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05-교도소의 언터처블
경완이 자신의 독방으로 돌아오는데 맞은편에서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교도관에게 시비를 거는 재소자 한 놈이 보였다.
“야. 너 섹스 언제 해봤냐?”
“···.”
“아직 아다야?”
“···.”
“아단가 보네, 이 쓉새끼. 고추 뗄래? 내가 떼줄까?”
“···.”
“사내새끼가 고추가 달렸으면 써먹어 봐야지. 나처럼 따먹고 다니란 말이야.”
“···.”
이런 시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교도관은 그 말을 무시하고 놈을 데리고 경완이 나왔던 공터로 향했다.
경완이 그 꼴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교도관이 참 극한직업이다, 극한직업이야. 안 그렇습니까, 교도관님.”
경완이 자신의 뒤에 있는 교도관을 보며 그렇게 말하자 그 교도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대꾸했다.
“앞을 봐라 육구팔팔.”
그는 경완이 자신이 지시에 고분고분 고개를 앞으로 향하자 쓰게 웃었다. 교도관을 극한직업으로 만드는 장본인이 그런 소리를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런 소리를 하려면 탈옥이나 하지 말든지.
교도소 안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적당히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탈옥은 그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고개를 앞으로 돌린 경완이 입을 열었다.
“방금 지나간 새끼 무기수죠?”
“···.”
“섹스 얘기 여자 얘기하는 거 보니까 강간하고 관련된 놈이고. 아마 강간살인?”
“···.”
교도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등이 서늘해졌다. 육구팔팔이 보여주는 저 예리한 통찰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교도소에 육구팔팔에 관련된 파다한 소문, 신체접촉으로 거짓말을 하는지 파악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교도관님. 제가 저 새끼하고 자주 마주치게 스케줄 좀 짜보면 어떨까요?”
“···.”
“저 새끼가 저렇게 나대는 이유가 지 인생 이제 막장이라고 막 나가는 거잖아요.”
“···.”
“하지만 그보다 더 밑바닥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면 고분고분해질 걸요?”
“···.”
“제가 그 밑바닥을 살짝 보여 주겠다 이겁니다. 놈이 현실을 깨달으면 관리하기도 한결 편해질 거고요.”
교도관은 대답 없이 독방의 문을 열었다. 경완이 독방으로 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고생하는 교도관님들을 위해 그 정도도 못 해주겠습니까?”
“육구,”
“아아! 대답은 필요 없어요. 교도관님들께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냥 놈과 자주 마주칠 때 놈이 좆같은 짓을 한다? 그럼 제가 열 받아서 저지른 거로 하죠.”
“···.”
“수고하셨습니다.”
경완은 갈등하는 교도관 대신 제 손으로 독방의 문을 닫았다.
= = = = =
오태광 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공판 기일이 결정되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지만 경완은 물론 알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산책 일정에 조금씩 변동이 있었고, 교도관에게 음담패설을 하고 시비를 걸던 무기수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였던가, 여섯 번째였던가?
경완은 얼굴을 자주 본 그놈에게 싱긋 웃어주며 손을 흔들었다.
놈의 반응은 딱 경완의 기대대로였다.
“뭘 봐, 시발롬아?”
와우! 다짜고짜 욕설이라니! 역시 인생 막장다운 새끼다.
경완은 그런 그의 반응에 역시 병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활짝 웃는 표정으로 양손 중지를 들어주었다.
“이 새끼가!”
“삼오칠칠! 그만해!”
교도관이 제지했지만 순순히 말을 들었다면 괜히 싸가지 없는 무기수가 아니었다.
놈이 교도관을 밀쳐내고 눈을 부라리며 경완에게 달려들었다. 짐승 같은 눈빛, 아니 인간이길 포기한 자의 눈빛이었다.
경완은 달려드는 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표하려는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그놈의 주둥이에 박치기를 먹이려고 했을 뿐.
“큽!”
