의 턱끝을 올려쳤다. 이빨이 혓바닥으로 파고들어가면서 붉은 선혈이 흘렀다.

“끅!”

경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호같이 김봉규에게 달려들어 다 잘리지 않은 혀를 붙잡고 뜯어 버렸다.

“끄르륵!”

피거품을 물려 괴로워하는 김봉규를 내버려두고 그는 변기에 뜯어내버린 혀를 흘려버리며 내려오는 물에 피에 젖은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김봉규의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분지르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암 쏘 음ma~~d. 에~~~에에 암메. 유 매잌 미 크레이지 사기꾼에 나는 미쳐미쳐. 넌 나의 쓰뤠에기 니혓바닥은 더 질척질척.”

갑작스런 유혈사태에 같은 방 재소자들이 얼어붙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도 경완의 모습은 완전히 광기에 찬 미친놈의 모습이라 감히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굳어서 입술만 달싹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봉규의 왼쪽 손의 손가락이 부러지기 전에 교도관들이 급하게 들어와서 자기 손으로 숟가락은 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혀가 그래 되어서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암튼, 사건의 전말을 들은 홍 소장은 더욱 골머리가 아파졌다. 딱히 그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재소자들 사고치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독방에 가둬두는 것도 규정이 다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교소도의 독단으로 재소자를 독방에 가두는 것은 인권 탄압이라나?

결국 경완은 한 달 뒤에 독방에서 나왔다. 최충곤 기자 역시 잊지 않고 후속기사를 쓰기 위해 경완을 접견했다. 경완의 만나는 그의 손엔 치킨이 들려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치킨을 뜯는 경완에게 그가 물었다.

“이번엔 사기꾼의 혀를 뽑으셨다고..”

“오!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죠.”

교도소에 빨대를 심어둔 다른 기자들도 있고 교도관들과 친하거나 금전을 주고 정보를 얻는 기자도 있었다. 그들이 이번에도 이슈가 되는 이경완이 사고를 치자 급히 조회수를 뽑아내기 위해 기사를 올렸다.

이번 사건의 논조는 이렇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연쇄 미성년자 강간범, 연쇄 부녀자 강간범을 병신으로 만든 그가 또 사고를 쳤다’는 식에서 ‘이번엔 누구를?’로 논조가 바뀌다가 ‘사기에 너무나도 약한 형량’으로 정치권을 까는 기사로 바뀌었다.

이렇게 언론은 종종 정치권을 까야했다. 그래야 정치권력이 언론권력 무서운 줄 안다. 물론 광고주이신 재벌님들께 자신들이 이렇게 정치권력 견제에 유용하다는 자기 어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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