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06-두유 노우 갱완 리?
김준은 다시 톰과 쏼라쏼라 조용히 대화를 나누더니 입을 열었다. 톰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준이 입을 열었다.
“주한미군 물품 중 몇 가지를 현지 조달하기로 했답니다.”
“현지 조달이면 한국기업이요?”
“네.”
“흐음..”
그 물품을 조달할 기업은 어떻게 선정될까? 잘하면 기업육성이지만 비리가 끼어들었다면 슈킹하기 좋은 일이었다.
감히 미군을 상대로 슈킹이라고?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과 인물이 어떻게 엮여있는지 모르니 속단할 순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미군을 상대로 하는 물품은 정직하게 납품하고, 그 대가로 한국군에 납품하는 물품에서 슈킹을 하려는 건지도.
경완은 자신의 능력을 자기 사익에 이용하려는 건방진 똥덩이가 있는지 당장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갔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주한미군이 끼어들었다는 것.
FBI와 미군이라니?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 이렇게 합을 맞췄다는 것은...
“혹시 제가 심문해야 하는 내용이 테러와 관련되어 있나요?”
경완의 물음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통찰력에 놀란 것이다.
“놀랩군요. 졍왁함니다.”
톰도 놀라 감탄사를 뱉었다.
경완은 턱을 살짝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최대한 협조를 하죠.”
딱히 테러범에 유감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경완은 협조하기로 했다. 언터처블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다 나서 나대는 재소자 놈들이 요새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심심해졌다~ 이 말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등 따숩고 배부른 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밖에서 노숙자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칼로리 확보로 고생하느라 심심하다는 생각도 못 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명상도 하루이틀이지 심심하다 못해 괴로워진 경완은 이번 FBI의 방문을 마실 나갈 기회로 여겼다. 그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기분전환 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것도 사법당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미국이라는 곳으로 말이다.
그의 호쾌한 승낙에 김준의 표정에는 미소가 서렸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입에 발린 칭찬이었만 경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 세부사항을 정리해보죠.”
“세부사항이라니요?”
“설마 미국의 테러용의자를 한국으로 이송해서 절 만나게 할 건 아니잖아요? 당연히 제가 미국으로 가게 되겠죠. 그럴 경우 체류 시간이나 체류 장소, 식사나 자유 시간 같은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꿀 먹은 두 사람의 표정에 경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설마 절 미 교도소에 넣어두려는 건 아니죠?”
“흐음..”
경완의 마지막 질문에 김준이 톰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 모습에 경완은 기가 찼다. 진짜 그러려고 했단 말인가?
“이보세요, FBI분들. 제가 이 교도소에서도 거의 계속 독방만 쓰고 있다는 건 아세요?”
교도관들과의 짝짜꿍으로 경완이 독방을 벗어나는 시간은 사실상 말 안 듣는 재소자를 훈계하고 정신 차리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만큼 독방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유예, 혹은 산책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교도관들은 필요한 때에 경완의 꼬장과 폭력을 꺼내어 말 안 듣는 재소자들에게 쓸 수 있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앞에 있는 놈이 눈에 거슬린다 싶으면 주먹을 주저하지 않는 놈이 저란 놈이에요. 그런데 미국 교도소에 저를 묵게 한다? 그거 시한폭탄이라는 거 아세요?”
김준이 진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고려가 아니가 그 부분이 협상 내용이라니까요. 상부에 허락을 받아야 하더라고 이참에 세세한 부분까지 다 조건을 협의해봅시다. 까딱하다가는 뒤통수 맞게 생겼네.”
경완은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다면 미국 교도소에 갇힐 뻔했다는 걸 물고 늘어졌고 그것을 시작으로 밀고 당기는 입씨름이 벌어졌다.
당국의 규정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회피하는 김준, 굳이 위험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 갈 이유는 없다는 경완.
두 사람의 입씨름은 교도관이 치킨을 들고 들어오자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캬! 이 맛이지!”
두툼한 다리살을 베어 물고 백주를 들이킨 경완이 감탄을 표했다. 그런 경완을 두 남자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완은 그런 두 사람과 시선이 마주하자 이렇게 말했다.
“먹고 싶으세요? 한 마리 더 시키지 그러세요?”
결코 내 몫의 치킨을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뜻이 담긴 말에 김준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하니 경완은 열심히 치킨을 뜯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한국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만 무한전생자로서, 또한 환생이 아니라 빙의했을 뿐인 경완에게 갑작스레 한국인 종특이라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신이 돋아날 리 없었다.
두 사람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정도로 라이브 먹방을 찍은 경완이 맥주로 입가심을 하자 김준이 입을 열었다.
“일정에 대해서는 차후 알려드리죠.”
“그런 건 알아서 하셔도 되고요. 제가 어디에 묵을지, 뭘 먹게 될지가 가장 큰 문제거든요.”
“원하는 조건을 먼저 말해보시죠.”
“제가 뭐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하지만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벌레가 나오지 않는 방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식사로는 미국이 입안으로 군대를 보낼 것 같은 음식은 사양이에요.”
“... 무슨 소립니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경완이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입안에 유전이라도 터질 듯이 기름진 음식은 사양이라고요.”