인중에 박치기를 먹은 놈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경완은 그 한 방으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놈에게 가까이 붙어 가슴을 힘차게 밀며 다리 안쪽으로 발을 집어넣어 발목을 걸었다.
그리고 넘어지는 놈을 따라가 힘차게 점프해 놈의 사타구니를 향해 힘껏 다리를 뻗었다.
“헥토파스칼 키이익!”
“으아아악!”
“육구팔팔!”
아쉽게도 완전히 체중이 실리기 전에 교도관에게 붙잡혀 그런지 알을 깨진 못했다. 체중이 완전히 실렸다면 저렇게 사타구니를 붙잡고 소리 지를 여유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경완은 교도관에게 끌려가면서 놈에게 소리쳤다.
“너 지금 니 인생 끝난 거라고 막 나가지? 아직 안 끝났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얼핏 들으면 좌절한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은 문장이지만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계속 그렇게 좆같이 굴어봐! 지금보다 더 좆 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 뒤로 종종 경완은 놈과 마주쳤다.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게 되었지만 놈은 경완의 추측대로 강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이창용이라는 놈이었다.
놈은 경완과 마주칠 때마다 살기 돋은 시선으로 경완을 노려보았고 경완은 그런 그를 보며 미소를 날려주었다.
2차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다시 경완에게 깨지는 것도 말이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쓰러진 놈의 턱을 향해 발꿈치가 내리꽂혔다. 턱뼈가 아니라 이빨을 노린 발길질은 어금니를 다 털어버렸다.
“우욱!”
노르스름한 흰색의 옥수수가 핏물에 젖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너 같은 인간쓰레기를 먹여주고 재워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절이라도 해야지 뭐가 그리 기고만장해서 나대는데?”
경완은 교도관에게 끌려가면서 그렇게 일갈했고 이창용은 서럽게 울었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자신의 무력함과 고통에 현타가 온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경완이란 극약은 처방효과가 만점이었다. 기가 팍 죽어버린 이창용은 매우 고분고분해졌다.
좀 기가 산다? 싶으면 경완과 마주치게 만들면 충분했다.
“너 교도관님 말 잘 따르고 있냐? 딴 건 몰라도 네 밥 챙겨주는 사람 말은 잘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어떻게 된다? 히히히.”
웃음소리는 음충맞고 미소는 광기에 가득 찼다. 제삼자인 교도관이 봐도 간담이 서늘한데 그걸 정면으로 마주한 이창용은 얼마나 무섭겠는가?
“유, 육구팔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자!”
교도관이 경완의 등을 조심스럽게 밀자, 경완은 새파란 안색으로 쫄아 버린 이창용을 내버려 두고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교도소 내의 말 안 듣는 재소자 하나가 얌전한 양이 되자 교도관들은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편해진 걸 느꼈다. 교도관을 극한직업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말 안 듣는 재소자가 아니던가?
중범죄자 주제에 교도관의 합당한 지시를 안 듣는다는 건 자신의 죄에 대해서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장기수 혹은 무기수들이 시비 걸고 조롱하고 자신들을 지시를 어디서 개가 짖냐라는 태도로 개무시할 때마다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게 교도관이란 직업이었다. 이런 개자식들도 혈세를 들여서 먹여 살려야 하나 싶어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 경완이라는 극약처방이 나타났다.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언론을 통해 샅샅이 파헤쳐진 그의 인생은 오히려 교도관들에게 안심을 전해주었다. 적어도 이경완이라는 범죄자는 무고한 사람에게 손을 덴 적이 없었다. 평소 교도관들을 대하는 태도도 깍듯하고 예의도 지켰다.
탈옥도 하고 규정을 어기고 폭력을 저지른 전과도 있지만 그런데도 교도관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평소의 그러한 태도 덕분이었다.
결코 죄 없는 사람에겐 손을 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러한 신뢰가 있다 보니 경완이라는 극약의 효능에 교도관들이 혹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미 한 놈 조져서 얌전히 양으로 만들어놨으니 다른 놈은 어떨까?
