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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2화 (32/367)

031-03-인간쓰레기통의 짬처리꾼

아무튼, 최충곤 기자로서는 이 기회를 날릴 수가 없었다. 경완이 접견을 허락하는 기자는 현재로서는 자신이 유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배 기자들이 자신에게 부탁의 탈을 쓴 협박을 할 정도일까?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무려 13년간 사기를 쳐온 상습 사기 전과범의 혓바닥에 관련된 심층 취재는 그만큼 대박 이슈였던 것이다.

경완이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떨었다.

“그거 다~ 과장된 이야기예요. 혓바닥이 얼마나 미끈거리는데 뽑다뇨? 맨손으론 안 돼요.”

최충곤 기자는 맨손이 아니라 도구가 있었다면 기꺼이 뽑았을 거라는 뉘앙스를 애써 무시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전후 사정을 물었고 경완은 김봉규가 자신에게 사기 치려고 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역시 사기꾼이 아니랄까봐 죄다 구라였어요. 조폭이니 바지사장이니 뭐니 하는 말도 죄다 구라. 하긴 13년 동안 사기나 치고 다닌 놈이니 호구 뒤통수 때리는 게 아주 그냥 습관이 되어 있더라고요. 저를 물정 모르는 호구로 봤던 거죠. 사실 우표깡이라는 것도 꼴에 이권이라서 아무나 못하거든요.”

경완은 조폭인 조필태와 같은 방에 살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봉규의 계산에 따르면 경완이 장기수라 감방에 오래 있을 것이고 주범도 아니라지만 감히 조폭의 밥그릇을 건드렸기 때문에 나와도 몸성히 나올 순 없을 것이니 자연히 보복당할 걱정이 없었다.

이러한 경완의 설명에서 최충곤이 신기해한 것은 자신도 그럴듯하게 들렸던 김봉규의 이야기를 경완은 어떻게 거짓말이냐고 간파했냐는 것이었다. 그에게 김봉규의 설명을 전해 들은 자신도 참으로 그럴듯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최 기자에게 경완이 대답해주었다.

“저한텐 신기한 재주가 있거든요. 손목 한 번 내밀어보시겠어요?”

“이렇게요?”

최충곤이 손목을 내주었다. 교도관의 시선이 따가워졌지만 무시했다.

경완은 한의사가 진맥하듯 그의 손목에 손가락 끝을 올려놓고 질문했다.

“이름이요.”

“최충곤입니다.”

“결혼하셨나요?”

“아직이요.”

“혹시 첫사랑이신가요?”

“어...”

최충곤은 순간 ‘뭐지?’라고 생각했다. ‘아직이요’라는 대답에는 여자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걸 건너뛰었다고? 혹시 자신이 결혼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

혼란에 빠진 그에게 경완이 말했다.

“네, 아니요 중에서 아무거나 대답하셔도 돼요.”

“네.”

“거짓말이네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애를 해보셨어요? 5번 이상?”

“어.. 그게....”

“네, 아니요 중에 아무거나 대답하면 된다니까요?”

“아니요.”

“5번 이상이지만 10명까지는 안 되죠?”

“그, 그, 그게... 그렇게까진...”

“와! 카사노바네, 카사노바야. 대단하시네요. 10명이 넘다니..”

최충곤은 평생 이렇게 당황해본 기억이 없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의 거짓말이 모두 간파당하고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았다. 옛 애인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미경이, 슬예, 혜정, 태빈 등등....

경완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계속하시겠어요?”

“아, 아니요.”

최충곤은 슬며시 경완의 손에서 손목을 빼냈다.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쓰다듬는 그를 보며 경완이 말했다.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최충곤은 서늘해진 자신의 등골을 느끼며 물었다.

“아주 특별한 재주군요. 언제 배우신 건가요?”

“덜 맞고 살아남으려니 저절로 배우게 되더라고요.”

“누가 때렸나요?”

“술에 취한 애비가 안 때린다고 이리 와보라고 할 때요. 거짓말일 땐 도망쳐야 하고 사실일 땐 잽싸게 가야 화를 안 돋우어서 안 맞거든요.”

“....”

경완의 날조를 믿은 최 기자에겐 정말이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이유였다. 접견을 감시하고 있던 교도관도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최충곤은 아무나 그럴 수 있진 않을 거라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계속 관련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가 더 불편해질까봐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불편한 분위기는 인터뷰에도 방해가 된다.

“아무튼 그래서 그 사기꾼의 혀가 잘렸군요. 수감실 안에선 도구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사기를 쳤죠.”

“사기요?”

“혀를 내밀어보면 믿을 거라고 했거든요. 사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는데 말이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기꾼은 호구가 자신에게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혀를 내밀게 한 뒤에 턱에다가 힘차게 어퍼컷을 먹여주었죠.”

경완의 친절한 설명에 그 장면이 상상이 된 최충곤은 잠시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사기꾼에게 사기를 쳐서 혀를 잘라낸다? 발상 자체가 평범한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 그런데 응징을 하겠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굳이 그렇게 피가 낭자 하는 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앞으로 감히 혀를 놀려서 사람을 기만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달까?”

“아.”

최충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였다. 사기꾼이 말을 제대로 못 하면 사기를 칠 수 있겠는가?

