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7화 (37/367)

036-04-나도 검사님처럼 나랏밥 먹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양승태 의원은 자신을 향해 급작스레 달려드는 경완의 모습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쳤지만 결국 붙잡혔다. 주변의 동료의원들이 도움을 손을 내밀기도 전에 경완의 팔뚝이 목에 감겼다.

“켁!”

경완은 저항하는 양승태 의원을 목 졸라 제압하고 사시미를 주변에 휘두르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양승태 의원은 목을 두른 팔을 떼어내려 두 손으로 경완의 팔을 잡았지만 마치 기계로 조인 듯 단단해서 도저히 풀 수 없었다.

마침내 벽에 등을 붙인 경완과 그런 경완을 포위한 인의 장벽이 완성되자 경완은 양승태 의원의 얼굴에 칼을 겨눴다.

경비병이 굳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의원님을 놔줘!”

“질문 좀 하고요.”

경완은 양승태 의원이 말을 할 수 있도록 그의 목에 휘감은 팔에 힘을 약간 뺐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양승태 의원이 부족했던 공기를 흡입하더니 소리를 질렀다.

“도, 도와줘!”

“양승태 의원님.”

“도와달라니까! 아악!”

경완이 귀에 속삭여도 패닉 상태에 빠진 양승태 의원을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소리만 질렀다. 그러다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경완이 그의 허벅지를 살짝 찌른 것이다.

“이제 정신이 좀 드셨어요?”

“너, 너 누구야!”

“그보다는 제가 왜 의원님을 찾아왔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김 검사 죽이라고 시켰어요?”

“그게 누군데!”

“중앙지검의 범죄수익환수부 김오민 검사.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인 그 사람이요.”

“난 모르는 일이야!”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에요?”

“몰라!”

“하지만 몸은 안다고 말하는데요?”

“개소리!”

“사람의 입은 거짓말을 잘하지만 몸은 잘 못 하거든요.”

“헛소리!”

양승태 의원이 반박했지만 경완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에게 양승태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아무튼 김오민 검사를 죽였나요?”

“안 죽였어!”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지시를 내렸나요? 부탁? 아니면 암시? 오! 암시를 줬군요. 그럼 암시라는 이름의 지시를 받아서 실행한 사람의 이름은 뭔지 궁금한데요?”

“난 관련 없다고!”

“쉽게 갑시다, 쉽게.”

“아니라니까아아아아악!”

사시미 끝이 양승태 의원의 대퇴부에 박혔다. 경완이 손잡이를 쥔 손목을 이리저리 꺾자 칼날이 비틀리며 양승태 의원의 근육을 헤집었다.

“쉽게 가자니까요. 이러면 저는 번거롭고 의원님은 힘들어져요.”

양승태 의원이 이를 악물었다. 그 이름을 뱉을 순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인 교사를 지시 내렸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 이 자리까지 오면서 희생한 것들, 쌓아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순 없었다.

한때 법조계에 몸담았던 습성이 그를 이렇게 발악하게 만들었다.

“증거! 증거가 없잖아!”

그 모습에 경완은 피 묻은 칼을 쥔 손으로 양승태 의원의 앞머리를 가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겨서 반짝이는 머릿피부를 드러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원님. 저한테 증거는 필요 없어요. 의원님이 알고 제가 알면 그걸로 충분해요.”

“네가 뭔데!”

“저 요즘 유명한데.. 이경완이라고 알아요? 그게 제 이름이에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회 회의를 찍으러 온 방송국 및 언론인들이었다.

“이경완? 그 사기꾼 혀를 뽑았다는?”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라며? 그게 사실이야?”

경완이 양승태 의원의 귀에 속삭였다.

“저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실행범의 이름을 말해요. 피곤해지지 말자고요.”

“난 결백해에에에에액!”

경완의 칼끝이 다시 양승태 의원의 허벅지에 박혔다.

“또 헛소리하신다. 피곤해지지 말자니까.”

