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9화 (39/367)

038-05-교도소의 언터처블

범죄자의 능력까지 동원해 사기 사건의 범죄수익을 추적하던 강직한 검사, 그 검사에게 협력하다가 검사가 살해당하자 그의 복수를 위해 탈옥하고 한 나라의 국회의원을 불구로 만든 범죄자.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 또 있을까?

양승태 의원이 속해있던 당에 대한 특검을 진행해야 한다, 저쪽의 정치공세다, 내 돈 내놔라,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등등, 한국 사회가 온갖 말들로 혼란스러울 때 경완에 대한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피고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땅땅땅!

그러든가 말든가. 선고를 받는 경완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그리고 경완이 교도소로 이감되기 위해 법정을 나섰을 때 무수한 플래쉬의 불빛이 그를 맞이했다.

경완은 눈을 감고 얼굴로 쏟아지는 빛을 받아냈다.

“이경완 씨! 양승태 의원을 불구로 만든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쾌합니다!”

“야! 입 다물어!”

한 기자의 물음에 경완이 크게 대답하자 그를 붙들고 있던 형사들이 기겁했다. 여기서 소란이 일어나면 문책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이다.

한 편 기자들은 경완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자 썩은 고기 냄새를 맡은 파리떼처럼 달려들었다.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형사들이 길을 뚫으려고 했지만 조회수에 눈이 뒤집힌 기자들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경완 씨! 야당의 사주를 받고 테러를 저질렀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거 개소립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내려온 남파공작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김일성은 똥꼬에 말뚝을 박아 죽여야 할 놈이다!”

“범행의 동기는 김오민 검사의 죽음에 책임감입니까?!”

“책임감보다는 분노에 가깝습니다!”

“이경완 씨의 범행은 사법질서를 파괴하는 사적재제라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것은 개인의 권리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는 혁명가라고 생각합니까?!”

“그저 한 명의 양심 있는 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불구로 만든 사람이 여럿입니다! 미안하지 않습니까?!”

“가해자의 고통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습니다!”

경완은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변해주었다.

그런 그를 둘러싸고 모여든 기자들의 모습은 마치 선망하는 스타에게 모여든 악성 사생팬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경완을 양쪽에서 붙들고 호송하는 형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들은 슈퍼스타를 경호하는 경호원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맛보고 있었다.

“비켜주세요! 비켜달라니까!”

“야! 넌 좀 입 좀 닥쳐!”

“형사님, 카메라 돌고 있어요.”

“조또 상관없으니까 닥치라고!”

열불난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까짓 거 시말서 좀 쓰지 뭐!

그때 경완이 확 몸을 비틀었다. 어찌나 그 힘이 강했던지 두 형사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형사들은 아차! 하는 생각으로 급히 경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경완은 둘의 생각과 달리 마스크를 낀 어느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 남자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있었다.

우드득!

“아악!”

“꺄악!”

경완은 손목을 확 잡아당겨 암살을 시도한 남자를 발치에 쓰러뜨리더니 그대로 팔을 이상한 각도로 꺾어버리고 강제로 목을 끌어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남자의 마스크와 모자를 벗겨버리며 외쳤다.

“여러분! 암살자입니다!”

“아, 안 돼!”

경완을 죽이려 했던 이는 얼굴을 돌리며 멀쩡한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지만 무수한 셔터의 폭풍과 집요한 렌즈 앞에서 얼굴을 감추는 건 불가능한 짓이었다.

경완이 놈을 일으켜 목을 팔로 감아 조르며 기자들에게 범인의 얼굴을 똑똑히 보란 듯이 턱을 잡고 우에서부터 좌로 얼굴을 보인 후에 이렇게 외쳤다.

“기자님들! 제 특기가 뭔지 아시죠?! 진실의 스무고개!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신기의 기술!”

5일장을 돌아다니는 약장수의 약 파는 멘트 같았지만 이 좋은 기사거리를 포기할 기자는 없었다.

“아참! 형사님들! 이거 막으려고 접근하면 이 새끼 목 부러뜨려 버릴 거예요. 아니면 귀를 물어 뜯어버리거나.”

경완을 다시 붙들려고 접근한 형사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냥 달려들고 싶었지만 주변에 무수한 카메라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혈사태나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감당이 힘들었다. 이경완 같은 미친놈은 이미 국해의원 한 마리를 병신으로 만든 전적이 있었기에 놈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도 않았다.

형사들을 머뭇거리게 만든 경완이 암살미수범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야 여기 능력 있는 기자분들이 능력껏 알아낼 테고.. 우리 칼잡이 어린이, 어디서 오셨어요?”

“....”

“혹시 크리에이티브 캐피탈이랑 관련되어서 오셨어요?”

“....”

암살미수범은 눈을 꼭 감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경완의 질문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 후 이내 암살범을 보낸 배후를 캐낼 수 있었다.

“아하! 그러니까 조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건 태광실업 회장님의 비서밖에 없다, 이 말이죠?”

“....”

“이거이거 과잉충성인지 오태광 회장님이 저를 이토록 죽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러다가 감방 안까지 암살자를 보내는 게 아닌지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걸요?”

그렇게 말하는 경완의 표정은 누가 봐도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포장된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는 어린아이를 닮은 표정에 다시 한 번 플레쉬가 푸다다닥 터졌다.

“그렇다고 댁이 잘못이 없는 건 아니죠. 돈을 받았든 어쨌든 남을 해하려고 했으면 자신도 당할 각오를 해야겠죠?”

“자, 자수! 자수하겠습니다!”

놈도 경완이 무려 국회의원을 병신으로 만든 장면을 보았다. 이놈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웠다.

