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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44화 (44/367)

043-06-두유 노우 갱완 리?

“그 미국에서 온다는 귀빈은 언제 도착한답니까?”

“이틀 후 오후쯤에. 더 질문할 사람?”

홍 소장이 좌우를 살폈지만 다들 더 이상 질문한 것이 없었다.

“그럼 가서들 일 봐. 아 참! 보안과장은 이경완 그놈을 데려오고.”

“한동안 꼴도 보기 싫어하시더니 갑자기 왜요?”

“귀빈이 도착해서 놈을 만났는데 만약 그 녀석이 막상 협조를 안 하겠다고 곤조를 부리면 내가 장관님 얼굴을 어떻게 봐?”

홍 소장의 말에 나가던 모두는 황당해서 눈알을 요리조리 돌렸다.

교도소장? 어차피 웬만해선 평생 장관 얼굴 볼 일 없는 직위 아닌가?

즉, 지금의 홍 소장이 보이는 태도는 그야말로 설레발이었으니, 그것을 보는 이는 황당함과 민망함을 느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왜?”

“아닙니다.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표정 관리를 잘하고 있던 보안과장은 홍 소장의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경완이 소장실로 들어왔다.

경완은 소장의 얼굴을 보며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못 지냈다, 이 씹새야! 내가 너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홍 소장은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 웃는 표정을 지었다.

탈옥 사건부터 보자. 그냥 탈옥이었으면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국회의원을 병신으로 만들다니!

하마터면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다. 양승태 의원 테러 사건을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게이트로 키우고 싶지 않은 정치권이 아니었다면 앙심을 품은 의원들 때문에 벌써 인사이동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간신히 자리를 간수하고 나니 이번에는 여성단체들의 시위에 신경을 쓰느라 진땀을 뺐다. ‘이경완을 재기시켜라!’라며 달려드는 일부 여성들에게 강경 대응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맘고생을 했다.

물론 원칙적으로 교도소를 침범하는 건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 일이 마땅했다. 하지만 요즘 미친년들은 여자든 남자든 일단 손만 대면 성추행이라 지랄을 떨어 대니 어쩔 수 없이 한 번쯤 머리를 굴려야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지만 체면을 생각해야 하는 사회인 혹은 직장인 입장에선 똥에 다리가 달려서 달려들면 저걸 짓밟아야 하는지 일단 몸을 피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장은 그런 구구절절한 불만을 다 삼키고 웃는 얼굴로 경완에게 자리를 권했다. 화딱지 나고 열 받는다고 다 표출한다면 사회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홍 소장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일단 신변잡기부터 물었다.

“나야 언제나 그렇지. 자네는 잘 지내고 있나?”

“저도 언제나 그렇죠.”

편안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홍 소장은 배알이 꼴렸지만 기껏 틔운 대화의 물꼬를 본인이 막을 순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네를 부른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별로 안 궁금하지만 들어는 보죠.”

이 건방진 놈이..

홍 소장은 속내를 삼키고 웃는 낯으로 경완을 부른 사유를 설명했다.

“.. 미국에서 자네를 만나러 사람이 올 거라네.”

“왜요?”

“내 생각엔 자네의 협조를 부탁하러 오는 것 같더군.”

“저는 미국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요?”

“아무래도 자네의 그.. 능력이 필요한 모양이야.”

“뭐 CIA나 FBI에서라도 오는 모양이죠?”

“어딘지는 정확히는 잘 몰라. 그래서 말인데.. 잘 할 수 있지?”

“뭘요?”

“협조 말이야! 협조!”

경완의 모르쇠에 홍 소장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리고는 정작 본인이 높아진 자신의 언성에 놀랐다. 인내심이 앵꼬날 뻔하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한편, 홍 소장의 말에 경완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가라앉힌 홍 소장의 언성이 다시 높아졌다.

“왜?!”

“제 입에 한 푼 넣어준 적 없는 사람들을 왜 도와요?”

“저번에 경찰 수사는 도와줬잖아?”

“그야 민중의 지팡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혈세로 제게 일용할 양식을 마련해준 사람들을 봐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었죠.”

그래? 홍 소장은 눈을 빛냈다. 여기가 설득의 포인트다.

“이것도 나랏일이다.”

“나라 누구요?”

“국익이 관련된 거란다.”

“그러니까 누가 관련되어 있냐고요. 국익 타령하면서 혈세 빼먹으려고 달려드는 놈들이 한둘이에요?”

“···.”

홍 소장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 다라 아는 것이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설마 양승태 같은 인간이 더 없다고 확신하세요?”

정말 그렇다면 너는 빡대가리임이 분명하다는 눈빛에 홍 소장은 불쾌함을 느끼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협조를 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그거야 미국 측 조건이 어떻냐에 따라 다르죠.”

“뭐? 너 지금 미국에 조건을 걸겠다고?”

“그렇게 우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뭐 여태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있어요?”

“흐음..”

맞는 말이었다. 경완은 검사와 경찰의 수사를 돕는 대가로 사법 거래 따위를 제안한 적이 없었다. 감형, 또는 귀휴 같은 것 대신에 기껏 치킨이 그가 요구한 것이 다였다.

그 말에 홍 소장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도 노파심에 물어봤다.

“그래, 가벼운 조건으로 협조하는 거 맞지? 약속한 거다?”

“제가 뭐 미국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그래. 제발 좀 그렇게 상식적으로 살자.”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세상이 안 그렇더라고요.”