은근히 기대되었지만 결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경완 본인의 의사가 문제였다. 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다른 말 안 듣는 재소자와 조우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경완이 먼저 그러한 제안을 제시함으로써 사라졌다.
“그 새끼 이제 좀 말 잘 듣죠?”
“···.”
“그런데 그런 새끼가 한 놈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
“혈세로 밥 먹는 주제에 반성도 안 하고 말이야.. 제가 좀 그놈들 얼굴 좀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들어가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 뒤, 경완은 불광동 발바리, 갱도리, 흥턱이 등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사형수, 무기수, 혹은 장기수와 대면했다. 강간과 살인을 기본으로, 절도, 강도, 폭행, 마약, 사기 등 다양한 전과가 토핑처럼 얹어진 그들은 평생 감방에서 썩거나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감방을 나올 수 있었다.
지들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고 기본적으로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놈들이라 교도관의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분노 조절 장애아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경완과 조우하기 전이었다. 경완과 조우하고 그와 얽힌 자들은 밑바닥 밑에는 어두운 지하가 있다는 사실과 분노조절 장애 위에 담담함의 가면을 뒤집어쓴 광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경이 망가져 제대로 주먹을 쥘 수 없게 되었다거나 분질러진 발목이 깁스 후에도 아려서 평생 절름발이처럼 걸어야 한다는 건 만용으로 가득 차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때의 업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말 잘 듣는 양처럼 얌전해졌고 간혹 수상한 낌새를 보일 때마다 경완과 조우했다. 그러면 언제 불순한 마음을 먹었냐는 듯 얌전해졌으니 교도관들의 마음이 절로 흡족해졌다.
그들의 인생에서 막가는 장기수, 무기수를 이렇게 편하게 관리해본 적이 있었던가?
일하기 편해지니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여유로워진 만큼 경완도 편해졌다. 교도관들이 자신이 가진 합법적인 권한 아래에서 조금씩 경완의 편의를 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가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의 방증이었다.
물론 경완은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붕어 대가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도관의 호의에 감사의 표시를 하며 적당히 편의를 누렸다.
약간 더 늘어난 도서관과 인터넷 이용시간, 권수가 더 늘어난 도서대출 등 지루하다면 지루한 감방 내의 생활을 덜 지루하게 만들어주는 편의의 제공에 경완과 교도관들은 서로 상부상조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 범위가 확장되어서 장기수이라 하기엔 좀 모자란 놈들에게까지 뻗쳤다.
“저기 요즘 나대신다고 들었어요.”
“너 뭔데?”
강간살인을 저질렀지만 술로 인한 심신미약과 진지한 반성이란 변호사의 개소리, 그리고 그 변호를 인정한 탁상물림 판사 덕분에 15년 형을 받은 이 아무개 씨는 야외휴식 시간에 자신에게 접근해온 젊은 놈에게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경완이 그런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이경완이라고 아세요? 국회의원 병신 만든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네가?”
경완의 자기소개에 이 아무개 씨는 의혹과 경계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그 짓을 저지른 놈이 눈앞의 젊은 놈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도저히 안 믿기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런 놈이 왜 아저씨를 찾아왔냐.. 이거 아닐까요?”
“왜 왔는데?”
“제가 처음에 뭐라고 했죠?”
이 아무개 씨는 경완의 반문에 기억을 떠올리다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린 노무 쉐키가...”
눈빛에 살기까지 어린 것이 여기가 교도소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자기 죄도 뉘우치지 않고 나댄다고 들었어요. 물론 저지른 죄에 비해 겨우 15년을 받아서 자기 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이해가 돼요. 판결이 좆같은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인데 교도관들 말도 안 듣고 발로 차며 시비 거는 건 좀 문제이지 않을까요? 참 그놈의 인권단체 놈들이 문제야. 그런 현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모지리들만 아니었다면 아저씨 같은 사람이 지랄할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지져서 말썽을 못 부리게 했을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