접견은 마친 그는 경완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로 올렸다. 반향은 파격적이었다. 조회수가 폭발하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퍼갔다.

혀를 자르다니 잔인하다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역시나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건 13년이나 사고를 치고 안 잡혔던 놈이 다시는 사기를 못 치게 되었으니 속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자연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냐?

└안 죽었다는데?

└아쉽네.

└사람이 안 죽어서 아쉬워? 무서운 놈들 ㄷㄷㄷ

└천만 원이면 동남아에서 청부업자를 고용할 수 있다.

└그럼 저 사기꾼은 50억을 해먹었으니 500명을 죽인 거네? 그 정도면 사형당해도 싸네.

└ㅇㅇ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몇 명인데?

└사기당했다고 자살하는 건 자기 선택 아님? 그리고 애당초 자기가 욕심을 부려서 사기 당한 거잖아?

└넌 사기당해서 전 재산 다 날려라.

인터넷 여론만 사이다를 들이킨 것이 아니었다. 김봉규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경완에게 감사를 표하며 김봉규를 상해한 사건에 대한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변호사를 고용할 고용비를 십시일반 마련하겠다고 언론을 향해 밝혔다. 굳이 언론을 통해 알린 이유는 13년 동안 김봉규가 사기를 쳐온 피해자들이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해오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피해자들이 경완에게 사례를 시도한 일이 이번이 처음일까? 어떤 촉이 좋은 기자는 연쇄 미성년 강간범, 그리고 연쇄 부녀자 강간범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 가족들이 이미 경완을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구했다는 사실을 취재해 뉴스로 보냈다.

이러한 세태에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비판을 꺼냈다. 자칫 그런 행동이 범죄에 대한 자력구제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든 말든 경완을 변호해주기 위한 모금을 멈출 순 없었다.

“반갑습니다. 강반욱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차분해 보이는 40대 남성에게 경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조금태와 김길용 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고자 합니다.”

“누군데요?”

“경완 군이 이 교도소에서 장님으로 만든 두 사람 말입니다.”

“아~.”

경완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 강반욱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저를 변호사로 선임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전 돈이 없는데요.”

“돈은 이미 다른 분들이 내셨습니다.”

“누가요?”

“조금태와 김길용. 그 두 사람이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른 피해자들의 가족이요.”

“아~.”

경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을 긁적이며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두 놈 허리도 분질러 놓는 건데 아쉽게 됐네요.”

강반욱 변호사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눈앞의 청년은 맹수다.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폭력을 독점하려는 국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반사회적인 인물.

하지만 변호사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분들이 원하시는 건 경완 군의 감형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네?”

뜻밖의 말에 강반욱은 반문했다. 그로서는 경완이 자신을 변호사로 선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감형을 원하지 않습니까?”

“변호사님.”

“네?”

“변호사님은 유치원 근처에서 미친개가 막 침 흘리며 짖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걸 그냥 지나가시겠어요?”

“그럴 순 없죠.”

“그렇죠? 뭔가 조치를 취하겠죠? 그런데 뭔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에요. 놈을 구속하고 있던 목줄은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얇아져 팽팽하게 늘어나고 있었거든요. 어? 그런데 마침 그 근처에 그 미친개를 찔러 죽이라는 듯이 창이 있네요? 어? 때마침 아이들이 저기서 오고 있어요. 그리고 그 미친개가 아이들을 보고 달려들려고 미친 듯이 발광하네요? 변호사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 공격하겠죠.. 개를..”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강반욱은 경완이 그때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이유가 되기도 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개가 결국 죽었어요. 그런데 미친개도 주인이 있어서 개값을 물어내래요. 억울하지 않아요?”

“억울하죠.”

“그런데 법은 상황을 참작할 정황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으므로 개값을 물어내래요. 어떻게 할까요?”

“.. 물어내야죠.”

강반욱은 불편해졌다. 변호사라서 더욱 그랬다. 눈앞의 청년이 말하는 것은 법의 허점을 짚고 있었다. 법은 항상 늦다. 결코 예방에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사후구제라도 확실한가? 그랬다면 조금태와 김길용, 그 두 쓰레기가 사회에 방생되는 일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경완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물어내야 하는 거죠. 억울해도 졸지에 애완견을 잃은 개주인은 얼마나 상심했을까요?”

“미친개였잖습니까?”

“사고가 났을지 안 났을지 그 일을 저지른 변호사님 외에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개값을 물어낸 것이다. 나름대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래서 눈앞의 청년은 형기 추가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억울하다고 막 깽판 치고 다니면서 룰을 어기면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선량한 약자거든요.”

“신념이 있군요.”

“···. 푸하하하하하!”

변호사의 말에 경완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웃긴 것일까? 배를 안고 몸을 숙이며 한참을 웃던 그가 벌게진 얼굴을 들어 올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 눈빛에 강반욱은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경완이 입을 열었다.

“변호사시라니 물어볼게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실 수 있나요?”

접견은 거기서 끝났다. 경완은 끝내 강반욱을 변호사로 선임하지 않았다. 아마 국선 변호사가 선임되겠지.

그는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운전하며 경완이 말한 내용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할 수 있냐고?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일까?

여태 자신에게 신념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적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변호사의 직업윤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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