‘네 상식을 세상에 강요하지 마!’

홍 소장이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 = = = =

이틀 뒤, 한 명의 동양인 청년과 금발 백인 남성이 홍 소장을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FBI 소속 김준입니다. 여기는 톰입니다.”

“안뇽하세요.”

홍 소장은 백인 남성의 어눌한 발음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일정이 급해서 그런데 이경완이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홍 소장은 두 사람을 직접 접견실로 안내했다. 접견실에 도착한 홍 소장은 의자를 추가로 배치시키고 이경완을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Hi~. 헬로우~.”

경완이 들어오며 두 사람을 보더니 경쾌하게 인사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경완이 자리에 앉자 김준이란 이름의 동양계 미국인이 입을 열었다.

“이경완 씨 맞습니까?”

“안 맞을 건데요.”

“???”

이게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되는 김준을 향해 경완이 두꺼운 낯가죽으로 말했다.

“미국인이신가 보네요.”

솔직히 옆에 있는 백인 남성과 비슷하게 양복을 갖춰 입고 동료인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 앞의 천인공노할 농담이 아니었다고 해도 미국에서 온 사람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인도 받아들이기 힘든 개그를 쳐놓고는 뻔뻔한 얼굴로 묻는 경완을 향해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한인 3세죠.”

“그렇군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준과 톰에게 번갈아 가며 시선을 주자 그 시선의 의미를 짐작한 김준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는 김준이고 이쪽은 톰입니다.”

“그게 단가요? 저를 접견 오는 기자도 어디 소속이라고 밝히던데..”

기레기만도 못하냐는 뜻인지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소속을 밝히라는 의사는 분명히 전달되었다.

어렵지 않은 요구였다. 어디어디에서 나온 기자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욕 처먹어서 차마 소속을 밝히지 못하는 기레기보다는 처지가 훠~얼씬 나았으니까.

“FBI 소속입니다.”

경완이 놀라는 척하며 대꾸했다.

“굉장한 곳에서 오셨군요. 그런데 그런 대단한 한 곳에서 왜 저를?”

“부끄럽지만 이경완 씨의 능력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요.”

“그럼 그에 대해 협상하기 전에 먼저 요구할 것이 있어요.”

경완의 말에 김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갑자기 나온 협상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명색이 미연방수사국 소속인데 미국인도 아닌 범죄자가 이렇게 당당히 요구를 하니 조금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뭐죠?”

“치킨이요. 치킨을 뜯으면서 얘기합시다. 한국 치킨 먹어봤죠?”

경완의 물음에 김준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국 치킨이 맛있죠. 그런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협상을 진행하면 협상이 참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까요?”

꽤나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춘 말이었다. 하지만 초장부터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김준은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이미 한국 측 사법당국과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제가 무슨 경찰이나 검찰 소속으로 보이세요?”

그러한 대꾸에 김준은 잠시 경완의 얼굴을 관찰하다가 옆에서 흥미로운 시선으로 경완을 탐색하고 있던 톰과 영어로 쏼라쏼라 조용히 대화를 하더니 감시하던 교도관에게 치킨을 부탁했다.

“여기 치킨 좀 시켜도 될까요?”

그때 경완이 끼어들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깬떩끼 쁘롸이드 ʧi낀이 아니라 꼬레안 쁘롸이드 ʧi낀이요.”

과장스레 혀를 굴린 발음에 김준은 물론이고 교도관까지 짜게 식은 표정으로 경완을 보았다.

하지만 경완의 낯가죽은 지구의 지각만큼이나 두꺼웠다.

“왜요? 치킨 하면 한국 치킨이잖아요?”

똑같은 KFC라고 똑같은 치킨이 아니다. 둘 사이의 가치는 천지차이였다. 뭐라고? 가격은 얼마 차이 안 난다고?

가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켄터키와 코리안 프라이드치킨 둘을 앞에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백 중 아흔아홉은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을 선택할 것이다. 두 마리 치킨도 있는데 왜 두 마리 다 안 주냐고 원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치킨의 국적까지 명시한 경완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맥주도 큰 캔 하나 시원한 거로요. 아! 물 탄 발포주 주제에 맥주라고 개소리하는 국산 맥주는 빼고 수입 맥주 유럽산으로요.”

참 두꺼운 낯가죽이었다.

치킨을 시킨 후 김준이 자리에 앉아 협상을 진행했다.

“치킨이 오고 있으니 협상을 시작할까요?”

“성격이 좀 급하시네요. 제가 배가 부르고 알콜기가 좀 올라오면 더 좋은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 그럼 협상 전에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기 위해 잠시 대화를 하기로 하죠.”

대화의 주도권을 쥐어보려던 시도가 무산되자 김준은 경완이 보통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참 소란스럽게 만드셨던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 생각 없어요.”

“왜 아무 생각이,”

“아아! 이번엔 제가 물어볼게요. 제가 지금 심문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어진 경완의 질문은 훅 들어오는 것이었다.

“혹시 제가 협조하는 대가로 이 나라에 뭘 내어주기로 했나요?”

“.. 그건 미스터 리가 몰라도 되는 일입니다.”

“그래요?”

경완은 감정을 읽기 힘든 김준의 표정을 지으며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협조라는 건 최소한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어떻게 서로 신뢰를 형성하려는 노력도 없이 제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있죠? 제가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요?”

그 말에 김준의 표정이 굳었다. 경완이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며 이번 만남이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것도 알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진실의 스무고개.

경완의 말이 옳았다. 그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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