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04-나도 검사님처럼 나랏밥 먹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황 검사는 다급한 마음에 경완에게 회유를 걸었다.
“이러지 마라! 너 아직 1심만 받았지? 여기서 얌전히 차를 돌리면 내가 책임지고 2심에서 형량 줄여줄게! 아는 판사 형님 있어!”
하지만 경완은 바보가 아니었다.
“에이~. 4백억 페이퍼 컴퍼니 막아보겠다고 검사도 죽이는 분들을 제가 어떻게 믿어요.”
그리고 황 검사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도 나름 검사님처럼 나랏밥 먹는 사람이라 이거예요.”
“앞을 봐! 앞을!”
빠아아아아앙!
경완의 좆같은 운전에 열 받은 주변 차량이 경적을 울렸지만, 경완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을 이었다.
“나름 제가 먹은 혈세 값은 해야죠.”
“알았으니까 앞을 보라고 이 새끼야아~!”
[전방 백 미터. 과속방지 구간입니다.]
부아앙!
내비의 알림에 경완이 악셀을 밟았다. 그리고 고개를 잠깐 돌려 자신의 음흉한 표정을 약 올리듯 황 검사에게 보여주더니 이렇게 입을 털었다.
“아이고~! 우리 황 검사님 과태료 추가네요? 이대로 면허정지까지 갑시다!”
“법도 모르는 새끼가! 운전은 니가 하는 거잖아!”
“아, 그래요? 제가 운전면허가 없어서 그런데 보조석에 앉은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황 검사는 뒤의 개소리는 모르겠고 앞의 말은 똑똑히 머리에 박혔다.
“너, 너! 운전면허 없어?!”
“네.”
“우, 운전학원에 다닌 적은 있지?!”
“없는데요?”
“그, 그럼 운전 경험이라도 있지?!”
“이번이 이번 생에 처음으로 운전대 잡는 건데요?”
절대 구라가 아니다.
“너, 너 그럼 어떻게 운전하는 건데?!”
새파랗게 질린 황 검사가 묻자 경완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냥 잘?”
“야아아아아! 이! 새끼야! 빨리 안전밸트 매줘!”
황 검사가 발작하다시피 소리를 지르자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론 보조석의 안전밸트를 잡기 위해 상체를 비틀자 황 검사가 발작을 했다.
“차! 차! 차! 차 멈추고 하라고!”
“어우. 요구사항도 많네. 됐어요. 저 빈정 상했어요.”
“야! 지금 그게 문제야?!”
“저한텐 문제에요.”
그렇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며 여의도로 향할 때 어디선가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났다.
경완이 그 소리를 따라 황 검사의 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윤근환 차장님이라고 발신자 표시가 뜬 휴대폰을 발견했다.
“윤근환 차장? 누구예요?”
“....”
“아!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구나? 혹시 황 검사님한테 뒤처리하라고 일거리 던져준 사람인가요?”
“.....”
“맞나보네.”
눈치 빠른 새끼.. 이제는 손도 안 붙잡고 알아맞히는 건가?
경완은 통화를 눌렀다. 어차피 지금쯤 교도소에서 황 검사가 재소자에게 인질로 잡혀갔다고 신고를 때렸을 테니까 통화를 해도 괜찮았다.
[황 검사! 너 어디야!]
“안녕하세요, 윤 차장님.”
[... 너 누구야?]
낯선 목소리에 윤 차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경완도 반문했다.
“아직 신고 안 받으셨어요?”
[무슨 신고?]
“황 검사 납치 신고요.”
[.. 너냐? 네가 감히 검사를 납치한 거냐?]
“아유~. 감히 검사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인 사람도 있는데 겨우 납치 가지고 그러실까?”
[너.. 누구냐?]
“아시면서. 제 입을 막을까 말까 확인해보려고 황 검사 보내신 분이잖아요?”
[.. 옆에 황 검사 있나?]
“스피커폰이라 잘 듣고 있어요.”
[석칠이 너 이 쉑! 하아.. 원하는 게 뭐냐?]
