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04-나도 검사님처럼 나랏밥 먹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양승태 의원은 경완의 칼이 자신의 오른쪽 귀로 향하자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팔뚝은 양승태 의원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목을 조여 들어갔다.
그 압력에 양승태 의원의 멀쩡한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지고, 금배지가 박힌 눈에서 흘러나오는 피눈물이 굵어졌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고통에 경완의 칼 든 손을 붙들고 있던 양승태 의원의 두 손이 목을 조르고 있는 팔로 향했다.
“허억! 아악!”
양승태 의원은 막혔던 숨이 뚫리는 것과 동시에 귀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는 비명을 질렀다.
경완은 잘라낸 귓불을 던지고 말을 이었다.
“미필적 고의로 자기 손은 안 더럽히고, 든든한 법조계 후배들의 지원으로 사건을 덮어버리고.. 저는 의원님께서 법의 징벌을 받을 거라 도저히 믿기지가 않거든요.”
“대체!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니가 뭐라고!”
울분이 터진 양승태 의원이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이미 양쪽 귓불이 잘려 나가고 애꾸가 되어 버렸는데 소리 좀 지르는 게 왜?!
마음 같아서는 총으로 놈의 대가리를 날려버린 후 흘러나온 뇌수를 신나게 짓밟고 싶은 것이 양승태 의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김오민 검사가 사건 수사 도와주는 대신 치킨을 사주기로 했거든요. 근데 댁하고 댁한테 붙어먹은 놈들 때문에 못 먹게 됐잖아요.”
“내가 사줄게! 사주면 되잖아!”
“댁 같은 구더기가 사주면 입맛 떨어져요.”
“아아아아악!”
양승태 의원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시미 끝이 허리 쪽 디스크로 들어가 신경 다발을 헤집었다. 양승태 의원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렇게 마무리를 한 경완은 카메라를 보며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윤근환 검사님, 오태광 회장님. 이 자리에 같이 계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두 사람 있는 곳까지 찾아가기가 참 힘들어서요. 밥 먹을 때도 다 됐고 여기서 그만할랍니다. 아참! 그래도 저랑 마주치게 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알아두세요.”
그는 씨익 웃으며 칼면으로 모든 것을 잃은 듯 넋마저 놓아버린 양승태 의원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얼굴에 칼날 모양으로 핏자국이 남은 그를 쓰레기 버리듯 옆으로 버리고 칼마저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두 손을 들었다.
경비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의 몸을 가렸다.
= = = = =
양승태 의원 테러 사건.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이름이 붙었지만, 인터넷에선 이경완 치킨 복수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밈이 되어있었다. ‘댁 같은 구더기가 사주면 입맛 떨어져요.’라는 장면 아래에 삼겹살, 등심, 스테이크같이 호불호 없는 음식 사진이 붙었다가 나중에는 민트초코, 맥콜, 솔의눈같이 호불호 논란이 많은 음식 사진이 붙어 댓글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암튼 이경완의 체포 이후 여론은 폭발했다. 드디어 대중의 눈앞에 그 유명한 이경완이라는 개또라이의 얼굴이 낱낱이 공개된 사건이자 과연 개또라이의 똘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국회 경비의 무능, 더 나아가 경완의 탈옥을 막지 못한 교도소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경완의 행동을 비난했다. 사법제도를 문란케 하는 사적 제제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오민 검사의 이상한 사망에 대한 언론의 취재도 활기를 띠었다. 천 억대 폰지 사기사건. 김오민 검사가 거기서 500억의 범죄수익을 환수한 사실이 언론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경완이 그 수사에 어떻게 협조했는지도 다시 조명되었다. 신체접촉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거의 100%로 판별할 수 있는 비상한 능력.