그가 양승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계속 헛소리를 하면 귀를 자를 거예요. 헛소리 한 번에 왼쪽 귀, 또 한 번에 오른쪽 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면 코를 베고, 눈알을 하나씩 파내 줄 거예요. 어때요? 오금이 지려서 그 이름을 말해줄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의 계획을 듣는 양승태 의원은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을 밝힐 순 없었다. 그는 국회의원이었다. 그것도 당당히 2선에 등극한.

“너, 넌 못해! 나, 난 국회의원이야!”

“허 참. 피곤하니 헛소리는 그만하자니까.”

“끄아아악!”

“꺄아아악!”

양승태 의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귀에서 뿌려진 선혈에 여자들도 비명을 질렀다.

경완은 엄지를 벌려 엄지와 칼날 사이에 잘라나간 국회의원의 귓불을 바닥에 툭 하니 떨어뜨렸다.

“어때요? 아직도 못할 것 같아요?”

“으으으!”

양승태 의원은 신음을 흘렸다. 경완의 엄지가 그의 눈썹을 쓰다듬으며 핏자국을 남겼고 날카로운 칼날이 그 뒤를 따라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눈썹을 밀었다. 핏자국마저 밀어버려 깨끗해진 눈썹에 양승태 의원은 수치심보다는 공포만을 느꼈다. 자신을 붙잡은 범죄자가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허벅지를 쑤시고 귓불을 잘라내?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경완이 칼날을 휘둘렀다. 칼날에 묻은 핏방울이 바닥에 경비원의 발 앞에 호를 그렸다.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거기까지가 마지노선이에요. 그 이상 다가오면 제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 사이에 또 그걸 확인하는 눈치라니? 범인이 인질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동안 은근슬쩍 거리를 좁혀 기회를 노리려는 경비원들의 의도가 돈좌(頓挫)되었다.

경완의 칼날이 다시 양승태 의원에게 향했다.

“누구예요?”

“오태광!”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양승태 의원은 자신의 목을 촉촉하게 적시는 뜨끈한 핏물에 입을 열고 말았다. 경완 같은 미친놈과 협상할 여유가 없었다.

경완이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모르잖아요. 세상에 동명이인이 한둘이에요?”

그가 불만스럽게 말하며 칼을 놀렸다. 사각사각. 날카로운 칼날이 양승태 의원의 옆머리를 면도하며 안 그래도 허전한 머리를 더욱 허전하게 만들어갔다.

칼날이 피부에 닿는 감각이 소름 끼친 양승태 의원이 발악하듯이 말했다.

“태광실업의 오태광 회장!”

“딱 들어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직접 하진 않았을 테고 그 사람이 살해 계획을 짰을까요?”

“그, 그도 지시만 내렸을 거야!”

“깡패 회사에요? 사람 죽이라고 하면 죽이게?”

“원래 그런 회사야!”

“기업형 조폭 그런 건가 보네요?”

“....”

경완의 말에 더 말하는 건 위험하다 싶은 양승태 의원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경완이 칼날을 움직여 왼쪽 눈썹마저 밀어버리며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검사를 감히 죽였을까요? 4백억 페이퍼 컴퍼니 때문에?”

“그, 그래!”

“하긴 천 억대 폰지 사기를 저지른 왕대한하고 엮여 있다는 게 밝혀지면 아무리 기업형 조폭이라도 감당이 힘들겠죠. 우리 양승태 의원님도 말이죠.”

“나, 난 그렇게까지 하라고 한 적은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입을 막으라고요. 그 와중에 죽으면 할 수 없고, 회유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같은 편을 늘리는 기회가 될 테고요. 아마 회유가 실패해서 죽였다.. 그렇게 판단하고 계세요?”

“.....”

“킥킥킥!”

양승태 의원의 침묵은 긍정을 뜻했다. 경완은 그냥 웃겨서 그만 웃고 말았다. 딱히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웃겼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게 참 가벼웠다.

