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06-두유 노우 갱완 리?
일단은 동맹국이니 윽박지르기 힘들지만 꼭 외교적인 라인으로 압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경완을 미국에 파견 보내는 일에 부정적인 놈들의 약점을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부탁과 함께 슬쩍 전달하면 끝.
동맹국의 정치적 상황을 살피는 건 외교적으로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경쟁자의 약점을 잡은 정치인에겐 경완을 미국에 보내는 일 따윈 정말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더구나 혈맹인 미국이 좋아하는 일이지 않은가? 보내지 않을 하등의 이유 따윈 없었다.
“하아..”
홍 소장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인터넷 뉴스난에 ‘크리에이티브 캐피탈 자금, 유력 정치인들에게 뿌려져!’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 전화했던 정치인과 다른 당의 정치인으로부터 걱정 말고 국익을 수호하라고 전화를 받았다.
이런 거창한 일이 한 재소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라니.. 30년 넘게 교정직을 해온 홍 소장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 암튼 고맙다.”
홍 소장이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지만 경완이 처음 그들의 제안을 받아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분명 이 난장판에서 홍 소장을 비롯한 교도소 측을 꺼내주기 위한 것임을 이제는 홍 소장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에 경완은 담담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별말씀을..”
그렇게 경완은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김준과 함께 FBI 본부에 들어선 경완은 처음에 방문했던 것과 다른 공기, 다른 분위기를 읽었다. 그를 개무시하던 분위기에서 관심 있어 하는 분위기로 바뀐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생각보다 끈적했달까?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심문실에 들어가기 전에 알 수 있었다.
[반갑군. 자네가 바로 그 마인드 리더인가?]
심문실 앞에 있던 한 백인이 경완에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김준이 옆에서 누구인지 소개를 해주었다.
“IOD의 책임 특별수사관, 스티븐입니다.”
“아! 네, 헬로우.”
경완은 스티븐이라는 사람과 미소로 악수를 해주고는 김준에게 물었다.
“그 아이 뭐시긴가 하는 거 그게 뭐예요?”
“국제작전부요. 스티븐은 데이비드와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동급에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요?”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가? 이에 김준이 스티븐에게 말을 걸었다가 경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번에 미스터 리가 심문할 대상이 남미 마약 카르텔의 간부거든요.”
“히야~. 이번에도 골치 아픈 놈들이네요?”
“비트코인으로 감춰둔 자금을 털어야 하는데 경험이 있으시죠?”
폰지 사기꾼 왕대한의 이야기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븐이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기대하겠네.]
김준과 경완이 심문실로 들어가자 잠시 후 라틴계 남자가 들어왔다. 경완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실의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그리고...
“으아아아!”
“아씨! 닥치고 얌전히 있어!”
김준이 질문을 던진 끝에 조직의 자금이 숨겨진 비트코인 계좌와 암호가 감춰진 금고의 위치, 그리고 그 금고의 비밀번호까지 한 글자 한 글자 밝혀내자 마약 카르텔 조직의 간부라는 놈이 발버둥 치며 발광했다. 저게 털리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제발! 그만해! 뭐든 말할 테니까 제발 그만해!]
“시끄러운데 재갈부터 물리면 안 될까요?”
“흐음.. 그러죠.”
경완의 제안에 김준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끄러우니 진행에 방해가 되긴 했다. 어차피 범인의 입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간부의 입에 재갈이 물렸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비트코인 지갑의 주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요원들이 파견되어 있는 지점 근처에 금고의 위치가 있었다.
덕분에 암호화폐가 얼마 정도 들었는지도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약 2천만 달러정도 들어있네요.”
“그럼 얼마에요?”
“한화로 200억 원이 넘습니다.”
“많은 거예요, 적은 거예요?”
“간부급이 다루는 자금치고는 많은 건 아닙니다.”
마약으로 이루어지는 지하자금은 엄청나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지표가 있는데 바로 마약 묻은 지폐의 양이었다.
북미에 유통되는 달러화 중 90%에서 코카인이 검출될 정도라니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마약이 소모되고, 관련된 자금이 얼마나 큰지 관련자가 아니면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쟤는 그럼 끝난 거죠?”
경완은 넋을 놓아버린 라틴계 남자를 보며 물었고 김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금이 완전히 압수되어 버리면 조직에서 용서하지 않겠지만 스티븐은 야심이 좀 크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목줄로 쓰겠네요?”
비트코인을 국고로 환수하는 대신, 다른 비트코인 지갑에 옮겨놓고 저 마약조직 간부를 제어하는 목줄로 사용한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했다.
위험을 감수해야겠지만 마약 조직에 간부급 빨대를 꽂아 넣는다는 것은 마약조직 수사에 어마어마한 메리트를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미스터 리의 능력을 탐내는 곳이 더 많아지겠군요.”
“피곤해지겠네요.”
김준은 딴에는 경완을 비행기 태우려고 해본 말이었지만 정작 반응이 저러니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눈앞의 이 예의 바르고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그 광기 어린 미소로, 얼굴에 핏방울을 묻힌 채 사람의 귓불을 자르고 허리에 칼을 박아 넣었다니 말이다.
“그럼 점심 먹으러 가죠.”
“오후에도 일정이 있나요?”
“네. 이라크에서 잡아 온 테러조직 간부에 대한 심문이 있어요.”
“저녁 먹고는 좀 쉴 수 있겠죠?”
“....”