물론 법적 증거로 채택되기는 힘들지만, 범죄수익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감추었는지 추적하기엔 매우 유효했다. 환수된 500억이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500억. 경완이 카메라 앞에서 언급한 크리에이티브 캐피탈과 김오민의 석연찮은 죽음, 그리고 양승태 의원의 사건이 맞물리자 사기꾼 왕대한에게 속아 재산을 잃은 수백의 피해자들이 국회로 몰려갔다. 명명백백히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피해액을 보상하라고 말이다.
그들 중엔 양승태 의원이 배후 세력이라며 병신 된 꼴이 좋다고 꽹과리치고 흥겹게 노래 부르는 이까지 있을 정도였다. 가히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었다.
페이퍼 컴퍼니로 은닉된 500억. 그리고 사기꾼 왕대한과 병신이 된 양승태 의원.
그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거대한 게이트로 발전할 기미를 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양승태 의원 혼자 해 먹기엔 너무나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양승태 의원이 단독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해도 거대한 사기의 뒤를 봐주기 위해 기름칠을 당한 동료 의원,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더 있을 거라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었다. 김오민 검사 사망 사건을 덮기 위해 손을 쓴 검찰의 윤 차장이나 황 검사처럼 말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커다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경완은 설렁탕을 흡입하고 입가심으로 짜장면을 후루룩 짭짭하고 있었다.
“맛있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검사가 비꼬는 말투와 표정으로 물었다. 정 검사라던가? 젊은 검사치고는 상당히 꼰대 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경완이 면발을 후루룩 빨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마저 대접을 비우고는 포만감에 배를 두드렸다.
“아~. 배부르다.”
“이제 좀 말 좀 하지?”
누가 봐도 배알이 꼴린 어투였다. 하긴 그 큰일을 저질러 놓고서는 배가 고프다고, 먹을 걸 대령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라고 완전 상전 행세를 하는데 배알이 꼴리지 않으면 검사가 아니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물어보세요.”
“누가 시켰어?”
수상쩍은 물음이었다.
경완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 양심이요.”
정 검사는 그 개소리를 무시했다. 사실 개소리가 맞기는 했다.
“지랄 하지 마. 이런 큰일을 너 혼자 저지를 수가 없어. 누가 널 도운 거지?”
“절 도운 사람이 있다면 5천만 국민 여러분이 아닐까요?”
“?”
정 검사가 속으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하는데 경완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그분들이 낸 혈세로 제가 교도소에서도 잘 먹고 잘살았으니까요. 생각보다 교도소 밥이 참 건강식이더라고요. 군대보다 밥 잘 나온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어요.”
“헛소리하지 말고 배후를 대!”
정 검사가 윽박지르자 경완이 한심하다는 듯이 검사를 보며 혀를 찼다.
“아니 논리학 몰라요, 논리학? 없는데 어떻게 배후를 대요? 있으면 있다는 증거를 검사님이 가져와야지, 이건 뭐 없는데 없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소리니 도대체 이게 뭔 헛소린지 저는 영문을 모르겠네요.”
“뭐? 헛소리?”
“그렇게 제 뒤에 무슨 배후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싶으시면 증거조작이라도 하시던가요. 과거 용공 조작 할 때부터 내려온 노하우가 있지 않아요?”
“하! 그때처럼 물고문이라도 해주랴?!”
“오오! 물고문을 정말 했어요? 했으면 어떻게 했어요? 그때 고문 노하우가 아직 검찰에 남아있어요?”
“아우, 이 미친 새끼!”
정 검사는 질려버린 표정을 지으며 학을 뗐지만 경완의 주둥이는 멈추질 않았다. 정신과 의사가 봤다면 조증이나 양극성 장애를 충분히 진단 내릴 모습이었다.
“아! 요즘엔 그렇게 안 하죠? 인권 단체나 외국 눈치가 보이니까. 그래서 요즘엔 언론 플레이로 압박을 한다던가 가족을 털어서 인질로 삼는다던가 계속 기소를 넣어서 소송비용으로 영혼을 탈곡한다던가 하는데 어쩌죠? 전 언론 플레이에도 자신 있고 인질로 잡힐 가족도 없고 국선변호사라 재판비용으로 나갈 돈도 어차피 없거든요.”