욕설을 간신히 참고 협상을 거는 윤 차장에게 경완은 대답했다.
“누구예요?”
[뭐가?]
“아저씨가 김 검사 죽였어요?”
[조사중이야.]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제 식구를 왜 죽여?]
“하긴 마피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제 조직 끔찍하게 챙기는 곳에서 감히 제 식구한테 칼을 댈 리는 없잖아요? 그런데 왜 묻으려고 했어요?”
[너 같은 건 모르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저는 모르지만 양승태 의원은 알지 않을까요?”
[너 어떻게 그 이름을,]
경완은 더는 윤 차장의 말을 듣지 않고 전화를 껐다. 윤 차장이 다시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경완은 몇 번이고 전화를 껐다.
“아이씨! 황 검사님. 이거 패턴 뭐에요?”
황 검사는 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경완이 엑셀을 밟았다 놓았다 밟았다 놓았다 밟았다 놓았다 하며 몸이 앞뒤로 거세게 흔들리자 말해주고 말았다. 패턴 알아보겠다고 운전대 말고 휴대폰을 쥘 기세였던 것이다. 그것도 엑셀을 밟은 채로 말이다.
경완은 잠금 해제한 폰으로 윤 차장의 번호를 수신 거부를 해놓고 나서야 조용히 운전할 수 있었다.
“황 검사님, 배고프죠? 한숨 잘래요?”
‘맨날 밥이야~, 맨날 밥이야~’라며 이상하게 개사한 노래를 흥얼거리던 경완이 뜬금없이 꺼내는 말에 정신적으로 이미 지쳐버린 황 검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도대체 배고픈 거랑 한숨 자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는 대꾸하지 않았고, 경완은 기습적으로 손을 옆으로 휘둘러 그의 경동맥을 후려쳤다.
“캑!”
머리가 아득해지며 황석칠이 의식을 잃었다. 그랬던 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땐 주변의 풍경이 이미 바뀌어 있었다.
넓은 대로를 달리는 차들, 도로 가장자리를 채운 높다란 빌딩들. 분명 서울 시내였다.
“잘 잤어요?”
[.. 검사가 납치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
경완의 목소리와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속보가 겹쳤다. 황석칠은 경완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경완이 죄수복은 어디에 벗어놨는지 갑작스레 양복을 쫙 빼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그게...”
“아! 황 검사님 카드 좀 긁었어요. 명색이 국회의원 만나러 가는 길인데 옷차림을 단정하게 해야죠. 괜찮죠?”
안 괜찮다. 황 검사는 경완의 수트핏에 한눈에 봐도 비싼 양복임을 알 수 있었다.
“너.. 그거 얼마짜리야?”
“글쎄요? 가격표 따위 신경 쓰지 않아서요. 어때요? 스웩 넘치지 않아요?”
스웩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황 검사는 몸만 자유로웠다면 경완의 입에서 으웩 소리가 나도록 명치를 두들겨주고 싶었다.
“너.. 내 카드 멋대로 긁으려고 날 기절시킨 거지?”
그의 질문에 경완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쇼핑 중에 튀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잖아요. 덕분에 간만에 맛있는 것도 먹었어요.”
“경찰은?”
“이제 속보가 나왔더라고요. 크게 수배를 때리기엔 걸리는 게 많이 컸나 봐요. 그 4백억짜리 페이퍼 컴퍼니가 말이죠.”
황 검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미친 듯 밟아대던 것이 거짓말처럼 경완은 얌전히 운전 중이었다. 도대체 경찰은 뭐 하는 거지? 차량 추적이라던가 휴대폰 추적 같은 거도 있잖아!
그가 속으로 무능한 경찰놈들을 욕하는 와중에 경완이 조용히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여기 어디야?”
황 검사의 질문에 경완은 턱 끝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 그 차량을 검문검색하는 정문 너머 푸른 잔디밭과 그 가운데에서 맑은 물을 뿌리고 있는 분수대, 그리고 그 너머로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국회의사당 건물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멍해져 있던 황 검사는 경완이 자신의 몸에 안전밸트를 매어주고 운전대를 잡자 지금하고 있는 자신의 상상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가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경완을 보며 제발 아니길 바라는 듯이 간절하게 물었다.
