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06-두유 노우 갱완 리?
건장한 사내 둘을 좌우로 두고 두 손목을 손수건으로 가린 경완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은 별생각 없는 듯이 그냥 지나갔다. 경완이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면 혹시 또 모르지만 말이다.
“햄버거 먹고 싶지 않아요?”
경완이 저~기 앞에 보이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을 가리키자 김준이 이마를 한 번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얼굴이 드러나면 소란이 일어날 겁니다.”
“안에서 먹는 게 아니라 어디 구석에서 짱 박혀서 궁상맞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더 눈에 띄지 않겠어요?”
“아니면 당당하게 먹던가요.”
어떻게든 저 햄버거를 먹고 말겠다는 집념에 김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내가 사 올 테니까 마스크 벗지 말고 기다려요.”
“네.”
마스크 벗지 말라면 벗지 않는 배려쯤 경완에겐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만일 경완이 김준의 입장이었는데 마음대로 마스크를 벗고 댕기면 다시는 마스크가 필요 없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숨을 틀어막든지 허파에 구멍을 내서 코와 입으로 숨을 들이쉬지 않도록 해주든지 하는 등 방법은 많았다.
뭐? 그러면 영원히 숨 못 쉬는 거 아니냐고? 현대 의학 기술을 얕보면 안 된다. 이미 삼도천을 건너셔야 하는 재벌 회장님도 상속이라든지 주가라든지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 때문에 억지로 숨을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 현대 의학기술이었다.
잠깐 기다리니 김준이 햄버거 세 개를 사 왔다. 세 사람은 공항 대합실의 의자에 앉아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출국 게이트에 들어섰다.
경완의 신분이 신분이었기에 그의 출국심사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랐다. 출국을 심사하는 공항 직원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거나 전화를 받고 나서야 경완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그 여권은 경완의 품이 아니라 김준의 품으로 들어갔다. 다방면에서 경완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거는 것이었다.
경완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헛된 꿈을 꾸며 탈출할 리가 없는 그에게 여권은 오히려 소매치기당하지 않을까 신경 쓰게 만드는 짐이었다.
다행히 그의 우려와는 달리 톰의 몸집은 비즈니스석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그는 별 불만이 없는 상태에서 14시간을 날아 워싱턴DC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대낮이었다.
“웰컴! 어메리카!”
비행기에서 내린 경완이 터뜨리는 감탄사에 김준과 톰은 쓴 미소를 지었다. 서울에서 워싱턴DC까지 날아오는 14시간 동안 12시간을 잘 수 있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란 말인가?
자신들과 일부 근거리 요원들이 교대로 수면을 해가며 경완을 감시하려던 계획은 그 각오와 달리 허탈감만 안겨 주었다.
기내식 먹을 때 빼고 계속 잠만 잔 경완을 감시하는 건 보는 사람도 졸리게 할 정도로 지루한 일이었다. 뭔가 이것저것 하고 있어야 긴장이라는 것을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렇게 잠을 많이 잘 수 있죠?”
김준이 톰의 질문을 통역해 주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자다가 깼다고 눈을 뜨지 말고 그대로 눈을 꼭 감고 있으면 돼요.”
그럼으로써 뇌를 수면에 빠뜨리는 뇌파를 날리지 않고 붙잡아 계속해서 뇌에 수면 자극을 가한다는 부연설명에 김준은 턱이 벌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요령이에요, 요령.”
경완은 별거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눈뜨고 숨 쉬고 있는 게 지겨워지면, 현실보다 꿈속이 더 간절하게 느껴진다면 누구나 한 번쯤 터득할 수 있는 요령이라고 경완은 설명했다.
수면에 관해서 경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김준은 그대로 그를 데리고 워싱턴 DC에 있는 FBI 본부로 그를 데려갔다.
딱딱한 직각이 인상적인 건물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톰이 나섰다.
그가 출입절차를 담당하는 사무원을 비롯한 FBI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준은 경완의 통역을 담당했다.
톰이 경완에게 뭐라고 말했다. 김준의 통역은 이러했다.
“오늘 바로 실력을 볼 수 있겠습니까?”
“푹 자서 가능할 것 같네요.”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그를 곧장 심문실로 데려갔다. 한쪽 벽에 매직미러가 설치된, 영화에서 본 그런 방이었다.
경완은 방에 들어가자 생각났다는 듯이 김준에게 심문자에 대한 것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꼭 알아야 합니까?”
“제 재주는 제가 가장 잘 다루겠죠? 그러니 심문받는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들이 그로부터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해서 안다면 빠르게 원하는 걸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경완의 말은 타당한 면이 있었다. 김준은 그것을 톰에게 전달했고, 톰은 다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더니 Secret이라는 도장이 찍힌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미스터 리. 이 안에 있는 자료는 대외비입니다. 남에게 말해서는 안 돼요.”
경완은 기가 찼다.
“제가 영어를 못 하는데 저에게 이걸 보여주면 어쩌라는 거예요? 구겨서 똥이나 닦으라고요?”
“.. 아..”
아는 씨발.
경완은 김준에게 최대한 자료를 요약해서 설명해주고 기관에서 심문대상자를 심문해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알려주었다.
간추리자면 미국 내에 암약하는 테러 조직의 정보원이 심문대상자이고, 이 자를 심문해 윗선이 누구인지 그 이름을 파악하는 것이 FBI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부수적인 소득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말도 들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준과 토의하며 신속한 심문과정을 위한 준비를 요구했다. 가령 예를 들어 장 형사가 유괴범의 공범을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미리 유괴범의 지인 이름 목록을 준비한 것과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준비가 갖춰지자 김준은 경완의 손목에 찬 수갑을 풀었다. 그 대범함에 경완은 감탄하는 표정을 물었다.
