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48화 (48/367)

047-06-두유 노우 갱완 리?

[국내에 암약 중이던 테러조직 모집책들 대거 체포!]

[위대한 아메리카는 절대 테러리즘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테러조직의 모집책 수뇌부 추적 중!]

미국에서 대서특필된 뉴스였다. 테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이슈인 데다가 당국의 성과가 매우 좋아 기자들은 물론 언론사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귀국해 도로 독방에 갇혔어도 교도관들의 배려로 인해 종종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경완은 미국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뉴스에 다음 출장(?)은 언제인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C팀 팀장 데이비드가 주었던 화끈한 선물이 다시 떠올랐다. 화끈한 양반인 줄은 알았는데 그렇게 화끈한 선물을 줄 줄은 경완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무료한 일상에서 잠시 번뇌를 잊기엔 기분 좋은 자극은 꽤나 좋은 수단이니 그래서 세상은 참 요지경인 모양이다.

경완은 다음 출장을 기다리며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종종 들어오는 무기수에게 무기징역은 인생의 밑바닥이 아니라는 교훈도 반복해 가르친다고 독방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쯤 되면 홍 소장이 경완의 영구 독방을 결정 내려도 무방한 상황이지만 경완을 어느 정도 파악한 홍 소장은 그것이 어차피 요식 행위에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 새끼는 그냥 평생 교도소에서 살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미국을 다녀온 소감은 어떤가?”

홍 소장과의 면담에 경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새삼 그걸 물어보시는 이유가 뭐예요?”

미국에서 돌아온 지 보름이나 지났는데?

경완은 홍 소장이 어려운 부탁을 꺼내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거라고 이미 짐작했다.

아니다 다를까? 홍 소장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상부에서 또 공문이 내려왔어.”

“법무부에서요? 또 파견인가요?”

“그래.”

“그런데 굳이 제게 이렇게 알려줄 필요가 있나요?”

그냥 미국 갈 날짜가 나왔다고 통보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 물음에 홍 소장은 잠시 말을 망설였다.

“그게 말이야.. 높으신 분들이 이 파견.. 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탐탁지 않아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그래서 본인이 파견을 거부한다면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홍 소장님께 압박이 들어왔다?”

“커흠! 압박이라니? 제안이지.”

압박이라고 하면 모양 빠지니 애써 제안이라고 표현을 완화해본 홍 소장이겠지만 정말 제안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저자세로 경완에게 사정(私情)하는 조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흐음..”

경완은 잠시 고민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정말? 진짜?”

혼또니?

홍 소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리 경완이 범죄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도 미국의 이익이 얽혀 있었다. 게다가 경완의 성격상 그깟 높으신 분들의 사정을 고려해줄 리도 없었다.

바보 천지도 재소자가 밖에 싸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쉽게 포기하겠는가?

그런데 경완은 그렇게 했다. 일단 윗선의 압박에 말을 해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선선히 받아들일 줄은 홍 소장도 몰랐다.

경완이 놀라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동안 홍 소장님을 비롯해 교도관분들께 신세를 많이 졌는데 이렇게라도 보답을 해야죠.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되면 보나 마나 꼬장 피울게 뻔한데, 저야 미국에 가버리면 되지만 홍 소장님하고 남은 사람들은 피곤할걸요?”

나 무슨무슨 도지삽니다라고 119로 연락했다가, 비상 전화로 그러면 안 된다고 소방관에게 훈계당하고는, 꼴 받아서 그 소방관을 좌천시켰다가, 그게 또 언론에 알려져서 국민적 공분을 사니, 그 소방관을 은근슬쩍 복귀시키고, 우리 화해했답시고 환한 얼굴로 같이 사진 찍어 언론에 제출한 치졸하기 짝이 없는 정치인의 행태를 생각해보면 경완의 우려는 매우 현실성 있었다.

그 사진에 벌게진 얼굴로 억지 미소 짓고 있는 소방관의 얼굴을 보면 어우! 참 이 나라 가장들이 이렇게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절로 날걸?

“에휴..”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나름 교도소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올라오면서 많은 것을 목격했다. 그중에 소위 권력을 쥔 자들의 치졸한 행태를 보면 차라리 집구석 백수를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아무튼 말을 들어주어서 고맙다. 내가 권한을 사용해서라도 치맥을 챙겨주도록 할게.”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이면 좋겠습니다.”

“... 알았다.”

경완의 당당한 요구에 잠시 망설이던 홍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으로서는 밖에 나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이기에 그 정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죠.”

“응?”

“그 압박, 아니 제안을 하신 국회의원 이름이 어떻게 돼요?”

“..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국회의원은 맞다 이거네요.”

떡밥을 덥석 문 홍 소장은 눈알을 굴리며 입을 다물었다.

“.... 난 말 못 한다.”

“뭐 뻔하죠. 양승태 그 새끼 그렇게 되고 나서 콩고물을 못 핥아 먹게 된 놈들 중 힘 좀 발휘할 수 있는 놈이겠죠.”

그냥 경완이 평생 교도소에서 얌전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미국까지 갔다 올 정도로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니 불안한 모양이었다.

아직 왕대한 천억 폰지 사기, 4백억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사건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높으신 분들은 그저 빨리 국민들의 관심이 사그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시니, 이경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다시 매스컴에 뜨는 상황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이경완 하면 양승태, 양승태 하면 김오민, 김오민 하면 왕대한, 이렇게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늘어지니까.

