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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43화 (43/367)

042-06-두유 노우 갱완 리?

그래서 경완은 한동안 평상시와 같이 심심해서 좀이 쑤시는 평화를 만끽했다. 종종 똥오줌 못 가리고 말 안 듣는 재소자에게 참교육으로 현실의 뼈아픔을 새겨주면서 말이다.

물론 그거 외에도 경완의 심심함과 교도소 짬밥에 시달린 입맛을 달래주는 이벤트도 종종 있었다.

“우리 경찰 아저씨들, 특히 형사과 경찰들이 얼마나 힘듭니까? 마약에 취한 범죄자 놈 상대해야 하고, 흉기 휘두르는 깡패 새끼들이랑 드잡이질해야 하고, 조 빠지게 굴러서 범인 잡으면 당연한 일을 한 거고 놓치면 무능한 새끼라고 욕먹고!”

경완의 열변 어린 두둔에 앞에 앉은 기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심기가 불편하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경완이 노린 바였다. 아까부터 경완의 입에서 경찰이 무능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유도신문을 던지는데 거기에 말릴 그가 아니었다.

목적이 뭘까? 경찰 인맥과의 이간질? 아니면 경완의 입에서 나온 말로 경찰을 공격해서 경완의 능력을 수사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밑밥을 까는 빌드업?

뭐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이용하는 놈의 대가리를 깨고 음모자들이 갓 지은 밥에 재 뿌리는 것은 경완에겐 꽤나 즐거운 취미였다.

“하지만 비리 경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 않아요?”

또 은근히 유도신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경완은 울분을 토하듯 이렇게 성토했다.

“비리? 진짜 비리는 군납 비리죠!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생계형 비리를 간부가 저질러?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우리나라 아직 전쟁 안 끝났거든요! 그런데 군납 비리를 저지른다? 이건 여적죄로 총살해버려야 해요!”

“그래서 비리 경찰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기레기의 말을 경완이 열변을 동원해 끊어 먹었다.

“국회의원이 문제예요, 국회의원이! 예산을 쥐꼬리처럼 주면 인력 확충은 어떻게 합니까? 인력 확충도 힘든 상황에서 치안조무사로 티오나 잡아먹으니 현장 인력들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잖아요! 남녀평등? 시험기준이나 남녀평등을 맞추고 남녀평등을 지껄여야지! 이게 다 페미표 얻으려고 위장 페미하는 것들 때문이에요!”

예민한 이슈가 나오자 기레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경찰 때리기용 인터뷰 내용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지만 남녀평등, 페미니즘도 클릭질 유도에 훌륭한 소재였다.

“하지만 남녀 사이의 신체적 차이는 분명하잖아요? 그만큼 여경은 실내사무를 맞으면 되지 않을까요?”

기자가 조심스럽게 경완의 의견을 물었다.

옳거니 물었구나!

경찰 때리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말실수를 할 우려가 있어서 은근히 미끼를 던져 화제 전환을 시도했는데 그 미끼를 콱 물어버린 것이다.

경완이 침착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현장을 모르는데 사무만 맡으면 뭐 합니까? 그렇게 되면 여경은 평생 고위 간부 못해요. 세상 어느 조직이 현장도 모르는 인물을 고위직에다가 앉힌답니까? 잠깐 미쳐서 그런 짓을 하면 그때부터 탁상공론, 전시행정만 벌어지는 거예요.”

'경찰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아니고 춤추는 홍보영상은 왜 찍어요? 거기에 들일 시간과 예산을 치안에 쏟으라는 말이에요. 자기 본분도 제대로 수행 못 하는 데 홍보해봤자 좋은 소리 들을 것 같아요?'

경완은 뒤에 이어질 사족을 잠시 떠올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음.. 아무래도 경찰 조직을 비판하는 말에 더 가까우니 꺼내면 한창 경찰을 때리고 있는 기레기에게 빌미를 줄 확률 100%였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좀 먹고 할게요.”

“네,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기레기의 표정은 밝았다. 그의 머리는 이경완을 페미니스트들의 적으로 만들 헤드라인을 뽑느라 바빠졌다.

= = = = =

[이경완은 사과하라!]

[사과하라!]

[이경완은 재기해라!]

[재기해라!]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 경완이 담벼락 너머 듣고 있는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페미니즘 단체가 몰려와 시위하고 있지 않았다면 경완이 저런 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다.

“역시 기레기는 대단해.”

[페미니즘이야말로 치안의 적! 범죄자 이경완이 말하다!]

치안의 적이라니? 경완이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었는데 기레기께선 슬쩍 던진 미끼를 확대 해석해서 이슈 블랙홀을 만들어 놓으셨다.

거기에 편승해서 조직력을 자랑해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각종 여성단체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여성단체도 명색이 시민단체이니만큼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시민단체는 언론과 다른 방식의 여론형성기관이고, 이목을 끌지 못하면 결국 고사하는 존재니만큼 이슈에 편승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당연했다. 일단 자리만 잡으면 훌륭하신 국회의원들께서 만드신 법 덕분에 지원금도 쏠쏠하게 나오지 않는가?

아무튼 기레기는 훌륭하게 경완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를 꼽는다면 이경완이라는 이름이 올림픽 금메달감이 분명했다.

그 유명세와 이슈를 빨아먹는 이슈블랙홀이란 별명으로 어그로계의 다크호스라고 불리는 경완을 접견하러 온 기자들은 어떻게든 이경완 vs 페미니즘 구도를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반페미의 선봉으로 자리매김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누가요? 제가요?”