문득 목에 감긴 경완의 팔뚝이 풀어졌다. 암살미수범은 서둘러 벗어나려고 했지만 수갑을 찬 경완의 손이 그의 멀쩡한 팔을 붙잡았다. 암살미수범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털어 뿌리치려고 했지만 우악스런 악력을 벗어날 순 없었다.

“놔!”

퍽!

경완의 안면 박치기가 놈의 인중에 박혔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었다.

하지만 경완의 몸놀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경완 멈춰!”

“그만해!”

학교 폭력 멈춰! 한다고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형사들은 말로만 하지 않고 서둘러 달려들었지만 순간적으로 회전하는 경완의 몸에 범인의 팔이 휘감기며 비틀렸다.

“끄아악!”

꽈배기처럼 비틀려버린 암살미수범이 쓰러져 비명을 지르자 경완은 그 주둥이를 콱! 하고 짓밟았다. 턱이 부서지고 이빨이 튀었다.

형사들이 경완을 붙잡는 그 잠깐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형사들에게 붙잡힌 경완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오태광 회장님. 감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쪽!

경완이 윙크하며 손끝에 뽀뽀를 해서 날리자 다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은 기자들의 광기어린 취재는 다수의 경찰이 투입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 = = = =

05-교도소의 언터처블

무기수, 그리고 장기수.

간단히 설명하자면 교도소에서 아주 오랫동안 썩어야 하는 인간들을 의미했다.

이경완 신드롬, 이경완 암살시도, 태광그룹, 오태광 해외도피. 유명포털의 실시간 검색은 모두 이경완과 관련된 검색어로 점령되었고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와중에 경완에겐 20년의 형이 더 얹혀 명실상부한 장기수가 되었다. 감히 국회의원을 병신으로 만든 것이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크게 거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론들의 논조 역시 조금은 이상했다. 경완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오태광에게 집중한 것이다.

그건 높으신 분들에겐 일석이조와도 같은 일이었다. 경완에게 이목이 집중되면 그와 얽힌 모든 일들이 부각된다. 왕대한 천억 폰지 사기 사건부터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게이트, 거기에 김오민 검사 사망사건까지.

그 거대한 이슈가 부담이 되신 분들은 정치깡패 출신의 사업가 오태광을 희생양으로 삼아 눈을 돌리고자 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고 거기에 불법과 탈법을 밥 먹듯이 하는 사업가는 잘라내기 좋은 꼬리였으니까.

마침 본인이 이경완에 대한 암살을 지시했다는 정황까지 있으니 남은 건 탈탈 털어서 국민들의 이목과 분노를 태워버리는 장작으로 삼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 콩고물이 묻어나는 건 요령 좋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핥아먹겠지.

“이 시발 새끼들아! 내가 얼마나 많이 니들 뒤를 닦아 줬는데!”

하지만 오태광에겐 그러한 높으신 분들의 결정이 너무나 억울했다. 누군가의 사냥개로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가 드디어 늑대가 되었나 싶었지만 개는 개. 토사구팽을 피할 만한 수준은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정치인과 다른 기업 회장들을 욕하면서도 한 미친놈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이경완이라는 그 미친놈.

감옥에서 보자고?

젊었을 적 정치깡패로 꽤 험한 꼴을 보아왔던 오태광 회장이었지만 그런 미친놈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런 놈이 감옥에서 기다린다고?

오 회장이 검찰과 수사망을 피해 몰래 밀항하는 이유였다. 그 미친놈은 감옥 안이라고 얌전히 있을 놈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그래 수고,”

차에서 내리던 오태광은 자신을 둘러싼 경찰차량에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반평생 자신에게 충성한 비서 김민식을 보았다.

“너, 너 이 새끼!”

그를 향해 김민식이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덕분에 평생에 한 번 얻기 힘든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태광의 머리에 김민식에게 맡겼던 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향응을 베풀었던 각계각층의 고위인사들에 대한 뇌물 장부와 그들의 섹스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 DVD 같은 것들.

그것은 잠시 몸을 피한 오태광 회장에겐 재기를 위한 협상카드였다. 그런데 그걸 저 새끼가 홀라당 삼킨 것이다.

“김민식 이 새끼야!”

오태광이 김민식에게 달려들다 수사관들에게 붙들렸다. 그들에게 끌려가는 오랜 상관을 향해 김민식이 말했다.

“회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태 그랬던 것처럼 제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물론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겠지만 말이다.

= = = = =

장기수가 된 경완은 바깥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독방에 갇혔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대하는 교도관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랫동안 독방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설사 그것이 규정을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저지른 일이 높으신 분들 좀 꼴 받게 만든 모양이었다.

경완은 키득거리면서 교도관에게 붙들려 이동했다. 하루에 한 번 있는 산책 시간이었다. 30분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높은 하늘과 먼 곳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터에 홀로 남겨진 경완은 둥실둥실 뜬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보다가 저 멀리 높은 담벼락 위로 튀어나온 산꼭대기를 보았다. 이렇게 저 먼 곳을 보는 연습을 해야 시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나?

“육구팔팔! 산책 끝났다!”

“옙!”

경완은 넉살좋게 대답하며 교도관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런 경완의 태도에 교도관들을 쓰게 웃었다. 그 난리를 피워서 많은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만든 놈이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구니 참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미친놈이 탈옥한 일 때문에 줄줄이 시말서를 작성했고 몇몇은 감봉까지 당했다.

옷을 안 벗은 게 다행이랄까? 이렇게 넉살 좋게 고분고분하게 굴어도 항상 경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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