경완이 농담조로 던진 말에 김준은 대답이 곤란한지 입을 다물며 시선을 피했다.
경완이 쓰게 웃었다.
“아주 그냥 뽕을 뽑으시려는구만.”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다웠다.
= = = = =
경완의 미국 출장은 총 세 번 이루어졌다. 그리고 FBI는 미국 내 암약하는 마약 카르텔에 대한 수사를 한 단계 진전시킬 수 있었고, 펜타곤에 이라크 내 IS 주요 간부들의 근거지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줄 수 있었다.
이렇게 경완이 능력을 발휘할수록 수사에 그의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FBI부서도 많아졌다.
하지만 첫 번째 출장에서 데이비드, 그 화끈한 양반이 제공한 것과 같은 화끈한 성과급을 주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여러 팀, 여러 부서가 얽히며 시선이 많아지자 에스코트 서비스와 같은 불법적인 포상을 주기가 곤란해졌다.
아무리 워싱턴 정가에서 성매매 합법화 논쟁이 불고 있고, 높으신 분들도 에스코트 서비스를 즐겨 이용하시며, 길거리 성매매에 경찰들은 단속의 손을 놓고 있어, 이용할 만한 사람들은 다 하고 있지만 PC의 바람이 불고 있는 미국에서 성상품화의 끝단계인 성매매는 여전히 불법의 영역에 있었다.
명색이 공무원 조직인데 괜히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그래서 포상이 돈이다?”
“미국 은행의 합법적인 계좌로 예치될 겁니다.”
김준의 설명에 경완은 어이가 없었다.
“나 징역 30년이 넘거든요.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서 나오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국회의원 테러로 20년에 그간 교도소에서 여러 재소자들에게 폭행을 가한 덕분에 경완의 형기는 10년이나 더 부쩍 늘어나 있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무기수가 되는 게 더 나을 판이었다.
세상의 모든 50대가 ‘호호 할아버지라니!’라며 일갈할 소리를 하는 경완에게 김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미스터 리를 미국으로 귀화시키자는 의견도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에 귀화시켜서 사법거래로 형량을 줄여주면 돈을 덜 줘도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겠느냐라는 발상이었다. 가히 자본주의의 끝판왕 국가에 사는 사람들다운 발상이었다.
김준은 이러한 발상에 찬성하던 자신의 상관 데이비드의 말을 떠올렸다.
‘그 Badass가 정치인 허리에 칼을 찔렀던 엉덩이에 좆을 박았던 난 좆도 신경 안 써. 그냥 이 나라에서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돼.’
하지만 그러한 발상에 경완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이야~. 참 진취적인 사람들이네요.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요?”
“그래서 말인, 네? 자신감이요?”
그래서 말인데 미국으로 귀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려던 김준은 경완이 내뱉은 단어에 말을 하다 말고 되물었다.
경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미국시민이 되면 얌전한 준법시민으로 지낼 거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냐는 말이죠.”
“... 미스터 리 입장에서도 감옥보다는 사회가 낫지 않습니까?”
“뭐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자유가 제한된 대신 경쟁이 필요 없는 안락함을 누리거나, 자유를 누리는 대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거나.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뭐가 문제입니까?”
“내가 좆같은 놈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죠. 소매치기가 걸리면 손모가지를 분질러버릴 거고, 내 머리에 총을 겨누면 손가락을 모조리 뽑아버릴 거고, 내게 악의에 찬 눈빛을 보내면 눈깔을 찔러버릴 거예요. 그게 누가 됐든 간에 말이죠.”
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에요.
“안 그래도 소매치기같이 소소한 사건이 자주 벌어지는 나라 아니에요? 밤거리 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한 나라인데 난 그런 게 거슬린다고 밤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놈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경완이 그렇게 첨언하자 김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상황이 상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필시 뭔가 감옥에 가야 할 정도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감옥에 가면 상황은 더 최악이 될 것이다. 그가 아는 경완이라는 남자는 교도소 내의 일어나는 모든 알력에 대해서 폭력으로 답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단순히 폭력이라고 표현했지만 바로 앞에서 지켜본 입장에선 아니었다.
지금까지 경완이 심문한 용의자 및 범인의 수는 총 스물다섯 명. 가장 먼저 경완의 폭력을 경험했던 무하마드는 탈골과 따귀를 경험했는데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귀가 반쯤 찢어진 테러 용의자, 망막 박리가 일어난 중간 마약상, 턱이 깨진 놈 등, 스물다섯 중에 경완에게 달려든 열 명이 예외 없이 그런 부상을 입었다.
그 정도로 손속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망설임이 없다는 수준을 넘어 그의 폭력은 마치 농부가 해충을 때려잡는 듯한 혐오와 건조함, 그리고 피로가 서려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에게 무고한 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다면 김준도 그의 앞에선 항상 긴장해야 했을 것이다.
김준은 방금 경완이 해준 말을 기억해두었다. 상관인 데이비드를 포함해 그를 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해줘야 할 말이었다. 혹여 운명의 장난으로 경완이 트럭을 몰고 미 국회의사당에 달려드는 꼴이 연출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가 보기엔 경완은 부와 명예, 그런 것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비행기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만 가죠.”
경완이 김준을 따라 일어났다. 뒤에 앉아있던 톰이 말했다.
[햄버거 사 들고 들어가자.]
기내식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톰이었다.
햄버거를 먹고 기내에 탑승한 경완은 김준에게 기내식 나올 때 되면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