그 웃음소리를 귓가에서 듣는 양승태 의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경완의 미소를 목격한 모든 이들이 그러했다. 생방송 속보로 화면을 통해 국회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까지도 말이다.

“암튼 김오민 검사가 죽든 말든 입만 막으면 된다는 말이네요. 그리고 그 사람은 죽었고.. 책임은 누가 지죠?”

“나, 난 죽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증거가 없고 무려 국회의원이시니 미필적 고의도 증명하기가 어렵겠네요. 저와 의원인 본인은 분명히 진실을 알지만, 진실을 모르는 법정에서 과연 정의를 집행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검찰 출신이신데 합법마피아나 다름없는 검찰의 후배들이 감히 하늘 같으신 선배님을 성실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요?”

“....”

닥쳐! 범죄자 주제에!

양승태 의원은 그렇게 속으로만 일갈했다. 미친놈은 자극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완은 양승태 의원의 옷깃에 붙어있는 국회의원 배지를 보더니 그것을 옷깃에서 빼냈다. 요즘엔 자석형 배지도 나왔다고 하는데 아직 옷핀형 배지였다.

경완은 칼을 쥔 손으로 배지를 들고 살피다가 뾰족한 핀 부분을 양승태 의원의 눈에 대고 엄지로 눌렀다.

“아악!”

양승태 의원이 두 손으로 경완의 손목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이상하게도 경완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양승태 의원의 눈 아래, 뺨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눈물과 함께 신음도 흘렀다.

“아으으!”

“어디보자~. 자세가 불편해서 잘 박혔나 모르겠네? 거기 카메라 좀 가까이 와주세요.”

경완이 가장 가까이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짓했다.

카메라맨은 당황했다.

“저, 저요?”

“이거 특종이에요, 특종. 가까이 와서 찍고 싶지 않아요? 거기 경비분들은 길 좀 터주세요. 확 의원님 찔러버리기 전에.”

가히 그 제안은 악마의 속삭임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나름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고 저 장면을 가까이서 찍어도 되는 걸까?

그가 망설이자 다른 기자가 끼어들었다.

“제가 할게요!”

“아, 아뇨! 제가 합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상사가 어떤 소리를 할지 뻔했다. 앞에 뻔히 차려진 밥상도 못 챙겨 먹는 반푼이라고 욕을 먹겠지.

저널리즘보다, 양심보다, 밥그릇이 무서운 카메라맨은 매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경비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범인에게 가져갔다. 이로써 카메라맨은 모든 기레기가 본인이 원해서 기레기가 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범인은 피와 눈물을 흘리는 양승태 의원의 턱을 잡고 돌려 눈에 금배지가 잘 박혔는지 반짝이는 카메라 렌즈에 비추어 확인하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양승태 의원에게 말했다.

“어때요? 이제 국회의원으로서의 의무가 눈에 좀 보이기 시작해요?”

한쪽 눈을 애꾸로 만들었으면서 보이기는 개뿔.

“앞으로 국회의원의 의무에서 눈을 돌려도 소용없게 제가 확실히 해줬어요. 이렇게 눈에 잘 박혀 있잖아요.”

즐거워하는 경완의 목소리가 너무나 무서워 양승태 의원이 흐느끼며 애원했다.

“제발.. 그만...”

“에이.. 그건 좀.. 김오민 검사는 죽어버렸잖아요. 사고도 아니고 살해당했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죠.”

“자수할게! 자수할 테니까...”

“전직 검찰이시고 지금도 후배 검사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고 계신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윤근환 차장 검사에게 사건 덮으라고 지시한 거 의원님이시죠? 그런 관계니 뻔하죠. 솜방망이 기소, 정상참작, 집행유예. 고전적인 레파토리지만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있죠.”

“아, 아냐.”

“잊으신 것 같은데 저한테 거짓말은 안 통해요. 오죽하면 김오민 검사가 저한테 고맙다고 치킨 사준다고 했을까요?”

“아, 안 돼!”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