경완은 접견의 대가로 기자가 진상한 치킨을 뜯으면서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 기자가 당황할 정도였다.

이경완이라는 미친놈은 관심종자가 아니었나? 그렇지 않다면 그 큰일을 왜 벌려?

그간 각종 매체에 등장한 전문가들이 이경완이라는 희대의 국회의원 테러범에 대한 분석을 대중에게 펼쳐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대중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관심종자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미디어에 대한 꾸준한 노출, 카메라에 얼굴이 노출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함, 자신의 주장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화술 등은 그를 충분히 관심종자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반페미로 유명세를 타는 걸 즐길 줄 알았지 이렇게 덤덤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경완에게 관심종자끼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닌 걸 맞다고 할 정도로 관심에 목마른 것도 아니었다.

“어..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알을 굴리던 기자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경완이 치킨을 한 입 뜯어먹고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는데요?”

“어.. 저번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하신 걸로 아는데요..”

말꼬리를 흐리는 기자를 보며 경완은 침착하게 사실을 설명했다.

“다시 읽어보세요. 전 정치인을 비판했지 페미니즘을 욕한 적 없어요.”

“그럼 페미니즘을 긍정하신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별로 관심이 없는 도구로 보죠. 나무꾼 앞에 놓인 붓, 선비의 발치에 떨어진 도끼라는 표현이 가장 가까워요.”

경완은 나름 기자가 치킨을 사 온 성의를 생각해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지만 조회수 말고는 관심이 없는 기자는 집요하게 경완과 페미니즘을 연결시키려고 했다.

“이념을 어떻게 도구로 보실 수 있나요?”

“그야 당연히 도구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한전생자인 그에게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무능한 대중들이 뽑은 교활하고 탐욕스런 정치인을 거부하고 유능하고 자비로우며 영원히 죽지 않는 초인공지능 황제를 추종하는 독재주의, 3대 세습으로 끝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페미니즘, 여자가 경찰에 남자를 신고하면 사건의 전후관계는 일단 제쳐두고 유치장에 가두고 보는 나라에서 들고일어난 반페미니즘.

모든 사상이나 이념의 부흥은 부조리한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그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에 효과적인지, 또는 실현 가능한 이상향의 청사진이냐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시대 또는 역사란 변증법의 끝없는 반복으로 굴러가는 것이며, 사상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은 그러한 변증법에 소모되는 재료에 불과했다.

각자의 배경과 이득, 또는 신념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이 사상이며. 사상의 생존은 결국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냐로 결정된다. 레닌주의가 실패해 소련이 붕괴하고, 대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 대신 수정자본주의가 대두된 것처럼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은 도태되는 것이다.

그것이 경완이 말하는 사상의 도구성이었다.

경완의 설명에 기자는 어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맞장구를 쳤다. 이경완이라는 범죄자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인터뷰였지만 어렵기만 하고 별로 자극적이지 않아서 마음에 들진 않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인터뷰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래도 이경완 씨가 현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시위를 촉발한 건 맞지 않습니까?”

“멍청한 것들이 지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오해해서 그렇죠.”

“일말의 책임감은 없으시고요?”

“지들이 문해력 떨어지는 병신인 걸 왜 저보고 따지냐고 묻고 싶네요.”

으음.. 아직 경완을 반페미로 몰긴 힘든 대답이었다. 하지만 접견 시간이 다 되어갔다.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경완 씨에게 페미니즘이란?”

“솔직히 그런 거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페미든 반페미든 지들끼리 지지고 볶으라고 하세요. 하지만 제 앞에서 개짓거리, 헛소리 늘어놓으면 처맞는 걸 각오해야 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고, 이틀 후 담 너머로 들어오는 시위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경완은 인터넷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와 기자의 인터뷰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포탈 뉴스란을 장악하고 있었다.

[평등하게 처맞아야 남녀평등이다! 희대의 범죄자 이경환의 폭력성!]

“이야~. 증~말 대단해.”

무한전생자마저 실소 짓게 만드는 기레기의 위엄이었다.

= = = = =

06-두유 노우 갱완 리?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무시하는, 페미니즘의 적! 이경완에 대한 시위가 시들해질 무렵 홍 소장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네, ○○교도소의 홍창영 소장입니다.”

[나 법무부 장관일세.]

“네! 장관님!”

홍 소장은 벌떡 일어나 이등병처럼 차렷 자세로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장관이 뭐라뭐라하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 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전화가 끊기자 홍 소장은 교도소 각 과의 과장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일입니까, 소장님?”

“방금 법무장관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네.”

“법무부 장관님요?”

홍 소장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교정시설이 법무부 산하라지만 법무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 정도의 일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법무장관이 전화를 걸었냐는 질문이 가득 담긴 시선에 홍 소장은 말을 이었다.

“미국에서 귀빈이 방문할 거라 하시더군.”

“귀빈이요?”

“귀빈이 왜, 아!”

누군가가 터뜨리는 감탄사에 모두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홍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경완 그놈 때문이지.”

미국에서 이경완을 만나러 온다? 법무부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 정도면 역시 법을 다루는 기관일 것이고, 이경완의 특징적인 능력과 그가 수사에 도움을 주었던 유괴사건을 생각한다면 방문할 손님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수사기관에서 오겠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총무과장하고 보안과장이 고생을 좀 해줘야겠어. 다른 과에서도 두 부서를 잘 도와주고. 장관님도 보안 유지하라고 하셨으니까 모두 입조심하고 회식은 당분간 금지야.”

홍 소장의 말에 누군가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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