그만큼 국회의원 테러범 이경완이 한국 사회에 남긴 족적은 짙었다. 국민에게 남긴 충격과 인상의 강도는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탕탕탕!’에 못지않았다.

“....허허.. 허허허.”

그리고 그런 경완의 통찰력에 홍 소장은 웃으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 소장을 보며 경완은 한 가지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홍 소장은 이 교도소란 큰집의 집주인은 아니라도 관리책임자는 되지 않는가? 현장 실무자와 친해지면 여러 가지가 편해진다는 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소장님. 제 생각에는 말이죠, 조만간에 무슨 일이 닥칠 것 같아요. 그때를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어떨까요?”

“무슨 일?”

경완의 통찰력을 경험한 홍 소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경완은 이런 걸 가지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놈이 아니었다.

경완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가 홍 소장님의 권유를 수용한 게 홍 소장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라고 내린 결정이라는 걸 그때 가서 잊으시면 안 됩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그의 미소는 홍 소장에는 무척이나 불길하게 느껴졌다.

= = = = =

“미국에 오는 걸 거부했다는데... 무슨 일입니까? 혹시 팀장님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요?”

경완이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의견이 전달되자 김준이 한국까지 날아와 경완을 접견했다.

경완은 뒤에 있는 교도관을 슬쩍 보더니 대답했다.

“높으신 분들 중에 제가 나대는 꼬라지가 심히 불편하신 분들이 있는 것 같던데요?”

“근거는요?”

“알다시피 전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회의원 테러범이고 제 이름에 함께 엮인 것들이 심히 부담스런 분들이 높은 자리에 계시잖아요?”

명석한 김준은 경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는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이건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타국의 정치적인 문제였다.

“하아.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해야겠습니다.”

“그래야죠.”

“그래서 미스터 리는 그들 때문에 미국에 못 가는 겁니까?”

김준이 물었다. 상부에 보고하기 전에 경완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설마요. 미국이 보내 달라고 살짝 언성을 높이면 그 녀석들 아마 바로 찌그러질걸요?”

“그런 거라면 제가 왜 여기까지 와야 했습니까?”

그렇다. 솔직히 경완이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김준이 그를 만나 의사를 확인하려 14시간 동안 날아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참 치졸한 놈들이지 않아요? 지들이 뒤가 구린 짓을 해놓고서는 혹여 들킬까 봐 쉬쉬하려고 멀쩡히 자기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압박을 넣는 게?”

“흐음...”

김준은 경완이 그가 있는 이 교도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런 놈들이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한단 말이죠.”

“교도소에 무슨 짓을 할 거라는 말인가요?”

“저를 미국에 보내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국익보다 자기네 안위와 기득권을 먼저 생각하는 놈들이잖아요? 아마 저를 엿 먹이려고 이 교도소를 어수선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괜히 가만히 있는 교도소장에게 화풀이도 할 겸 말이죠.”

과연 21세기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겠지만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뭐?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들어 ‘나 ○○도지삽니다.’를 다시 보라. 물론 도지코인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한편, 김준은 경완이 교도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눈에 이체를 띄며 물었다.

“여기에 정이라도 든 겁니까?”

이에 경완은 다소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자기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타인에게도 친절해지기 쉽죠. 상상해 봐요. 그놈들이 그 알량한 앙심을 풀기 위해서 여기 교도소장부터 말단 교도관들까지 귀찮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면 그 여파가 저에게 미치겠어요, 안 미치겠어요?”

사회에선 멀쩡한 인간이 군대에만 가면 고문관에 개꼽창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대가 좆같기 때문이다.

좆같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좆같이 되는 게 이상한 일일까? 사람이 좆같은 곳에 몸을 담으면 좆같이 된다는 예는 비단 군대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엔 아! 황제폐하라고 찬양하고, 쿠데타 범죄자에겐 오! 구국의 결단을 내린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북한 빨갱이가 내려와 서울을 점령할 땐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님이라고 똥꼬를 빨아댔던 언론 따위에 몸을 담아 기레기화 된 기자들을 보면 명백했다.

남의 주둥이에 짜장면이 들어가나 짬뽕이 들어가나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던가? 대중을 개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따위를 주요뉴스라고 취재하진 않을 것이다.

경완의 말에 김준은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교도관들과 인간적인 유대감이 생겨서 그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였다.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자기 이득만 챙긴다고 주변을 황폐하게 만드는 보단 나았다. 오히려 개인주의가 가득한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 배려심 넘치는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상부에 미스터 리의 상황과 입장을 전하기로 하죠.”

그리고 며칠 뒤, 경완은 미국으로 향했다. 경완에게 무려 법무부 장관이 재가한 귀휴 허가서가 나온 날 홍 소장은 경완을 불러다 면담하며 쓰게 웃었다.

“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니?”

“미국이잖아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미국이야말로 국익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나라에서 살아있는 거짓말 판별기, 그것도 기존의 거짓말탐지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고 신속한 결과를 내는 인재를 잘 써먹어서 테러조직이라는 암세포를 신속하게 색출할 수 있었는데, 고작 동맹국의 부패 정치인이 부리는 곤조 때문에 그런 국익을 포기한다는 건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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