“아니지? 아니지아니지아니지아니지아니지?”
경완이 환하게 웃으며 유명 MC처럼 검지를 치켜들었다.
“딩동댕~!”
“이 미친 새끼야아~!”
황 검사의 고성을 배경으로 경완은 악셀을 푸욱 밟았다. 그가 운전하는 대형 세단이 얌전히 일렬로 서있던 차량의 줄을 빠져나와 인도를 질주했다.
들어오는 차량의 검문을 하고 있던 경비원이 놀라 폭주하는 차량을 쳐다보았다. 창문이 열리고 한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상체를 반쯤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목격한 경비원에겐 하도 비현실적이라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아~~!”
경비원은 다시 창안으로 몸을 집어넣는 청년과 잔디를 흩날리며 질주하는 차량을 보며 멍하게 잠시 현실을 부정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연락을 넣었다.
“비상! 비상!”
하지만 경비원들이 출동하기도 전에 폭주하는 차량은 덜컹거리며 계단을 올라 정문을 깨고 들어왔다. 정문 경비는 폭주하는 차량을 막을 생각도 못하고 몸을 피했다.
멈춰 선 폭주 차량에서 내린 범인은 비싸 보이는 양복을 쫙 빼입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긴 한창 회기 기간이라 본 회의당에서 한창 설왕설래를 즐기고(?) 있을 때라 대부분의 인원들이 본 회의당에 있어서 인명사고의 확률을 낮추어주었다.
경비원이 경완에게 다가왔다.
“당신 누구야!”
“검찰입니다.”
경완은 황석칠에게서 강탈한 검찰 배지를 보여주었다. 그를 기절시키고 이것저것 유용한 물건을 많이 빌려(?)놓았다.
하지만 경비는 검찰이라고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지가 검찰이면? 여기는 국회의사당이다! 자신은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경비고!
“검찰이면 이런 짓을 해도 돼요?!”
“급해서요. 양승태 의원 입회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렇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경완은 구렁이 담 넘듯 경비를 피해 국회 본회의당으로 가려고 했지만 경비가 붙잡았다.
“어딜 갑니까?! 저 사람은 또 누구고요!”
경비가 경완의 앞을 떡하니 막으며 조수석에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는 황석칠을 가리켰다.
그렇다. 경비는 도저히 경완을 검사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어느 미친 검사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경완은 경비의 눈에 서린 의심을 눈초리에 입맛을 다시며 이렇게 말했다.
“안 통하네? 호잇!”
“켁!”
느닷없이 경동맥에 촙을 맞은 경비는 순간적인 뇌내 압력에 기절하고 말았고 경완은 국회 본 회의당으로 서둘러 속보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외쳤다.
“자, 잡아!”
그 소리에 경완은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뒤늦게 나타난 경비들이 그 뒤를 쫓았다.
다행히 정문에서 본 회의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경완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양승태 의원님! 어디 계십니까!”
얼마나 소리가 우렁찼던지 본 회의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몰렸다.
경완은 경비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으며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400억 페이퍼 컴퍼니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
“너 뭐야!!!”
반쯤 벗겨진 머리의 사내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완을 향해 일갈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양승태 의원의 얼굴이었다.
그를 발견한 경완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뭐야! 뭔데 본회의에 이렇게 난입해?!”
옆에서 뭐라뭐라하는 의원들이 있었지만 경완을 붙잡진 않았다. 쫙 빼입은 양복, 당당한 걸음걸이가 경완이 그냥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경완은 주변의 쓸데없는 잡소리를 한 귀로 흘려버리고 양승태 의원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너 누구야!”
“잡아!”
경완이 양승태 의원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 국회의사당의 문이 열리고 경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제야 경완을 보는 양승태 의원의 얼굴에 의혹이 꽃피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경완이 그에게 달려들며 허리뒷춤에 꽂아놨던 길쭉한 물건을 뽑아 들었다. 신문지에 돌돌 쌓인 사시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