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42화 (42/367)

041-05-교도소의 언터처블

“그렇군요.”

김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인터뷰가 이어지며 그는 경완의 입에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귀휴제도 잣!체가 문제예요. 짐승 새끼가 자유의 맛을 봤는데 돌아가고 싶겠어요? 놈이 더 치밀하고 밖에 조력자가 있어서 밀항까지 성공했다고 쳐봐요. 중국 같은 곳에 가서 조선족으로 신분 세탁하고 돌아오면 그거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놈이 단순 강간 살인범이라서 쉽게 잡았지 만일 조폭 두목 같은 놈이었으면 이미 해외 도피했을걸요?”

“교도소가 교도소다워야지 무슨 수련회도 아니고 말이죠. 김 기자님. 범죄자 새끼들이 감방에서 뭐 하는지 아세요? 여자 몰래 물뽕 타는 법, 탈세하는 법, 빈집 찾아서 몰래 터는 법, 폭행한 상대 괴롭혀서 합의 따내는 방법, 이따위나 공유하고 자빠졌어요. 갱생의 의지 따위 개미 눈알만큼도 없다 이겁니다!”

이런 경완의 말에 인터뷰하는 김 기자의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스며들었다. 올라가는 조회수, 늘어나는 연말 성과금이 눈앞에 선했다.

접견 시간이 끝나자 김 기자는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났고 경완은 얼마 후 인터넷으로 자신의 인터뷰를 실은 김 기자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교도소 관리. 이래서 되겠는가?]

기사를 다 읽은 경완의 감상은 이러했다.

“이 기레기 새끼를 보래?”

인터뷰는 왜곡되었다. 말하지 않은 걸 말한 것처럼 날조하진 않았지만 말했던 내용을 생략하고 순서를 바꿈으로써 말하는 의도를 충분히 호도하고 있었다.

귀휴제도에 대한 폐지의견은 부분적 강화로, 교도소 운영지침으로 인한 범죄학교(學校)화는 성악설을 뒷받침하는 인간 본연의 악으로, 언터처블에 관한 내용은 인권단체의 감시에서 벗어난 교도소 내의 부조리로.

문맥의 배치를 바꾸고 몇몇 문장을 지워서 이 정도로 논조를 호도하는 상상력과 실력, 그 대담함은 가히 경완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라 기레기 중의 특급 기레기라 자부해도 모두가 인정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경완이란 이름값을 클릭 유도를 위한 미끼로 사용하면서도 그가 이전에 국회에서 저지른 사건에 대해선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 절묘한 줄타기는 가히 높으신 분들의 이쁨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경완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국회의원 테러 사건보다 이런 중요하지도 않은 교도소내 문제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것으로 양승태 전 의원과 관련되어 있는 높으신 분들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사실 그런 식의 여론조작은 흔한 일이었다. 어떤 마음에 안 드는 정치가가 있다? 근거가 없더라도 일단 나불대어 본다. 필요하면 국정원이나 기무사도 동원해서 더러운 이미지를 가져다 붙이고 필요하다면 댓글 조작부대를 조직해서 여러 포털을 비롯한 커뮤니티 여론도 조작해보고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주류언론을 이용해 확대 재생산한다.

일단 이미지를 더럽히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열성 지지자의 마음은 돌리지 못해도 중립층에는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고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 그저 피상적으로 접하는 계층에겐 효과가 만점이었다. 네거티브는 안 좋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그 효율성은 마약과 같은 유혹이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하소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에 있었다.

기레기들이 주장하는 언론의 자유는 방종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자유는 무법과 동의어였다.

경완은 여태 자신과 상부상조했던 교도소 측이 걱정되었다. 정확히는 교도소 관리자들이 은근히 제공하는 편의가 걱정되었다. 여론이 이런 식으로 흐르면 압박받는 건 교도소였으니까.

경완은 어쩔 수 없이 더 얌전하게 지냈다. 괜히 눈치 줘가면서 편의를 요구하진 않았다. 교도관들도 말 안 듣는 불량 재소자들과 경완을 조우시키는 일을 멈췄다. 기레기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눈치 보고 조용히 있기로 한 것이다.

말 없는 상호합의. 복잡한 의사소통이 필요 없는 협동.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이네.”

“장 형사님? 웬일이세요?”

그 와중에 경완은 뜻밖의 인물과 만났다. 과거 경완이 목숨을 구해준 형사 장동균이었다.

“아직 안 잊었나 보네.”

그는 경완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생명의 은인이 이렇게 국회의원을 테러한 장기수가 되어있는 형사가 이 나라에 몇이나 되겠는가?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찔린 곳에 후유증은 없고요?”

“그래.”

경완은 인사치레로 장 형사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공사다망하신 강력계 형사님께서 그냥 안부나 물으려고 저를 보러온 건 아니겠죠?”

“공교롭게도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정말요? 높으신 분들이 안 좋아하실 텐데?”

장 형사도 사회생활을 할 만큼 충분히 했다. 형사과라 세상 더러운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여기 오는 길에 윗사람에게 경고성 섞인 조언을 듣고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아이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장 형사의 각오 어린 표정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레기들이 이경완이라는 이미지에 교도소 운영 문제를 박아 넣으려고 망치질하고 있는 이때 경완이 다시금 주목을 받을 정도로 움직이면 교도소 측에 폐가 되겠지만 애 한 명 살리겠다고 자신의 승진을 말아 먹을 각오를 하고 온 장 형사를 외면하기가 좀 그랬다.

사회에선 이런 사람을 또라이라고 한다지? 그런데 어쩌나? 경완은 이런 또라이에겐 좀 약했다.

“좋아요. 어떻게 도우면 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역시 심문이죠?”