“이래도 되나요?”
“여기는 FBI입니다.”
김준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대꾸했다. 어디 한 번 탈출해보려면 해보라는 말에 경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탈출하면? 그때부터 도주와 추격이 이어지는 개고생이 시작될 텐데 그건 경완으로서는 메리트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미스터 리를 우리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흐음.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경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기계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신체 반응만 살필 텐데 딱히 연기가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잠시 뒤 아랍계 백인(?)으로 보이는 초췌한 안색의 남성이 붙잡혀 들어왔다. 죄수복을 입은 그를 자리에 앉히자 톰이 그에게 뭐라뭐라 말했지만 아랍계 남성은 꾸욱 입을 다물었다.
그에 톰은 고개를 작게 젓더니 김준을 보았다. 김준은 경완을 보았다.
“시작하죠.”
“네. 이름이 압둘 자하드 맞나요?”
경완의 질문을 김준이 통역했다. 압둘의 대답을 김준이 도로 통역할 필요는 없었다. 압둘이 묵비권을 유지했을뿐더러 경완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대답이 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부모님과 누나가 있군요. 맞나요?”
“혹시 IS 같은 테러조직과 접촉한 적 있나요?”
“접촉한 적 있다면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접촉이었나요?”
“친숙한 사람으로부터의 접촉이 확실한가요?”
“그 친숙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이 사람이었나요?”
“이 사람?”
경완은 FBI에서 준비한 사진을 하나씩 압둘에게 보여주며 누가 그와 ‘접촉’한 사람인지, 그‘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누구고, 또 그‘가’ 지시를 내린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했다.
질문이 이어지면서 압둘의 표정은 잔뜩 굳어갔다. 그는 속으로 설마만 외칠 뿐 그의 어깨를 짚은 손으로부터 자신의 몸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입은 침묵을 유지하지만 몸은 솔직했다랄까?
다소 얼이 빠진 얼굴로 압둘이 도로 사라지자 이제 남은 건 경완의 스무고개가 정말 효용성이 있느냐 검증하는 것이 남았다.
그리고 그 검증은 금방 끝났다.
“놀랍군요.”
“시험이었나요?”
경완의 반문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반신반의하며 언론의 과장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러한 의심이 무색하게도 경완이 신체 반응을 통해 읽어낸 답은 그간 FBI가 조사한 사실과 9할 가까이 일치했다. 그 정도면 경완을 데려온 것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남은 1할가량에 대해서는 오히려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경완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다.
경완이 물었다.
“그럼 실전은 언제 하나요?”
“내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당장에라도 가능합니다.”
“급하지 않으면 내일로 하죠.”
김준의 대답에 경완이 대꾸했다. 꿀은 빨 수 있을 빨아야 남이 먼저 빨지 않는다.
그런 경완의 반응에 김준은 예상했다는 듯이 실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경완이 묵게 된 숙소는 근처의 호텔이었다. 그리 비싼 호텔은 아니었지만 경완은 만족했다. 감방이랑 비교하면 말 그대로 호텔이었다.
다만 함부로 방을 벗어날 순 없었다. 전자 장비 및 요원을 배치하여 경완의 탈출을 방지했다. 뭐 그럴 생각도 없는 경완이었지만 국가기관으로서는 안이한 대처를 할 순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경완은 김준과 톰이 아닌 다른 요원과 함께 다시 FBI본부로 들어왔다.
이번에 그가 어깨에 손을 올린 남자는 무하마드 에스톤이라는 아랍계의 남성이었다.
“이름이 무하마드 에스톤 맞죠?”
초반의 질문은 아주 대답하기 당연한 것부터 시작했다. 이름, 성별, 나이 등 대답해도 상관없는 것.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신체 반응이 참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잡는 일이었으니까. 비유하자면 사격에서 영점조절을 하는 거랄까?
경완의 질문을 계속되었다. 아주 사소한 신변잡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민감한 곳으로 들어왔다.
무하마드 에스톤은 앞서 침묵을 지켰던 압둘과 마찬가지로 묵비권을 유지했으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그가 눈을 감아버린 것은 경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뉴욕에 있는 거점이 여기 맞죠?”
경완이 손끝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김준이 그 옆에 그 장소의 사진을 턱 하니 옆에 놓았다.
격동되는 마음. 하지만 무하마드는 거짓말 테스트기도 어쩌지 못한 자신의 신앙심을 믿었다.
“여기에 소유주하고 당신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죠? 예를 들어 테러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던가?”
김준이 경완의 질문을 통역해 무하마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경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손을 좀 봐도 될까요?”
김준이 통역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경완이 직접 무하마드의 팔을 잡아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김준은 불현듯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심문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슬림이라죠? 신을 믿습니까?”
그런데도 경완은 질문을 던졌고 김준은 통역했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김준의 입을 통해 귀에 들어오는 질문을 무념무상으로 흘려버렸다.
경완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갸웃했다. 그리고 무하마드의 귀에 속삭였다.
“알라 후 아르바크?”
우둑!
“으아악!”
별안간 벌어진 일이었다. 경완이 무하마드의 새끼손가락을 쥐고 위로 꺾어 버린 것은.
무하마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자 김준은 재빨리 홀스터가 있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