경완을 심문하던 정 검사는 도저히 윽박질러서는 경완의 입에서 원하는 진술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다른 말로는 회유책.
“너 이러다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어.”
“그게 뭐 어때서요?”
“.. 얌전히 배후를 불면 구형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
“.. 푸하하하!”
“···.”
경완이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자 정 검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에게 눈앞의 범죄자는 그의 짧은 검사 생활에서는 처음보는 유형이었다. 윽박질러도 안 되고 회유해도 안 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정 검사가 고민할 때 경완이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하하하! 커흠! 흠! 재밌는 제안이네요. 혹시 검사님을 보낸 사람이 정치적인 테러라고 물타기라도 하재요?”
“···.”
검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대답을 강요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그런 이득을 생각했다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우리 독립투사들을 떠올려보세요. 과연 그들이 바라던 것이 일신의 영광이었을까요?”
“네가 애국자라는 거냐?”
경완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애국자라니? 자신 같은 무한전생자가 그런 로망 넘치는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그게 아니라 신념을 위해서 움직였다는 점이 다른 거죠.”
“네 신념이 뭔데?”
“좆같은 놈은 좆같이 다뤄주는 거?”
경완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턱을 긁적였다. 대답하는 말투가 꼭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과연 진심인지 스스로도 의심하는 듯했다.
정 검사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게 무슨 신념이야!”
“그럼 검사님은요?”
“내가 뭐?”
“검사님은 어떤 신념이 있기에 저에게 어떤 특정한 배후가 있다는 진술을 들으려고 하는 건데요?”
“···.”
핵심을 찔린 탓인지 정 검사는 입을 다물었다.
“김오민 검사처럼 정의를 위해 순교하실 수 있나요?”
“··· 말 돌리지 마라.”
정 검사가 인상을 썼지만 경완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김오민 검사가 죽은 이유는 결국 회유를 거부해서잖아요? 그것도 무려 국회의원과 차장검사가 얽혀있었는데 말이죠. 다시 생각해봐도 김오민 검사는 참 또라이야. 또라이가 아니었다면 나 같은 범죄자의 능력을 빌려 수사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진 않을 테니까.”
정 검사는 우묵한 눈으로 떠벌이는 경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넌 네가 범죄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냐?”
“좋은 일 했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복수가 좋은 일이라고?”
“뭐 댁같이 공권력을 다루는 입장에선 불편한 진실이겠죠. 하지만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말은 진실이거든요.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무례한 이유는 자신이 개소리를 해도 누가 자신의 대가리에 도끼를 박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죠.”
돈 몇백을 맷값으로 던져주고 몽둥이찜질 하는 행위에 과연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까?
아니다. 인간보다 돈이 더 두려우니 가능한 일이었다.
“저 같은 또라이가 있으니 윤근환 차장검사님이나 오태광 회장님이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구나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행동을 좀 조심해주지 않을까요?”
“조심해야 할 건 너야.”
“친절하시네요? 그런 조언까지 해주시고?”
“비꼬는 거냐?”
“그건 검사님이 조심하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이냐에 따라 달려있겠죠.”
정 검사가 비꼬는 말을 했다면 비꼬는 말이고 진심이라면 칭찬이라는 뜻이었다.
“....”
그 뒤로 계속 심문이 이어졌지만 정 검사는 끝내 경완의 입에서 원하는 진술을 받지 못했다.
= = = = =
양승태 의원 테러 사건, 왕대한 천억 폰지 사기사건, 김오민 검사 의문사 사건이 한데 얽혀 이경완 신드롬과 결합했다. 이경완 신드롬은 한층 더 강하게 한국 사회를 강타했고 외신에서까지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