“그래. 네 그 유명한 진실의 스무고개. 그게 필요하다.”

“어으~. 닭살.”

“갑자기 왜 그래?”

“진실의 스무고개라고 할 때마다 무슨 중2병이 기술 이름 외치는 것 같아서 좀 오그라들어요.”

경완의 엄살에 장 형사는 피식 웃었다.

“실없기는. 아무튼 도와주는 거지?”

“네. 다만..”

“다만?”

“치킨 좀..”

“알았다. 그건 걱정 마라.”

장 형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경완이 맡은 심문은 간단하면서도 큰일이었다. 한 아이의 유괴, 그리고 그 유괴에 도움을 준 공범에 대한 심문이었다.

경찰에 붙잡힌 공범은 중년의 남성으로 CCTV에 우연히 잡힌 얼굴을 데이터베이스에 조회해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강도 전과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괴된 아이의 종적은 파악할 수 없었고 공범에 대해선 도저히 입을 열지 않은 채 묵비권을 고수했다.

유괴사건은 그 해결 속도가 아이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대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경완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장 형사.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장동균 형사의 파트너이자 사수인 구 형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상부에서는 재소자인, 그것도 국회의원 테러 사건의 범인에게 도움받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일을 밀어붙인 장 형사를 곱게 볼 리도 만무했다.

장 형사는 쓰게 웃었다.

“어쩌겠어요?”

하늘이 무너질 듯이 우는 부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두 아이의 아빠였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용의자인 이낙수가 있는 심문실로 들어갔다. 곧 경완도 경찰의 인도를 받아 심문실로 들어왔다.

“하이~.”

굳은 표정의 이낙수는 가벼운 분위기로 인사하는 경완을 일별하고 눈앞의 형사를 우묵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눈빛이었다.

장 형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넌 굳이 입을 열 필요도 없어.”

“바로 시작하죠.”

경완이 이낙수의 양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이게 무슨,”

“넌 닥쳐.”

이낙수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경완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음성에 담긴 조롱과 경멸, 냉정함에 이낙수는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상황 파악을 위해 눈알을 굴렸다.

“이름 이낙수 맞지?”

“맞다는데요?”

장 형사의 질문에 대답은 경완이 했다. 이 황당한 상황에 이낙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지만 장 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공범 있지?”

“있다네요.”

“공범이 한 명이야?”

“아니라네요.”

“공범이 두 명이야?”

“그렇다네요.”

“너, 너 뭐야!”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걸 밝혀내자 이낙수는 등골이 싸늘해져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장동균 형사와 경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문답을 계속했다.

“공범 둘이 지금 같이 있어?”

“그렇다네요.”

“아이도 같이 있고?”

“그렇다네요.”

“아이는 살아있지?”

“음..”

“.. 설마 죽였냐?”

장 형사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경완은 이낙수의 신체 반응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것 같은데요? 반응 보니까 죽일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본인이 잡혀서 알 수가 없나 봐요.”

“쟤 말이 맞아?”

“맞다네요.”

“뭐야! 이건 뭐냐고!”

속내가 그대로 읽히는 공포에 이낙수는 소리를 질렀지만 두 사람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장 형사는 여러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져왔다. 이낙수와 안면이 있는 이들, 같은 감방을 썼던 이들의 이름이 여럿 적혀 있었다.

“공범의 이름이 이거야?”

“아니라네요.”

“아니면 이거야?”

“그것도 아니라네요.”

“그럼 이건?”

“오! 그거라네요.”

“오케이 한 놈.”

기어코 동업자 한 놈의 신원이 드러나자 이낙수는 몸부림까지 치며 소란을 피웠다.

“이건 말도 안 돼! 난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그런 놈을 향해 경완이 이죽거리며 협박했다.

“묵비권 지랄하네. 야. 옥수수 다 털릴래 아니면 입 닥치고 있을래?”

그 말에 이낙수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딱히 협박 때문은 아니었다. 하얗게 웃는 경완의 미소. 그 미소에 이낙수는 하얗게 질려버린 것이다.

그 미소를 보고서야 그는 경완이 누구인지 깨달은 것이다. 뉴스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바로 그 유명한 짤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그 국회의원 허리에 칼을 박아넣을 때의 미소가 섬뜩할 정도로 환한!

“흐흐흐.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이제 알았나보네?

경완이 톡톡 그의 뺨을 두드리며 웃자 장 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급하다, 인석아.”

“넵!”

경완은 빠릿빠릿한 신병처럼 차렷 자세로 과장된 태도로 대답한 후 다시 이낙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시 장 형사의 질문과 경완의 대답이 이어졌다.

= = = = =

[○○동 아동 납치 사건의 범인들이 현장에서 체포!]

[납치되었던 피해 아동은 무사히 귀가!]

[이번 납치 사건의 수사에 수상한 협조가?!]

[범죄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수사기관의 무능함!]

[범죄자에게 수사를 협조하는 일에 불법성은 없는가?!]

어디에선가 이번 수사에 경완이 협조했다는 사실이 새어 나왔다. 경완은 인터넷으로 그 뉴스를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쯧. 장 형사님 골치 좀 아프겠구먼.”

경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왜곡하고 더럽혀서 그와 얽힌 천 억대 폰지 사기와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게이트를 가려보고 싶었던 높으신 분들에게 경완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마 언론의 논조가 경찰 때리기에 들어간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덕분에 교도소는 숨통이 좀 트였는지 조금씩 경완에 대한 편의를 봐주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이번에 애도 한 명 구했으니 경완에 대한 시선이 한층 더 유해진 건 당연했다.

이미 교도소의 교도관들은 경완을 다른 재소자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새끼는 그래도 무고한 사람들에게 손을 대는 놈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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