그 말에 김준과 톰은 쓰게 웃었다. 미국은 테러 응징이 목적이 아니라 유전을 목적으로 군대를 보낸다는 블랙코미디였던 것이다. 그것이 설령 타국의 주권이 살아있는 땅이라도 말이다.
“그밖에 다른 건 없습니까?”
“당장은 이 정도 외엔 생각나는 게 없네요.”
“그 정도면 좋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에이. 제가 미국 간 후에 에스코트걸이라도 붙여달라며 약속을 어길까 봐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미스터 리는.. 본인도 알겠지만 범죄자니까요.”
혹시 도발로 받아들일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우려가 무색하게 경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쪽에서 뭘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제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요. 합법적으로 바깥바람을, 그것도 미국으로 마실 나갈 기회를 별것 아닌 고집으로 망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테러범이 한 명만 있을 리가 없고, 테러위협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테고...”
이번에 제대로 능력을 보이게 된다면 과연 미국에선 경완을 이용하는 걸 이번 한 번으로 끝낼까?
경완의 판단으론 ‘글쎄?’였다. 테러에 민감한 미국의 입장에선 테러수사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유리겔라 같은 이라도 부두술로 소환해 이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던가?
아무튼, 경완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경완이 똑똑해도 너무 똑똑해 보였던 것이다. 적당히 똑똑하면 활용하기 좋은 자원이 되지만, 너무 똑똑하면 통제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의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차후 보안이라든지 경완의 탈출에 대비하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뭐 그런 의견이겠지.
둘의 속내를 짐작한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에겐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는데 괜히 걱정만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뭐라 할 정도로 오지랖을 부리진 않았다. 굳이 본인들이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데 그걸로 응징한 샘 치면 된다.
그때 경완의 머리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
“뭔가요?”
“적어도 비행기 좌석은 비즈니스는 돼야 해요. 신체 반응을 읽는 건 생각보다 집중력이 많이 소모되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럴싸한 핑계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대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능력이 경완보다 떨어졌다.
= = = = =
FBI와 경완의 첫 번째 만남 이후 두 번째 만남은 보름 뒤에나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경완은 그 어떤 재소자와도 마주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교도관들은 경완을 산책용 공터로 인도하면서 종종 예의주시해야 하는 재소자(일찍이 교도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아 경완에게 참교육을 당한 놈들)과 마주하게 하면서 경완의 존재를 되새겼다. 그리하면 슬슬 기가 살아 반항기가 보이는 놈들도 다시 기가 죽어 관리가 편해졌기 때문이다.
경완은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상부에서 뭔가 복잡한 처리를 거친다고 시간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경완이 뭔가 또 사고를 치면 출국에 문제가 생기니 소장이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이고 말이다.
“생각보다 더 시간이 걸렸군요.”
다시 만난 김준의 말에 경완이 말했다.
“공무원이 다 그렇죠 뭐.”
“.... 그럼 나가죠.”
따지고 보면 본인도 공무원이었던 김준은 말을 아끼고 경완을 재촉했고 경완은 더 말하지 않고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법무부 장관 재가를 통한 특별 귀휴라는 명분으로 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완의 복장은 일반 사복이었다. 죄수복을 입힌 채로 길거리를 걷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전자발찌? 싫어여.”
혹여나 탈옥을 대비해서 전자발찌를 채우려는 교도소 측의 행동에 경완은 거부를 표했다.
김준이 곤란해 하는 교도소 측을 옹호했다.
“전자발찌가 안 되면 수갑을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수갑을 차겠습니다. 제가 무슨 성범죄자도 아니고..”
“수갑을 차고 돌아다니면 괜히 이목을 끌 수 있어요. 그래도 좋습니까?”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가 접니다. 사람들이 제가 수갑 찬 거 본다고 제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요?”
수갑과 전자발찌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차라리 수갑을 고르리라. 남자가 가오가 있지 성범죄자나 차는 전자발찌가 웬 말이란 말인가?
경완의 고집에 김준은 어쩔 수 없이 경완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움직였다.
경완의 좌우로는 김준과 톰이 붙었다.
“야~. 이거 무슨 회장님 된 느낌인데요?”
회장님이 무슨 수갑이냐고 하겠지만 회장님도 감옥에 들어가실 땐 수갑 차고 들어가신다.
경완의 감상은 듣는 사람을 실소 짓게 했다. 톰은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경완의 태연함, 대범한, 혹은 뻔뻔함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You. 뇽담 잘훼.”
“쌩큐.”
그렇게 세 사람은 승용차에 태워져 공항으로 향했는데 경완이 불편을 표했다.
“이 아저씨 덩치가 너무 커요.”
“좀만 참으세요.”
“비행기 안에서도 이러면 저 그냥 드러누워 버릴 겁니다.”
경완이 까탈스러운가? 아니다. 기껏 도와준답시고 미국으로 가는데 열 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 개고생이나 하면 그냥 독방에서 배때기나 긁으며 게으름을 피우는 쪽이 이득이었다.
공항 입구에서 세 사람을 내려준 차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두 사람만 저를 호송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김준의 말에 주변을 살핀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따라 묘하게 예리해진 그의 감각에 여기저기서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공항의 여기저기에 달린 CCTV를 통해서도 말이다. 아마 원거리 감시요원들이겠지.
하지만 경완은 자신의 행동에 당당한 사람이었기에 조금의 위축된 모습 없이 성큼성큼 공항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